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4일 금요일

[우리는 ‘법 위의 특권’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을 요구한다]


[우리는 ‘법 위의 특권’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을 요구한다]
- 서울시선관위의 보도자료에 대하여


지난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는 서울시선관위가 137명의 젊은 문인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건에 관해 고발 취하와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12월 31일 서울시선관위는 이 성명서의 내용을 반박하는 ‘입장’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 입장을 요약하면, 137명의 문인들이 신문에 게재한 광고가 “선거의 공정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위”이며, 서울시선관위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광고시기·내용 등 위법성의 정도에 따라 고발 3건, 경고 7건”의 조치를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작가회의가 문인들에 대한 고발 취하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를 경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아울러 서울시선관위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 조치를 취하할 것을 요구하는 일은 “공정한 선거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고, ‘법의 원칙’은 문학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기관인 선관위가 자신들이 고발한 사안에 대해 이토록 신속하게 반박 입장을 밝히는 것도 이례적인 경우이지만, 보도자료까지 배포하여 앞으로 있을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권교체’라는 표현은 여야 후보 모두가 사용한 일종의 시대의식으로서, 야권후보는 ‘정권교체’에, 여당후보는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를 각각 강조했다. 선거 과정에서 작가들이 “새로운 대통령”을 요구하는 글을 신문에 게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연 “선거의 공정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작가들의 행위가 국민 모두에게 부여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겠지만, “고발 3건, 경고 7건”의 실체적 내용을 확인하고 형평성을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들의 행동이 “선거의 공정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위”였다는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적발되거나 의혹이 제기된 여러 사례들과 비교해보아도 작가들의 행위에 ‘현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 선관위가 조치한 “고발 3건, 경고 7건”의 구체적인 사례와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문학인들이 선거법을 초월한 ‘특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인의 특권을 주장한 적이 없다. ‘선거법 위반’의 혐의를 받고 있는 여러 사례들을 비교 검토하여 과연 어떤 것이 선거의 공정성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위였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서울시선관위의 말처럼 ‘법의 원칙’이 문학인이라고 해서 달라질 수 없는 것이라면, 같은 이유에서 권력에 한층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예외여선 안 된다. 서울시선관위는 처음부터 작가들이 게재한 광고가 특정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우리가 확인한 그 광고의 실체적 진실은 다르다. 이번 광고는 비록 ‘시국선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는 않으나 지난 5년 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4대강 사업, 언론사 파업, 강정 해군기지건설 - 을 접하면서 “새로운 대통령”의 필요성을 절감한 젊은 문인들의 ‘시국선언’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광고로 해석되어 선거의 공정성을 ‘현저’하게 위반한 행위로 판단되어도 좋은 것일까. 과연 우리 국민들에게는, 문학인들에게는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을 요구할 자유조차 없어야 하는 것일까. 서울시선관위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공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공정’의 ‘평등’, 즉 형평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치주의를 경시”한 쪽이 과연 어느 쪽인지 국민들은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다.


2013년 1월 2일
(사)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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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138번째 선언자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박근혜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100퍼센트 대한민국’,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시대교체’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당선인 대국민 인사에서는 화해와 대탕평책을 통해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듬어 모두가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선거 이후의 상황은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넘어서 ‘화해’의 시대를 열겠다는 당선자의 의지를 선뜻 신뢰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가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몇몇 노동자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행복’을 약속했던 정치세력은 동요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인수위원회의 인사를 둘러싸고 들려오는 잡음은 ‘화해’와 ‘100퍼센트’라는 약속이 한낱 정치적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의심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선거 기간에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세력에 대한 고소·고발과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다수의 국민들은 이것이 긴 ‘겨울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닌지 벌써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신문매체에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실무를 맡은 손홍규 소설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은 비록 한 명의 작가를 고발했을 뿐이지만 경찰조사가 끝나면 나머지 136명도 모두 같은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당 ‘선언문’의 형식을 띤 광고 중에 ‘독재자’,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린다.’,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라는 부분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라는 문학인들의 선언이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상황을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때문에 생긴 선거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견제를 봉쇄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탄압이라고 판단한다.

  문학은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며 성장한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문학’도 없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은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왔고, 그 긴장을 자양분으로 삼아 창조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중요한 역사의 장면들에 문학인들이 깊이 관여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정치적 행보는 비단 특정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모든 권력적인 것에의 저항을 통해서 ‘자유’를 호흡하려는 외침이었다. ‘자유’의 공기를 들이마신 문학인들의 ‘기침’, 그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불러왔거니와, 그것은 창작에의 자유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당히 누려야 할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특정 후보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상태로 ‘정권 교체’와 ‘삶의 가치’를 주장한 문학인들의 진의를 현실 정치의 논리로 재단하여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주의의 시간을 되돌리는 반(反)역사적인 구태에 불과하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문학인에 대한 고소·고발을 즉각 취하할 것과 검찰이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넓은 안목을 갖고 판단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없다면 ‘화해’와 ‘통합’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낡은 구호 이상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은 그 선언문에 서명한 137명의 문인들이 같은 뜻을 지녔던 문학인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해 동참하지 못한 수많은 문학인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기꺼이 138번째 선언자가 될 의사가 있다.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이 유독 추운 것은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울산과 평택의 송전탑 위에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함께 살자”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이들의 삶에 희망을 드리우지 못하는 한 ‘100퍼센트 대한민국’은 또 다른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화해’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헌법적 권리에 따른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권력기관의 압력에 의해 저지당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서울시 선관위와 검찰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12년 12월 28일
(사)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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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정권교체 주장 문인광고 고발 취하 못한다"

문학인이라고 원칙 달라지는 것 아냐"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문인 137명이 정권교체를 주장한 선언문을 신문에 게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소설가 손홍규씨를 검찰에 고발한 사건에 대해 취하할 계획이 없다고 31일 밝혔다.

이는 지난 28일 한국작가회의가 `우리 모두는 138번째 선언자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손씨에 대한 고발 취하를 요구한 데 따른 입장 표명이다.

시 선관위는 "광고 내용은 특정 후보자의 명의는 아니지만 야당 후보자를 지지하고 여당 후보자를 반대하는 내용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일간신문에 광고한 것은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로 볼 수 있어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학인이라고 해서 법의 원칙이 달라지는 건 아닌데도 공정선거 책무를 수행하는 선관위의 고발 조치를 취하하라고 요구하는 건 선거관리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젊은 시인과 소설가 137명은 대선을 닷새 앞둔 지난 14일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일간지에 전면광고로 게재했으며, 시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손씨를 대표로 고발했다.

ro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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