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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수수께끼 수학자는 왜?

2006년 8월 22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국제수학연합(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이 주최하는 필즈상 수상식이 열렸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숙학계에서 뛰어난 공적을 쌓은 수학자 몇 명에게만 주는 수학계 최고의 상이다. 이 해 필즈상은 '푸앵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을 해결한 수학자인 그리고리 페렐만에게 수여될 것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상을 받기 위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마드리드로 날아오지 않았다. 필즈상 역사상 전대미문의 수상 거부. 언론은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100년의 난제를 해결한 이 '수수께끼의 수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만들었다.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의 대학 풍토를 살짝 비틀면서 언급한 도정일 교수의 칼럼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버섯 따러 간 천재 수학자'에서 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할 거리는 그리샤 페렐만 같은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학위를 한다면 그가 대학에 취직이나 할 수 있을까, 버섯이나 따러 다니고 영광도 명예도 돈도 내팽개치는 사람이 한국 대학사회 어느 곳에 발붙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그가 천재라면 우리의 교육이, 우리 대학들이, 그런 유형의 천재를 길러내고 보듬을 수 있을까. 돈 될 ‘대형연구’ 같은 것에나 목매단 대학들이 혼자 외롭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페렐만 스타일의 학자를 쫒아내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리샤, 너는 한국에는 오지 말라. 여긴 버섯의 숲도 없다네."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라는 책을 읽었다. 재미있다. NHK 교양프로그램 프로듀서인 가스가 마사히토라는 이가 바로 이 '수수께끼 수학자'를 취재한 이야기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뒤따르는 취재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수학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기도 하다.

 

가스가 마사히토도 취재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토로하였듯이, 수학 분야의 고유 언어 즉 '수학언어'(보통 한두 개의 수식으로 표현되는 그것)를 이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사실 이 책에는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난해한 '수학언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수학자들이 도전해서 풀고자 하는 문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이 묻고 있는 것은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질문과 연관이 있다. 과연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책에 소개된 것으로는 2008년 3월 시점까지의 결과로는 (1)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살이다. (2)우주의 크기는 적어도 780억 광년 이상이다. (3)우주의 조성은 약 5%가 통상의 물질, 23%가 정체 불명의 암흑 물질, 72%가 암흑에너지라고 생각한다. (4)WMAP 위성 자료에 지금의 우주 모델 이론을 적용하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대우주의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 보이는 범위만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료는 우주의 곡률은 제로, 다시 말해 평평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대우주가 평평한 것인지는 모른다. "일찍이 인류는 지구를 오로지 평평한 평면이라고 믿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겨우 대우주의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 보이는 범위만으로 우주의 형태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우주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우주 바깥으로 나간다'는 말은 얼마나 막막한가, 얼마나 상상력을 발동해야 하는가.) 상태에서도 우주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그런데 불과 4백년 전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우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책에는 '푸앵카레 추측'을 풀고자 했던, 수학자들의 100년간의 노력을 추적하면서 윌리엄 서스턴 박사의 '기하화 추측'도 소개하고 있다. 우주는 적어도 여덟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질문도 질문이지만, 이 책에서는 수수께끼 주인공인 그리고리 페렐만이 왜 필즈상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완전한 은둔자가 되어 버섯이나 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왜 페렐만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단절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하나의 해석으로 제시되는 것이 그의 스승인 미하일 그로모프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불필요한 일은 철저히 버리고, 자신을 사회에서 완전히 차단시켜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순수성이 7년 동안 고독한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동시에 필즈상을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업적을 평가할 때 순수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수학, 예술, 과학, 어디든 타락이 생기면 소멸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논의 순수성이 일정 수준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할 것입니다. 의식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수학은 순수성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학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하다"는 말. 이것 차라리 수학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종교인이거나 시인의 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수학 분야 책의 목록을 쌓아가고 있는 '살림math'의 책들은 또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사람이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몇 가지일까?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가 내놓은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20년에 가까운 출판인 경력과 2년 정도의 미국 유학을 정리한 편집자 매뉴얼이다. 한평생 편집자로 살겠다는 김학원 대표의 '출사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학원 대표는 "책 만드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3000가지가 넘는다"고 말한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많은 것을 익혀야 한다. 여기서 '익힌다'는 말은 '학이시습'의 그 '습'이다. 몸에 붙여야 한다는 말이다. 김학원 대표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그 익힘의 결과를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좋다. '출사표'를 쓰는 심정, 자기 정체성의 확인,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사회적 의의와 전망, 여기에 후배와 동료들을 위해 업무의 세목을 일러주는 것 등등.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학원사 편집장이었던 김성재의 <출판의 이론과 실제>(일지사), 김영사 편집장을 지냈던 최봉수(현 웅진씽크빅 총괄 대표이사)의 <출판기획의 테크닉>(살림), 창작과비평사 영업부를 이끌던 한기호의 <출판마케팅 입문>의 맥을 잇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책 만드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 3천 가지가 넘는다면, 사람이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몇 가지일까?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 3만 가지 정도 되는 것일까?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성찰하지 않는 사회를 성찰하기

“성찰하지 않는 사회를 성찰하는 글을 썼습니다. 지금은 과거를 소비해버리고 앞만 보고 가는 시대입니다. 역사인식이 탈각된 채로 소비주의에 젖어 상품의 포로가 되다시피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닌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뀐 시대입니다.”

*현기영 선생, 김영민 기자의 사진

 

*현기영씨(68) 선생의 장편소설 <누란>(창비) 표지


 

-현기영 선생의 발언. <경향신문>인터넷판, 2009년 8월 13일자. 이영경 기자의 기사에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31735185&code=960205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근묵(槿墨)

최근에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정말 '갖고 싶다'. 이것은 내가 아직도 책에 대한 소유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근묵>,  이 책을 옆에 끼고, 더운 여름날 오후, 천천히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 보며 '음미'해보고 싶다. 이 책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그런 '공부'에 대한 갈망이 나에게 남아 있음을 잠시 느껴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ㆍ오세창 선생 ‘근묵’ 완역 출간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전각가이자 서화 감식의 대가 위창 오세창 선생(1864~1953)이 한국 서예의 600년 역사를 집대성한 <근묵(槿墨)>(사진)이 완역, 출간됐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과 출판부는 2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묵> 원본을 촬영·수록한 인(仁)·의(義)·예(禮)·지(智) 권과 탈초(脫草·인쇄체 정자로 새로 쓰기) 및 번역문을 담은 신(信) 권 등 모두 5권으로 구성된 <근묵>을 공개했다.

1934년 완성된 <근묵>은 1911년에 엮은 <근역서휘(槿域書彙)>(서울대박물관 소장)와 함께 오세창 선생의 필생의 공력이 담긴 대표적인 글씨첩이다. 고려말 정몽주·길재에서부터 조선의 정도전·성삼문·이황·이이·정약용·정조 등은 물론 대한제국 말기의 이준·민형식·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1점씩 모아 34첩의 첩장본(帖裝本)으로 만들었다. 작가들은 연대상으로 600여년에 걸치고 신분상으로는 국왕과 왕후부터 문무 관료와 학자, 승려와 중인까지 망라한다. 김채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는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간첩류(簡帖類)는 수 천에 달하지만 그 내용이 풍부하고 역대 인물이 거의 빠짐없이 망라된 것으로 <근묵>과 <근역서휘>에 비견할 것이 없다”면서 “한국 서예사의 기준작”이라고 밝혔다.


‘근묵’은 근역(槿域), 즉 무궁화가 피는 우리나라의 묵적(墨蹟)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글씨의 흐름과 수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다. 서체별로는 행서(595점)와 초서(468점)가 대부분. 형식이나 의식상의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것으로 필치가 유려하고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편지가 724편으로 절반 넘게 차지해 선물·인사청탁·질병·의약·의식주·관혼상제 등 당대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사회·문화사의 보고로 평가된다.

1792년 9월2일 정조가 친척에게 하사한 선물 목록에선 창덕궁 후원에서 담배를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내원(內苑·창덕궁 후원 중 옥류천 일대)의 담배 두 봉. 토양이 적합하고 맛이 좋아 삼등(평안도의 담배 특산지)에 못지 않다”고 썼다. 추사 김정희는 아내를 잃은 지인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일찍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맛과 쓴맛을 잘 압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슬픔을 삭이는 데는, 종려나무 삿갓을 쓰고 오동나무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근묵>은 또한 필적의 진위를 판가름하거나 특정 작가의 모범적 필체를 볼 수 있는 기준작을 제공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컨대 현재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박제가나 목판이 대부분인 황기로의 글씨 등이 수록돼 있다. 편지 형식의 변천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수결(手決·오늘날 사인처럼 겉봉투 이음매에 써넣어 문서를 열어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나 전각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다. 독특한 문양을 찍어 사용했던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를 써보낼 때 쓰는 종이)와 한지의 변화도 읽을 수 있다.

<근묵>은 1981년과 95년 두 차례 영인본이 발간된 적이 있으나 원본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는 크게 미흡했다. 6년간의 작업 끝에 나온 이번 간행본은 실물과 같은 크기로 원본을 그대로 촬영해 필묵의 질감을 최대한 살렸다. 번역과 주석을 붙여 일반 독자들도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81년 영인본 때의 청명 임창순 선생의 탈초를 바탕으로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이 번역했다. 전 5권 100만원. 한편 성균관대 박물관은 <근묵> 원본과 영인본, 오세창 선생의 글씨와 인장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다음달 말까지 연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291724035&code=960201

 

성균관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가운데)과 김채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오른쪽) 등이 <근묵> 원본과 영인본을 살펴보고 있다. 김세구기자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서평의 제목 달기

이런 서평은 그 자체로 공부거리다. 장정일의 내공이 온전하게 묻어나는 듯하다.

 

특히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라고 묻는 대목이나, 과두지배 체제의 본질을 꼬집어 언급하는 대목. 그리고 '진지한 작가생활'을 언급하는 대목 등등은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과두지배 체제의 본질을 꼬집어 언급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그런데 이 서평이 실은 프레시안의 제목달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100년 전 한 소설가의 경고…'결국 전쟁인가?' "라는 제목은 너무 선정적이다.

 

어떤 제목을 달아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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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3132040&section=04

 

▲ 잭 런던(Jack London·1876~1916). <강철군화>를 비롯한 그의 소설이 약 20년 만에 새번역으로 재간되었다. ⓒ궁리
궁리에서 기획한 '잭 런던 걸작선' 가운데 1차분 세 권을 읽었다. 연번대로 나열하면 <비포 아담>(1907)·<버닝 데이라이트>(1910)·<강철군화>(1908)인데, 괄호 속은 작가가 작품을 발표했던 연도다.

책을 좀 읽은 내 또래의 독자들은 1989년도에 한울에서 출간된 <강철군화>의 강렬함을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 같은 출판사는 의욕적으로 <마틴 에덴>·<잭 런던 모험소설>을 연이어 펴냈고, 마지막엔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까지 내놨다. 여담이지만, 잭 런던에 혹해 그 책을 번역한 역자는 "순식간에 읽고 난 후 남은 것은 허전함이었다. 아니 배반감이란 표현이 더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라는 실망감을 역자 서문에 솔직히 적어 놓았다.

실제로 그 여행기는 잭 런던의 우생학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고약하게 드러나 있으며, 제국주의 일본·러시아·중국에 끼어 신음하는 조선의 운명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 행여 이 책을 찾아 읽으실 독자는, 조현범의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책세상 펴냄)을 함께 읽으시라. 알고 보면 잭 런던의 기분 나쁜 '조선 관찰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양 지식인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한계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반짝 소개된 잭 런던은 오랫동안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다가, 몇 년 전에 잭 런던의 미완성 유고인 <암살주식회사>(문학동네 펴냄)가 출간되었다. 여담을 더 하자면, 이 소설이 쓰인 계기가 재미있다. 당대의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는 엄청나게 씀씀이가 늘어났던 반면, 스물네 살 때 첫 단편집을 낸 이래로 쉬지 않고 작품을 쓰다 보니 상상력과 소재가 고갈됐다. 그래서 돈을 주고 이야깃거리를 샀는데, 34세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소재를 판 사람은 25세의 무명작가 싱클레어 루이스였다.

<암살주식회사>는 1910년 3월에 잭 런던이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70달러를 주고 샀던 열네 편의 짧은 소설 개요 가운데 하나다. 그는 개요를 받자마자 반 넘어 썼던 이 소설을 중도에 포기했는데, 사후 40여 년이 훨씬 지난 1963년에 추리소설 작가 로버트 L 피시가 결말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이 소설은 잭 런던의 화제작 <강철군화> 이후, 작가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다. 참고로 싱클레어 루이스는 훗날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 <강철군화>(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궁리 펴냄). ⓒ프레시안
다시 '잭 런던 걸작선'이다. 나는 세 권의 책을 받고나서, 국내 초역된 두 권의 책이 궁금하기보다, 재간된 <강철군화>가 더 반가웠다.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

<강철군화>가 처음 번역되었던 1989년 7월, 이 소설은 일개 문학 작품이 얻기 어려운 '소설 자본론'이란 명망을 얻었다. 그 만큼 이 소설은 소설의 줄거리보다, 소설 속의 정치·경제적 분석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 자본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번역서가 나오고 난지 불과 몇 달 뒤인 11월,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고, 몇 년 뒤인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됐다. 그러면서 <강철군화>는 시나브로 절판의 수순을 밟게 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망각됐다.

