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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아, 신부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h730818/15536628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며 11일째 단식농성을 해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님(65)이 오늘 새벽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의식불명 상태이나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언론매체는 전하고 있다. 부디 일어나시기를.

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신문매체의 생존과 부동산시장

  *그림출처: http://europa.eu/

 

선대인 씨의 블로그에서 옮겨온다.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신문매체의 매출액 급감과 이들 신문매체들이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기사를 싣게 되는 메카니즘을 분석한 내용의 일부이다. 요약하자면, 신문의 유료 구독부수가 기하학적으로 급감하는 상황 속에서 "언론들이 자신들의 광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부동산시장의 실제와는 다른 조작된 보도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은 조중동의 실제적인 유료 구독부수를 추정하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미디어법'에 목을 매단 형국이 된 것이리라.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젊은 세대의 '문자이탈' '신문이탈'이 더욱 가속화할 터인데, 조중동뿐만 아니라 모든 종이매체의 생존은 경각에 달려 있는 듯싶다.

 

아래 글을 요약하면, 조중동의 유료 구독부수(기업과 관공서의 단체구독부수 약 20만부 제외)는 조선일보는 21만부에서 최대 54만부, 중앙일보는 15만부에서 최대 44만부 정도, 동아일보는 5만부에서 최대 24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21만-15만-5만에서 54만-44만-24만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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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매출액은 2002 4,174억원을 정점으로 지난해에는 3,056억원으로 줄어 -1,118억원이나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의 매출액도 1,267억원(연환산 2,535억원)으로 연환산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521억원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는 지난해에 -213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또 올해 상반기에만 -25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지난해 한해 동안의 영업손실 규모를 상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397억원의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에도 상반기에만 -395억원의 대폭적인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연간 신문구독료18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유료 구독부수는 35.5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경품 8만원에 연간 신문구독료를 10만원으로 가정하더라도 유료 구독부수는 최대 64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기업과 관공서 등 단체구독 부수가 대략 20만부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개인이 돈을 내고 구독하는 유료 구독부수는 15만부에서 최대 44만부 정도에 불과한 상태로 보인다. 그야말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신문의 몰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조선일보의 매출액은 2002 4,817억원을 기록한 뒤 계속 감소하여 지난해 3,722억원으로 줄었다. 매출액이 6년 만에 -1,095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조선일보도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올 상반기 매출이 동일하게 감소했다고 가정하면 대략 연환산 3,087억원으로 전년대비 -635억원 감소한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작년에 18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와는 달리 작년에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조선일보의 유동성 및 비유동성 투자자산이 2,23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5% 이자만을 계산해도 이자수익만 110억원을 넘는다. 실제로 신문사업에서는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큰 폭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210억원 가량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간 구독료 18만원을 기준으로 유가 구독부수를 계산해보면 41만부 가량에 불과하다. 연간 구독료를 10만원으로 잡아도 74만부에 불과하다. 이중 기업과 관공서 등 단체구독 부수 20만부를 제외하면 개인 구독부수는 21만부에서 최대 54만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 역시 매출액은 2002 3,749억 원에서 지난해 2,659억원까지 줄었다. 6년만에 -1,090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올해에는 2,200억원에 그쳐 전년대비 -459억원의 매출 감소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8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올해에는 -48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문 연간구독료 18만원을 기준으로 보면 25만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연간구독료를 10만원으로 간주해도 44만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업과 관공서 등 단체구독을 제외하면 사실상 개인 유료구독자는 5만부에서 최대 24만부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아일보는 1999 7,648억원에 이르던 자산 규모가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해에는 4,156억원까지 급감했다. 자산 매각으로 매년 발생하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메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4년 동아일보가 소유하고 있던 여의도 문화센터 부지를 팔아 장부상으로는 약 469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계속될 경우 대규모 손실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자산매각으로 언제까지 매년 막대한 손실을 메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2009년 9월 26일 토요일

피츠버그, anti-G20

한겨레 신문조차 1면과 외교 면에 G-20 정상회의의 사진을 크게 걸어놓았다. (2009년 9월 26일자)

 

더구나 황준범 기자의 "한국 명실상부한 주도국으로"이라는 기사 꼭지에서는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는 한국이 세계경제 질서에서 확고한 위치를 인정받는 의미가 있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라고 전하며 대통령 직속 주요20개국 정상회의의 사공일 기획조정위원장의 기자 브리핑을 소개하고 있다. 전세계의 부의 약 80%가 이번에 모인 G20개국의 것이다. 미국, 영국, 서독,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중국, 유럽연합,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그리고 한국!

 

그런데 이들 G20이 해결 못하고 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세계의 빈곤문제, 전쟁,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 개발도상국의 채무문제 등등.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언론에서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 피츠버그의 데모 모습을 옮겨놓고 싶다.

 

우선 AP통신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피츠버그를 행진하며 G20정상회의를 반대했다(Thousands opposed to G-20 march through Pittsburgh)"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 기사에 따르면 'G20정상회의를 향한 민중의 행진(Peoples' March to the G-20)이라고 일컬어진 이 행진의 메시지는 지구적인 차원의 경제, 환경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한다. 동시에 반전 그룹과 아프리카의 부채 문제 등을 제기하거나 어린이노동문제를 제기하는 그룹도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일자리를 위한 자본과 환경을 깨끗이 하기 위한 자본을 원한다"고 이 시위를 조직한 피트 쉘이 말했다고 위 기사는 전한다.

 

이 시위의 주최자 측이 올려놓은 사진을 몇 가지 옮겨놓는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리터러시'라는 말에 대하여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은

 

1 the ability to read and write:
Far more resources are needed to improve adult literacy.

2 knowledge of a particular subject, or a particular type of knowledge:
Computer literacy is becoming as essential as the ability to drive a car.

 

http://dictionary.cambridge.org/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꿈에 대하여

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어느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서울에서 출발하여 파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꿈을 꾸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차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 꿈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몽상'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되지만,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를 몰고 북한만 통과할 수만 있다면 파리가 아니라 남아프리카 끝에 있는 희망봉까지도 갈 수 있다. 대륙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만 빼고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국적이라는 것을 지금처럼 '치사하게' 체크하지 않던 시대, 다시 말해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생각할 때 멀지 않은 과거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러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것뿐이다.

