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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신문매체의 생존과 부동산시장

  *그림출처: http://europa.eu/

 

선대인 씨의 블로그에서 옮겨온다.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신문매체의 매출액 급감과 이들 신문매체들이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기사를 싣게 되는 메카니즘을 분석한 내용의 일부이다. 요약하자면, 신문의 유료 구독부수가 기하학적으로 급감하는 상황 속에서 "언론들이 자신들의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부동산시장의 실제와는 다른 조작된 보도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은 조중동의 실제적인 유료 구독부수를 추정하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미디어법'에 목을 매단 형국이 된 것이리라.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젊은 세대의 '문자이탈' '신문이탈'이 더욱 가속화할 터인데, 조중동뿐만 아니라 모든 종이매체의 생존은 경각에 달려 있는 듯싶다.

 

아래 글을 요약하면, 조중동의 유료 구독부수(기업과 관공서의 단체구독부수 약 20만부 제외)는 조선일보는 21만부에서 최대 54만부, 중앙일보는 15만부에서 최대 44만부 정도, 동아일보는 5만부에서 최대 24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21만-15만-5만에서 54만-44만-24만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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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매출액은 2002 4,174억원을 정점으로 지난해에는 3,056억원으로 줄어 -1,118억원이나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의 매출액도 1,267억원(연환산 2,535억원)으로 연환산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521억원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는 지난해에 -213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또 올해 상반기에만 -25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지난해 한해 동안의 영업손실 규모를 상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397억원의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에도 상반기에만 -395억원의 대폭적인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연간 신문구독료18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유료 구독부수는 35.5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경품 8만원에 연간 신문구독료를 10만원으로 가정하더라도 유료 구독부수는 최대 64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기업과 관공서 등 단체구독 부수가 대략 20만부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개인이 돈을 내고 구독하는 유료 구독부수는 15만부에서 최대 44만부 정도에 불과한 상태로 보인다. 그야말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신문의 몰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조선일보의 매출액은 2002 4,817억원을 기록한 뒤 계속 감소하여 지난해 3,722억원으로 줄었다. 매출액이 6년 만에 -1,095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조선일보도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올 상반기 매출이 동일하게 감소했다고 가정하면 대략 연환산 3,087억원으로 전년대비 -635억원 감소한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작년에 18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와는 달리 작년에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조선일보의 유동성 및 비유동성 투자자산이 2,23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5% 이자만을 계산해도 이자수익만 110억원을 넘는다. 실제로 신문사업에서는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큰 폭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210억원 가량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간 구독료 18만원을 기준으로 유가 구독부수를 계산해보면 41만부 가량에 불과하다. 연간 구독료를 10만원으로 잡아도 74만부에 불과하다. 이중 기업과 관공서 등 단체구독 부수 20만부를 제외하면 개인 구독부수는 21만부에서 최대 54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 역시 매출액은 2002 3,749억 원에서 지난해 2,659억원까지 줄었다. 6년만에 -1,090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올해에는 2,200억원에 그쳐 전년대비 -459억원의 매출 감소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8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올해에는 -48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문 연간구독료 18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25만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연간구독료를 10만원으로 간주해도 44만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업과 관공서 등 단체구독을 제외하면 사실상 개인 유료구독자는 5만부에서 최대 24만부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아일보는 1999 7,648억원에 이르던 자산 규모가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해에는 4,156억원까지 급감했다. 자산 매각으로 매년 발생하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메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4년 동아일보가 소유하고 있던 여의도 문화센터 부지를 팔아 장부상으로는 약 469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계속될 경우 대규모 손실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자산매각으로 언제까지 매년 막대한 손실을 메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손이나 씻자!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식사 시간이나 모임에서 자연스레 화제로 오르는 것이 신종플루에 대한 이야기다. 신학기를 맞아 학교는 하나둘씩 개학을 하는데, 우리 아이한테 신종플루가 감염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없을 듯싶다.

 

오늘 뉴스를 보니, "신종플루 사망자 최대 2만명 발생"이라는 기사도 있고 "신종플루 대유행 땐 800만 감염"이라는 기사도 있다. 이런 내용이다. "27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최영희(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신종플루 유행규모를 입원환자 10만∼15만명, 사망자 1만∼2만명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등을 통해 적극적인 방역 대책을 펼쳤을 때의 예상 수치이며, 방역 대책이 없는 경우에는 전체 인구의 20%가 감염되고 입원환자 20만명, 사망자 2만∼4만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좀 심한 것이 아닌가 싶어 '최영희 의원실'에 들어가 보니 이런 내용도 있다. "지난 5월21일 신종플루 관련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결정된 국가 재난단계 상향조정(주의→경계)시 개최할 예정이었던 중앙안전관리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와 중앙인플루엔자정부합동대책본부(본부장 행정안전부장관)가 현재까지도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정부가 신종플루 지역사회 감염 확산에 대해 안이한 대응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뭔가 대응이 신통치 않다. 지난 봄만 해도 사람들이 "김치 때문에 신종플루가 한국에서는 맹위를 떨치지 못할 거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대유행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김치가 신종플루의 천적?… 국내 환자 29명중 한국인 6명뿐"이라는 기사는 역시 조선일보 식의 기사였던 것인가? 신종플루와 김치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동시에 집어넣으니 이와 비슷한 기사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블로그의 "신종플루 걸려서 죽고싶지 않다구!"라는 글을 읽어보니, 신종풀루를 예방하는 길은 손씻기만한 것이 없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손이나 씻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손이나 씻자!

