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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교육과 관련된 논평 2가지

오늘 아침 논평 2개가 눈에 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에서 내놓은 것이다. 하나는 헌법재판소가 2009년 10월 29일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조례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공정택 서울특별시교육감이 교육감직을 상실한 데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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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헌법재판소의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조례”

합헌 결정을 환영한다.

 

헌법재판소는 오늘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금지한 서울시와 부산시 조례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 재판소의 결정을 적극 환영하는 바이다.

 

우리회는 지난 7월 7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밤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법”을 즉각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였다. 밤 10시 이후까지도 학원을 전전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한 심신 발달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번 결정은 우리 아이들과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의 절절한 요구를 헌법재판소가 올바르게 수용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실질적인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후속적인 보완이 이루어져야한다.

 

첫째, 밤 10시 이후 심야학원교습금지를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

현재는 시도별 조례를 적용하기 때문에 시도별 제한 시간이 달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으로 제정하여 전국적인 기준선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소액 과외 교습까지도 법 적용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학교에서의 밤10시 이후 심야 보충학습 및 야간자율학습을 금지해야 한다.

 

우리회는 ‘밤 10시 이후 심야 교습을 금지하는 법 제정’에 찬성하는 모든 단체들과 연대하여 더욱 힘차게 법제정 촉구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2009년 10월 29일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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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택 교육감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한 논평]

 

공정택 교육감이 추진했던 교육정책도 무효다.

 

대법원은 29일 상고심에서 공정택 교육감에게 당선 무효 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 했다.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로 공정택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그동안 1심에서 당선 무효 형을 선고받고도 그 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종심의 판결까지 가서 서울교육의 공백을 초래 했다. 비리 부패 교육감의 오명을 쓰면서 학생의 교육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직에만 연연해하는 모습만 보였다.

 

공 교육감은 MB 교육정책의 전도사로서 우리교육을 거꾸로 돌리는 잘못된 정책을 펼쳤다. 영어 몰입교육, 국제중 설립, 일제고사 부활, 고교 학교 선택제 도입, 자율형 사립고 설립추진, 등 경쟁만능 교육정책을 소통마저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로 인해 학생들은 무한경쟁으로 내몰려 고통당하고, 학부모들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고통당했다.

 

서울시 교육감 직은 내년 6월 교육감 선거가 끝날 때까지 현 김경회 부교육감이 대행한다.

 

공 교육감의 당선 무효가 결정됨과 동시에 공정택 교육감이 추진했던 교육정책도 무효이며, 김경회 부교육감은 공 교육감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잘못된 교육정책을 중단하여야 한다.

 

남은 8개월 동안만이라도 그동안 잘못된 경쟁교육으로 학생 학부모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교육정책으로 선회하여 더 이상 차별과 경쟁으로 공교육 현장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기 바란다.

2009년 10월 29일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2009년 4월 23일 목요일

`책으로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된다`

"책으로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된다."

 

오늘 내 눈에 띤 한마디다. 이 말은 2009년 4월 23일자 경남일보에 실린, 경남도교육위원이자 경남일보 객원논설위원인 박종훈 씨의 칼럼 제목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독서인증제'와 관련된 논란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나도 독서인증제 반대 논의를 펼쳤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책읽기를 '강제'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생각은 무척 단순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좋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무척 속편한 입장이다. 그런데 당시 많은 이들이 이런 주장을 펴는 것에 나는 놀랐다. 특히 교육부나 교육청 관계자 분들께서는 '교육'이란 '강제적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는 데 더욱 놀랐다. 교육철학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독서인증제란 철저하게 기능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서는 안된다. 또한 '어떻게 해서라도'라는 방법이 갖고 있는 무자비함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독서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분들의 이구동성을 요약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주고,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이상의 독서지도는 없다고 말한다. 계기적으로 적절하게 선생님들이 조금씩 조금씩 정말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이들이 책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 오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세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독서인증제는 '책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이 길어졌다. '일제고사'가 여전히 우리 교육현실의 문제일 터인데--일전에 경기도의 한 학교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교장 선생님의 표현을 옮기면, 일제고사는 학교 현장에 터진 핵폭탄이다-- 나는 일제고사(一齊考査)라는 말 자체가 싫다. '일제'란 곡식을 거두고 가지런하게 한다는 말인다. 이런 말을 하면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창의력과 표현력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창의력과 표현력은 불쑥불쑥 나오는 것이다. 가지런해지지 않는 것이다. '고사'란 말은 쓸 만한 재목이 될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쓸 데 없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제고사는 전혀 이 시대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일제고사니 인증이니 하는 따위의 말부터 걷어치워야 한다.

 

 

 

아래는 박종훈 위원의 칼럼이다.

