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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5일 목요일

어느 사제의 질문

 

전종훈 신부님을 인터뷰한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의 글을 옮겨놓습니다. 김병기 기자가 전하는 전종훈 신부님의 질문. 이 질문은 오늘 아침 저를 아주 고통스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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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는 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의 활기는 잃었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여느 때처럼 단호했다.

 

22일 저녁 8시 30분경. 기자가 용산 참사 현장에 도착하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막 끝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유가족과 수녀, 시민들이 앉아있다. 어림잡아 250여 명은 됨직하다. 수녀들만 100여 명. 이들은 '길거리 미사'를 마친 뒤에도 영상을 보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건물의 난간 밑 어둠 속에서 검은 수도복을 입고 서 있는 전종훈 신부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손에는 작은 물병을 들고 있다. 인사를 하자 그는 힘없이 기자의 손을 잡으면서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괴감, 죄책감, 무력감...

 

그의 손을 이끌고 유리창도 없는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남일당 건물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용산참사에서 사망한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호프집이었다. 우리는 그곳 1층 로비에 쌓여 있는 허름한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초 인터뷰를 전제로 한 만남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는 자연스레 수첩을 꺼내 들었고, 그는 "인터뷰하는거요?"라고 물은 뒤에 말을 이어갔다.

 

"너무 억울한 죽음인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직자로서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죄책감, 이런 불의한 정권에 맞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지난 1주일 동안 이곳에서 그냥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잦아든 것은 1주일간의 단식 탓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해 지리산 하악단에서 출발해 계룡산 중악단, 그리고 올해 계룡산에서 출발해 임진각까지 천릿길을 오체투지로 기어서 온 그가 며칠 동안 정리 시간을 가진 뒤 제일 먼저 달려온 곳은 용산이었다. 사실 그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과 함께 당초 목표했던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이어가려고 했다

 

"오체투지로 묘향산 상악단까지 오르려고 했습니다. 북측에서는 오체투지순례단에게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신변보호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걸어 불허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옹색합니다. '신변안전'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초청장을 보낸 것은 신변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거든요. 결국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막고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표현이지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는 그에게 '우문'을 던졌다. 왜 용산에 왔는지? 그는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너는 왜 살어?'라는 질문과 비슷하네요"라고 말한 뒤에 그 배경을 설명했다. 

 

"강원도 영월에서 올해 사제단 총회를 하던 날 용산 소식을 접했습니다. 믿기지 않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총회를 중단하고 달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어쨌든 총회를 마치고 사제단은 현장에 왔습니다. 너무 엄청난 일이어서 해결의 가닥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유족들조차 어느 순간 폭도와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있더라고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용산은 '총성 없는 전쟁터'

 

하지만 전 신부는 자벌레처럼 기어서 오체투지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문정현 신부가 '나는 용산을 지킬 테니, 당신은 오체투지를 계속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체투지 순례단의 머릿속에서 용산은 떠나질 않았습니다. 5월 18일 남태령을 넘으면서부터는 용산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아주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용산에서 108배를 하고 임진각까지 가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정권이 이렇듯 국민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힘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결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15일 비상시국총회를 연 뒤에 "이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이 있는 곳인 용산"으로 와서 시국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언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사제단의 본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제는 사람과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말로만이 아니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매정하게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내몰고 있는 이 정권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단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주일간 용산참사 현장에서 단식하면서 유가족들과 함께한 시간.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우선 그는 "이곳은 매일매일 총성 없는 전쟁터"라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감시하는 경찰과 감시받는 유족들과 유족들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대치와 몸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경찰의 불법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이곳 용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 용산이 아수라장이 된 것은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사복경찰이 사진채증하다가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순간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복경찰을 빼가려고 하면서 심한 몸싸움을 벌였죠. 협상 차원에서 경찰서장을 만났는데, '이곳은 다 불법 지역이다. 모든 일이 다 불법이다. 따라서 경찰이 공무집행 중에 지켜야 할 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정당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경찰과 부딪쳐서 온몸에 피멍이 들어도 폭력행사이고, 경찰이 부딪쳐서 상처를 입으면 공무집행 방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장한테 '지금 불법 단식을 하고 있는 나를 잡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잡아가지는 않더라고요."

