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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일 수요일

나에게도 내년 새봄은 들나물로 시작되겠지

오늘 한 대목은 책에서 고른 것이 아닙니다. 누리집들의 여러 글 가운데 한 대목을 골랐습니다. 오늘 사무처에는 산후 휴가 중이던 김선영 간사님께서 복귀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짬을 내어 농사 일을 배우러 간 다른 김 간사님은 어찌 지내시나 궁금해졌습니다. 풀무환경농업전문과정의 9기 신입생이 된 그이의 글이 마침 눈에 띄어 옮겨 놓습니다.

 

그 글 가운데 "나에게도 내년 새봄은 들나물로 시작되겠지."라는 기대감이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이 봄,

기다림이 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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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첫 실습 시간에 장 샘이 호미를 한 자루씩 나눠 주셨다. 풀무 전공부가 나를 애기농부로 인정하고 농사에 필요한 도구를 하나 장만해 준 것이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두해 전 호미와 밀짚모자를 구해다가 내가 일하던 사무실에 두었던 기억이 났다. 해질 때까지 실내에서, 호미질 할 땅 한 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호미를 바라보거나 모자를 어루만지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당당하게 사용할 내 호미가 생겼다.

 

김유리 2009년 3월 8일

                                                                                       

 

 

일 투정

 

우리 기수(전공부 9기)는 사람 수가 많아서 한사람 몫으로 다 돌아가지 않는 게 생긴다. 도서관의 책, 풍물 악기 수, 아침 똥 눌 변기.

 

때로는 일도 그렇다. 사람이 많으니까 칠백평 밭에 심을 감자와 완두콩 파종이 금세 끝난다. 참 먹을 때도 안됐는데 일을 마치기도 한다. 계분을 퍼 올리느라 트럭 짐칸에 다가가면 두겹 세겹 둘러싸게 되어 친구 머리에 계분을 뿌리게 될 정도다. 그런데다 일 욕심들도 많아서,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시골 어디서나 성실하다고 칭찬 받을 사람들이 모였다.

 

이런 가운데 작용하는 통념 두가지가 있다. 통념 1: 남자니까 내가 할게. 통념 1에 대한 내 생각: 일의 분량이 한정돼 있으니까 한 번씩이라도 더 실습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것이 좋겠다. 통념 2: 내가 더 힘이 세고 능숙하니까 내가 할게. 내 생각: 너무 오래 머리와 입만 쓰고 살아서 몸으로 하는 일로 균형을 찾아가려는 노땅에게도 기회를 주라. 실습 시간에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사방에서 손이 나타나 내 손에서 도구나 짐을 받아 가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어느새 뒤로 밀려 우두커니 서 있곤 한다.

 

그래도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겪어나가자고 마음먹는다. 아직 첫달이 채 지나지 않았고, 모내기와 논 김매기 일도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 기수는 사람이 많아서 일이 더 늘어나도 걱정 없다. 그때 나도 한손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기운이 없고 약해졌을 때 도와줄 손들도 많다. 누군가 아프면 나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 나이와 성별과 힘에 상관없이 언젠가 나도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몸 노동으로 인한 영혼의 정화 그리고 대지에 굳건히 발 딛고 선 사람만이 가지는 긍지와 용기를!                                                       

 

김유리 2009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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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상큼한 냉이 한 움큼. 사진출처: http://dazizima.com/2461435

 

 

 

 

언니는 나물을 캐러 다닌다. 모자 쓰고 옷 든든히 입고 바람 부는 들에 나간다. 소쿠리를 들고 나갈 때도 있고 배낭만 짊어질 때도 있다. 생활관을 들락거리다 보면 어느새 언니가 캐어온 나물이 현관에 줄줄 놓여 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언니는 냉이를 캤다. 냉이 담은 그릇에 씀바귀가 조금 얹혀 있었는데 이제는 씀바귀만 해도 한소쿠리 그득 쌓인다. 오늘의 나물 목록은 씀바귀, 민들레, 소리쟁이 삼총사다. 소리쟁이는 된장국에 넣어 먹는다고 언니가 알려줬다. 냉이로는 국 끓이고 양념을 해 무친다. 파말이 강회 하듯 돌돌 말아 차를 만들 수도 있다. 냉이말이 차와 쑥말이 차를 넓은 그릇에 담아 말리는 장면은 백마리도 넘는 갑충이 일정한 간격으로 웅크리고 앉아 동심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니는 쑥말이 차 한잔을 방으로 가지고 올라와 맛보여주었다. 향이 은은하고 속이 따뜻해진다. 민들레는 뿌리까지 온전히 캐서 얇게 썰어 말리고 잎과 줄기는 데쳐 먹는다. 지난 주말 언니와 언니 친구가 함께 다듬어 무친 민들레 나물을 먹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쌉쌀하면서도 쫄깃했다. 언니들은 양념 없이 그냥 먹었다. 민들레 뿌리의 싱싱한 단맛도 참 좋다. 언니가 한번 먹어보래서 처음 맛을 본 이후로, 널어놓은 곳을 지날 때마다 한개씩 집어 먹는 것을 언니는 알까?