이 소설은 공상적 사회주의가 완성된 2632년, 우연히 발견된 미국 혁명 투사들의 기록을 발굴하게 된 형식을 취한다. 부연하면 이 소설의 시간적 무대는 사회주의 혁명 투사들이 미국의 과두지배 계급에 대항해서 일으켰던 1차 봉기가 실패하고, 새로 준비된 2차 봉기를 목전에 둔 1912년과 1932년 사이다. 소설 속의 과두계급은 의회·법원·군대는 물론이고 언론·학교·교회까지 물샐 틈 없이 장악하고 있는 독점 자본가들이다. 향후 300년간 지속될 작중의 과두계급 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빈곤·실업·산업 재해에 무방비인 채 노예로 살아가며, 언론인·지식인·종교인들은 끽 소리 없이 과두계급에 기생한다.

대부분의 미국 역사서를 펼치면 <강철군화>가 재현하고 있는 묵시록적인 풍경이 작가의 공상이 아니라, 잭 런던이 생존했던 시대(1876~1916)의 가감 없는 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 사회가 계급사회로 분화하면서 최초의 양극화를 맞이하는 시기였으며, 독점이 가속화되던 때였다. 중산층은 나날이 몰락하고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였다. 당연히 노동운동이 불타올랐으나, 독점재벌의 사주를 받은 파업 파괴자들의 총격에 쓰러져 갔고, 경찰과 언론이 그런 불법을 비호했다.

<강철군화>는 앨런 브링클리가 쓴 방대한 저서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휴머니스트 펴냄)에 쓰인 것처럼 "미국 역사에서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시기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많은 지지를 받은 때는 없었다"(2권, 501쪽)던 그 시절에 나왔다. 하므로 이 소설은 열아홉 살 때 사회당과 처음 접촉하고 스물다섯 살 때 사회당 후보로 오클랜드 시장에 출마하기도 했던 사회주의자로서의 작가의 이력, 1860년대 초부터 번성한 폭로작가들(muckrakers)의 전통, 그리고 19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작 10만 명도 되지 않던 사회당 지지자들이 1912년에는 100만으로 늘어났던 그 시대의 혁신주의 정신이 낳은 혼합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잭 런던의 사회주의적 지식과 사태 분석이 이루어낸 예언의 정확성이다. 그는 국내의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한 나라의 파시즘을 추동하게 되며, 출구를 찾지 못한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고 분석하면서, 미구에 있을 제1차 세계 대전을 미리 예언했다. 길지만 인용한다.

"(미국의) 과두지배체제는 독일과의 전쟁을 원했다. 그들이 전쟁을 원하는 이유는 열두 가지쯤 되었다. 그러한 전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카드를 다시 섞어 새로운 조약과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과두지배체제는 얻을 게 많았다. 더 나아가, 전쟁은 국가의 많은 잉여를 없애주고, 모든 나라를 위협하는 실직자 군단을 줄이고, 과두지배체제에게는 그들의 계획을 완성하여 수행할 수 있는 숨 쉴 여유를 줄 것이다. 그런 전쟁은 사실상 과두지배체제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게 해줄 것이다. 또한 전쟁은 해산할 필요가 없는 대규모 상비군을 창출한 것이며, 대중의 머릿속에 '사회주의 대 과두지배체제' 대신 '미국 대 독일'이라는 쟁점을 심어줄 것이다."

잭 런던은 1907년에 쓰고 1908년에 발표한 <강철군화>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1912년 12월 4일에 미국 공사(公使)가 독일 수도를 철수했다. 그날 밤 독일 함대는 호놀룰루를 급습해 미국 순양함 세 척과 밀수 감시선 한 척을 침몰시키고 도시를 폭격했다. 다음 날, 독일과 미합중국 둘 다 전쟁을 선포"했다고 건조하게 써놓았다. 2년 뒤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의 적중시킨 것이다.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이란 말인가? 20년 만에 새 번역으로 재독한 <강철군화>는 과두지배와 파시즘에 대한 20세기 초의 공포를 비웃게 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세계 대전을 점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석유와 군산업체의 이익에 휘둘린 미국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을 보건대,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국지적인 저강도 전쟁을 잦게 하리란 우려는 할 수 있다.

<강철군화>에 자세히 설명되었듯이 과두계급이란 한 나라의 부를 몽땅 차지한 한줌의 독점재벌과 그들의 정권을 가리킨다. 이들은 국가의 행정기관을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무료 '서비스 기관'으로 축소시키고, 국가의 사법기관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법을 무마해주는 '로펌'으로 전락시키며, 국가의 공권력은 '용역(깡패)회사'로 만든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오치 미치오의 <와스프(WASP)-미국의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살림 펴냄)를 보면, 헤밍웨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잭 런던의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것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가 학교 이사회에 나가 "이런 책을 읽히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후 맥락이 모자라긴 하지만, <비포 아담>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철군화>가 '소설 자본론'이라면 이 소설은 '소설 진화론'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잭 런던은 자서전적인 소설 <마틴 에덴>이 출간된 1909년 이후, 진지한 작가 생활을 포기했다고 본다. 무명의 작가에게 작품의 소재를 양도받은 행각이 그런 심증을 갖게 하는데다가, 쓰다가 말았던 <암살주식회사>가 암살단을 만들어 비윤리적인 사업가를 한 명씩 제거한다는 '윤리적 광인'들의 순진 소박한 문제 해결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한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애독자로 거느리기도 했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문학적 후퇴다.

▲ <버닝 데이라이트>(잭 런던 지음, 정주연 옮김, 궁리 펴냄)
<마틴 에덴> 이후로도 잭 런던은 많은 작품을 썼지만, 타작에 불과하다는 게 중평이다. 하지만 전작에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자서전적 소설 <버닝 데이라이트>는 누구나 흉내 내고 싶은 태양 같은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남자라면 자신의 힘으로 도시를 건설해 봐야 한다! 그런데 버닝 데이라이트는 무려 두 개의 도시를 세우고, 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만을 위한 아르카디아를 만들어, 거기에 은거한다.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스토우 부인과 마크 트웨인을 잇는 미국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잭 런던은 '미국의 꿈'을 실현한 행운아이면서,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스르는 '빨갱이'가 됐다. 성공한 부르주아이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상을 추구했던 그는 입방아를 찧기 좋은 먹이였다. 내가 본 미국 문학사는 잭 런던을 거의 난외로 처리하거나, 소략하게 다룬다. 그러면서 예의 '자기모순에 빠진 작가'라느니 '알코올 중독자'면서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였다는 인물평을 앞세운다.

이런 꼬투리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마르크시즘의 영향력과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원천 소거하기 위한, 강단 연구가들의 정직하지 못한 술책이다. 대체 자기모순이라곤 없으며, 술독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데다가,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가 아니었던 작가가 어느 세상에 존재하는가? 주류 미국 문학사가 떠받들고 있는 헨리 제임스·헤밍웨이·피츠제럴드·포크너도 알고 보면 더했다.

작가에 대한 풍문을 제거하고 나면, 훨씬 윤택해지는 텍스트가 잭 런던이다. 특히 그가 살았던 시기가 자국의 양극화와 20세기 최초의 세계화로 몸살을 전운(戰雲)을 앓던 시대였던 만큼, 그것과 똑같은 국내 문제와 21세기의 세계화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우리들에겐 더욱 각별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2009년 3월 7일 토요일

경계 긋기의 어려움

고종석 기자의 새 책 <경게 긋기의 어려움>에 대해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조금 섬세한 서평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20대 지식인 김현진, 노정태, 최익구, 한윤형 등은 어떤 이들일까? 나는 이들 20대 지식인들의 글을 접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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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진화한 결과"

[화제의 책] 고종석의 <경계 긋기의 어려움>

기사입력 2009-03-07 오전 9:11:48

 

▲ <경계 긋기의 어려움>(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프레시안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 때, 그 수다가 삼성재벌의 탈법적 망동을 꾸짖는 것이라면, 그런데 친구와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이 삼성 제품이라면,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 자랑스러운, 그러나 최근 위협받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나는 이(利)와 의(義)의 경계가 어딘지도 때때로 잘 모르겠다."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 고종석이 최근 수년간 쓴 칼럼을 묶어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펴냈다. 그는 2006년 칼럼을 묶은 또 다른 책에서 일찌감치 대통령 노무현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한때 그에게 열광했던 자신의 "미욱함"을 반성했었다. (☞관련 기사 :
한 지식인의 고백, "나는 잠시 무엇에 홀렸었다") 그리고 3년, 대통령이 이명박으로 바뀌었다.

한때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놓고 격하게 대립했던 이들이 한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몰아세울 때, 고종석은 한 걸음 물러서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물론 그가 이명박 정부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보기에 이 정부는 "(총으로 집권한 5공과 비교할 순 없지만) 노태우 정권까지 포함한 6공의 다섯 정권 가운데 가장 무엄하고 미련한 정권이다."

그러나 고종석은 우군과 적군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살이가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에게 경계가 또렷해 보이는 것은 현실이 그래서가 아니라 홍세화의 말대로 "사람이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찰할수록 경계는 또렷해지기보다는 더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모호한 경계선의 기록이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

"(전직 대통령 아들 C씨가 커다란 책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머리가 어찔했다. 얼마 되지 않는 내 독자들의 일부는 내가 그리도 관련되지 않고 싶어하는 특정 자본을 통해 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신문에 내 책을 보내지 않고 그 신문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내 '자기만족적' 실천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삼성의 기업 윤리는 조선일보보다 나은가?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삼성은 조선일보보다 더 너그러운가? 그럴 거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성 제품을 기꺼이 사서 쓰는 내가 조선일보를 지네 보듯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한쪽은 그저 물질을 팔고 다른 쪽은 거기 사악한 정신을 끼워 파니 둘을 나란히 놓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고종석은 이처럼 "윤리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한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사가 얽힌 실제 삶에서 경계 긋기는 얼마나 힘든가? 그는 "이념이나 윤리를 기준"으로 경계를 긋고도 곧바로 생기는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이렇게 토로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어떤 경계를 그어놓고 보면, 이내 (사적으로 알고 있는) 딱하다 싶을 만큼 매력 없는 어떤 한겨레 기자들과 (역시 사적으로 알고 있는) 넉넉히 매력적인 어떤 조선일보 기자들이 떠올라 마음이 스산해진다. 그 매력은 재능만이 아니라 됨됨이(예의나 겸손이나 너그러움이나 신의 같은 미덕으로 이뤄지는 개인 윤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고종석은 곧바로 스스로를 다잡듯이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그러나 왠지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좋고 싫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호오가 윤리의 논리를, 또는 논리의 윤리를 완전히 동강내서는" 안 된다고. "한나라당이 형편없는 정당"이라는 것은 "그 당의 어떤 당원이나 어떤 지지자가 괜찮은 사람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조선일보가 형편없는 신문"이라는 것도 "그 신문의 어떤 기자가 괜찮은 사람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치열한 반성에 기반을 둔 경계 긋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렇게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고종석의 글이야말로 '치열한 반성에 기반을 둔 경계 긋기'의 한 보기이다. 그의 경계 긋기는 천박한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철저한 윤리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퇴임하는 대통령 노무현을 놓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섯 해 전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한국 유권자들 마음속에선 윤리적 욕망이 파닥거렸다. 지난해 말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그들 마음속에 윤리적 욕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큰 것이 자신의 행태였음을 노무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윤리 대통령 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다섯 해 동안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결정에 윤리가 끼어드는 걸 꺼릴 것이다. (…)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물론 고종석은 일부 언론의 반노(反盧) 선동을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고종석의 경계 짓기는 공사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한때 역시 대통령 노무현에 열광했던 김진석을 이렇게 평한다. 최근 김진석은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개념을 내놓아 일부 지식인을 홀렸다. (고종석의 책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김진석과 그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을.)

"나는 그의 '기우뚱한 균형'을, 저자의 자기정향(自己定向)과 달리,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균형'으로 여긴다. 중도우파를 자처하는 내가 보기에도, 시장사회나 전쟁에 대한 그의 관점이 사뭇 유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참여지식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이 책의 두드러진 미덕이다."

절망의 시대, 희망을 말하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에서 고종석은 자주 한 세대 터울의 20대 지식인을 언급한다. 김현진, 노정태, 최익구, 한윤형 등이 그들이다. 그는 "나이 차가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질투심 때문에 이들의 글을 읽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농하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고종석은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면서,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한다. 그의 고백대로 "경계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의 길을 더듬거리면서도, 청년 편에 서려 애쓴" 탓일까? "해묵은 비관주의"를 들먹이는 것과 달리 이 책의 전체적인 기조는 비관보다는 낙관이다. 모두가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 책은 반갑다.

