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정진구 목수

[더,오래] 67세에 목수가 된 치과의사 
치과의사와 목수. 얼핏 듣기엔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치과의사는 치아를, 목수는 나무를 정교하게 깎기도, 다듬기도 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겠다 싶기도 하다. "치과의사는 섬세한 작업을 많이 하고, 기계를 많이 다뤄서 인지 목공일에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로컬라이프](4)
퇴직 10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
생산적인 활동 매력적
"힘 빼고 그냥 즐길 것"


  











정진구 원장은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치과보철과 전문의로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강의하다 귀국했다. 귀국 이후 이태원동에 정진구 치과를 개원했는데, 당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기업인부터 이름만대면 알만한 정재계 사람들의 치아를 담당했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의사 가운보다는 목수 작업복이 익숙하다. 15년 전부터 목공을 위해 진료를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10년 전부터는 거의 목공에 전념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올해 82세인 그는 67세부터 목수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본격적인 목수의 삶을 살기 위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에 1500평 규모의 부지에 목공 작업을 위한 3동의 목공 작업실도 꾸몄다. 그저 취미라기엔 웬만한 목공예 작업실 수준을 뛰어넘는다.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건 오롯이 목수의 삶을 살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지낼 때였는데, 어느 날 친구가 나무 프레임 액자를 만들어 선물했어요. '이걸 직접 만들었냐'라고 물었더니 아버지 따라서 대학생 때부터 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집 차고(garage) 같은 데서 자신만의 작업실을 갖고 목공을 하는 게 당연한 풍경이었어요. 그때부터 나도 언젠가 목공을 배워야겠다고 막연한 꿈을 갖기 시작했죠." 
  
개원의에게 정년퇴직이 있겠느냐마는 그는 은퇴를 염두에 두고 목수의 삶을 조금씩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러스틱 가구(rustic furniture) 스쿨에서 매년 여름 한 달씩 수련하며 목공 기술을 익히며 막연한 꿈을 실천에 옮겨 나갔다. 그가 주로 다루는 러스틱 가구는 나무의 테두리를 다듬지 않고 원형 그대로의 모양을 이용해서 만드는 가구를 말한다. 나무 원형 그대로를 살리다 보니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는 점이 매력이다.  
  
배울수록 재미가 있고 욕심도 났다. 지금도 꾸준히 목공과 관련한 책과 영상을 보며 기술을 익힌다. 여전히 나무며, 목공 장비들을 사다 모으기 바쁘다. "사실 전 좀 욕심을 내서 장비를 좀 거창하게 갖췄어요.(웃음) 목공이 이른바 '비싼취미'라는 인식이 있지만, 처음에 시작할 때는 톱, 망치, 대패, 끌 등의 장비만 갖춰도 손쉽게 시작할 수 있죠." 
  
그는 마음속으로 목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냥 즐길 것(Just Enjoy)'을 당부한다. "퇴직 10년 전부터 조금씩, 서서히, 가볍게 시작하세요. 지금에 와서 그림을 그린다고 피카소가 되겠어요?(웃음) 거창하고 대단한 작품을 만들다기 보다 그냥 힘 빼고 즐기세요." 
  
그에게 목공의 매력이 뭐냐 물었더니 자연과 벗 삼을 수 있다는 점, 생산적인 활동이라는 점, 머리보다 몸을 쓸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 등을 꼽았다.  
  
"머리 쓰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는 분들한테 추천해요. 나무를 옮기고, 자르고, 다듬고 하면서 몸을 쓰다 보면 잡생각도 사라져요. 목공은 최소한의 결과물을 만나볼 수 있어요. 그냥 땔감으로 쓰이고 말 수도 있는 나무로 의자, 테이블, 우편함처럼 집안에서 쓸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만들어 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는 집안의 플라스틱을 나무로 만들어 가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 오래된 가구를 리폼해서 새로운 형태로 바꿔 나가기도 한다. "목공은 무엇보다 생산적인 작업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은퇴하고 많은 남성이 산으로 가는데 건강에는 좋겠지만,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일 때가 많아 안타깝죠. 아직도 무언가 생산을 해낼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자 자랑입니다. 일단 한번 시작해 보세요. 너무 좋아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212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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