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민간자격증, 자격기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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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일, 주간경향 1104호, 권순철 기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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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취업을 빙자한 자격증 홍수시대

ㆍ등록된 민간자격증 무려 1만 1257개… 발급기관 난립 소비자 피해 속출

취업준비생인 엄준식씨(가명·28)는 노인복지 관련 기관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한 일간지를 보니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증에 대한 광고가 나와 있었다. 그는 전화상담 도중 자격증을 따면 100% 취업이 보장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는 교재비 58만원, 응시료 5만원, 자격증 발급비 2만원 등 총 65만원을 지불하고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계약 당시의 말과 달리 취업은 보장되지 않았다.

심리상담사, 독서지도사, 동화연구지도사, 자기주도학습지도사, 무궁화교육지도사, 서비스강사, 예절지도사, 환경관리지도사, 파워스피치지도사, 재활용공예지도사 ….

바야흐로 민간자격증 홍수시대다. 지난 2007년 정부가 자격기본법을 제정해 민간자격 등록제를 도입한 이후 자격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부업 및 자격증 박람회에 참가한 메이크업 학원 측이 보디페인팅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 경향신문 자료


거짓광고에 미등록 자격증 발급국회 정무위원회 김정훈(새누리당)·이학영(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으로부터 받은 ‘민간자격증 등록현황’에 따르면 민간자격증은 지난 2008년 655개를 시작으로 2010년 539개, 2012년 1453개, 2014년(10월까지) 4631개가 새로 등록됐다. 지금까지 등록된 민간자격증 수만 무려 1만1257개다. 민간자격증은 현행법상 국민의 생명·건강·안전 등에 직결되는 분야를 제외하면 특별한 심사 없이 간단한 절차만으로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수가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이다.

자격증이 급증함에 따라 각종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 자격증을 하나라도 따두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올해 교육부 등 정부가 일부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에 대해 지도·점검을 실시한 결과 10월까지 고발 또는 시정명령을 받은 기관이 26개에 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취업 보장’ 같은 거짓광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일부는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자격증을 발급한 곳도 있었다. 교육훈련을 겸하는 발급기관의 주요 수입원은 교재비, 수강료, 전형료 등이다. 한정된 시장에서 발급기관이 난립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자격증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격증 발급기관 간의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한 자격증이 인기가 있다 싶으면 너도나도 달려든다. 명칭이 같거나 유사한 자격증만도 수백개가 넘는다. 현재 155개 기관이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으며, 148개 기관이 심리상담사, 65개 기관이 독서지도사, 64개 기관이 자기주도학습지도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또한 전문적인 훈련과정 없이 자격증이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기관이 자격증을 100개 이상 발급하는 곳도 여러 곳 있다. 이학영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사)한국국공립대학평생교육원협의회(218개), 국제MBPA학문진흥협회·MBPA과학본부(111개), 국제리더관리협회(108개), 풀잎문화연합회(106개), (사)국제문화예능포럼(102개), ㈜한국상담협회(100개) 등 6개 기관의 자격증 발급 개수가 무려 745개에 달했다.

이학영 의원은 “아무리 민간자격증이라 하더라도 그 전문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민간자격증을 양산하는 것도 좋지만 이에 맞는 양질의 자격증이 나오도록 자격증 시장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없다. 정부 관계자는 “현행법에 민간자격증과 관련해 한 기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 수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며 “동일한 명칭의 자격증의 경우도 한 개 명칭으로 한 기관의 자격증만 허용할 경우 특정기관이 선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이름의 여러 개 자격증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기관에서 218개 자격증 발급도
자격증을 가장 많이 발급하고 있는 한국국공립대학평생교육원협의회는 관련 분야에 충분한 지식을 갖춘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국공립대학평생교육원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는 전국 45개 국·공립대학 평생교육원이 회원교로 활동하고 있다”며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90시간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에게 자격증 등록 신청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격증 발급기관 난립으로 소비자들의 피해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민간자격증과 관련해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상담건수가 5457건이나 접수됐으며, 이 중 304건은 발급기관의 부당행위가 인정돼 피해구제를 받았다.

A씨는 최근 다문화상담사 자격증 교재를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고 업체와 통화해 교재 비용 55만원을 카드 결제했다. 구입 당시 인터넷 광고에서는 자격증을 취득하면 누구나 다문화가정 관련 센터에 취업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받아보고 자세히 이 자격증에 대해 알아본 결과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 A씨는 교재를 반품했으나 다시 반송돼 돌아왔다. A씨는 다행히 이를 소비자원에 신고해 구제를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훈 의원은 “현재 각 부처에서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에 대해 점검하는 인력과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모든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을 감시할 전담조직과 전문인력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도 민간자격증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마치 자격증을 따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만능’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간자격증을 소지했다고 해도 국가가 공인하는 국가자격증과는 달리 취업 시 가산점을 받는 등 특혜가 전혀 없다.

자격증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발급기관이 자격증을 한 번 발급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사후관리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라며 “민간자격증을 취득한다 해도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정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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