 

실습을 하고 있으면 멀찌감치 언니가 나물 하러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따라가고 싶어진다. 보름 전쯤 나도 언니처럼 냉이 캐러 한번 나가 봤다. 학교 밭 주위 길가나 논둑에서 한참 캤다. 언니는 나물을 하면 흙이 안보이게 깔끔하게 털어가지고 기본적인 손질을 해다가 집으로 들이는데, 그에 비해 나의 냉이는 흙덩어리였던 것 같다. 그래도 당번이 씻어주고 곽 샘이 무쳐주신 냉이 나물 반찬을 먹으며 흐뭇했다.

 

언니 방 작은 찬장에 들나물 차 담은 유리병이 세개로 늘어났다. 한해 동안 얻을 수 있는 나물과 약초 가공품으로 찬장이 가득해지겠지. 나에게는 아직 이름 모를 풀들이지만 언니 어깨너머로 하나하나 얼굴을 익힐 수 있겠지. 그러면 나에게도 내년 새봄은 들나물로 시작되겠지.

                                                             
김유리 2009년 3월 23일

*글의 출처: http://www.poolmoo.net/


2009년 3월 4일 수요일

정선 태백 영월 삼척 북스타트 간담회

 

사북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오늘은 3월 3일. 이른바 삼삼투쟁 제14주년이기도 합니다. 사북오거리에는 삼삼투쟁 제14주년 기념식이 뿌리관에서 열린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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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에 다녀온 이유는 정선 태백 영월 삼척 등 4개 시군의 북스타트 간담회 때문이었습니다. 이 4개 시군에는 2008년에 폐광지역의 북스타트를 지원하고자 하는 하이원리조트 사회공헌위원회의 뜻과 강원도 지역에 북스타트를 확대하고자 하는 '책읽는사회'의 뜻이 합쳐져 의미 있는 활동이 전개된 바 있습니다. 오늘의 간담회는 지난 해의 성과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2009년의 활동 계획을 서로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된 자리는 저녁 8시 넘어서야 끝났습니다. 무척 진지하고 열정이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서로 많이 배우고, 서로 많이 느꼈습니다.

 

2008년에는 삼척평생교육정보관, 사북공공도서관, 영월도서관, 도계지역아동센터, 정선보건소, 태백인표어린이도서관 등 모두 6개 기관이 4개시군의 북스타트 시행 기관으로 참여했는데, 관장, 센터장, 사서, 과장, 자원활동가, 지역위원 등이 모여 4개시군의 북스타트 현황을 발표하기도 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하며 보람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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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로서는 작년 이 4개시군에 말 그대로 "뻔질나게" 오고 가며 지역활동가들과 함께 애를 썼던 김유리 간사의 편지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김유리 간사의 후임인 이순옥 간사가 대신 읽었습니다. 아래 편지는 저작자의 허락도 없이 여기 만천하에 함께 읽어보기 위해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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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작년 한 해 동안 4개 시군 북스타트 운동에 함께 했던 김유리 간사입니다. 올해 강원 지역 북스타트 운동의 주역이 될 여러분이 모이는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 이렇게 편지로 인사말씀 전합니다. 지금 저는 ‘책읽는사회’ 북스타트 팀을 떠나 충남 홍성에서 유기농업을 실습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미처 인사 못 드린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어서 보고 싶다는 말씀 전할게요. (도계 지역 김현미 선생님, 태백 지역 이혜련 사무국장님, 우리 지난 한해 정이 많이 들었지요? 그래서인지 더욱 떠난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올해 드디어 강원 지역 전역으로 북스타트가 퍼져 나가고, 4개 시군 아기들은 빠짐없이 북스타트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제가 지내고 있는 이곳 홍동면에서도 아기들이 종종 눈에 띄어요. 그때마다 저는 이 아기도 강원 지역 아기들처럼 북스타트를 만나면 좋아할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답니다.