/강양구 기자

 

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05165016&section=04

사회적 자본

"도서관의 대화적 공공성은 사회적 자본을 풍부하게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다. 시민들이 도서관 정책, 도서관의 건립과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관계와 신뢰를 형성해나가는 것, 그 구체적인 방법과 세부적인 실천은 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의 한승동 기자 쓴,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미국의 쇠퇴하느 사회적 자본>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미국의 쇠퇴하는 사회적 자본을 우려하는 그의 목소리가 한국에 소개되고, 그것도 무려 3만 8천원짜리 책으로 전달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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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과 백인 함께 즐기는 볼링의 사회학

 

 

» 로버트 퍼트넘

<나 홀로 볼링>
로버트 퍼트넘 지음·정승현 옮김/페이퍼로드·3만8000원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 분야를 맡고 있는 로버트 퍼트넘 교수가 1995년 <민주주의 저널>에 발표한 논문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미국의 쇠퇴하는 사회적 자본’은 학계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퍼트넘은 2000년에 이 논문을 수정 보완한 <나 홀로 볼링-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소생>이라는 책을 써냈다. 거기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미국사회 분석
1970년 이후 ‘사회적 자본’ 급격히 쇠퇴
“개인간 신뢰·협력적 네트워크 강화해야”

 

1997년 10월29일 이전까지 존 램버트와 앤디 보쉬마는 미시간주 입시란티의 볼링장에서 동네 볼링 리그를 통해서만 서로 아는 사이에 불과했다. 미시간 대학병원 직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64살의 램버트는 신장이식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3년째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램버트의 딱한 처지를 들은 33살의 회계사 보쉬마는 그를 찾아가 자기 신장 한 쪽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가 병원에 있었을 때 앤디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존 나는 정말 당신이 좋고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어요. 나는 이런 일이 다시 생겨도 망설이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이 나서 목이 메었답니다.” 그 지역의 <앤아버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은 직업과 세대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보쉬마는 백인, 램버트는 흑인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볼링을 쳤다는 사실이 세대와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게 했던 것이다. <나 홀로 볼링>을 꿰뚫는 핵심 주제는 바로 “그들이 함께 모여 볼링을 쳤다”는 문장에 응축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미국 사회가 나 홀로 볼링 쪽으로 마구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1992년 설문조사에서 미국 취업노동자의 4분의 3이 ‘공동체 붕괴’를 얘기하면서 ‘이기심’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응답했다. 1999년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3분의 2가 시민적 삶이 최근 쇠퇴했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80% 이상이 공동체를 더 강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왜 이렇게 됐는가?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를 되돌려 놓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 홀로 볼링>을 관통하는 실천적 문제의식이며, 책 구성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미국의 사회개혁가 리다 하니판이 처음 사용한 ‘사회적 자본’이란 개념을 활용한다. 피에르 부르디외 등도 재활용한 이 개념은 개인들 사이의 신뢰와 상호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 협력적 네트워크로 요약할 수 있다.

» 〈나 홀로 볼링〉

 

미국의 사회적 자본은 1930년대 대공황 시대를 뺀 20세기 3분의 2 시기에 걸쳐 풍성했으나 1970년대 이후 돌연 급전직하로 쇠퇴하기 시작해 30여년간 계속되고 있다. “나날이 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적자액은 학업성적, 안전한 동네, 공평한 세금납부, 민주주의 정부의 업무수행 능력, 일상생활의 정직성, 심지어 우리의 건강과 행복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조지 부시 정권 8년간 더욱 황폐해진 미국의 사회적 자본 실태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한층 더 도드라지게 한다. 역사상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세기 전인 1870~1900년 ‘금박의 시대’와 1900~1915년 ‘진보의 시대’인데, 기술혁신과 부의 팽창이 이뤄졌던 그때도 범죄의 물결, 부족한 교육, 빈부격차 확대, 도시의 타락과 정치적 부패가 극심했고 사회적 자본은 퇴락했다. 왜?

 

지금의 사회적 자본 쇠퇴를 부른 요인을 지은이는 몇 가지로 나눠 그 중요도를 수치로 표시한다. 시간과 돈의 압박 10%, 교외지역의 도시화와 장거리 출퇴근 10%, 전자화된 오락 수단,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 25%, 그리고 세대교체 50%. 지은이는 2차대전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참여에 헌신적이었던 세대가 참여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적 신세대로 급속히 대체된 것이 결정적 요인임을 여러 지표들을 동원해 설명한다.

금박과 진보의 시대는 사회적 자본 퇴락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사회적 자본 재건을 위한 반격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미국 사회의 주요 단체와 조직 등 사회적 연계망들은 대부분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서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게 지은이 생각이다.

그런데 지역주의나 동창관계에 토대를 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이익집단·연계망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지은이는 사회적 자본을 개방적인 연계형과 폐쇄적인 결속형으로 나누고 연계형 쪽을 강화하는 게 해법임을 보여준다.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미국 주들의 실태조사를 토대로 작성된 여러 그래프들은 연계형 사회적 자본 증대와 삶의 질 향상이 정비례 관계에 있음을 실증한다.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지은이가 구조적 요인을 경시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예컨대 1세기 전과 1970년대 이후 미국 사회적 자본의 쇠락은 ‘시장의 과잉’ ‘자본의 과잉’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의 사회적 자본 쇠락은 1940년대 뉴딜정책이 구축한 자본-노동의 균형 붕괴 및 신자유주의 도입과 얽혀 있다.

지은이가 주도한 하버드대 33인 토론회 ‘사와로 세미나-미국의 시민 참여’ 멤버였던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더 이상의 사회적 자본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21세기 미국 사회 구성원들의 위기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적 자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21세기에 미국 시민들 선택과는 정반대로 시장과 자본 과잉의 길을 택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원문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2692.html

 

 

2009년 3월 4일 수요일

평화인문학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그림출처: www.rihumanities.org/about



 

2009년도 ‘평화인문학’ 개강  

인권연대 편집부

 지난 2월 2일 2009년도 ‘평화인문학’ 과정이 시작됐다. 2007년부터 의정부교도소, 영등포교도소, 안양교도소에서 진행한 ‘평화인문학’ 과정을 올해에는 수원구치소에서 진행하며, 확정 판결을 받아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기결수들만이 교육생으로 참여한다.

 수원구치소 ‘평화인문학’ 과정은 2월부터 11월까지 8개월(7월, 8월은 여름방학으로 휴강)동안 진행되며, 지난해 안양교도소 과정과 마찬가지로 공동주최 단체들이 월 단위로 기수를 나누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시한다. 공동 주최 단체로는 인권연대를 비롯하여 ‘평화인문학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공회대학교 평생학습사회연구소>, 연구공간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가 참여하고 있다.  

 2009년도 과정은 지난해 안양교도소 과정에 비해 더 확장되고 심화된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우선, 지난해 안양교도소 과정은 5개월간 매월 2주(20시간) 동안 교육을 하였으나, 수원구치소에서는 8개월 동안 매월 4주(40시간)로 교육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이에 교육생들은 문학, 역사, 종교, 철학 등 인문학 제 분야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강의 시간이 제약되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토론도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평화인문학’의 공식적인 위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평화인문학’ 과정은 각 교도소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인성교육’을 대체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올해 과정은 법무부 교정본부내에 신설된 ‘사회복귀지원팀’(팀장 : 신용해 서기관)이 총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사회복귀지원팀’은 재소자들의 사회복귀 지원을 위한 교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된 부서로, 이로써 ‘평화인문학’ 또한 사회복귀를 위한 중요한 교육으로 재평가 받게 되었다. 나아가 사회복귀라는 구체적인 목적이 가미됨으로써 인문학 교육이 지닌 실천적 의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2009년도 과정은 학술진흥재단의 ‘시민인문학강좌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과정에 소요되는 모든 예산을 지원받는다. 2007년에 의정부교도소와 영등포교도소에서 실시된 시범교육에서는 법무부 외부 강사료 지급 기준에 따라 강사들에게 최소한의 강의료만 지급되었다. 지난해 안양교도소 과정은 인권연대를 비롯한 참여 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예산을 조달하여 과정을 운영해나간 바 있다.

 수원구치소 ‘평화인문학’ 과정의 교무주임을 맡은 인권연대 박준석 간사는 “예산 지원을 통해 교육생들에게 양질의 인문학 도서를 풍부하게 지급할 수 있게 되어 교육생들이 평소에도 인문학을 좀더 가깝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오창익 국장은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며, 올해 과정을 통해 ‘평화인문학’이 더욱더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9년 2월~3월 강의 내용

분 야

강 의 명

강 사

문학

문학과 자기성찰, 그리고 세상읽기

이명원/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역사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역사

역사와 문학 속 인물들을 통해 보는 ‘인간적 삶’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예술

예술로 철학하기

윤세진/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종교

인간의 심층, 종교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 원장

철학

철학하며 산다는 것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

철학

철학을 통한 행복찾기

김석/ 철학아카데미 강사

 

2009년 2월 25일 수요일

인문학 강의

오늘은 완전히 스크랩으로 블로그 포스트를 채울 모양이다. 또 다른 기사 하나. 주간한국의 가사다.

 

원문출처: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0902/wk200902241252461054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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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강의, 골라듣는 재미가 있다


 

정재계 인사들 '지혜의 향연' 등모여 위기 탈출 해법 찾기 위해 '열공'
일반 대중은 '작은 대학' 등 찾아 세상과 인생에 대한 이해의 폭 넓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대다수 인문학 연구가 그렇지만, 고전은 대학의 상아탑 안에 머물러 있었다. 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고전 강의와 세미나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이 운영하는 '문예아카데미'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인문학 위기론이 대두된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다시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전을 강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동서양 고전 강의 기관과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CEO 고전 삼매경

고전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각 기업의 CEO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다.
2005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메디치 21'을 시작으로 각 기업의 인문, 예술 강연모임이 늘어났다. 이에 서울대 인문대학에서는 사회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을 2007년부터 신설했다. 정식 명칭은 '최고 지도자 인문학과정(AFP, Ad Fontes Program)'.

메디치 21이 근작을 바탕으로 한 인문, 예술 강연이라면 서울대 인문학 강연은 고전 텍스트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권영민 국문과 교수가 '한국문학과 한국인'을 가르치고, 허남진 철학과 교수가 '퇴계와 율곡'에 관해 설명한다. 이주형 고고미술학과 교수는 '불교미술의 특징'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총 18주 과정의 이 수업은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강연이지만, 인기가 높다.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을 비롯해 이건영 빙그레 사장, 이낙영 SPP조선 회장 등이 이 과정을 들었다. 배철현 최고지도자 과정 부주임 교수(종교학과)는 "올해 봄 40명 모집 인원에 응시자는 두 배를 훌쩍 넘어 47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기 이유에 대해 배 교수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인문학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고전은 인문학적 사고의 밑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최고지도자 과정을 마친 CEO들은 각 기수마다 모임을 만들어 계속 공부한다. 1기 졸업생들은 <논어>를 읽고 2기 CEO들은 주경철 서울대 교수가 쓴 현대정치사상사 <대항해 시대>를 공부한다.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에서도 사회 지도자를 대상으로 인문, 고전 강연을 한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 교수를 비롯해 노성두 미술사학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짐종엽 한신대 교수 등이 강연하는 'CEO를 위한 인문 공부'가 그것. 서울대 인문학 강좌가 원로학자와 석학 중심이라면 성공회대의 경우 진보적 성향의 소장학자들이 강사로 나선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해 12월에 끝난 1기 강연에서 신영복 교수는 '고전과 인문공부'란 주제로 강연했다.

1-<길담서원>에서는 중국 고전 원서를 공부한다
2-강남구 역삼동 파이낸스센터에서 열린 제1기 서울대학교 인문학 지도자 과정에 참가한 CEO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을 비롯해 김연배 한화그룹 부회장, 김태구 넥솔 회장(전 대우자동차 회장),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이병남 LG인화원 원장 등이 1기 '학생'으로 인문 고전 강좌를 들었다. 2년 전 신영복 교수 정년퇴임을 맞아 각계 인사가 신 교수의 후원기금을 발족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인문학 수업을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성공회대 인문학습원 임정아 객원 교수는 "1기 수강생들은 정식 모집을 한 게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오신 분들"이라며 "2기 수강생 역시 몇몇 언론 보도를 보고 문의해 기다리신 분이 대부분이다. 공고를 통한 공식 모집은 인문학습원이 구성이 갖춰지는 3기부터"라며 뜨거운 반응을 설명했다.

한국능률협회도 인문, 예술 강연이던 '지혜의 향연'을 지난 해 4월부터 서양고전 강연으로 바꾸었고, 오는 3월에는 동양고전 강연인 '동양고전 오디세이'를 시작한다. 능률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매달 한번 조찬 모임으로 진행되는 '지혜의 강연'에는 평균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린다. 동양고전 오디세이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4서와 손자병법, 도덕경 등을 현대 경영학과 리더십 관점에서 집중하는 독특한 방식의 강연이다. 50명을 대상으로 6개월 간 진행되는 동양고전 오디세이 역시 강의 시작 전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변설화 연구원은 "지혜의 향연은 이어령 교수가 문화예술에서 창조적 모티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강연이었다. 이제 문화와 예술에서 찾을 수 없는 창조성을 철학과 인문학, 특히 고전에서 찾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일반인 강좌는

지도자들이 위기 해소의 방편으로 고전을 찾는 것과 달리 일반 대중들은 '치유'의 목적이 크다.