원문출처: http://www.gnnews.co.kr/?section=KNJI&flag=detail&code=21545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사진: 박형숙,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78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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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된다

박종훈(객원논설위원, 경남도교육위원)

 

최근 경남도교육청이 학생들의 창의력 및 표현력 교육을 강화하고, 종합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기 위하여, 교육감 지시 사항으로 도내 전체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이른바 ‘독서인증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 경남은 지난해 전국 학교 도서관 평가에서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전체 15개 중 반 이상의 상을 휩쓴 곳이다. 반면 통계 수치를 보면 경남은 전국의 평균을 밑돈다. 이런 여건에서 이렇게 상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학교와 교사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육청에서 시행하려는 이 사업은 도내 60만 명 학생들의 독서 과정과 그 문화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2003년 이후 학교 도서관관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학생 독서 지도는, 사서 교사를 비롯한 관심 있는 교사들과 함께 전문가 그룹인 지역의 교수들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진행해 온 사업이다. 누구도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 전문가 그룹의 사회적 합의였다. 그런데 독서인증제의 일방적 강행으로 해서 지금까지의 전문가들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다고 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독서인증제 시행은 일단 유보되어야
 
독서를 강제로 유도하면 책읽기의 자발성을 없애고, 학생으로 하여금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독서 활동을 학교 성적이나 진학 성적에 반영하는 것은 책읽기를 강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치가 된다. 독서란 감성과 지성의 통합 작용으로서 독자 개개인의 차이와 경험에 따라 다양한 소화 과정을 거치는 자율적 활동이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즐거움을 느낀다.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동원되는 독서 기록장, 독후 감상문, 이번에 동원되는 독서 인증제 등은 책읽기의 목적이나 독서 내용의 충실도보다 외형적 결과에 더 집착하는 제도이다. 얼마나 많은 학교가, 얼마나 많은 학생이, 얼마나 많은 독서량과 같은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결국 외형적 실적위주의 독서 교육의 폐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학교가 추천 도서를 자체적으로 선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학교는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교육청이나 다른 기관의 추천 도서 목록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상업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도교육청이 필독 도서 10권을 선정하라는 공문은 아이들의 무한한 창의력과 사고력을 책 열권에 가두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획일화된 도서 선정은 출판 문화의 왜곡과 기형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고사 성적 조작 사태를 우리는 지켜보았다. 충분히 예견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미 인근 지역에서 시행된 독서인증제의 부작용으로 기록 부풀리기가 예상되고 있고, 이는 학생들에게 목적을 위해서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또 하나의 거짓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백보 양보해 그 순기능을 인정한다손 쳐도 그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그 시행이 유보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독서 과정이나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은 일이고 이는 칭찬할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측정이 학생들의 독서 과정이나 결과를 왜곡시킨다면 이는 아니함만 못하다.

 
입학 사정관 제도가 앞으로 도입되고, 독서 이력철이 그 사정의 중요한 요소가 될 때를 대비할 필요는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한 그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준비 없이 이 사업이 어설프게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단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게 하고 이를 권장할 수는 있어도, 그 실적을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하는 지금의 교육청의 입장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이다.

 
 
의견 맞서는 부분 설득·합의 이끌어야

 
교육청은 이 사업이 지니는 순기능과 불가피성을 투명하게 펼쳐 놓고, 전문가 그룹은 이 사업이 지니는 문제점과 역기능을 내놓고서는 모두가 모여서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 의견이 맞서는 부분에서는 상대를 설득하고, 필요하면 타협도 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Write : 2009-04-23 09:30:00   |   Update : 2009-04-23 09:30:00


2009년 3월 28일 토요일

일제히 창의적이 되자?

민들레가 10주년이 되어 오는 3월 14일, 상암동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를 모시고 10주년 잔치 한마당을 한다고 알려왔다. 현병호 선생이나 김경옥 선생이 보고 싶다. 자신의 이야기는 느리게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온전히 마음 깊이 새겨듣는 분들이다.

 

벌써 10년이 되었다. 민들레의 누리집(http://www.mindle.org/)에 오랜 만에 들어갔다 왔다. 현병호 선생의 칼럼을 읽는다. '일제히 창의적이 되자?'라는 제목의 글이다.

 

"스스로 서서 스스로 살리는 교육"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가려고 애쓰시는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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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정상화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이 이제 애들을 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같은 시간에 전국의 같은 학년이 같은 문제로 일제히 보는 일제고사. 꽤나 유서 깊은 물건인데, 역시 너무 낡았던지 그 ‘일제히’에 그만 구멍이 났다. 서울 지역의 초등학생 가운데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 떠난 아이들이 160명에 이르고, 중학생은 150여 명이 거부했다.