 

사계절 뚜렷하고 먹을 거 먹을 만큼 나오는 땅에 살고 있던 사람이 고단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무슨 큰 뜻을 품었거나 누군가의 엄한 명령을 받았거나.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열하를 거쳐 중국에 갔다 온 이나, 일본 땅을 밟았던 조선통신사의 동선이란 오늘의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인식의 지평이 지금 한반도의 남쪽에 살고 있는 이들처럼 '갇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차를 끌고 서울을 출발하여 파리까지 갔다오는 것, 나도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끌고 다니는 차는 2005년에 구입한 것인데, 출퇴근 때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출장을 많이 다니느라고 벌써 주행거리가 8만 킬로미터를 넘겼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많이 잡아도 1만 킬로미터니까 왕복 2만킬로미터, 주행거리만으로는 벌써 서울과 파리 사이를 네 번쯤 왕복한 셈이다. 왜 파리냐고 한다면, 별 이유는 없다. 대서양이 보이는, 유럽대륙의 어느 바닷가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을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혹은 정파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다.

 

아들 녀석의 꿈은 얼마 전까지 축구선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꿈이 탐정으로 바뀌었다. 왜 그럴까. 그런 궁금증이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옛날 우리가 자라던 때 대통령이니 과학자니 하는 거창한 꿈보다 그런 꿈 이야기가 나는 좋게 느껴진다. 탐정 다음에는 또 무엇이 꿈이 될까. 죽기 전에 아들 녀석하고 함께 차를 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김태언- 마을 스와라지

김태언 교수님.  2009년 6월 11일 저녁 김해 장유도서관 시청각실에서 김태언 교수님의 강의를 듣을 수 있는 기회가 우연찮게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 한번 뵈올 수 있었으면 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분이라서 그런지 제 마음에 잔잔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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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교수님이라 하면, 잘 모르실 분도 <녹색평론>을 펴내는 김종철 선생의 부인이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실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인제대학교 영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영미소설을 가르치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몇 권의 번역서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케스-매와 소년>(배리 하인즈) <농부와 산과의사>(미셀 오당), <아담을 기다리며>(마사 베크), 그리고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Village Swaraj>(마하트마 간디) 등과 같은 책을 번역한 분입니다.

 

 

인제대학교 인문학부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김해시가 후원하는 '2009 시민 인문학 강좌'의 첫번째 순서로 펼쳐지는 시민인문학 강좌의 첫번째 강좌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은 저로서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 연속 강좌는 매월 한 분의 인제대의 인문학 교수님들이 김해시의 여러 곳을 돌아가면서 각각 3강씩을 펼치는 일정입니다. 책읽는도시 김해의 정책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 '2009 시민인문학 강좌'에 참여하시는 교수님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김태언 교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6월 매주 목요일, 장유도서관

2. 이영식 교수,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 여행", 7월, 화정글샘도서관

3. 조용현 교수,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 9월 시청소회의실

4. 안종수 교수, "동양철학의 흐름" 10월, 칠암도서관

5. 이찬훈 교수, "불이사상으로 읽는 노자", 11월 진영한빛도서관

6. 강석중 교수, "조선시대의 한시" 12월 김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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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민 인문학 강좌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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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앉아 계신 분이 김태언 교수. 서 계신 분인 이찬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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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교수님은 "이런 식의 대중강좌는 태어나서 처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김태언 교수님은 에이포지 5장으로 정리한 문건을 청중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만, 문건에 없는 이야기도 섞어가면서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을 이야기 2꼭지. 간디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이 엄마는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사탕을 먹는 아이가 근심거리였습니다. 그 엄마가 아이와 함께 간디에게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간디는 며칠 있다가 다시 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며칠 뒤에 다시 찾아가니 너무나도 쉬운, 누구나 생각할 만한 간단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사탕을 먹지 말게 하라고. 옆에서 그 모습은 본 어떤 이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쉬운 답변을 하시는데 왜 며칠 있다가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까? 간디가 말했습니다. 사실 그 엄마와 아이가 찾아왔을 때 사실 내 입 속에도 사탕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답변을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사탕을 먹고 있는데,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어느 날 간디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타는데, 신고 있던 끌신(슬리퍼) 한짝이 벗겨졌습니다. 기차는 이미 출발을 한 뒤였습니다. 간디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끌신 한짝을 마저 벗어서 차창 밖으로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끌신을 던져버린 것입니까? 간디가 말했습니다. 먼저 잃어버린 끌신 한짝을 누군가 손에 넣는다면 한짝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닿질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한짝도 마저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절판이 되었다는 <힌두 스와라지>의 개정판을 올해 안에는 마무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시간은 한정 없이 흘러만 가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채찍질해 봅니다.

 

 

 

 

2009년 6월 8일 월요일

아름다운재단

2009년 5월 26일 오전 7시30분. 회의가 있어서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이 시간을 내기 어려워 아침 시간에 회의 시간이 잡혔습니다. 회의도 회의이지만, 아름다운재단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어서 저에게는 아주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https://www.beautifulfund.org/ssl.html)은  잘 알려져 있듯이, 그 동안 나눔문화의 확산을 위해 아주 값진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기부문화'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라는 것, 그 문화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중요한 목적 사업으로 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이 재단의 목적 사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올바른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 사업 전개
  2. 개인 및 단체의 지정기탁에 따른 공익기금 및 특정주제를 갖는 목적형 기금 조성
  3. 기업과 사회의 상생적 발전을 위한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 전개
  4.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발전과 소외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익사업 지원
  5. 기부문화 발전을 위한 정책적 연구 및 제도개선 사업 전개
  6. 기타 재단의 목적사업 달성에 필요한 사업

 

이 날 회의를 하면서 제가 배운 것 가운데 핵심은 "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을 배분하는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가장 근본적인 고통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변화와 함께 대안을 만들어낼 것인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 등등을 생각했습니다. 즉 공감을 바탕으로 가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지원사업이고 배분사업이라는 것입니다. 2000년 재단이 설립된 이후 기부기금이 벌써 100억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 똑딱이 카메라로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의 몇 가지 모습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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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5일 화요일

영근이 형

어린이날, 아침 신문에서 고 박영근 시인의 추모 기사를 읽다. 문득 밤에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부스스 푸시시 일어나 가까운 듯 먼 듯 형의 목소리를 듣는다. 찬수, 네 찬숩니다. 찬수, 네 찬숩니다. 그렇게 몇 번인가 이름을 부르고는 시 이야기, 끊나지 않는 시 이야기.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 이야기. 시는 말이야, 시는 말이야. 시는 거기까지야. 시는 거기까지일 거야. 그런데 거기는 어디야? 응 여기는 여기지 뭐.