1991년 박영신(연세대 사회과), 진덕규(이화여대 정외과) 씨 등 5명의 교수가 의기투합해 문을 연 '작은 대학'은 고전 세미나로 가장 역사가 깊은 대안 교육공간이다. 이곳의 고전 강연 중 하나인 '학사일정'은 1년간의 과정으로 플라톤의 국가론,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노자 <도덕경>, 왕양명 <전습록> 등 동서양 고전을 공부하고 1년 후 논문을 발표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26기를 모집하고 있는 현재, 평균 15~20명이 꾸준히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작은 대학에서 강연을 들었던 대학생 장일호(27) 씨는 "고전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작정하고 책을 잡아도 끝까지 읽기 어렵다. 이곳에서 함께 고전을 읽고 방향을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끝까지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씨는 이어 "이해의 폭이 커져서 전공 수업 들을 때 도움이 됐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옛사람들의 지혜를 통해 지금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고전 강의 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진행하는 고전 강독이다. 동양고전강독에서는 주희의 <근사록>, 왕양명의 <전습록>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의 산문 선독과 조선후기 소품문 등을 강연한다. 수유너머에서는 고전 강독 이외에도 인문 사회과학 강좌를 비롯해 문화예술 전반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는 최근 이곳에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강연하고 있다. 고 씨는 "<임꺽정>에는 현재 청년 실업에 대한 대안이 모두 들어있다. 강의 공지가 나가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신청했다. 20평에서 시작한 연구실이 400평 규모로 늘어난 것을 볼 때도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 씨는 이어 "연암 박지원의 산문이나 동의보감 같은 고전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지금처럼 팍팍하게 살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인생에 대해 괴로워할 때 운명적 차원에서 지혜를 나눠주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지문화원 '사이'는 문학·예술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 문학·예술 세미나와 심포지엄, 이벤트, 전시 등 다양한 활동과 함께 동서양 고전을 강연한다. 지난 2007년과 2008년에는 '논어 읽기' 기초 강좌를 비롯해 세계 고전문학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세계문학을 찾아서', 동양 신화를 분석한 '삼국유사와 신화의 세계'를 강연했고, 최근 북유럽 신화와 관자, 노자, 장자, 논어, 대학, 순자, 기타 중국 고전들을 분석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2~3달에 걸쳐 동서양의 고전을 소개하는 이 강좌에는 평균 8~15명의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경복궁역 근처에 있는 길담서원에서도 매주 중국 고전 수업이 열린다. 성공회대 박성준 교수가 영어 원문 읽기 수업을 하고, 성균관대 김성남 교수가 중국 고전 수업을 진행한다. 10명을 기준으로 선착순으로 희망인원을 받아 진행하는 논어 수업의 회원은 고등학생부터 50세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김 교수가 중국 연수 관계로 고전 수업을 잠시 쉬고 있지만, 돌아온 후 맹자를 강연할 예정이다.

박성준 교수는 "함께 공부하다가 제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책을 가르친다. 이 저자의 문체를 파악하면 혼자 읽을 수 있을 때다. 모든 회원이 동의하면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이곳은 좋은 책을 추천하고 공부해 스스로 설수 있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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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대학원 이영목 교수 인터뷰 "IFP는 역사적 인물과 이들이 쓴 고전을 공부"


서울대는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 AFP, Ad Fontes Program)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초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래지도자 인문학 과정(IFP, In Futurm Program)'을 개설했다. 미래지도자 과정은 AFP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규보, 나관중, 두보,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등 역사적 인물과 이들이 쓴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 골자다.

미래지도자과정 부주임 교수인 불문과 이영목 교수에게 교육프로그램의 취지와 고전 인기 이유에 질문했다.

- 미래지도자 과정의 대상은 누구인가?

= 중소기업의 이사급이나 대기업의 부장급 인사다. 응시기간에 커리큘럼을 보고 AFP과정을 들어야 할 사회 인사들이 IFP를 응시해서 응시를 제한한 적이 몇 번 있다.

- IFP에는 고전 수업 비중이 훨씬 높다. 18주 수업 과정이 모두 역사인물과 고전텍스트로 이뤄져 있다.

= AFP의 학생들은 인생경험이 풍부한 원로급 인사들이다. 지식을 던져주기 보다 열린 사고와 토론을 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IFP은 강연 방식이 많다. 인문학 수업이니 자연스럽게 고전을 텍스트로 삼는다. 경험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AFP가 더 나을 수 있다.

- 경영과 정치 등 현대 사회생활에서 인문학, 특히 고전이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 이제까지 교육기관에서 인문학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깊이 있는 사고와 통찰력을 얻는데 고전만큼 좋은 텍스트는 없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문학적 창의력이 고전에서 온다. 다만 그 창의력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을 비롯한 사회주체들의 몫이다. 때문에 최고지도자 과정이든, 미래지도자 과정이든 교육의 목적은 고전과 인문학 기초에 충실한 것이다.

-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 중에서 고전을 실생활에 응용하거나 접목시킨 사례를 본적이 있나?

= 고전은 아니지만, 나 같은 경우 AFP 강연에서 '아프리카를 어떻게 볼 것인가?'란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수업을 듣던 CEO들은 아프리카 진출에 공세적인 입장이었는데 수업이 끝난 후 그 CEO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어떻게 문화적 스승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고전에 접목시킨다면 열하일기를 따라 중국을 여행하는 워크숍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또 AFP 과정을 마친 후 몇몇 대기업에서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을 인재로 뽑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알고 있다.

- 앞으로 서울대에서 추가로 고전 강연 프로그램을 개설할 계획 있나?

= 2007년부터 논의해온 '동서양고전읽기 과정'이 아직 확정이 안 된 상태다. 이 프로그램이 계획 중에 있고, 서울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를 올해 봄 개설한다.

입력시간 : 2009-02-24 12:52:47 수정시간 : 2009/02/24 12:56:11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연경-연기의 경전


연경(烟經),담배의 모든 것


연경, 담배에 관한 유일한 책

이옥(李鈺,1760~1815)이라는 2백여 년 전의 뛰어난 문인이 쓴 담배에 관한 단행본이 최근 발굴되었다. 담배의 경작과 맛, 제작법과 흡연법, 흡연도구, 담배의 문화를 조목조목 기록한 책이다. 전통시대 담배의 생산과 흡연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자세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가진 저술은 없다. 더구나 이 책은 지식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문학서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한,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책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책의 내용 전체를 차례로 번역하고, 설명을 붙여 연재할 계획이다.
책의 첫 머리에는 이 책을 저술한 이옥의 의도와 동기를 밝힌 서문이 실려 있다. 이번호에서는 그 서문을 간략히 소개해 보겠다.

연경의 서(序)

옛사람은 일상생활의 하나인 음식에 관련된 사실을 글로 써서 기록하기 일쑤였고, 그 외에도 품위 있게 즐기는데 보탬이 되거나 옛 사실을 아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저술이 지어졌다. 이러한 책 들을 통해 옛사람은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점을 한 가지라도 가진 사물이라면, 그 사물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버려두는 일이 없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감춰진 사실을 뒤져 모으고 쌓여 있는 진실을 훤하게 드러내어, 그것을 정리하고 책으로 만들어 후세에 알렸던 것이다. 수많은 사물을 대신하여 곳곳에 버려진 사소한 사물을 드러내어 천하와 후세에 공개적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어찌 한때의 붓장난에서 나온것이랴?

천하가 담배를 피운 역사가 오래다.[인암쇄어]에서는 “송정(명나라 신종의 연호)초엽에 담배잎이 여송(呂宋,필리핀)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했고, 송여상의 [수구기략]에도 앞의 책을 인용하고서 명말에 나타난 재앙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니 담배가 남쪽 오랑캐 당으로부터 전래된 이후 거의 네 번째 병자년을 맞은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식(李植)의[택당집(擇堂集)]에[남령초가(南靈艸歌)]가 실려있고, [임충민가전(林忠愍家傳)]에 “금주(錦州)의 전투에서 담배를 싣고 가서 곡식과 바꿨다”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우리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지도 200년이 되었다.

 

담배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기장이나 삼을 심듯이 경작하기 때문에 파종하고 재배하는 온갖 방법이 갖추어져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술을 가까이 하듯이 피우기 때문에 다듬고 만드는 공정이 갖가지로 완비되어 있다. 심지어는 품종이 점차 많아져서 명칭과 품질이 달라지고, 지식과 솜씨가 점차 발달하여 담배를 위한 물품이 골고루 갖춰지고 있다.

 

꽃이 필 때 연기를 내뿜고 달일 뜰 때 연기를 들이마시면 술이 지닌 오묘한 맛까지 겸비하고, 파란 연기를 태우고 붉은 연기를 피워낼 때면 향기의 멋까지 갖추는 셈이다. 은으로 만든 담뱃대와 은을 아로새긴 담배통은 차(茶)의 풍치를 더하고, 담배의 꽃을 가꾸고 향을 말리는 일은 진귀한 열매와 이름 있는 꽃에 비교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그렇다면 200여 년 동안에 문자를 이용하여 기록한 책이 있을 법도 하건만, 담배에 대해 기록한 저술가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없다. 담배가 보잘것없는 물건이고, 흡연이 중요치 않은 일이라서 굳이 붓을 휘둘러 저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걸까? 그렇지 않다면, 저술이 있는데도 내가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루하고 비좁은 나의 지식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담배가 출현한지 아무래도 오래되지 않아 기록할 시간적 여유가 아직 없었고,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저술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준 것일까?

나는 담배에 대한 고질병이 심하다. 담배를 사랑하고 즐기기 때문에 남들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을 부려 저술을 한다. 소루하고 거칠어서 숨은 사실을 드러내고 비밀을 밝혀내기 에는 참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위에 든 음식과 꽃과 과일에 관한 저술의 부류에 가깝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경오년(庚午年, 1810) 매미가 우는 5월 하순에 화석산인(花石山人)은 쓴다.

 

출처: http://www.kt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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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烟經)! 어떤 책인가?

담배와 흡연을 다룬 저작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 바로 《연경(烟經)》이다. 책 제목을 직역하면 ‘담배의 경전’이다. 18세기 조선 사대부 이옥(李鈺)이 쓴 단독 저술이다. 오랜 동안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책이 존재한 줄조차 몰랐다. 《연경》은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으로, 경북대 남권희(南權熙) 교수가 기증한 장서인 남재문고(南齋文庫)에 들어가 있다. 전체 분량은 25장이고, 판의 크기는 11.9㎠×21.7㎠이다. 판심(版心)에 ‘화석장본(花石庄本)’이란 원고명이 쓰인 사란공권(絲欄空卷)에 정사하였다. 이 원고지는 이옥이 사용하던 것이 분명함이 밝혀져 저자 수고본(手稿本)임을 알 수 있고, 글씨 역시 이옥 친필이다. 사침(四針)으로 제본하였고, 겉표지는 황지(黃紙)이다. 중국책 스타일로 아담하고 세련되게 만든 책자이다. 책은 서문과 4권으로 구성되었다.

      연경서(烟經序) - 경오년(1810) 5월에 쓴 저자의 자서
       연경 1권: 담배씨를 거두는 내용인 ‘수자(收子)’에서부터 담배 뿌리를 보관하는 ‘엄근(罨根)’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경작하는 방법과 과정을 17조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연경 2권: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담배의 성질과 맛, 담배를 쌓고 자르는 방법, 태우는 방법 등을 19조에 걸쳐 소개하였다.
       연경 3권: 담배를 피우는 데 사용되는 각종 용구를 12조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연경 4권: 흡연의 멋과 효용, 품위와 문화를 10조에 걸쳐 다각도로 묘사하였다.
       ― 본문 15~16쪽, 〈서설〉에서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한국에 담배가 전해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백 년 전후한 조선시대 중엽 선조와 광해군 무렵이다. 포르투갈 상인이 담배를 일본에 전했고,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해졌으며, 조선은 이를 다시 여진과 중국 북방지역에 전해주었다. 한국은 동아시아 담배 유통의 중간적 역할을 했고, 담배 명산지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에 전래된 이후 짧은 기간 안에 담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워대는 기호품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뒤로부터, 담배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산업과 생활풍속, 문화와 예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흡연의 보편화로 골초가 등장하여 담배에 대한 사랑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한 문인들이 등장했고, 반면에 흡연의 폐해를 밝히고 금연을 주장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담배가 가져오는 건강과 산업, 풍속과 인륜의 폐해가 일찍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 흡연 찬반론이 지속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4권으로 구성된 《연경》은  1권, 2권, 3권은 담배의 재배와 성질, 도구를 설명한 내용으로 짜여 있다. 조선 후기 담배 생산과 향유의 구체적 실상을 기록한 것이라서 보통의 문학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남아 있는 흡연 관련 자료가 대부분 문학작품이므로 이러한 내용은 주목하지 않았다. 따라서 결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내용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4권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흡연의 문화적 측면을 골고루 다뤄서 매우 문학적일 뿐만 아니라, 수사가 아름답다. 이옥이 작심하고 쓴 문예적인 글이다. 조선 후기 사람들의 담배를 피우는 갖가지 장면의 묘사를 통해 인정물태(人情物態)가 눈앞에 선연하게 나타난다. 빼어난 소품문(小品文)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매력을 발산한다. 《연경》이 문학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는 바로 이 4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경》은 이렇게 담배와 연관된 중요한 사실을 네 개의 분야로 나누어 빠짐없이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조선시대의 담배 생산과 흡연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충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기록한 자료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담배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와 감회를 시와 문장으로 표현했기에 관련 자료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담배 관련 문헌은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박학하기로 유명한 19세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우리 동방의 선현들이 남초(南草)를 두고 논한 글들이 몹시 많으나 일일이 참고할 겨를이 없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기록이 몹시 풍성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문헌과 문서, 회화자료와 실물자료를 초보적 수준에서나마 조사하지도 않았다. 수백 년 동안 기호품의 제왕 자리를 차지한 사물을 학계는 너무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보니 한국의 흡연 문화사를 다룬 본격적인 저술도 번듯한 것이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는 담배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흡연의 문화사를 저술할 단계에 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본문 14쪽, 〈서설〉에서
    