수백만 명 중 불과 삼백여 명만이 시험을 거부했지만, 실제로 사보타지 수준의 거부를 한 아이들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 초등 아이들의 경우 시험이 뭔지도 모르고 본 아이들이 허다하고, 중학생들의 경우도 상위권 아이들-학급에서 10등까지-말고는 진지하게 시험을 본 아이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답안지에 자를 대고서 같은 번호에 죽죽 선을 긋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중위권 아이들의 경우도 아는 문제만 풀고 모르는 문제는 애써 찍지도 않고 대충 답안지를 메우고 남는 시간은 엎드려 잔다고 한다. 내신에 반영되지도 않는 시험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단막극으로 끝날 듯하던 이 사건이 최근 2막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1막 ‘일제고사 거부’가 끝나고서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오른 2막의 주제는 ‘교사 징계’다. 1막으로 끝내기엔 뭔가 찜찜했던가 보다. 2막은 주인공도 바뀌고 연출자도 바뀌었다. 1막이 주연-아이들, 연출-학부모였다면, 2막은 연출-서울시교육청, 주연-교사로 막이 올랐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 가는 것을 허락했다는 죄목(?)으로 7명의 교사를 해임 또는 파면한 것이다.

2막은 1막보다 더 드라마틱하다.(역시 서울시교육청의 연출력은 학부모들보다 뛰어나다.) 시교육청은 교사들이 징계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도록 해당 학교에 해임통보서를 징계 당일 반드시 전달하도록 주문해서, 어떤 교사는 밤 9시에 해임통보를 전달받기도 했다. 아마도 이튿날 시끄러워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연출자의 치밀한 계산이었던가 보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튿날 모두 출근해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서 눈물을 훔치며 교문을 나오고, 아이들과 부모, 동료들은 해임 결정이 부당하다고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일제고사 부활은 명목상으로 학습부진아를 찾아 지원하고 전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더라도 학습부진아는 담임교사가 파악하고 있기 마련이다. 날마다 만나는 아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건 교사의 능력 부족이니 교사 교육을 강화할 일이다. 사실상 일제고사는 아이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교사를 해임한 것은 바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공무원’ 주제에 국가 시책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성추행을 한 교사는 감봉 3개월 처분을 한 전례에 비춰 보건대, 범죄에 대한 교육청의 ‘교육적’ 관점이 새삼 궁금해진다.)

해임의 이유로 명령 불복종을 명시한 것은 그나마 정직한 처사였다. 사실 아이들을 잡으려면 먼저 교사를 잡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눈엣가시 같던 전교조를 길들이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 역사교과서를 입맛대로 수정하듯이 교사들을 입맛대로 길들이지 않고는 체제 유지 또는 개편이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깨닫게 되리라. 밥줄이 걸려 있는 교사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아마도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시험을 거부할 수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을 게다. 일제고사라면 누구나 가슴 졸이면서 고개 처박고 한 문제라도 더 맞추려 애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아는 ‘교육자’들은 비록 몇 백 명일지라도 일제고사를 일제히 거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험치기를 장난치듯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마도 어르신들은 또 대책을 강구하실 게다.

시험 성적이 내신에 반영되도록 하면 아이들이 시험을 제대로 볼까? 그럼 학력도 따라서 높아질까? 수십 억 예산을 들여 이런 시험을 치르는 교육당국의 교육관을 탓하기 이전에 현실파악 능력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험지 몇 장으로 아이들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들을 잡으면 학교가 ‘정상화’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학력도 따라서 높아질까? 그들이 말하는 학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시험 잘 보는 능력을 뜻하지는 않을 게다. 21세기 교육의 으뜸 목표로 창의성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세상 돌아가는 걸 아주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제고사가 과연 창의력을 길러줄까?

‘일제히’와 ‘창의적으로’가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걸 모른다면 그 ‘무개념’에 경의를 표할 일이지만, 아마도 모르지 않을 게다. 그럼에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허둥대는 것은 말하자면 정신분열 상태에 놓여 있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잘 먹고 잘 살려면 경쟁력은 있어야겠고, 그러자면 이제는 창의적이어야 하겠는데, 말도 예전처럼 고분고분 잘 들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참 어려운 인재다. 이런 인재를 기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르신들의 건강이 염려스럽고, 그들의 노고가 인재(人才) 아닌 인재(人災)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까봐 더 염려스럽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2009년 1월 9일 금요일

메모-함석헌의 참교육론

 

'교(敎)’라 하지만 가르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구(求)’가 되어야 한다.

인생이란……건지는 데까지 가야 참 교육이다.


‘육(育)’이라 하지만 그저 키우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이다.

‘제(濟)’가 되어야 한다. 건너주는 것이 되어야 참 키움이다.

……인생은 무목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바칠 데가 있어야 키우는 것이다.


‘학(學)’이라 하지만 그저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信)’에까지 가야 한다.

학은 글자가 말하는 대로 모방이다.……신, 믿는 것은 하나가 되는 일이다.


‘습(習)’이라 하지만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애(愛)’에까지 가야 한다.……, 배워가지고 늘 익히면 즐겁지 않느냐 했지만, 즐거우려면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새 교육”,『함석헌전집 2권』)

 

 


*그림출처: http://zzalimg.idoo.net/297-080707230739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