 

또 언젠가는 환영이 형 집에서 전화를 하곤 했다. 야 찬수. 니가 남양주 산다고 내가 남양주까지 넘어왔는데, 넘어와라. 아 그러고 보니 환영이 형이랑 함께 보자고 한 약속이 꿀꺽 어느덧 몇 년째 약속 불이행이다. 영원히 불이행이다. 영근이 형. 술은 취했지만 세상에 취하지는 않는다. 다만 취한 척한 것일 뿐. 찬수, 뭐하냐. 형 전화 받고 있잖아. 나 안 취했다. 나는 취하지가 않아. 아니 취한 거예요, 그만 마시고 잠을 좀 자요. 잠이 안 와. 잠이. 나 안 취했다.

 

귀기 어린 시 몇 편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서가를 둘러보니 2002년 11월에 펴낸 <저 꽃이 불편하다>가 손이 잡힌다. 시집 곳곳에서 귀기 어린 목소리들이 가득하다. 내 안의 나를 불편해하는 시인의 괴로움. 죽음 너머를 나 몰래 보게 되는 접신의 읊조림. 모든 작품들에 잠복해 있는 그 목소리들. 그런데 오늘 밤 영근이 형의 전화 목소리가 듣고 싶다. 영근이 형.

 

 

북두

 

환한 대낮인데

어디선가 나도 모르는 곳에서

흐느끼는 내 울음소리를 듣는다

 

칼날 위에서조차

차마 나에게조차 할 수 없었던 말들

 

텅 빈 방 그 낯선 시간들 속에서

소스라쳐 깨어나 홀로 울고 있을

전화벨 소리를 듣는다

 

어떤 바람이 죽음을 감춘 낡은 집을 덮고

새들

북쪽 우러러 일제히 날아간 뒤

그 위로 떠오르리라

나 지쳐 돌아가 누울 곳

일곱별자리 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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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효숙, <행상길> 목판화, 박영근의 <취업 공고판 앞에서>의 표지로 쓰였던 것. '두렁'이라는 낙관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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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를 넘어 국민적 애창곡이 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시 저작자가 박영근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세요.”  오는 11일로 3주기를 맞는 노동시인 박영근(1958~2006·사진)의 부인인 성효숙씨는 4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호소했다. 현장에는 소설가 겸 문학평론가 김이구씨와 박영근 시선집 <솔아 푸른 솔아>(백무산·김선우 엮음)를 내는 강출판사의 대표인 문학평론가 정홍수씨가 동석했다. 1986~7년 연세대에 재학중이던 안치환씨가 만들어 불렀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1984년에 나온 박영근의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청사)에 수록된 <솔아 푸른 솔아-백제 6>과 <고향의 말 4>를 비롯한 시를 변형시켜 만든 가사에 안치환씨 자신이 곡을 붙인 노래다. 그러나 1989년 노찾사 2집 음반 첫곡으로 수록될 때 이 노래는 ‘노찾사’ 이름으로 발표되었을 뿐 작사·작곡자의 이름은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 1994년 안치환씨의 1+2집 음반이 나올 무렵부터 ‘안치환 작사 작곡’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1998년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도 ‘안치환 작사’로 등록되었다. 지난해 가을 동료 문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이 노래의 원저작자를 찾아 주자는 이야기가 나와 안치환씨 쪽에 전달되었고, 이에 대해 안씨는 공동 저작으로 하자는 제안을 해 왔으나 유족이 동의하지 않자 올 1월께 일방적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공동 저작자로 등록해 놓았다고 성효숙씨는 밝혔다. 한편 9일 오후 2~5시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과 ‘허물어진 삶터’에서는 박영근 3주기 추모 심포지엄과 공연이 열린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이성혁·유성호씨가 발표하며, 안현미·박철·신현수 시인 등의 시낭송과 노래패 꽃다지의 공연 등이 이어진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기사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3214.html

 

1958년 9월 3일 전북 부안군 산내면(현 변산면) 마포리 산기마을에서 부 박창기(朴昌基)와 모 이옥례(李玉禮)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남.

1964년(6세) 부안군 산내면 마포국민학교 입학.

1968년(10세)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열의로 국민학교 5학년 때 전북 익산으로 전학함. 익산시 평화동 셋째이모 집에 거주.

1974년(16세) 익산 남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고등학교에 입학, 전주에서 하숙생활 시작함. ‘홈룸’시간에 시국에 관한 발언으로 학교에서 요주의 인물이 됨.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고 고향 친구와 선배 집에서 김지하 고은 황석영 이호철 최일남의 작품과 『창작과비평』 『사상계』 등을 탐독함. 더이상 억압적인 학교생활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퇴. 문학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상경하여 이후 1년 동안 당시 교사로 근무하던 형 박정근의 집(성동구 능동)에서 생활함.

1975년(17세) 고등학생 문학써클 모임에 오봉록 등과 함께 참여하고, 전주 풍년문화원을 빌려 시화전 개최. 쏘비에뜨 혁명 등을 빗댄 창작시 때문에 경찰조사, 가택수색을 당함. 김지하의 『오적』을 소지한 혐의로 보안대에서 조사받음. 종로 보신주단을 빌려 개최한 시화전에 참여.

1976년(18세) 『학원』 4·5월호에 시 「눈 1」 「눈 2」가 입선작으로 수록.

1976~78년(18~20세) 종로에서 민청학련 관련인사 김기선을 만나 홍영표(이후 노동운동에 투신, 대우자동차에서 해고됨), 박형규(이후 하늘땅출판사 설립) 등과 함께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등을 읽으며 민주화운동에 관한 토론모임을 가짐.

1977~79년(19~21세) 양천구 신정동 뚝방촌에서 생활. 인천 동일방직 노동자들과 토론 등을 통해 교류. 종로 초동교회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며 교회 내 대학회지에 시와 문학비평문 등을 기고. 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해 민주화를 바라는 기독교 및 재야인사들의 모임에 참여함. 대학연합문학써클 ‘청청(靑靑)’에 참여해 시창작 활동을 하고, 시화전 등을 개최함.

1981년(23세) 군 제대 후 민중문화운동, 민중신학, 학생운동, 기독교계 관련인사 등 각계각층과 교류하며 신촌에서 쌀가게를 운영함. 동인지 『말과힘』을 발간. 『반시(反詩)』 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함. 1970~80년대 노동운동을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성효숙을 만남.

1982~83년(24~25세) 구로3공단 삼립빵공장 부근에 살면서 3공단 등지의 제본회사, 곤로회사 등에 취업. 권오광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계의 벗들과 교류함.