       
조선 사대부 이옥은 왜 담배에 관한 책을 썼을까

이옥이 《연경》을 저술한 의도는 무엇일까? 저술의 앞부분에 실린 전체 서문과 각 권의 앞에 실린 소서(小序)에 편찬 의도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옛사람은 음식과 같이 미미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상생활의 사물일지라도,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담배는 조선에 들어온 지 2백 년이나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즐기는 기호품이므로 기록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닌 사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한 기록물이 없었다. 이옥은 생활 주변의 사소한 사물을 다룬 저술이 많이 등장한 사실을 열거하여, 그러한 사물들도 저술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담배에 관한 저술이 없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더욱이 이옥은 애연가였다. 결국 애연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기호품인 담배에 관한 저술이 없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그는 밝혔다.
서문에서 그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기록하자는 저술의 정신을 주창했다. 《연경》이 결코 한 때의 붓장난의 소산이 아니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종래 그래왔듯이 정치나 철학, 윤리나 문학의 주제만이 저술의 대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의식을 표명하였다. 전통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받던 저술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는 담배를 저술의 주제로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이옥이 밝힌 이러한 생각은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엽의 신예의 학자들에게 확산된 의식이었고, 《연경》은 우리 학술계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로서도 주목해야 할 저서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담배를 주제로 한 저작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담배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건을 설명하는 저술이 있을 법도 한데 자기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착안하였다. 담배가 조선에 전래된 지 적어도 200년이 넘는다. 또 농부는 자연스럽게 경작하고, 흡연자는 술과 다름없이 친근하게 피운다. 각종 흡연도구도 지천으로 널려 있고, 그 품종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요컨대, 담배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일용품이다. 그런데도 담배와 관련된 저술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남들이 쓰지 않는다면 이옥 자신이라도 나서서 담배의 모든 것을 밝혀주는 책을 지어야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옥이 살던 당시 조선의 학계는 국가를 다스리고, 심성을 도야하는 학문이 아니면 천박한 학술이라 여기기 일쑤였고, 고상한 문학이 아니면 무시해버리는 것이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풍토였다. 이옥은 그러한 지적 풍토에서 담배와 같이 하찮은 물건을 대상으로 삼아 저술하는 것이 일으킬 비난이나 물의를 예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저작의 동기를 써서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서문을 꼼꼼하게 음미하면, 소극적 변명에 그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곳곳에 버려진 하찮은 사물을 세상에 훤히 드러냄으로써 천하 모든 사람들과 후세의 자손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만들겠다”는 언급을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학문의 주제와 대상을 바라보는 남다르고 참신한 이옥의 시각을 엿보게 만드는 서문이다.
   ― 본문 34~35쪽, 〈담배의 경전 서문〉에서



담배, 그 애증의 기록

한문학자 안대회 선생은 《연경》과 함께 근대 이전 지식인들이 쓴 다양한 담배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담배와 흡연을 본격적으로 다룬 문헌의 대표가 《연경》이지만, 담배를 주제로 한 저작이 이것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자료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담배를 두고 애호하는 이유와 감흥을 표현한 옹호론자의 자료와 금연의 폐해를 고발하고 금연의 당위성을 입증하려 한 금연론자의 자료들을 모아 책의 한 부분을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 가운데 가치가 있는 자료 열한 가지를 골라서 2부를 구성하였다.
이 기록으로 《연경》에 등장하는 내용을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애연가들과 금연가들의 사유와 정서를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의 2부 〈담배, 그 애증의 기록〉에 담긴 글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먼저, 이옥이 담배를 제재로 쓴 산문작품 두 편을 실었다. 〈담배 연기(烟經)〉는 《연경》과 제목이 같은 산문으로 우연히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제지를 당하고서 쓴 글이다. 그리고 〈담배의 일생(南靈傳)〉은 담배를 의인화하여 쓴 가전체(假傳體) 소설이다. 담배를 남령(南靈)이란 이름의 장군으로 각색하여 그의 선조와 성질, 활약 내용을 묘사하였다. 이 역시 흥미로운 산문이다. 담배를 주제로 한 가전체 작품으로 임상덕이 쓴 〈담파고의 일생(淡婆姑傳)〉도 함께 부록으로 실었다. 이옥은 담배를 장군으로 각색한 반면, 임상덕은 비구니 승려로 각색하였다. 애연가의 입장에 따라 심리적으로 담배를 색다르게 받아들이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흡연 옹호론의 입장을 대변한 글들이다. 대체로 시대가 앞선 글들이 애연가의 입장을 반영한 옹호론에 치우쳐 있다. 이빈국의 글과 정조(正祖)의 〈남령초(南靈草)를 주제로 질문에 답하라〉, 그리고 임수간의 〈연다부〉, 박사형의 〈남초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임수간의 글이 분량도 그렇고, 문학적 묘사와 내용면에서 압권이다. 이론적인 차원에서나 글이 지닌 강도에서 정조의 책문은 담배 옹호론을 대표하는 글이다. 그 책문이 지닌 의미는 그 글에 붙인 역자의 해설에서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이 글을 통해서 조선시대 애연가의 심리와 논리를 잘 엿볼 수 있다.
정조를 비롯한 애연가들이 담배의 효능과 멋을 주장했지만 그 반면에 금연론 또한 몹시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담배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파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거론할 것이 이덕리(李德履, 1728~?)의 〈기연다(記烟茶)〉다. 이옥의 저작에 비해 20년 정도 앞서는 글이고, 담겨 있는 내용도 적지 않다. 이옥이 담배 옹호론자의 입장에서 담배의 미덕을 예찬했다면, 이덕리는 금연론자의 입장에서 담배의 해독과 금연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자료다. 이덕리는 담배의 해로움을 진기 소모, 시력 저하, 의복 착색, 서책 오염, 화재 요인, 치아 상해, 체면 손상, 행동 불편, 예모(禮貌) 불경, 공경 소홀 등 열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글에 이현목의 〈담바고 사연〉, 황인기의 〈남초 이야기〉, 윤기의 〈어른과 어린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담배로 인해 파괴된다〉가 있다. 이 글들은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조목조목 비판하여 금연이 실시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대체로 보아, 흡연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좋지 못한 영향, 담배 재배로 인해 경작지 축소와 식량 부족, 담배로 인한 화재 사고, 담배로 인한 주위 환경 불결, 흡연으로 인한 사회 질서와 풍기 문란 등 몇 가지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담배에 대한 ‘18세기 지식인’들의 기록

담배의 요모조모를 기록한 《연경》은 이렇게 당시 학술의 첨단을 보여주는 저술의 하나다. 《연경》이 학술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은 18세기 실학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유득공도 《연경》을 지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예상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에게 양계를 권하는 편지 속에서 “네가 벌써 닭을 치고 있다니, 온갖 서적에서 닭을 다룬 기록을 초록하여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나 유득공(柳得恭)의 《연경(烟經)》처럼 《계경(鷄經)》을 편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속된 일을 하면서도 맑은 운치를 지니려면 모름지기 이러한 사례를 기준으로 삼을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애연가였던 정약용은 유득공의 《연경》을 읽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 편지글에 따르면, 유득공도 《연경》을 저술하였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그의 이름으로 된 《연경》은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득공은 이옥과 이종사촌 사이다. 유득공의 몰년은 1807년이므로 그가 《연경》을 지었다면 이옥보다 앞서서 지은 셈이다. 유득공이 정말 이 책을 지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옥이 지은 《연경》을 정약용이 유득공의 저작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유득공과 이옥이 동일한 주제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지었다면 그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그것은 이 시대 학문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연경의 문학적 자료적 가치

이옥의 《연경》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거의 유일한 담배 관련 단독 저술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0년 전에 지어졌다. 이옥은 문학사에서 아주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문인이다. 기성의 문학세계에 반발하여 당대의 현실을 당대의 시선으로 묘사할 것을 주장한 변화 지향의 문인이었다. 당대의 현실로서 그는 정조 치하의 서울 시정사람을 주목했고, 그중에서 또 여성을, 여성의 사랑을 주목한 바 있는데, 그의 문학적 신념의 표징이다. 담배라는 일상적 기호품도 그런 당대적 현실의 생생한 기호이다. 담배를 저술로 삼은 것도 그런 문학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연경》은 문체가 독특하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간명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묘사한 문체의 특징을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메모하듯이 단상(斷想)을 한 조항 한 조항 엮어서 하나의 저술을 이루고 있다. 담배라는 기호품을 전체로서 조망하려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 작은 책자지만 내용이 풍부한 것은 간결한 문체의 힘을 입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건조한 문체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번역문에서도 대체로 발견이 되지만, 원문을 읽게 되면, 그가 매우 기괴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음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당대의 일반적인 문사들이 사용하는 문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 저술 안에서도 다양한 문장 구사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4권이 그렇다. 이 책이 담배와 얽힌 조선시대의 문화만을 전해주는 책의 구실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학서임을 4권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담배와 흡연은, 현재는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우리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사물이다. 더욱이 조선후기에는 그렇다. 이옥의 《연경》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조선시대 특유의 흡연문화는 우리들의 눈에 그다지 뜨이지 않았거나 미지의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연경》의 발견 이후에는 우리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더 가고, 그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지게 되었다. 이옥은 《연경》이라는 저술을 통해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창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의식 강한 옛 문인의 작은 시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들은 잘 알 수 있다. 

 

출처: http://www.humanistbook.co.kr/book/bookDetail.asp?category=00&bookcode=BC000362#top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존 메이너드 케인스-경제학자, 철학자, 정치가

첫번째는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쓴 서평기사다. 스키델스키가 쓰고 고세훈이 옮긴 <존 메이너드 케인스>라는 책.

원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220174228&section=04

 

두번째는 한겨레신문의 한승동 선임기자가 쓴 서평기사다. 이 기사에는 번역자인 고세훈 교수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원문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01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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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Now, we are all keynesian!)." (리처드 닉슨)

1971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이 말은 케인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닉슨이 이 말을 한 시점부터 케인스의 영향력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약 20년간 케인스는 낡은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수식어로 쓰일 정도로 '죽은 개' 취급을 당했다.

이렇게 케인스가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서른한 살의 역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이 경제학자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한 2년 정도면 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이때 그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 작업이 2년을 예상했던 자신의 짐작과 달리 30년이나 걸리는 대장정이 되리라는 것을….

결국 스키델스키는 이 과업을 완수했다. 덕분에 우리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의 명성에 걸 맞는 "20세기 최고의 전기"를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전2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는 바로 이 스키델스키의 역작을 약 4년에 걸쳐 1600쪽 분량으로 옮긴 책이다.

애초 스키델스키는 1983년부터 2000년까지 케인스의 전기 3권을 펴냈다. 그는 "세 권 분량을 읽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독자를 위해서 이 세 권 분량을 40% 가량 줄인 "하나의 일관된 통일성을 갖춘 별개의 새로 쓴" 케인스의 전기를 펴냈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책이 바로 이것이다.

케인스의 死後 경고 "이명박, 난 당신에게 반대요"

"케인스의 사상은, 세상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2003년 스키델스키는 이 책을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그는 불과 5년도 못 돼 케인스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호출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미 그 때부터 위기의 징후는 또렷했다. 그리고 그 징후야말로 케인스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본, 독일의 장기 침체, 1997~1998년의 금융 붕괴, 그리고 2001년의 월가 폭락은 무자비한 탈규제 전략이 안고 있던 문제를 드러냈다. 이런 현상을 '자본주의 일반적 위기'의 징후로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은 많은 분야에서 자본주의가 잠재력을 밑도는 실적과 불안정을 드러내주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런 문제야말로 케인스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였다."

스키델스키는 "케인스가, 사후 63년 만에, 마침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 같다"며 지금 이 시점에서 "케인스가 제시했던 세 가지 원리가 특히 부각된다"고 소개한다. 우선 케인스는 이른바 전 세계적 경제 통합에 "신중한 절제"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스키델스키는 이를 놓고 "한국의 조급한 세계화 추진에 대한 아주 적절한 경고"라고 강조한다.

둘째, 불확실성의 문제다. 케인스는 국민 경제는 물론이고 기업 경영을 놓고도 항상 이렇게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계산 가능한 확률을 만들어 낼 만한 과학적 근거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키델스키는 "금융 불안정이 시장 안에 근본적으로 내재돼 있으며, 금융 혁신 기법 역시 새로운 규제 조치로 제어해야 한다는 경고"라고 설명했다.

셋째, 환율 문제다. 케인스는 국가 간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 고정 환율을 선호했다. 또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그는 자유무역 맹신을 경계하며 자급자족 경제를 선호했다. 스키델스키는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아마 케인스가 살아 있었다면 저평가된 통화를 수단으로 수출 주도 성장을 촉진하려는 정책에 적대적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케인스가 스키델스키의 입을 빌려 내놓은 세 가지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케인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경제 정책의 핵심을 모두 다 부정했으리라. 어쩌면 케인스는 FTA, 금융화, 고환율 등을 외치는 이 대통령에게 이 위기를 계기로 수출보다는 내수에 기반을 둔 자급자족형 경제로의 체질 전환을 주문했을지 모른다.

케인스가 남긴 세 가지 교훈

이 책은 경제학자 케인스뿐만 아니라 철학자, 정치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케인스의 삶을 통해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스키델스키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세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불확실성을 기억하라', '선한 삶을 지향하라', '지금 여기서 행동하라.'

