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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9일 금요일

김태언- 마을 스와라지

김태언 교수님.  2009년 6월 11일 저녁 김해 장유도서관 시청각실에서 김태언 교수님의 강의를 듣을 수 있는 기회가 우연찮게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 한번 뵈올 수 있었으면 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분이라서 그런지 제 마음에 잔잔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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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교수님이라 하면, 잘 모르실 분도 <녹색평론>을 펴내는 김종철 선생의 부인이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실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인제대학교 영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영미소설을 가르치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몇 권의 번역서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케스-매와 소년>(배리 하인즈) <농부와 산과의사>(미셀 오당), <아담을 기다리며>(마사 베크), 그리고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Village Swaraj>(마하트마 간디) 등과 같은 책을 번역한 분입니다.

 

 

인제대학교 인문학부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김해시가 후원하는 '2009 시민 인문학 강좌'의 첫번째 순서로 펼쳐지는 시민인문학 강좌의 첫번째 강좌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은 저로서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 연속 강좌는 매월 한 분의 인제대의 인문학 교수님들이 김해시의 여러 곳을 돌아가면서 각각 3강씩을 펼치는 일정입니다. 책읽는도시 김해의 정책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 '2009 시민인문학 강좌'에 참여하시는 교수님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김태언 교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6월 매주 목요일, 장유도서관

2. 이영식 교수,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 여행", 7월, 화정글샘도서관

3. 조용현 교수,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 9월 시청소회의실

4. 안종수 교수, "동양철학의 흐름" 10월, 칠암도서관

5. 이찬훈 교수, "불이사상으로 읽는 노자", 11월 진영한빛도서관

6. 강석중 교수, "조선시대의 한시" 12월 김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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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민 인문학 강좌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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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앉아 계신 분이 김태언 교수. 서 계신 분인 이찬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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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교수님은 "이런 식의 대중강좌는 태어나서 처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김태언 교수님은 에이포지 5장으로 정리한 문건을 청중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만, 문건에 없는 이야기도 섞어가면서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을 이야기 2꼭지. 간디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이 엄마는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사탕을 먹는 아이가 근심거리였습니다. 그 엄마가 아이와 함께 간디에게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간디는 며칠 있다가 다시 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며칠 뒤에 다시 찾아가니 너무나도 쉬운, 누구나 생각할 만한 간단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사탕을 먹지 말게 하라고. 옆에서 그 모습은 본 어떤 이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쉬운 답변을 하시는데 왜 며칠 있다가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까? 간디가 말했습니다. 사실 그 엄마와 아이가 찾아왔을 때 사실 내 입 속에도 사탕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답변을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사탕을 먹고 있는데,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어느 날 간디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타는데, 신고 있던 끌신(슬리퍼) 한짝이 벗겨졌습니다. 기차는 이미 출발을 한 뒤였습니다. 간디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끌신 한짝을 마저 벗어서 차창 밖으로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끌신을 던져버린 것입니까? 간디가 말했습니다. 먼저 잃어버린 끌신 한짝을 누군가 손에 넣는다면 한짝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닿질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한짝도 마저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절판이 되었다는 <힌두 스와라지>의 개정판을 올해 안에는 마무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시간은 한정 없이 흘러만 가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채찍질해 봅니다.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문장의 위기

오늘은 조금 꼬집어서 한 대목 인용하고자 합니다. 아직 저도 문장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어리벙벙이지만, 이런 문장을 만나면 정말 괴롭습니다. 요령부득입니다.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라는 하승우라는 분의 글입니다. <녹색평론> 2009년 3-4월호(통권 105호) 161쪽의 내용입니다. 제목은 '협동조합운동과 대안경제'입니다. 인용해보겠습니다.

 

"경제에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조차 신문이나 인터넷의 경제란을 유심히 살필 정도로 위기감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런 위기들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족, 생태계 파괴와 맞물려있다는 점에서 아주 근본적인 위기를 뜻한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말 괴롭습니다. 두 문장 가운데 두번째 문장의 주어는 "이런 위기들"인데 "이런 위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이런 위기"의 내용으로 읽어야 할 터인데, 과연 그런 것입니까?  "위기감이 퍼지고 있"는 현상을 파악하는 그 심도는 사람들의 관심사 변화의 정도로 파악되고 있음이 첫번째 문장의 내용일 것입니다. 과연 현실 위기, 위기감의 내용이란 그런 것입니까? 궁금합니다.

 

다시 두번째 문장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문장이 아닐뿐만 아니라 사유의 결과도 아닙니다. "이런 위기들은.... 아주 근본적인 위기를 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족, 생태계 파괴와 맞물려있다는 점에서"라는 일종의 부사절은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글쓴이가 진정 깊이 있는 사유의 영역에 기후변화와 에너지부족, 생태계 파괴를 다 포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문장이 씌어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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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www.marxists.org/subject/praxis/index.htm 이 이미지는 '프락시스'라는 이름을 이미지로 검색한 결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슨 특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프

 

지행, 즉 앎과 함, 인식과 행동, 사유와 실천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엉성한 인식으로는 그 어떤 행동도 실천도 마냥 엉성해질 뿐입니다.

 

부끄럽습니다.저는 하승우라는 분을 여직 만나뵌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적하는 것은 문장의 위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바라건대 부디 지렁이나 굼벵이가 땅 위를 기어가듯 사유의 흔적을 남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의 잘못을 겨우 눈꼽만큼이나마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부질없는 글도 그런 기대의 표현입니다. '협동조합운동'이나 '대안경제'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