1983~85년(25~27세) 구로동과 철산리 산동네에서 생활하며 고(故) 조영관 시인 등을 만나고 노동운동가, 민중문화운동가 들과도 교류함. 노동자 생활이야기를 쓴 첫번째 산문집 『공장옥상에 올라』(풀빛 1983) 출간. 마포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미술동인 ‘두렁’을 비롯해 정희섭 김영철 김원호 등과 교류하면서 홍제동 성당, 성문밖교회 등에서 열린 각종 문화행사와 집회에 참여. 시국집회에서 현장시를 낭송하기도 함.

1984년(26세) 청계피복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동대문 근처에서 소모임을 가짐. 민중문화운동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국집회와 철야농성 등에 참여함. 신경림 임진택 정희성 김정환 이영진 하종오 등과 함께 민요연구회를 창립하고 창립간사로 일함. 첫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청사) 출간. 이해 12월부터 1987년까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회원으로 김정환 김사인 김남일 고(故) 채광석 등과 함께 활동함.

1985년(27세) 고(故) 김도연이 설립한 공동체출판사 편집위원으로 활동함. 노동문화패들과 함께 인천 5·3항쟁에 참여함. 이해 가을 근거지를 부평으로 옮긴 ‘두렁’의 성효숙과 함께 산곡동으로 이사함.

1986년(28세) 강형철 김형수 이산하 안수철 등과 함께 학습소모임을 가지고 활동함.

1987년(29세) 인천 보르네오가구 등에 생산직으로 취업. 유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관련 집회에 참여함. 두번째 시집 『대열』(풀빛) 출간.

1987~89년(29~31세) 민중문화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 ‘두렁’과 함께 박종철 열사에 대한 영상제작에 참여함.

1989~90년(31~32세)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에서 김정환 이용배 문승현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영화분과 일을 맡음. 하늘땅출판사 편집위원, 잡지 『예감』 편집위원으로 활동함.

1993년(35세) 부평 산곡동에서 부평4동으로 이사하여 2005년 11월까지 생활함. 세번째 시집 『김미순傳』(실천문학사) 출간.

1994년(36세) 노동과 현실에 투철한 문학정신을 평가받아 제12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함.

1995년(37세) 송성섭(풍물) 허용철(미술)과 함께 인천민예총 창립.

1997년(39세) 네번째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 출간.

1998년(40세) 12월 신현수 이경림 이세기 등과 함께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를 창립하고 2000년까지 부회장으로 일함.

1999~2002년(41~44세) ‘인천문화를 열어가는 시민모임’ 창립회원으로 최원식 박우섭 이남희 김창수 등과 함께 활동함. 인천민예총 사무국장으로 일하며(2000~2001), 강광 이종구 등과 함께 활동함.

2002년(44세) 다섯번째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창작과비평사) 출간, 이 시집으로 2003년 제5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함.

2002~2006년(44~48세) 인천민예총 부지회장(2002~2005),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2004~2005),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2002~2006) 역임. 산문집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학사 2004) 출간. 2004년 8월 몽골에서 진행된 ‘한·몽 시인대회’에 이시영 고형렬 김용락 한창훈 김형수 등과 함께 참가함. 2005년 11월 인천 용현동으로 이사함.

2006년(48세) 5월 11일 오후 8시 40분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타계.

 

약력 출처: 오도엽 시인의 블로그 http://blog.jinbo.net/odol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권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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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http://blog.naver.com/artline7?Redirect=Log&logNo=120062257728

 

 

펄럭이는 그대 - 권영국 선생을 보내며

도종환

 

그대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대가 있어서 우리가 한 시대를 덜 부끄럽게 살았습니다
우리의 맨 처음이고 맨 앞이던 그대
우리가 깃발을 들기 두려워하고 주저할 때면
스스로 깃발이 되어 맨 앞에서 펄럭이던 그대
우리가 한 발짝을 먼저 디디면
열 발짝 앞서 있어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던 그대
먼저 깨닫고 먼저 준비하고
먼저 고난 받던 그대
그대에게 우리는 갚지 못한 빚이 있습니다
그대의 낙천주의 옆에서 함께 웃음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그래서 늘 미안하였습니다
그대가 홀로 힘들어하며 미륵의 계곡을 오르거나
폐허의 서쪽으로 한없이 걸어가고 있는 걸 보았을 때도
그대를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어 마음 아팠습니다
오늘도 먼저 가는 그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어 미안합니다
그러나 대열 맨 앞에 서서 저지선을 향해 나아가다
곤봉에 머리를 맞아 낭자하던 선혈
그 흐르는 피를 싸매던 손수건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가 떠난 뒤에도 나는 이 세상에 남아
그대의 핏자국과 함께
피 흘리며 지켜낸 한 시대와 함께
그대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절망의 텃밭을 어떻게 희망으로 일구어 가는지 알려주고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왜 웃으며 일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지금 어렵게 시작하는 일이
나중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일깨워주고
열정이 우리를 생의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말해주며
서둘러 떠나는 그대
펄럭이는 펄럭이는 그대
그대의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시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4419.html

 

15일 새벽 지병인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권영국(52) 선생은 공주사범대 재학 시절 광주민중항쟁을 주도했다가 구속됐으며 1989년 5월 전교조 충북지부 초대 지부장을 맡아 해직되는 등 참교육을 뿌리내리는 데 힘써 ‘행동하는 교육자’로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동료 교사 등은 16일 저녁 7시 충주 장례식장에서 추모의 밤 행사를 열었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 (043)840-8492.

 

권복기 기자

권복기 기자는 한겨레 신문의 건강과 공동체 담당 기자다. 매주 화요일 16면 생활2.0에 우리나라 방방곡곡 건강과 공동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퍼올리는 이다. 한겨레 신문과 함께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할 때 내 짝꿍이 되었던 이다. 꽤 오래 전부터  NGO 활동가로 살면서 뭉쳐져 있는 간사들의 몸과 마음을 짧은 시간이나마 풀어주면 좋겠다고 권 기자가 말했었는데, 일전에 통화하면서 시간 약속을 잡아 월요일 간사회의 이후의 짧은 시간을 내어 권 기자의 체조법을 배우고 소중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 제목은 '권복기 기자의 몸과 마음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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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들이 '권복기 기자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반기는 글씨를 현관이 써붙였다. 사진: 안찬수


 

그이의 생각에 따르면 공동체보다 건강이라는 말이 더 크게 사람들을 감싼다고 한다. 몸이 병들고, 마음이 병든 것은 우리의 사람살이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 병을 치유를 해야 한다.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이 권 기자의 기사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문명사회에 찌들어가는 현대인들의 병이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인가를 탐구해보면, 그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다.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법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치유법이 된다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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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기 기자와 간사님들. 사진: 안찬수

 

권 기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음식, 건강, 숨, 잠, 마음"을 다스리려 함을 이야기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병이 나고, 낫는다고 말하였다. 여러 가지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사례나 면역학+신경학+심리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최근 서양 의학의 변화도 곁들이면서 마음의 건강이 몸의 건강에 직결된다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바쁘게 또 다른 취재처로 이동하기 위해 사무처를 나가면서, 권 기자가 간사들에게 한 마디. "미소를 지으세요! 미소를 지으면 얼굴 근육이 다 풀어져요. "

 

지난 해부터 권복기 기자가 주도하여 한겨레자연건강학교를 열고 있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좋다고 한다.  