첫째, 불확실성을 기억하라. 이 책을 옮긴 고세훈이 잘 요약했듯이 케인스 경제학은 "화폐와 시간이 개입되는 한, 경제 주체로서 인간 행위는 무지와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제학이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인식 때문에 케인스는 경제학에 과도한 수학 기법을 차용하는 데 적대적이었다. 그는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명확하고 계산 가능한 미래"를 찾는 "수학 모델"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계량경제학은) 마치 사과가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이 (…) 사과 쪽의 계산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같은 맥락에서 케인스는 정부 경제 정책 역시 늘 불확실성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런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면 어느 시대, 어떤 국가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경제 정책은 있을 수 없다. 1960~70년대 케인스를 추종했던 경제학자들이 실패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불확실성을 외면한 오만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의 오만의 결과는 바로 신의 복수이다."

둘째, 선한 삶을 지향하라. 케인스는 평생 '선한 삶'을 이루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케인스는 "수단보다 목적이 높이 평가되고, 유용성보다는 선이 선호되는" 그런 선한 삶이야말로 경제학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여겼다. 스키델스키는 "오늘날, 문화와 정신적 가치가 '돈에 대한 사랑'에 제물로 바쳐지는 무분별한 상업주의는, 그를 말할 수 없이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셋째, 지금 여기서 행동하라. 케인스는 이 선한 삶을 향한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도전은 늘 '지금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의 일차적 관심사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었다. 스키델스키가 지적한 대로 "(케인스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라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돼 있었다."

케인스를 넘어서라!

이런 세 가지 교훈을 염두에 두면 최근의 좌우를 막론한 케인스의 재조명은 나태하기 짝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케인스가 20세기 초반 영국과 세계를 염두에 두고 내렸던 처방을 추종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의 맥락과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 치열한 고민, 궁극적으로 선한 삶을 지향할 해법, 이것이야말로 케인스가 지금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이리라.

스키델스키는 책의 말미에서 케인스의 삶을 호머의 영웅 오디세우스에 빗댄다. "그는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들었지만 난파의 가능성을 경계했고, 그의 재능과 세계의 상황이 운명 지워 준 경로를 충실히 따라갔다. 능숙하게도 그는, 삶과 일에서 가능한 최상의 세계를 위해 분투했으며, 기적적으로 거기에 가깝게 다가갔다."

호머의 <오디세우스>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듯이 20세기 오디세우스의 삶을 기록한 이 책 역시 단순한 찬양을 위한 영웅담이 아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경제학자는 케인스의 삶을 통해서 세상의 필요에 화답하는 '21세기의 경제학'을 내놓을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시민은 그런 경제학을 구별할 감식안을 갖는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케인스주의자가 되는 일이 아니다. 케인스를 넘어서는 일이다.

 

■ 케인스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것들

1. 케인스는 국가의 경제정책을 통해 경제를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흔히들 케인스가 정부의 재정 정책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해서 그가 정부의 역할을 전지전능한 것으로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케인스가 시장 체제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메커니즘 대신 권력과 명령의 경제학을 들여놓았다는 비난은 크게 과장된 것이다. 불확실성이 자유방임된 시장경제의 성과를 위축시킨다면, 그것은 정부 정책의 효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개인과 국가 행위의 적정한 영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추상적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각 시대에 맞는 선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케인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 개입이 있어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국가 개입이냐의 문제였다.

하지만 케인스의 제자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정책 입안자들이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실제로 그들은 경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권한이 사실상 무제한적이라는 신념에 차 있었다. 그들은 케인스의 도구는 상속받았지만, 그 도구의 범위와 효율성의 한계에 대한 그의 철학은 물려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오만이 인과응보의 재앙을 만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2. 케인스는 경제학자가 경제의 작동을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수량적으로 관찰하고 예측 및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계량경제학의 방정식들에 실수(實數)를 채워 넣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신랄한 경고를 남겼다. "그것은 마치 사과가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이 사과의 동기, 땅에 떨어지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지의 여부, 그리고 땅이 사과가 떨어지기를 원하는지의 여부, 자신이 지구의 중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사과 쪽의 계산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스키델스키는 1936년 9월 옥스퍼드에서 열린 계량경제학대회를 기점으로 <일반이론>은 "명확하고 계산 가능한 미래"를 가정하는 "수학적 모델"로 환원되기 시작했고, 케인스 경제학이 고전주의의 주류적 인식과 방법론에 포획되는 현상이 비롯됐다고 암시한다. 방법(론)이 내용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일반이론>의 태동 과정에 누구보다도 깊이 개입했으며 케인스가 가장 총애했던 두 제자 리처드 칸과 조앤 로빈슨은 옥스퍼드 대회 이후 케인스 혁명의 발전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다. 훗날 칸은 <일반이론>이 "도식과 하찮은 대수"로 환원된 것은 커다란 비극이라고 간주하기에 이르지만, 그 점에 대해 가장 통탄해 마지않았던 사람은 케인스 자신이었다.

3. 케인스는 좌파 경제학자다?

케인스는 마르크스가 죽던 해인 1883년에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케인스와 마르크스를 상징적으로 연결시키곤 한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1930년대 케임브리지는 히틀러의 집권이 준 충격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로 들끓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전쟁·파시즘·실업의 치유책으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모든 도그마를 거부했던 블룸즈버리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케인스 역시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으며 그것이 자기 세대가 파멸시킨 기독교가 떠난 빈 공간에 침입해 들어온 영혼의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감염된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반문하곤 했다. "모든 것 중에 최악이며, 늙은 리카도가 저지른, 그리고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바로잡았을, 어리석은 오류 위에 세워진 것이지. 결국 더 이상 경제적 시련이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 그 다음에는?"

기본적으로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파괴하기보다는 수정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타당성이 입증되지 못한 사회주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의 병리현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자유방임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 모두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체제를 동일시하고 자본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게 혁명은 불황의 치유책이 아니라, 그것이 몰고 올, 피해야 하고 또 피할 수 있는, 가능한 결과일 뿐이었다.
그는 에드먼드 버크의 논거를 빌려 세 가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며 혁명에 반대했다. 첫째, 기존의 질서는 개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량한 것이 아니며, 둘째, 혁명이 가져다 줄 훗날의 체제가 현 체제보다 낫다는 확신이 없고, 셋째, 설사 새로운 체제가 전복된 그것에 비해 낫다는 것이 증명됐다 할지라도, 과연 그것이 혁명 과정에서 치르게 될 희생을 보상할 만한 것인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케인스는 급진주의자였지만, 결코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폐절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해야 할 대상이었다.

또한 그는 러시아 볼셰비즘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러시아는 "행정적으로 무능하고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드는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최악의 사례를 보여 준다…." 그것은 "광적이고 불필요한 조급증을 지닌 악폐들의 가공할 만한 전형"이었다. "스탈린으로 하여금, 실험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화신이 되도록 하라."

그는 소련 경제학자들 앞에서 집단주의적 기조를 따라 개조된 자유주의만이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 모두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라는 내용의 연설문 "나는 자유주의자인가?"를 낭독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인스의 초기 히트작 <평화의 경제적 귀결>은 그를 "그가 결코 속한 적이 없던" 좌파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선'('절충'이 아닌) 중도의 입장에서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케인스 혁명을 일구어 내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는 노동당에게는 실행 가능한 통치 철학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한때는 자유당의 진정한 회복과 노동당과의 연립정부를 염원했으며, 이런 연대를 위한 행동 강령을 마련하는 데 엄청난 지적 에너지를 쏟아붓기도 했다.

그는 좌파/우파로 정의하기보다는 현실주의자로 보는 편이 옳은 인물이었다.

4. 천재 경제학자 케인스는 주식 투자에 성공했을까?

블룸즈버리 친구들과 달리 케인스에게는 상속받은 자산이 없었으며, 교류 범위가 넓어진 생활 방식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케인스의 소득 가운데 3분의 1은 저술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그 외에 오스월드 포크와 주식 중계 회사를 차려 돈을 벌기도 했다. 또 그는 환투기를 하기도 했는데, 스키델스키는 "투기는 그의 경제학을 발전시켰고, 경제학은 그의 투기를 부추겼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한다. 사실 1930년대 그의 투자 철학은 경제 이론에 맞춰 변화했다. 그는 부란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 문명화된 생활을 위해 소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그대로 실천했는데 환투기로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그림 구입을 위해 따로 책정해 두기도 했다.

또 그 역시 투기 열풍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확실성에 도박을 건다고 느꼈다. 그는 따든 잃든 고수익이 걸린 도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한때 파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때 그가 진 부채는 2만 파운드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케임브리지 재무관으로서 그 재산을 열 배나 불려 주기도 했으며, 많은 유산을 남기는 등 결국은 성공한 투자가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5. 케인스는 동성애자였다?

케인스는 '활발한' 동성애자였다. 그가 속했던 블룸즈버리 그룹이 오히려 이성애를 기이한 것으로, 이성과의 결혼을 배반으로 간주할 정도였으니, 그의 동성애적 편력을 특별한 기행으로 볼 필요는 없다. 스키델스키는 이러한 동성애의 만연을 당시 많은 젊은 남성들이 여성이 배제된 환경에서 청년기와 성인기 대부분을 보낸 데서 찾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 케인스를 비롯한 케임브리지 남성들은 젊은 남성에 대한 사랑이 여성에 대한 사랑보다 윤리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간주했다.

하지만 훗날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그의 성적 취향을 그의 이론적 성취를 폄하하거나 그의 이론적 '탈선'을 조롱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슘페터는 케인스가 '단기'에 치중한 것은 자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케인스 경제학의 숭배자들은 일종의 방어 행위로 그의 사상을 삶에서 분리시키기도 했다.

물론 스키델스키는 이 책에서 그의 동성애 편력과 이후 리디아와의 결혼 생활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그는 케인스의 생애를 지배했던 두 연인인 덩컨과 리디아가 모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는다. 스키델스키는, 이들이 신선하고 의외의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었으며 케인스가 찾던 대상은 자신보다 열등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지성을 보완하거나 균형을 잡아 줄 사람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를 인습을 벗어난 케인스의 사고와 상상력과 연결 짓고 있다. 스키델스키는 리디아와의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도박꾼이었고, 리디아는 그에게 가장 큰 도박이었다."

(출처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제공 : 후마니타스)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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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 경제학자, 철학자, 정치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고세훈 옮김/후마니타스·1권 3만5000원, 2권 3만원

경제학자 스키델스키 30년간 쓴 전기
“미·유럽도 케인스 제대로 취급안해
정부의 시장개입·보호주의 문제
한국경제에도 적용될 개혁주의 소개”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이젠 우리 모두 케인스주의자”라고 했다. 하지만 달러 태환정지를 선언한 그의 시대 때 케인스가 쌓아올린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졌고 케인스는 급속히 잊혀졌다. 영국 경제평론가 윌 허튼은 심지어 “케인스 혁명은 결코 일어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곳곳에서 케인스의 부활을 알리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케인스주의를 대체한 신자유주의가 미국발 금융공황과 함께 무너지고 있는 지금 다시 그 신자유주의를 케인스주의로 대체하겠다는 얘기인가?

» 케인스의 동성애 상대였던 미술학도 덩컨 그랜트가 그린 25살 때의 케인스(1908년). 후마니타스 제공

일반인들에겐 ‘뉴딜’정책과 함께 기억되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하지만 사람들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이 유명한 영국인이 정작 어떤 사람인지, 그의 경제학이론이 뭔지 잘 모른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영국 워릭대에서 역사학과 정치경제학을 가르친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영어권 사람들조차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량실업을 동반하는 경제불황을 정부가 나서서 예방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1천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러한 사상이 케인스한테서 나온 것임을 알지 못한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케인스의 생각을 그런대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10만명 중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가 누구이고 어떤 시대를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가 만든 이론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여주는 케인스 전기가 번역 출간됐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맥밀런, 2003). 스키델스키가 썼다. 그가 맥밀런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것은 케인스의 시대가 기울어가던 1970년 초. 1983년에야 제1권이 나왔고 제3권을 끝으로 3부작이 완성된 것은 2000년. 무려 30년이 걸린 노작이다. 공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범죄가 된다는 나라 영국에선 전기나 자서전·회고록·일기·편지의 출판이 산업화돼 있지만, 이 책은 그 양과 주제의 방대함, 지적 깊이에서 통상적인 전기류들과는 다르다. 번역된 것은 이 3부작 분량을 40%나 줄이고 고쳐 쓴 단행본. 그럼에도 1, 2권 합해 1600쪽이 넘는다. 케인스의 이론이나 삶의 편린들은 이따금 소개됐지만 이런 묵직한 케인스 종합판이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지은이는 “케인스가 사후 63년 만에 마침내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고 했다.

 



» 케인스와 아내 리디아. 후마니타스 제공
가문 역사부터 케인스가 63살에 타계하기까지의 모든 과정, 그리고 동반자였던 러시아 발레리나 출신 리디아 로포코바의 그 뒤 말년까지 자세히 다뤘다. 영국에서 태동한 경제학, 케임브리지학파, 케인스 경제학의 역사와 그의 이론작업이 어떻게 공적 활동과 연결되는지가 유기적으로 기술돼 있고, 영국에서 가장 유력한 문화동인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을 중심으로 한 중상류계급의 생활, 제대로 밝혀진 적 없는 케인스의 동성애까지 다뤘다. 이는 지은이가 품었던, “사상가의 삶은 그의 사상과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가?”라는 의문에 맞닿아 있다. 번역자 고세훈 교수는 “빅토리아조의 번영이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다시 대공황, 파시즘, 스탈린 체제의 발흥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반세기의 냉전으로 연결됐는지, 그리고 20세기 전반기 영국 지식·문화계가 어떠했는지 그 분방한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경제학 비전공자들에게 경제학적 사유에 눈을 뜨게 할 만큼 충분히 경제학적이며, 경제학자들에겐 자신들의 학문적 지식·가정·방법론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생관과 역사를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할 계기를 줄 정도로 충분히 교양적이다.”