 

 

용산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울부짖는 전종훈

 

 

지난 20일에는 유가족들이 들고 있는 영정을 경찰이 훼손하는 바람에 도로점거 상황이 벌어졌고 2시간이 넘게 대치하는 과정에서 전 신부는 탈진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날 밤 늦게 기자는 전 신부의 곁을 지키던 한 신부를 수소문해서 전 신부의 상태를 물었다. 그 신부에게서 이런 답변이 되돌아왔다.

 

"전 신부님은 의식을 되찾자마자 용산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막고 있지만 막무가내입니다."

 

하지만 전 신부는 이틀 동안 병원에서 머문 뒤 다시 용산으로 되돌아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여기서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여기가 우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고 "이 시대 용산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출발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용산참사는 현 정부의 원죄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순간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의 이런 확신은 어디서 연유하는지 궁금했다.

 

"국민들이 정권을 맡기는 첫째 이유는 국민들의 생명보호입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약자 중의 약자인 세입자들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학살했습니다. 또 권력은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을 억압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부는 정권을 자신들의 한풀이를 위해 사유화하고 있습니다. '빼앗긴 10년'을 이야기하면서 한풀이를 하는 데, 그 기간동안의 정권은 국민이 위임한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의 국민들이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기반은 자본입니다. 재벌과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10%. 못 가진 9명은 안중에도 없고, 1명을 우대하면서 나머지에게는 시혜만 베풀면 된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이런 정권의 본질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 신부의 논리대로라면 이 정권 역시 국민이 위임한 정권이다.

 

"국민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본이라는 맘몬(물욕의 신)에 모두 미혹당한 것입니다. 경제지상주의에 잠시 마취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경제CEO 출신의 대통령에 대한 서민들의 소박한 기대감, 즉 국민들이 선택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선택을 무심한 정권의 처사가 괘씸한 것입니다."

 

전 신부는 "국민의 70% 이상이 이를 자각하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경찰과 검찰 등 모든 공권력을 다 동원해 폭압적으로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표현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50여일이 넘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하는 정권, 이건 인륜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부는 대화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전 신부는 "국가를 원래 위치로 되돌려놓으려면 사과와 진실규명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막가파식 재개발 정책을 멈추고, 우리 시대 약자들은 배려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공기라고요? 공기가 혼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 신부에게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언론의 역할은 무언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이 시대에 제대로 된 언론이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순간 뜨끔했다.  

 

"시대정신이 없는 언론은 언론이 아닙니다. 총보다 펜이 무섭다고 하는 데 총이 더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펜이 더 크게 권력을 행사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세상입니다. 언론이 아니라 자본에 예속된 경영이라고 할 수 있죠.

 

또 언론은 공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이익 수단으로 언론을 활용하다 보니까 공기가 혼탁해졌어요. 용산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후퇴 문제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의 권력과 같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고 타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신부와의 인터뷰는 밤 11시 넘어서 끝났다. 그는 곧바로 남일당 앞에 환히 불을 밝힌 농성천막으로 들어갔고, 기자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렸다. 전 신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2009년 3월 6일 금요일

기도--오체투지

오전 시간 어떤 회의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사무처로 돌아오니 여러 가지 우편물 가운데 수경 스님(삼각산 화계사/ 불경환경연대)께서 보내주신 오체투지 발원문을 사진집으로 만든 작은 책자가 있었습니다.

 

이 책자에는 짧지만 간절한 글이 두 꼭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체투지', 또 하나는 '만사가 기도여야 합니다'입니다. '만사가 기도여야 합니다'를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어서 잠시 짬을 내어 타자를 쳐서 옮겨놓습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 지관 스님 등이 3월 28일(토요일) 공주 신원사 중악단을 출발하여 6월 15일 묘향산 상악에서 회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봄 오체투지 순례단이 이 땅의 바닥을 다시 입맞춤하려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서 이 오체투지 순례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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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가 '기도'여야 합니다

 

수경 스님

 

도반 여러분!