 

권복기 기자의 건강한 세상 누리집: http://community.hani.co.kr/

권복기 기자의 자연건강학교 블로그: http://blog.hani.co.kr/health9988/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김명신 선생의 북유럽 교육 탐방기

얼마 전에 한겨레21의 권태선 논설위원이 쓴 북유럽의 교육에 대한 글을 이 블로그에 스크랩 한 적이 있었다. 북유럽 교육을 둘러본 이들의 답사기가 반갑다. 프레시안에는 김명신 선생(문화연대 공동대표)의 글이 또 다른 시리즈로 올라오고 있다. 프레시안에 연재되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칼럼 가운데 3꼭지를 옮겨놓는다. 김명신 선생은 지난번에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토론회에서 만나 뵌 적이 있다. 단아한 분이다. 이 글을 읽으며 신문사에서 훈련받은 기자나 논설위원과는 다른, 어쩌면 생활현실에 밀착된 시민운동가의 시각이 더 정확하게 사태의 맥락을 짚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첫머리에서 김명신 선생은 미래학교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학교 관계자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학교의 현황 등을 설명할 때 수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각자 가장 유용한 방식,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적어두는 것처럼 학생들도 공부에 적용하는 각자 방식이 다르다."

 

다양성에 대한 갈급함이 전해진다. 그런데 나와 같은 독자로서는 김명신 선생의 둘째 아이가 했다는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양성, 학생 개인의 배움의 속도 차이가 존중되는 나라에 와서 왜 그리 주입식으로 뺑뺑이를 도냐?라며 비난했다."

 

이 '비난'을 들으며 몇 년 전에 미국의 도서관문화 탐방을 갔을 때를 떠올렸다. 뭔가 우리에게 갈급함이 있는데--그것이 교육이든, 도서관이든, 정치든, 경제든--그만큼 갈급하기 때문에 문제를 찬찬히 그리고 천천히 풀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외국 탐방이나 시찰이 백 년 전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시리즈 글의 마지막에서 김명신 선생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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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09173149&Section=03

 

"당신은 펜을 들고, 친구는 카메라를 든 것처럼"

 

지난 1월, 교육운동가, 교사, 교수들 정확히 39명이 떼를 지어 핀란드 교육을 돌아보았다. 내친 김에 스웨덴 교육도 둘러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왜 이번에 핀란드를 가는지 궁금해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교육단체들 사이에서 갈수록 시장화되는 한국 교육에 숨이 막힐 지경이면 늘 단골메뉴로 핀란드 교육이 화제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부러움과 절망이 교차했다.

인구 500만 명으로 합의를 존중하는 핀란드. 인구 5000만 명의 다양한 집단 가운데 이미 교육문제가 이념문제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핀란드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내게 연세대 민경찬 교수가 전화로 당부했다. "그들의 상황과 한국 상황은 너무도 다르니 감안하고 보시라."

▲ 지난 1월, 교육운동가, 교사, 교수들 정확히 39명이 떼를 지어 핀란드 교육을 돌아보았다. 스웨덴 교육도 둘러보았다. ⓒ김명신


나는 이번 여행을 대학생이 된 두 아이와 함께했다. 두 아이에게 맡긴 역할은 통역 보조였지만 그보다는 교육운동을 하는 엄마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교육 공공성, 한국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교육 공공성을 함께 보고 배울 기회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두 아이 가슴에 핀란드와 스웨덴 교육이 어떤 인상이 남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육운동하는 부모로서 절박한 심정으로 그 애들이 겪은 경쟁 교육, 입시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고스란히 경쟁의 한국 교육을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두 나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여러 급별 학교를 방문하여 그 학교의 설립 취지와 운영 방식을 듣고 교내를 돌아보고 질의 응답하는 것이 주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면서도 교육에 시장화 바람을 도입하려는 스웨덴 국가교육청을 방문하고, 교육이 지방자치단체 책임이 된 핀란드 지자체협의회 등을 방문해 그들의 교육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분주하고 빡빡한 일정이었다. 적지 않은 여행 경비를 모두 자비로 부담한 이번 탐방 길에서 오고간 시간을 합한 9일 동안, 관광이라고는 도합 6~7시간이었으니 이번 여행에 한국 교육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절박했는지 그 방문 목적이 대강 짐작이 가리라.

작은 아이는 한시도 쉴 틈 없이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서두르는 우리 일행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다양성, 학생 개인의 배움의 속도 차이가 존중되는 나라에 와서 왜 그리 주입식으로 뺑뺑이를 도냐?"라며 비난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지만 우리 어른 일행은 그만큼 절박했다.

여행 일정상 먼저 둘러보게 된 스웨덴, 그 첫날 방문한 푸트럼(미래) 학교에서 겪은 인상적인 일이 기억난다. 우리 일행이 학교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받을 때 각자 다른 유형으로 내용을 기록했다. 노트북에 적는 사람, 메모하는 사람,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영상으로 담는 사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 그것을 본 그 학교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이 각자 가장 유용한 방식,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적어두는 것처럼 학생들도 공부에 적용하는 각자 방식이 다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은 그렇게 개별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아마 그 장면이 여행의 의미의 처음이자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스웨덴에서 방문한 푸트럼(미래) 학교. ⓒ김명신


민주적 가치에 바탕을 둔 스웨덴 교육

스웨덴은 작은 나라로서 인재 양성이 주요 정책 과제이다. 국가가 새로운 인재 유형을 수립하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 교육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서로에게 민주주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오늘의 교육 목표가 내일의 시민을 만드는 것이며 학생의 창조성, 비판적 사고, 자기 신뢰, 사회적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식장인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사를 안내하던 한국 이민자이자 그곳 중학교 교사인 한인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시의회장은 사방 막힌 벽이 아닌 양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국민의 의견이 의사당 열린 창으로 들어오고 의회의 결정이 열린 창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또 의사당 좌석 배치가 한 면은 호수를 보이는 멋진 전경이나 호수를 등에 지고 앉는 이들을 위해 맞은편 벽에 아름다운 장식을 해놓았다. 누구도 우연히, 필연적으로 불평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이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사. ⓒ김명신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1989년 교육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교육의 목표를 정하고 지방정부는 이러한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천하고 책임을 진다. 9학년 동안 의무교육을 하는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한다. 이를 두고 미국의 일부 교육평론가들은 스웨덴은 의무교육 기간을 최소한으로 두면서 개인의 자율을 존중한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스웨덴 사회도 변화가 일어 유럽연합(EU)에 가입했고, 국가 기간산업에 민영화 바람이 불었으며, 이민자가 급속히 늘어 10%에 달하게 되었다.

