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수능시험, 입시제도, 상상력, 은유법, 도정일, 랭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58627

[삶의 향기] 고교생을 위한 상상력 훈련


수능 시험에 복수 정답들이 나왔다고 해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가 이런 실수를 막아줄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지는 듯하다. 정답 하나에 인생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여기는 입시 준비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른 사회가 적어도 출제 실수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시험문제 출제에는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듯이 보이는 무슨 ‘마’ 같은 것이 낄 때가 있다. 수백 번 정답을 검토하고 또 해도 ‘출제장의 그 이상한 악마’를 막아내지 못하는 수가 있다. 물론 이런 소리로 실수를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능 제도를 개선할 근본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소리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근본 대책의 핵심 사안은 두 가지다. 첫째로 출제의 완벽성을 기하는 데 제도개선의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물론 출제는 완벽해야 하지만) 한 번의 수능이 수험자의 운명을 결정해 버리는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 수험생은 한 번 아닌 최소한 세 번의 응시 기회를 가져야 하고, 성적도 세 번의 합산평균이 아니라 세 차례 성적 중에서 최선의 것을 자신의 최종 성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대책은 제도를 찔끔찔끔 손질하는 접근법을 넘어 ‘입시교육’과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입시교육으로는 사고, 성찰, 판단, 상상, 창조의 능력과 소질을 가진 젊은이들을 길러내기가 매우 난망하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이 오로지 대입을 목표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능력을 평가하고 (심지어 인격과 품성까지) 교육자원을 총집중한다는 것은 교육 왜곡, 인간 모독, 자원 낭비다. 사회 각계가 이런 소리를 해온 지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근본적 ‘개혁’을 말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좋은 기회다.

 이 칼럼이 좁은 지면 안에서 입시교육과 제도의 개혁안을 상론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의 고교 교육이 왜 문제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만 들고 싶다. 그것은 ‘문해력의 파탄’이라는 문제다. ‘문해력’은 문자해독력 외에 ‘문장해독력’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금 문제되는 것은 ‘문장’ 해독력이다. 대학생들의 문장 해독력 결핍은 대학가의 ‘유명한’ 문제다. 한글로 된 문장이니까 읽을 줄은 아는데 읽어도 무슨 소린지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문제가 유명해진 이유다. 좀 긴 문장, 구문이 좀 복잡한 문장, 의미의 비단일성이 강한 문장을 만나면 상당수 대학생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문해력은 ‘교육받은 사람’의 기본 능력이다. 그 능력은 사고력·상상력·창조력의 바탕이기 때문에 ‘기본 능력’이다. 학생들이 자주 문해력의 파탄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력·상상력·창조력의 발휘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다.

 문해력의 품질 수준(사고·상상·창조)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문학교육이고 독서교육이다. 독서력이 높은 학생치고 문장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문학 독서를 통해 상상력을 키운 학생도 그러하다. “밤이 아이를 무섭게 한다”는 문장을 뒤집어서 “아이가 밤을 무섭게 한다”고 써놓으면 그게 무슨 소린지, 거기서 무슨 의미가 새로 만들어지는지 알아채는 학생은 결코 많지 않다. 역설적 사고력이 빈약하고 뒤집어 말하는 반어(irony)의 상상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역설과 반어는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어적 장치다. “나는 바람을 먹는다/ 돌을 먹는다/ 흙을 먹는다” 같은 표현을 읽어내자면 은유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바람·돌·흙은 ‘먹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먹지 못할 것들을 먹는다는 것은 “나는 굶는다”의 간접적·은유적 표현이 된다. 이런 은유도 창조적 상상력의 수원지다.

그런데 이런 상상력 훈련은 현행 교육으로는 불가능하다. 또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수능의 운명이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정답 찾기가 아니라 기성의 정답을 넘어서게 하는 데 있다. 정답의 울타리에 아이들을 가두어야 하는 것이 수능의 문제점, 곧 그것의 운명적 비교육성이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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