 

 

2009년 3월 7일 토요일

경계 긋기의 어려움

고종석 기자의 새 책 <경게 긋기의 어려움>에 대해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조금 섬세한 서평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20대 지식인 김현진, 노정태, 최익구, 한윤형 등은 어떤 이들일까? 나는 이들 20대 지식인들의 글을 접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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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진화한 결과"

[화제의 책] 고종석의 <경계 긋기의 어려움>

기사입력 2009-03-07 오전 9:11:48

 

▲ <경계 긋기의 어려움>(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프레시안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 때, 그 수다가 삼성재벌의 탈법적 망동을 꾸짖는 것이라면, 그런데 친구와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이 삼성 제품이라면,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 자랑스러운, 그러나 최근 위협받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면서 나는 이(利)와 의(義)의 경계가 어딘지도 때때로 잘 모르겠다."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 고종석이 최근 수년간 쓴 칼럼을 묶어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펴냈다. 그는 2006년 칼럼을 묶은 또 다른 책에서 일찌감치 대통령 노무현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한때 그에게 열광했던 자신의 "미욱함"을 반성했었다. (☞관련 기사 :
한 지식인의 고백, "나는 잠시 무엇에 홀렸었다") 그리고 3년, 대통령이 이명박으로 바뀌었다.

한때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놓고 격하게 대립했던 이들이 한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몰아세울 때, 고종석은 한 걸음 물러서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물론 그가 이명박 정부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보기에 이 정부는 "(총으로 집권한 5공과 비교할 순 없지만) 노태우 정권까지 포함한 6공의 다섯 정권 가운데 가장 무엄하고 미련한 정권이다."

그러나 고종석은 우군과 적군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살이가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에게 경계가 또렷해 보이는 것은 현실이 그래서가 아니라 홍세화의 말대로 "사람이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찰할수록 경계는 또렷해지기보다는 더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모호한 경계선의 기록이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

"(전직 대통령 아들 C씨가 커다란 책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머리가 어찔했다. 얼마 되지 않는 내 독자들의 일부는 내가 그리도 관련되지 않고 싶어하는 특정 자본을 통해 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신문에 내 책을 보내지 않고 그 신문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내 '자기만족적' 실천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삼성의 기업 윤리는 조선일보보다 나은가?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삼성은 조선일보보다 더 너그러운가? 그럴 거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성 제품을 기꺼이 사서 쓰는 내가 조선일보를 지네 보듯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한쪽은 그저 물질을 팔고 다른 쪽은 거기 사악한 정신을 끼워 파니 둘을 나란히 놓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고종석은 이처럼 "윤리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한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사가 얽힌 실제 삶에서 경계 긋기는 얼마나 힘든가? 그는 "이념이나 윤리를 기준"으로 경계를 긋고도 곧바로 생기는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이렇게 토로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어떤 경계를 그어놓고 보면, 이내 (사적으로 알고 있는) 딱하다 싶을 만큼 매력 없는 어떤 한겨레 기자들과 (역시 사적으로 알고 있는) 넉넉히 매력적인 어떤 조선일보 기자들이 떠올라 마음이 스산해진다. 그 매력은 재능만이 아니라 됨됨이(예의나 겸손이나 너그러움이나 신의 같은 미덕으로 이뤄지는 개인 윤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고종석은 곧바로 스스로를 다잡듯이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그러나 왠지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좋고 싫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호오가 윤리의 논리를, 또는 논리의 윤리를 완전히 동강내서는" 안 된다고. "한나라당이 형편없는 정당"이라는 것은 "그 당의 어떤 당원이나 어떤 지지자가 괜찮은 사람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조선일보가 형편없는 신문"이라는 것도 "그 신문의 어떤 기자가 괜찮은 사람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치열한 반성에 기반을 둔 경계 긋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렇게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고종석의 글이야말로 '치열한 반성에 기반을 둔 경계 긋기'의 한 보기이다. 그의 경계 긋기는 천박한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철저한 윤리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퇴임하는 대통령 노무현을 놓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섯 해 전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한국 유권자들 마음속에선 윤리적 욕망이 파닥거렸다. 지난해 말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그들 마음속에 윤리적 욕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큰 것이 자신의 행태였음을 노무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윤리 대통령 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다섯 해 동안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결정에 윤리가 끼어드는 걸 꺼릴 것이다. (…)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물론 고종석은 일부 언론의 반노(反盧) 선동을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고종석의 경계 짓기는 공사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한때 역시 대통령 노무현에 열광했던 김진석을 이렇게 평한다. 최근 김진석은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개념을 내놓아 일부 지식인을 홀렸다. (고종석의 책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김진석과 그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을.)

"나는 그의 '기우뚱한 균형'을, 저자의 자기정향(自己定向)과 달리,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균형'으로 여긴다. 중도우파를 자처하는 내가 보기에도, 시장사회나 전쟁에 대한 그의 관점이 사뭇 유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참여지식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이 책의 두드러진 미덕이다."

절망의 시대, 희망을 말하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에서 고종석은 자주 한 세대 터울의 20대 지식인을 언급한다. 김현진, 노정태, 최익구, 한윤형 등이 그들이다. 그는 "나이 차가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질투심 때문에 이들의 글을 읽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농하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고종석은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면서,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한다. 그의 고백대로 "경계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의 길을 더듬거리면서도, 청년 편에 서려 애쓴" 탓일까? "해묵은 비관주의"를 들먹이는 것과 달리 이 책의 전체적인 기조는 비관보다는 낙관이다. 모두가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 책은 반갑다.

/강양구 기자

 

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05165016&section=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