스웨덴은 경제 구조 개편과 효율성을 교육에 연결해 '경쟁' 개념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일부에서 경쟁은 좋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시장 중심적 운영체제를 도입했다. 우리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국 정부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학교 유형인 자율학교-기업형 학교, '쿤스캅 스쿨'을 방문했다. 증시에 상장되고 연 7% 정도의 비교적 고수익을 낸다고 한다.

자율학교는 운동장 없는 빌딩에 교실과 복도로 이루어진 한국의 강남 학원 내부 같은 전경이었다. 이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학생 개개인의 교육 성취 목표를 정하고 이를 철저히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이 기계처럼 매주 진보하는 기계가 아닌 다음에야 무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핀란드와는 달리 교육 정책에 신자유주의를 일부 도입한 스웨덴은 현재 교육 공공성을 바탕으로 교육에 시장 방식을 도입한 학교, 다양성을 중시하는 학교, 공공성이 장점인 학교 등 세 종류의 학교 그룹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웁살라 대학에서 만난 스톡홀름 교육청의 황석준 선생님은 스웨덴 내에서도 시장화된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있다며 우려했다. 이에 교원 차등연봉제, 기업이 참여하는 학교를 설립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핀란드는 단위학교결정권이 있는데 반해 스웨덴은 지역교육청의 감사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핀란드에 비해 학력이 뒤처지는 이유, 스웨덴 교육의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현재로서는 기업학교의 성과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국민 사이에 부정적인 인식은 있으나 큰 저항이 없는 것은 굳건한 사민주의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임금이나 고용 여건이 평등하기 때문에 교육 정책에 일부 시장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한국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남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국 정부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학교 유형인 자율학교-기업형 학교를 방문했다. 증시에 상장되고 연 7% 정도의 비교적 고수익을 낸다고 한다. ⓒ김명신


한국 정부도 교육 개방을 통해 외국의 학교법인이 이익금을 송금하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의 사학재단도 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학재단들은 그나마 있는 사립학교법을 아예 없애려고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에서는 자율형 사립학교, 차터 스쿨 개념을 당연시하는데, 정부는 호시탐탐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교육운동단체는 이를 막으려고 전선을 치고 있다.

한편, 스웨덴은 복지국가답게 교육 취약대상자인 여성, 지역, 노동계층에 동일 교육기회를 주려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식기반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볼로냐 프로젝트를 통해 대학 교육의 국경을 없앴다. 이번에 보니 스웨덴과 핀란드도 그 무렵부터 잘못된 교육을 고치도록 노력했고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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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0203739&Section=03

 

경쟁과 협력…누가 더 많이 웃고 살까

 

 

화염병과 휴대전화의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호수와 숲의 나라이다. 최근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 인기를 얻은 휴대전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선전화를 설치하다가 전봇대를 세우며 자연이 파괴되자 무선전화로 획기적으로 바꾸었다고한다. 그 결과 노키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휴대전화 강국이라도 길거리에서 휴대전화을 꺼내든 이는 찾기 어려웠다. 이들은 꼭 필요한 전화만 하는 듯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으로부터 700년이라는 오랜 식민지를 거쳤지만 자신들의 언어를 간직한 강인하고 생존력이 강한 나라이다. 그래서 화염병이 세계 최초로 생겼다고 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 탱크에 화염병을 몇 개씩 투척해 그들을 막아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잘 단결하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 사회 시간에 배운 바로는 '핀란드는 분단국과는 교류를 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다가 이후 북쪽과 남쪽 모두 외교를 터서 중립국도 아닌 것이 외교 방식이 낯선 먼(?)나라'로 암기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 인기를 얻은 휴대전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부터 핀에어라는 직항기가 인천과 헬싱키 직항로가 개설되어 8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국가가 되었다. 지도상에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그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오랜 식민지 기간을 거치다보니 자신들에게 맞는 교육 제도가 있을 리가 없어서 스웨덴과 독일로부터 교육 제도를 수입했는데 부정적인 영향이 커지자 자신들만의 교육 개혁을 찾아 나섰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이다. 그들은 그렇게 통합고등학교 제도를 도입해 학생을 독일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는 것을 피하고 통합 교육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시키려 애썼다. 특히 1등하는 아이보다는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을 쏟아 위해 평균 학력을 높여 나갔다. 중학교 시기에 학급당 인원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학력차를 보충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핀란드도 인구의 도시 집중을 막을 수 없어 날씨가 온화한 남부 해안가에 발달한 도시 중심으로 인구가 모여들고 이에 따라 학교 간 학력차를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고 한다.

 

▲ 핀란드 라또까르따노 학교. 교사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눈썰매를 끌어주고 있다. 아주 춥지 않은 한 겨울철 실외활동은 필수이다. ⓒ오영희


스웨덴과 핀란드가 교육 개혁에 나선 이유

핀란드와 스웨덴 두 나라가 교육 개혁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EU국가로서 두 나라의 생존이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의 위협에 직면한 국가로서 생존에 온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도 유아 교육의 확대, 교사 수준 향상, 부시 정부가 내세운 경쟁 교육 정책의 보완 등을 내세웠다. 교육이 사회 발전에 근본이고 변하지 않고는 도태됨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시장화라는 잘못된 길을 택했으되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핀란드는 그 과제를 국민의 계층 갈등으로, 서열화와 분열로, 구시대적 삽질로 풀지 않고 통합 교육으로 평등성이 담보된 교육 정책으로 풀어 나갔다. 교육 기회와 결과의 평등을 바탕으로 인간 관계안에서의 협동, 자발성과 흥미와 서실과 양심 등 두 나라 모두 각각의 철학과 경제수준에 맞게 최선을 다해 유아부터 직업 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특별한 신경을 쏟고 있었다.