» 케인스와 밥 브랜드 영국 재무부 대표(1946년). 후마니타스 제공

‘케임브리지 문명: 시즈윅과 마셜’ 편을 읽어가노라면 입시용 단답식의 지식조각으로만 남아 있는 요령부득의 직관주의와 공리주의가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며 어떤 맥락에서 등장한 이론체계인지가 비로소 자명해진다.

 

2차대전 때 영국 재무부에서 일했던 케인스는 경제계의 윈스턴 처칠이었다. 그는 독일이 1944년 말에 항복하고 일본이 1945년 말까지 버텨주기를 바랐다. 그래야 종전 뒤 미국 원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조처를 취할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빚더미 위에서는 영국이 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해를 넘기며 버텼다. 미국이 핵폭탄을 개발했다는 낌새도 채지 못했던 케인스는 “일본이 너무 일찍 항복해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고대했다. 결국 희망은 깨졌고 그것은 영국이 굽실거리며 워싱턴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무렵 케인스는 채권을 소유한 불로소득 생활자를 고리대금업자나 샤일록과 다름없는 존재로 혐오했다. 그때 영국은 미국에 무이자 대출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인스 자신은 환투기와 증권거래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상속받은 재산이 없었던 그는 수입의 상당부분을 글쓰기와 저술, 강의, 연설, 펠로십 등으로 충당했으나 환투기로 번 돈으로 쇠라와 시냑, 피카소, 마티스, 드랭, 르누아르, 세잔의 작품들을 샀다. 그의 블룸즈버리 친구들 중에는 이따금 그를 찾아와 점심이나 저녁을 들며 논쟁과 한담에 참여한 버지니아 울프도 있었다.

케인스는 1929년 대공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월가 주가폭락 직후의 사태 전개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를 출범시키기 위해 미국과 밀고 당기는 장기간 협상을 벌이면서 누적된 피로가 그의 심장근육을 망가뜨렸고,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켜 몇 분 만에 운명했다. 그가 만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그가 주장했던 고정환율과 자본통제 체제는 1970년대에 해체됐다. 완전고용을 유지하고 불황을 피하기 위한 관리경제의 논리와 실천인 ‘케인스 혁명’은 그가 창안한 그대로 현실에서 수용됐던 적은 없다. 윌 허튼이 케인스 혁명은 일어난 적 없다고 한 것도 그 얘기다. 비록 우리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너무 성급하게 달려가버렸지만, 케인스 사상의 가치와 적실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그 점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케인스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불황기 케인스는 못가진 계층 재분배 중시”

■ 옮긴이와 함께 | 고세훈 교수

» 고세훈 교수

“한 천재의 이론적, 정책적 활동과 치열하고 엄정한 책무의식,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온갖 논쟁과 사건들을 들여다 보면서 나 자신을 포함한 한국 지식사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역겨움에 가까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경제학, 복지국가론 등을 가르치고 있는 고세훈(54)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읽은 것은 2004년. 안식년을 맞아, 영국 노동당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모교 오하이오 주립대에 가 있을 때였다. 3부작 중 가장 많이 팔린 제3권은 미국은 물론이고 출판사(맥밀런)에 연락해도 구할 수 없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주문해서 읽었다. 그 사이 다른 책 2권을 따로 냈지만, 그때부터 줄곧 번역일에 매달렸다. “단행본 번역에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애초 3부작을 번역해 보겠다고 나섰던 내 성급한 제안을 극구 말렸던 스키델스키가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공적인 일에 대한 치열한 정신이 우리에겐 결여돼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그는 했다. “아마 케인스는 이른바 애국주의라는 것이 진지하고 또 숙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학자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를 추동하는 것은 엄숙한 공적 책무가 아니라 거의 언제나 사적 동기가 아닌가. 나아가 경제학자들이 방법론적 정밀성에 경도되거나 주류 경제학의 틀 속에서 사고하다 보니 거시적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의 문제를 사유하려는 의지, 성향, 도구가 원천적으로 없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케인스를 하나의 국면전환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되짚어 보려는 시도가 아닌가 한다. 예컨대 재분배 체계, 안전망 체계, 노동시장 문제, 기업지배구조 조정 등 제도적 인프라를 형성하기 위한 근본적 성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할까. 도무지 자신할 수 없다. 암담하다.”

맹목적 성장론자들이 그를 오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문제는 성장 자체가 아니라 성장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투자를 기업 쪽과 가진 자들에 혜택을 주는 방식(규제완화, 노동유연화, 감세 등)으로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다양한 재분배 체제와 정부지출을 통해 못 가진 계층의 구매력을 끌어올리면서 추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케인스는 오늘날과 같은 불황 때 전자의 방식을 택하면 유동성은 더욱 퇴장하여 투자와 고용, 성장은 어려워진다고 봤다. 토목건설 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과연 구매력 확보를 우선순위에 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지금 정부의 정책 동기와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비판은 혹독했다.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예컨대 신자유주의를 밀고 나간다 하더라도 그게 신자유주의를 역사적 맥락에서 상대화시킨 뒤에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사고 외의 태도나 입장은 아예 처음부터 배제한 채, 즉 역사에서 탈각된 신자유주의를 무작정 받아들인 상태로 진행하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조차 자유주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등 방대한 역사적 경험의 축적 위에 조성된 이념적 태도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과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 실험이나 정책적 축적 없이 교조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밀고 나갈 때 한국은 훨씬 급박하고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현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몽롱한 신자유주의자들’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2009년 2월 10일 화요일

벨 훅스--우리가 서 있는 곳: 계급이 문제다

2009년 2월 10일자 경향신문의 '책읽는경향'의 기사는 권미혁(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씨가 소개하는 벨 훅스의 책이다. 끈질기게 1면을 차지하던 '책읽는경향'이 오늘자로 2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벨 훅스? 음. 이런 분의 책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었다. 이 분의 저서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벌써 네 권이나 소개되어 있었다. 이 목록을 통해 나는 모티브북이라는 새로운 출판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래에 권미혁 씨의 글과 함께 어느 누리꾼의 서평을 함께 엮어놓았다.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 Ain't I a Woman?: Black Women and Feminism>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까지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행복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백년글사랑, 2002),

<사랑의 모든 것 All about love : new visions>(동녘, 2004),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Where we stand : Class matters>(모티브북, 2008)

<벨 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 Teaching to transgress>(모티브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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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강력한 통제수단이었음을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배웠다. 인디언의 역사를 삭제한 채 구성된 아메리칸 드림, 승리자였던 조조 대신 유비를 중심으로 구성한 소설 삼국지 속에서도 배제의 정치적 혐의는 읽을 수 있다.

 

최근 ‘용산 참사’를 보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반응이었다. 사건 초기 각종 언론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아내려는 떼쟁이 이익집단의 과격한 이해관계 관철 수단(점거농성과 화염병)의 지긋지긋함에 초점을 뒀다. 시위를 한 절박한 이유나 배경, 이들의 삶의 조건과 철거 이후 어떻게 추락할지에 대한 인도적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벨 훅스·모티브북)는 미국 사회가 엄존하는 계급간의 문제점을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단순한 삶을 추구하고 탐욕·부·질시의 위험성을 공유하며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도록 배웠던 미국”이 쾌락적 소비주의의 만능 속에 빈자와 약자를 얼마나 당당하게, 그리고 죄책감 없이 무시하게 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렸을 때 늘 듣던 말이 있다. ‘부잣집 애들은 공부를 못하고 가난한 집 애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 계급이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순환되고 있음이 반영된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부자는 영원히 부자이며 가난은 영원히 대물림되는 ‘신 계급사회’에 와 있다. 문제는 점점 이런 부분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됐으며 죄책감조차 없어져 간다는 점이다. 약자에 대한 무감각을 한국사회가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알려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야말로 다시 계급에 대해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권미혁|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91810175&code=9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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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국내에 번역된 벨 훅스의 책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벨 훅스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사상가다. 처음 접한 <<벨 훅스, 계급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가 마음에 들어서 다른 책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어 본 적 없어서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벨 훅스의 책 덕분에 좀 더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었다.

벨 훅스 책은 무엇보다도 조근조근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책을 읽을 때 흥미를 더욱 키울 수 있다. 내가 흑인이나 여성,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그 감정을 잘 이해하고 내용을 잘 따라갈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섬세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딱딱한 글을 많이 읽었기 때문인지 벨 훅스의 책들을 더욱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행복한 페미니즘>>은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페미니즘 관련 서적 중에 유명한지 실제로 이 책을 읽었다는 주변 분들이 많았다. 간단하게 이 책을 소개하자면 <<행복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준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19쪽)” 이 정의는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페미니즘 운동은 정의상 어느 한 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성별로 나누는 사고방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뿌리박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페미니즘이라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 실천에 다름 아니며 우리가 위의 정의에 동의해서 실천을 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한 번 책을 읽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으므로 세부적인 내용은 정리하지 않겠다. 다만 이론에 대한 책이어서 그런지 벨 훅스의 특징인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한 것이 적어서 좀 아쉬웠다. 하지만 페미니즘 이론에 대해서 실천적으로 정리를 하고 싶다거나, 위의 정의에 동감하는 분들이 읽기에 이 책은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모든 것>>은 좋은 구절들을 꽤 많이 담고 있어서, 스스로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어떤 면에서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하는 것과 많이 닮아 있다. 단순히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면 별 다른 감흥 없었겠지만 기존의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비판하고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을 설득력 있게 행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앞에서 소개한 <<행복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과 맞물리면서 사랑 역시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말해 준다. 가령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정말로 내가 과연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줄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종이 한 장을 꺼내 놓고 날 평가해 보려 했지만 어려웠다.(185쪽)” 그렇다. 어렵다. 나를 생각해도 그런데 내가 원하는 상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 것이다. 사람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런 것을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또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좀 더 명확히 알고자 할 때에도 유용한 방법일 것이라 생각했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많은 남자들이 자신이 무력하거나 상처받기 쉽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그들은 감정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걸 지켜보기보다는 폭력으로 상대방을 침묵시키는 쪽을 택할 것이다.(173쪽)”, “많은 남자들이 감정의 고통을 겪는 게 두려워 오랫동안 자기 안에 갇혀 있었기에 기꺼이 사랑 없는 삶을 선택한다고 한다.(175쪽)” 이러한 구절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에 전인권 씨의 <<남자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더듬어가면서 우리나라의 남자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적 연구를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었는데, 진솔한 대화를 주변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고, 남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것이 익숙했던 시절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남자답다!’라는 생각 때문에 대다수의 남자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벨 훅스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과 공감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것을 조금씩 실천해 나가면 실제 사랑에 대해서도 벨 훅스가 비판하는 낭만적인 사랑의 환상이 아니라 진정 서로가 변화할 수 있고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감정적인 측면에서 아직 서툰 것이 많았는데 벨 훅스의 목소리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 대해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다. 좋은 소식은 이 책은 읽기가 좋다는 점이다. 물론 원서와 대조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이 어떠냐는 말할 수 없지만 술술 잘 읽힌다. 내용도 좋으니 시간 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소식은 이 책이 현재 시중에서 사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면 품절된 상태다. 출판사에 문의해 보았는데 현재 재고가 소진된 상태고 당분간 새로 찍을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쉽지만 읽으려면 도서관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충분히 메워줄 수 있는 책이다.    

<<벨 훅스, 계급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는 일 때문에 나갔던 도시 행사에서 우수 도서 대여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골라서 시간 때우기로 봐야지 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읽어 보니 재미있어서 그대로 책을 사서 보게 되었다. 책에서 벨 훅스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다시금 계급을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그동안 성과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의 공론화를 통해서 오히려 중요한 문제임에도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으로 여겨지는 계급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벨 훅스는 미국 남부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다. 노동 계급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고 소위 특권 계급으로 이동한 자신의 경험으로 미국 현실을 비판하며 잘 묘사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이 사회에 가득 차야 할 것이다. 벨 훅스는 일반 사람들이 빠져 있는 자본주의의 여러 풍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다루는 주제가 다른 사회과학 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처음에 말했던 벨 훅스 특유의 문체가 책을 편안하게 읽도록 해 준다. 벨 훅스는 흑인이었기에 처음에는 인종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세상 사람들이 계급 문제를 말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계급 문제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와 일을 함께 하면서 서서히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벨 훅스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은 계급 문제에 가장 관심이 있다는 사회주의자들조차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지도하고 구원하려는 입장에 서 있었다. 남미에서 출발한 해방신학에서 중요시하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와 공동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이와 관련해서 절판된 책이기는 하지만 <<브라질 바닥공동체 : 하느님 인민의 교회론>>이라는 책은 많은 점을 알려 준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도서관에서 읽어 보시면 브라질에 10만 개 이상의 소규모 공동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기록을 읽을 수 있다. 해방신학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감을 잡는데도 이 책은 용이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느낀 이질감을 말하고 소위 특권 계급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난한 이웃들이 빠져 있는 소비주의의 나쁜 점을 깨닫게 되고 점점 계급의 중요성에 대해서 눈떠 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에서는 미국에서 만연한 물신주의에 대해서 비판하고 성공한 흑인에서 가난한 백인 노동자의 사례를 등장시키면서 계급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페미니즘 사상가라고 불리는 벨 훅스는 자신이 비판하는 모든 것들, 즉 ‘다국적 백인 우월주의 성향의 자본주의 가부장제도’는 사실 계급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계급 문제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마르크스를 공부한다고 계급 문제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계급 문제는 현실에 밀착해 있는 것이고 삶 속에서 항상 나의 행동 속에 항상 붙어 있다. 결국 계급을 사고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벨 훅스의 목소리는 계급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 실제로 경제적인 용어를 쓸 수 없어 계급 문제에 대해서 쓰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차갑고 이성적인 글쓰기라기보다는 어릴 적 들었지만 항상 잊어버리고 문득 떠올리고는 하는 이야기들과 닮아 있어서 혹 계급이라는 단어에 떠올리게 되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문제라는 선입견은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에 벨 훅스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벨 훅스 지음, 윤은진 옮김 / 모티브북) 또 읽을거리가 하나 늘었네. 이걸 좋아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자면, “벨 훅스 책 한 번 읽어 보세요. 좋습니다.”  