 

지난 한해 4개 시군 활동가 여러분들을 만나는 동안 북스타트의 의미는 매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먼저 저에게 4개 시군 북스타트는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다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체감하는 기회였습니다. 영월에서 만난 한 자원활동가에게 북스타트란 ‘아기들의 반짝반짝하는 눈빛’이었어요. 도계에서 북스타트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생애 첫 선물이 책일 때 어떤 일들이 펼쳐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지요. 태백에서 북스타트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살러 온 한 여성이 친숙한 관계들을 새로 만들어가는 귀중한 매개체였습니다. 사북의 북스타트는 도서관 역사 상 최초로(!) 아기와 양육자들이 열람실을 장악하고 다과장으로 변모시킨 혁명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지요. 정선 북스타트는 군 단위에서 보건소라는 행정망을 통해 백퍼센트에 가까운 북스타트 꾸러미 보급률을 이룰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삼척 북스타트는 조용하지만 실력 있는 활동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목격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북스타트 꾸러미를 전달 받은 각 가정에서는 어떤 장면들이 펼쳐졌을까요? 각 가정의 양육자들은 아기 앞에서 영감에 찬 이야기꾼으로 변신했을까요? 4개 시군 북스타트 아기들은 북스타트 꾸러미 속에 든 것이든 마을 공공도서관 빌린 것이든 그 그림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작은 나팔을 불며 동물들과 숲속을 산책하고([숲 속에서]), 곰인형을 잃어버린 가엾은 미피를 어루만지며 잉잉 울고([미피가 왜 울까요]), 누군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들려주는 자장노래의 가락을 영혼에 새겼을까요?([누가누가 잠자나]) 여러분은 알 기회가 있으시겠지요?

 

부디 정선 태백 영월 삼척 지역 북스타트 간담회가 우리들의 활동과 삶에 소중한 계기로 자리 매김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북스타트의 취지에 대해 두루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고요, 행정 실무에 있어서는 지난 해 저의 ‘어리버리’(‘어리보기’가 맞는 표현이어요) 일 처리를 양해해 주시기를 빌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이순옥 담당 간사에게 힘 실어 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자, 모두들 따뜻한 시간 보내세요! 또 만나요!

 

김유리 올림.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pampas 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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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일. '고한 사북 남면지역 북스타트 발족식'에 참석하는 길. 정선의 민둥산, 그 산길 입구의 민둥산 억새축제 장터를 지나게 되었다. 마침 점심 시간. 사북에 들어가 먹으려던 점심을 축제 장터에서 먹기로 했다. 김유리 간사는 곤드레밥, 나는 산채비빕밥. 거기에 메밀전병을 더했다. 평일이라 축제 장터를 찾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터 한쪽에서는 엿장수가 흥을 돋우고 있었다. 엿장수 젓가락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은 셈이다.  

 

가을날 갈대나 억새를 만나면, 사람들은 쓸쓸함이라는 정서에 물들게 마련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억새는 손을 흔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떠나는 것은 세월이고, 젊음이고, 기억이다. 한 해 또 한 해의 사람살이를 잠시잠깐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 참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간다.

 

갈대와 억새를 확연하게 구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주 옛 일이다. 산길을 걸으며 "이 갈대 좀 봐라"고 했을 때, 옆에서 함께 걷던 선배가 "그건 갈대가 아니라 억새야"라고 지적해서 얼굴이 화끈거리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갈대와 억새,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하게 다르다. 그 다름에 대한 무지는 그냥 무지가 아니라,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에 대한 무지였다. 그건 앎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대한 애정의 문제였다. 갈대와 억새를 구별하기 위해 식물분류학을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다. 산에는 갈대가 자라지 않는다. 산에는 억새가 자란다.

 

명성산 억새밭을 걸어가 본 적은 있지만, 민둥산 억새밭은 아직 못 걸어봤다.

 

언제 걸어볼 기회가 올 것인가?

 

김유리 간사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한 오 분 정도 축제의 장을 둘러보았다. 한쪽에 억새로 엮은 달집을 세워놓았고, 그 달집에는 '나의 소망'을 패로 만들어 달아놓았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소망이 눈에 들어온다. "철도 민영화 반대, 나 로또 1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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