특히 두 나라는 '학력'이란 개념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학력을 주입식 교육을 넘어 문제 해결력과 소통 등 보다 넓은 범위에서 파악하고 개인의 소양과 역량을 키운다는 것으로 점차 개념을 넓혀가는 것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지만 그들의 확장된 학력 개념을 접할 때 절로 무릎이 쳐칠 정도였다. 학력 개념 속에는 소통 능력과 시민성을 포함시키며 두 나라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에 성공한 나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PISA 시험의 의미

세계 각국이 2000년부터 시작된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시험 결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시험이 단순히 주입식 학력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 해결력과 그밖에 창의성, 학습에 대한 태도와 지적 호기심 등 여러 지표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써 점차 한 나라 교육 정책 결정에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얼마전 독일이 PISA 시험 순위가 몇 단계 향상되어 국가적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을 그무렵 독일로 안식년을 갔던 정현백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문인데 한국은 성적이 좋아도 좋은 줄을 모르고 칭찬에 인색하며 교육을 타박만 하니 아쉬움이 크다.

핀란드의 세계적 학업 성취가 화제가 되고 그들의 교육 방식과 한국 교육 방식 사이에 큰 차이가 부각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핀란드에서 중등학교협의회 회장인 피터 교장선생님이 방한하기도 하고 헬싱키 대학의 OECD PISA 토미 연구원과 야리 교수등 관계자가 방한하여 핀란드가 최고의 국제적인 학력으로 우뚝 서게 된 배경에 대해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맘때 문화방송(MBC) 에서는 <열다섯 꿈의 교실>이란 특집방송을 통해 핀란드 교육과 한국 교육을 집중 조명하며 비교하기도 했다. 두 나라 똑같이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한국은 가장 공부를 많이 해서 얻은 학력이고 하나는 공부에 목을 매지 않고 얻고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 얻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방송 중 PISA 관계자는 말했다. "그 이유는 한국 교육의 경쟁과 핀란드 교육의 협력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망치로 머리를 탕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년 내 그 말이 내 속에 맴돌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경쟁은 스포츠에서나 있다."

낙오자 없는 핀란드 교육

핀란드 교육에 낙오자는 없다. 같은 배를 탄 학생들이 하선하지 않고 무사히 안전한 항구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적이라고 얼마 전 방한한 요우니 교수가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일제고사 존재 자체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를 반대한 교사들이 해고를 당했다는 대목에서는 더욱 비판을 했다. 핀란드 학생도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도 치르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0대로서 감당해 낼 수 있는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한국보다 훨씬 덜 불행한 10대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시험은 학생의 서열을 정하기보다 내가 학습하는 태도, 내가 아는 것을 점검해보는 학습의 과정으로 존재한다. 고교 졸업 무렵 다시 한 번 시험을 봐서 대학에 진학한다.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크든 작든 밝고 따뜻한 현관을 가지고 있었고 교장실은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한구석에 자리했다. 각 교실마다 다양한 밝은 천의 커텐이 각 교실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며 부드러운 변화를 주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학처럼 넓은 카페테리아가 학교의 중심에 자리한 학교도 있었다.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는데 마침 눈이 온날이라 운동장에서 흥겨운 눈썰매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방한복을 입고 눈밭에 나가 뒹굴며 놀았다. 모든 아이들은 여벌의 방한 방수 옷을 두고 다니며 놀이에서 돌아와서는 건조시켜 다음날을 대비했다.

학교를 개축하느라 임시교사에서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밖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교실 안은 따뜻해 일부 학생들은 반팔차림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때부터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제외한 외국어를 교사, 학생,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고 교육목표를 공동으로 세운다. 교사가 사회적으로 신뢰받으므로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는 그다지 필요치 않으며 대신 개별 학생의 학습 목표를 논의하거나 교육 과정을 의논할 때 학부모는 반드시 참여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삼자협의를 통해 개별 학생에게 필요한 공부와 진도를 선택하고 결과를 점검하고 다시 한번 학습 계획을 협의해 나간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중3때 전국시험을 봐서 진학한다. 약간의 선호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집근처 학교에 진학하고 5킬로미터(㎞) 이상 통학할 경우 국가에서 교통비를 지급한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무학년으로 각자 필요한 코스를 이수하도록 했다. 중3때, 고3때 시험을 치룬다.

야르벤빠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1000여 명이 가까운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어서 대학생처럼 고등학교에서는 18개 코스를 정해 이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건물은 방사형으로 지어져 카페테리아를 중심으로한 중앙으로 학생들이 집중되고 분산되게 설계되어있다. 체육이 필수 과목이라 중요시하고 체육실이 위치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위해 5~6인씩 그룹으로 베드민턴, 농구, 여자하키 코스를 돌아가며 섭렵했다.

▲ 중앙홀이 있는 야르벤빠 고등학교. 박원순 변호사 모습이 보인다. ⓒ김명신

첨단산업이 발전된 나라답게 내가 방문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자기 카드를 현관문에 접속해야만 문이 열리는데 이를 통해 그 학생의 학교 수업 행적이 다 기록된다고 한다. 직업반과 인문반의 넘나듦이 유연한 통합 고등학교과정을 택하고 '평준화다 아니다'를 거론할 필요없이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이 한데 어울려 협동과 개별학습을 벌인다.

한 예로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칠판에 섹스, 오랄섹스, 키스 등 '사랑'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놓았고 교사는 학생들의 흥미를 바탕으로 종교, 성교육,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사랑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세 시간씩 6주간 인터넷사이트를 활용하고 학생들은 에세이 발표를 하며 통합적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에 집중한다. 오래전 내 아이도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세계사 시간에 한 학기 동안 제2차 세계 대전만 배운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깊게 공부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고 평가를 통해 자신의 학습태도를 보완해나가는 과정이 학교이자 학습이었다.

핀란드에서는 학생의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와 학습의 우열이 본격화적으로 드러날 즈음인 중학교 때는 학급당 인원수를 반으로 줄여 학력차를 좁힌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비해 학급당 인원수가 절반이다. 이처럼 잘하는 학생은 그냥 두어도 잘하므로 그대로 두고 못하는 학생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핀란드 교육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개별화 교육과 다양화 교육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2년 반부터 4년 사이에 마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반드시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인턴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휴식기를 가진 후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 방문객들에게 학교를 설명하는 야르벤빠 고등학교 학생과 방문 일행. ⓒ김명신

직업 교육과 학생 인권

핀란드는 직업 교육이 활발하다. 졸업생이 고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막바로 투입될 것을 상정해 핀란드는 고등학교에서 직업학교에서 직업 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옴니아 직업고교, 직업 교육 센터를 방문했다. 여학생 직업반 중 현재 인기 직업은 미용 직종이다. 그래서 경쟁률도 높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고등학교에 미용반에서는 미용 중 가장 흔한 일중 하나인 머리 감기기와 머리 맛사지 시험에 교사가 모델이 되어 깔깔거리고 웃으며 시험 평가를 하고 있었다. 동네사람들도 동네 미용실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발적으로 머리커트, 피부 맛사지 등 기꺼이 학생들의 미용실기대상이 되어준다. 그 애들이라고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먹고 사는데 필요한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이민자는 받지않고 난민만 허락하는데 이민자가 급증하므로 아무래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직업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지 의료보조원 교육을 받는 구성원은 모두가 유색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했다.