 

출처: http://www.ulung.net/tc/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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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군더더기 하나.

<Where we stand : Class matters>를 직역한다면 '우리가 서 있는 곳: 계급이 문제다'라고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굳이 '계급에 대하여 말하지 않기'라고 제목을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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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9일 월요일

뉴레프트리뷰

'신자유주의 천국’ 부도위기 예견됐다
 
“소득세·노조·야당 없는 두바이 등
소수 갑부 위한 자본주의 시스템
지속 불가능한 전략 ‘환부’ 터질 것”

“슈페어가 아라비아의 해안에서 디즈니를 만나고 있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 등의 책으로 널리 알려진 마이크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교수(역사학)는 다들 ‘사막의 기적’이라 예찬했던 아랍에미리트연합 토후국 두바이를 끔찍한 디스토피아로 그렸다. 슈페어는 나치 독일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히틀러에게 발탁돼 2차대전 때 군수장관을 지낸 이다.

 

데이비스 교수가 슈페어에 빗댄 인물은 한국 경제가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떠받들던 ‘신자유주의의 총아’ 두바이의 총지휘자 셰이크 무하마드 알 막툼 수장이다. 데이비스가 신자유주의를 이끈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해변 클럽이라고도 부른 두바이는 분명히 소득세·관세·노동조합·야당·선거도 없는 ‘자유기업’ 성공의 전시장, 풍요의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삼성물산이 짓고 있는 800미터급의 세계 최고층 버즈 두바이 타워 등 600여곳의 마천루와 쇼핑몰, 환상적 볼거리로 해마다1500만의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던 알 막툼의 호언을 허풍으로 여긴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데이비스가 런던에서 발행되는 대표적 진보담론 잡지 <뉴레프트 리뷰>에 ‘두바이의 공포와 돈’을 쓴 것은 2006년 9~10월호. 그로부터 2년여 만에, 투기적 과열에 들뜬 ‘과대망상 추구병’, ‘지속 불가능한 전략’이라고 했던 데이비스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미국발 금융공황과 함께 두바이는 지금 부도위기에 처했다. 150만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은 벌집 같은 캠프에서 칼잠을 자며 생존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640㎞ 해안에서 유일하게 수심이 깊은 천혜의 항구였던 두바이를 영국이 점령한 것은 19세기 중반. 알 막툼 일족을 앞세워 대리통치하던 영국이 1968년 철수했고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났다. 쫓겨난 팔레비 쪽 부자들이 두바이에 대거 망명해 이란과 인도를 상대로 금지품목인 술·금괴 등의 밀무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 진행 중인 부동산 개발사업의 30%를 장악하고 있다. 두바이는 페르시아만 최대의 돈세탁 장소가 됐고 폭력단과 테러리스트 은신처가 됐다. 9·11 사태 이후 두바이는 테러와의 전쟁을 감행한 미국의 협력자가 됐으며, 물 건너 이란 정탐활동의 전초기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책임자로 있던 핼리버턴 직원들과 민간인 용병들과 미군들로 붐비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기지, 미국 기업들의 주요 전진기지가 됐다. 제벨 알리 항에 정박하는 미국 핵항공모함이 주권을 보장해 주고 투기를 법률로 보호해 주는 두바이에 인근 사우디 등 산유국들에서 거액의 투기자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술과 매매춘이 넘쳐나는 홍등산업도 번창했다.


이 억만장자들을 위한 신자유주의 투기천국의 최대 수익자는 알 막툼 일가와 그 친척들. 그 밑에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이 있고, 10만명 이상의 옛 종주국 영국 출신 유한계급들이 있으며, 또 별도로 10만명의 영국인들이 두바이에 주택과 콘도, 인공섬 등을 소유하고 있다. 그 밖의 유럽인과 레바논·이란·인도인들이 있고, 나머지 절대다수의 인구는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남아시아 출신 계약노동자들이다.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한 달 임금 100~150달러를 받는 계약노동자들은 한 해에 880명이 사고로 죽어나가고 성폭행을 당해도 호소할 데 없는 열악한 상태에서 등골이 휘었다.

 


 

 

 


 

 

 

 

 

 

 

 

 

 

 

 

 

 

 

 

 

**» 한때 한국 경제가 본받아야 할 신자유주의 성공신화의 대명사였던 두바이를 상징하는 세계 최고 마천루 버즈 두바이 타워. 하지만 금융공황과 함께 신자유주의 투기 전시장이던 이곳의 영광도 저물고 있다. 그래픽 이임정기자

 

데이비스가 알 막툼을 슈페어에 빗대고 디즈니를 거론하며 “두바이에 건설 중인 미래는 과거의 악몽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바이 얘기를 담은 <뉴레프트 리뷰> 한국어판이 나왔다. 창간(1960년) 50돌을 앞두고 1년여의 준비 끝에 나온 한국어판엔 “비타협적 현실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제2창간을 선언한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실린 글들 중 18명의 글이 선별돼 담겼다.
영국에서 나오는 <뉴레프트 리뷰>는 본디 격월간이지만 한국어판은 1년에 한차례 발행되는 단행본 선집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에릭 홉스봄이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이 잡지의 탄생과정을 언급하면서 “엄청나게 똑똑한” 마르크스주의 청년(당시 22살)으로 그린 창간 주역 페리 앤더슨은 21세기 들어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출현한 것이라며, 미국이 눈에 띄게 쇠퇴하면서 다른 자본주의 권력 중심들이 떠오르고 있으나 강자들끼리 기득권 유지를 위해 협력하는 ‘열강 협력체제’ 속에서 미국의 막강한 지위는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로빈 블랙번은 현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메커니즘을 정치하게 해부하면서 새로운 금융규제 시스템 도입을 비롯한 “실용적이고 급진적인” 체제변혁 행동을 주문했다.

한국어판 편집위원을 맡은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한국어판이 “마르크스적 이론과 운동의 쇄신을 위한 전망을 열고자 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이론수입이나 정보제공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현 시기 정세에 대한 객관적 분석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동시에 운동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의 쟁점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세계정세 현황, 각 지역 쟁점들, 정치사상의 재구성, 자본주의와 미학, 회고 등 모두 5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중국 신좌파의 기수 왕후이(‘탈정치화된 정치, 동에서 서로’), 타리크 알리(‘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중동정세’), 알랭 바디우(‘사르코지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공산주의적 가설’), 테리 이글턴(‘자본주의와 형식’), 자크 랑시에르(‘미학혁명과 그 결과-자율성과 타율성의 서사 만들기’) 등 1급 학자들 글이 실렸다.

이탈리아 공산주의 여전사로 ‘68 혁명’에 동조해 당을 뛰쳐나온 로사나 로산다의 파란만장한 반생기는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등 좌파의 정통 교설에 반발하면서 역경을 헤치며 대안 모색을 계속해 온 <뉴레프트 리뷰>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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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레프트 리뷰’ 한국판 편집위원 맡은 백승욱 교수
“비타협적 현실주의로 자본주의 위기 진단”



» ‘뉴레프트 리뷰’ 한국판 편집위원 맡은 백승욱 교수
 
<뉴레프트 리뷰>는 영어판 외에 에스파냐에서 격월간으로 내고 있고, 터키·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에선 매년 한권씩 선집으로 간행한다. 이 연간 선집 형태로 내는 나라들 가운데 한국도 이제 끼게 됐다. 한국어판 서문을 쓴 편집위원 타리크 알리는 “한국어판의 발행은 우리의 목소리가 극동에까지 이르렀음을 뜻하며, 이를 계기로 중국어판과 일본어판도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지난해 봄 도서출판 길 쪽의 요청에 흔쾌히 응해 진태원 고려대 교수,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한국어판 편집위원을 맡은 백승욱(43·사진) 교수는 “실은 <뉴레프트 리뷰> 필자들과 글은 이미 국내에 많이 소개됐다”고 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먼슬리 리뷰>, 프랑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세계 3대 진보지’의 하나라는 이 잡지에 등장한 필자는 이제까지 1천여명에 이른다. 모두 쟁쟁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래서 ‘세계 지성사를 압축한 지식인 지도’라는 얘기도 듣는다.

백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을 핵심 목표로 삼아 좌파 진보운동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해온 이 잡지를 통해 우리가 처한 엄중한 상황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동시대적인 것인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떤지를 살피면서 이론과 실천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잡지가 일관되게 관심을 기울여 온 정치·이론·문화 세 영역 중 특히 마르크스 이론의 공백과 취약점에 대한 자기성찰을 거듭해 온 것이 이 잡지를 “마르크스주의 이론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의 하나로 살아남게 만든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왜 마르크스인가?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그 어느 때보다 매우 ‘마르크스적인’ 상황이고, 마르크스적 해석과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그런 마르크스적 해석과 대응은 전혀 중심에 떠오르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점점 더 주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데 지금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2000년 이후 <뉴레프트 리뷰>가 비타협적 현실주의 모토로 엄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세분석의 비중을 높이고 있고, 지역적 맥락을 중시해 세계의 다양한 지역과 국가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지금 시기 주요 쟁점들을 검토하려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대중문화의 저항성이 포섭되고 텔레비전 중심의 시각문화 시대가 문화의 탈정치화를 동반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문화연구도 할리우드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생동하는 구체적 관심들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금융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금융중심 체제로 바뀌어온 건 사실”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그로 말미암은 취약점을 더욱 확대하는 쪽으로 역주행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원문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373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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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09. 2. 7)‘뉴레프트 리뷰’ 한국어판 나왔다

2000 ~ 2008년 주요논문 18편 묶어 단행본으로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 유용한 논쟁점 제공”

영미권의 권위 있는 좌파 격월간 학술지인 <뉴레프트 리뷰> 한국어판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 잡지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먼슬리 리뷰>,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세계 3대 진보지로 일컬어진다.

책 출간을 맡은 도서출판 ‘길’은 2000~2008년에 실렸던 논문 가운데 중요한 논문 18편을 묶어 단행본을 출간하고, 앞으로 매년 해당 연도의 주요 논문을 단행본 형식으로 묶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출간 50주년을 맞는 이 잡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깊이 매몰된 한국사회에 유용한 논쟁점들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뉴레프트리뷰> 한국어판 편집위원장인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마르크스적 해석과 대응이 요구됨을 의미한다”며 “전지구적 맥락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다른 사회와 비교하면서 경제위기와 촛불정국을 거치며 대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도 고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출간취지를 설명했다.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된 격월간 잡지인 <뉴레프트 리뷰>는 에릭 홉스봄, 장 폴 사르트르, 레비 스트로스, 루이 알튀세르, 위르겐 하버마스에서부터 테리 이글턴,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노엄 촘스키, 데이비드 하비, 조반니 아리기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논쟁의 장을 제공해 왔다.

백 교수는 “소련의 교조적 마르크스 해석을 극복하려 한 대표적 사례”라면서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해석하기 위한 국제적 허브의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신좌파(New Left)’라는 제호처럼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을 목표로 삼아온 이 잡지는 99년까지 238호를 발간하고 2000년부터 다시 1호를 내기 시작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상황에 맞게 이론적 쇄신을 계속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한국어판 첫호에는 페리 앤더슨(21세기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로빈 블랙번(세계 경제위기의 신호탄, 서브프라임 위기), 타리크 알리(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중동 정세), 테리 이글턴(자본주의와 형식) 등의 글이 실렸다. 번역은 원문 필자의 저작을 한차례 이상 번역한 경험이 있고, 학문적 전문성이 검증된 30대 중·후반의 젊은 연구자들이 담당했다.

<뉴레프트 리뷰>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전문 연구자와 대중 독자 사이에서 눈높이를 적절하게 맞추는 것이 관건으로 보인다. 앞서
2006년 한국판을 냈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경영난으로 출간을 접었다가 지난해 말부터 다시 나오는 것처럼 대중적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사회적 변화에 관심이 있는 학부 고학년과 대학원생, 사회운동가를 주요 독자층으로 삼고 있다”면서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정보이므로 대중지식 향상과 사회운동의 대안 모색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재중기자> 
원문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61735205&code=9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