 

지난 몇년간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한반도 대운한 논란 속에서 정권이 바뀌었고, 광우병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한국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인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소통거부로 인해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저는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한 순례를 나섰고, 촛불 이후에는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로 이 땅의 품에 안기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창한 명분이나 목표가 아니라,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살피는 일이 절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땅이 저에게 들려주고 일깨워 준 바가 적지 않습니다. 해서 그것에 대한 소회를 조금 밝혀 보고자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곳을 이를 때 '땅바닥'이라는 말을 가져다 씁니다.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느니 하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땅바닥을 기어 보니 생명과 세계의실상이 뚜렷해지더군요. 범과 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고, 유정과 무정의 경계 또한 본래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렁이'와 '사람'이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을 해 왔지만 사실은 이성적 사리 분별의 소산이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지렁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나와 지렁이의 경계는 무의미했습니다. 땅바닥이라는 무정이 일체 유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정물'에도 불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돌멩이 하나에도 불성이 깃들어 있다' 하셨습니다. 생명 없는 것들에서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통찰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아주 평범하고 쉬운 가르침입니다. 화두 타파하듯이 깨쳐 알아야 할 일도 아니고, 선방에서 몇 안거를 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보십시오. 엄동에 우리는 지켜주는 것은 차디찬 콘크리트 더미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어떤 난방 시설도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 없는 것이 생명을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 아닌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실상입니다. '주'와 '객'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뜻대로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것이나 마음대로 파헤쳐도 좋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산과 강을 멋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땅을 기면서 나는, 한 생명체로서 나의 생각과 행위가 '기도'로 귀결돼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기도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 배운 바를 지켜나가는 길이자 자신의 행위를 생명의 실상에 계합시키는 일입니다. 불자라면 모름지기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기도가 되게 해야 합니다. 사회적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것도, 자연을 보살피고 지켜나가는 것도 기도입니다. 생명의 실상에 비추어 왜곡된 현상을 원상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반 여러분.

환경운동의 말석에서 작으나마 구실을 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소리가 '인간중심주의'입니다.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옳은 말입니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 그 자체가 문제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더 큰 문제는 죽는 날까지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환경운동을 포함한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 좀 더 인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역설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인간을 둘러싼 1차적인 환경은 인간입니다. 당장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십시오. 이승만 정부에서 현재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집권 세력의 성격에 따라서 삶의 환경은 달랐습니다. 심각한 왜곡이 거듭됐고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면 대중이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대중의 저항과 희생으로 이 정도로나마 세상을 지켜온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질서'를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 지향해야 할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불교의 모든 사회적 실천은 '기도'여야 한고 '신행'이어야 합니다. 삶과 믿음이 분리될 수 없듯이, 불교의 사회적 실천과 신행은 불리될 수 없습니다. 육바라밀이어야 하고, 팔정도여야 합니다. 사람살이를 생명의 질서에 계합시키는 일이어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물을 아껴 쓴다고 할 때, 그것은 나보다 더 물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보시'일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내 멋대로 하지 않는 것이 '인욕'이고 한반도대운하 같은 거대한 파괴의 구상을 묵과하지 않은 것은 '지계'입니다. 함부로 허물지 않는 것이 '정진'이고, 자연과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진정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선정'입니다. 당장 편하자고 미래의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개인 차원의 신행이든 사회적 실천이든 불자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행위는 기도여야 하고 귀의여야 합니다. 제불보살을 염하는 일이고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다짐이어야 합니다.

 

미국의 금융파탄으로 야기된 세계경제의 위기가 우리의 실물 경제에도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기 위한 외투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기득권층과 집권 세력은 경기회복을 구실로 무분별한 대형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듯이 개발 이득은 '빈부 양극화'의 간격을 더 벌려 놓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거리에 넘치는 노숙자들을 못 본 척 하는 것으로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볼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나눔'이라는 말도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모자랍니다. '같이 쓴다'는 태도가 자비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건대 불자로서 모든 행위는 수행과 기도, 귀의와 염불이어야 합니다. 현실의 모순을 바로잡고, 인간관계의 건강성을 회복시키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보살행이어야 합니다.

 

다시 오체투지의 길을 떠나면서

화계사 주지 수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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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수 마르코 입력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