▲ 옴니아 직업학교. ⓒ오영희


한국의 교육운동가로 살면서 한국 교육을 고발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직업 교육과 학생 인권 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 학벌주의, 학력 간 임금 격차 등을 다 제쳐놓고라도 한국이 실업계 학생이 절반인데 그들 교육에 손놓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실업계 학생들은 앞다투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MB정부는 마이스터교를 100개 세운다고하나 직업 교육이 바로서지 않는 한 현재 질곡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옴니아 직업고교를 방문해 핀란드 직업 교육을 돌아보며 '누구는 나라 잘 만나서 웃고 사는구나, 누구는 나라 잘못 만나서 근심이 떠나지 않네…'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때마침 용산 참사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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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3131403&Section=01

 

"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이번에 만난 헬싱키시 인근 에스푸지역의 포요이스 따삐올라 중·고교 교장 선생님은 여성으로서 지난해 경기여고 100주년 초청 행사로 '핀란드의 여성'을 강연하고자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짧은 방한 기간이었으나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학부모와 교사들은 심리학을 다시 한 번 배웠으면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학습이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반드시 한국 학부모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려를 담아 말했다.

지금 한국은 핀란드와 상황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마구잡이로 일제고사와 대학 입시에 내몰려 있다. 학생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분기별로 나오는 성적표에 의해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성적을 기준으로 높이높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으며 대부분 아이가 피라미드에 쌓인 받침돌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분모가 되는 학생들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교육을 택해야 하는가?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서로 다른 아이는 서로 다르게 학습한다."

한편, 이번 여행의 코디네이터 중 하나인 핀란드에 사는 교민 곽수현 씨에게 들은 바로는 핀란드 사람들은 교육과 관련해 집중력에 매우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집중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아이가 열중해 노는 한두 시간 동안은 절대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지 않는다고 했다. 레고 블록을 만들 때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리고 집중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특수교육 차원에서 배려했다.

이에 반해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노는 꼴을 거의 못 보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시간을 엄마가 조작하고 조정함으로써 아이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후 네 시, 일찌감치 어두워지는 북부 유럽의 저녁 엄마들은 아이들을 5겹으로 싸서 유모차에 끌고 다녔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밖에서 재우는 것을 때로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만큼 일상화시킨다고 했다. 하긴 늦은 저녁 아이를 셋이나 동행한 유모차 엄마를 지하철에서 흔히 목격했다.

▲ 핀란드 옴니아 직업학교의 건축과 실습현장. ⓒ오영희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

이번 여행 중 핀란드에서건 스웨덴에서건 목이 마르면 아무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셨다. 처음엔 생수 생각이 간절했는데 날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그들은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물을 사먹는 돈을 세금으로 낸 후 수돗물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개인노력의 분명한 한계를 공동으로 풀어낸 것이다.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와 인구 5000만 명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겪었고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한 나라는 교육의 철학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평등의 가치 위에서 교육을 보았고 누구든 교육의 의지가 있는한, 한 학생이라도 배에서 내리게 하지 않고 낙오시키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학생을 대했다. 결국 핀란드는 자율성과 다양성, 국가발전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이루었다.

반면 한국은 학생을 상품화시키고 서열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교육을 생각할 여유도 정치적 리더쉽도 가치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아이들이 불행하고 교육이 실종된 것이다. 각자 열심히 마우저뚱 초상을 그렸는데 다 그려놓고 보니 메릴린 먼로의 초상이 되어버린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각자 열심히 교육에 매진했는데 결국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라는 괴물만 남았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교육 개혁이란 것이 학생들의 취미와 적성을 살리고 교육을 통해 행복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하는데 학생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교사에게는 무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도리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학벌이 문제이고 공교육 부실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학벌 대책은 늘 중장기 대책으로 밀어놓는다. 정권을 5년 잡는 정부가 학벌 대책을 중장기로 밀어놓는다는 것은 결국 안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 부실의 1순위로 모두들 거대학교, 과밀학급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33.6명, 중등이 35.5명이다. 올해 발표된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OECD 국가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21.4명, 중등은 24.1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개발 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학급당 학생수를 외면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자연적으로 인구수가 감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밀학급이 아닌 농어촌 교육은 무사한가? 아니다.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특목고가 점차 모든 중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가 되었는데 특목고는 행복한가? 아니다, 특목고생도 사교육을 받는다. 강남 지역 학생들도 천차만별 차별을 당하고 있다. 학벌 때문에 명문대, 지방대학생이 분노한다. 그러면 명문대생은 행복한가? 그들도 취직을 위해 영어 점수 높이기에 목을 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금은 청년백수 혹은 청년 인턴 대열에 분노하며 혹은 크리넥스 티슈처럼 풀죽어 합류해 있다.

결국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 핀란드에서 핀란드어 시간에 학년이 섞여서 조별 수업을 하고 있는 장면. ⓒ오영희

핀란드는 조세부담률이 40% 정도 되나 한국은 27%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 사교육비를 더하면 40%도 훌쩍 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 관계자들은 '두 나라는 근본적으로 세금부담률이 다르다'는 앵무새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돈의 문제, 인식의 문제가 철저하게 다른데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문제는 이 지점부터 풀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실종된 한국 교육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이번 여행에 동행한 38분의 교사, 교수, 운동가, 학생, 이번 여행이 있기까지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용관, 안승문 선생, 핀란드 현지의 안애경씨, 통역에 수고한 이병곤, 동원, 라슈, 교육외 부문에서 참여한 권태선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님과 박원순 변호사와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이부영 님과 헬싱키에서 시를 낭송해주신 도종환 시인께 감사말씀을 전한다. 우리들 일행은 거의 모두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한국 교육을 고민하면서 그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한 전문가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행 중 수없이 동어반복을 했지만 그 열정과 의지, 그 진정성 하나로 2월부터 다시 만나 한국교육의 새로운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