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용산참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용산참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고향을 돌아보라, 천사여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포럼 <통찰과 연대>는?

 

자유실천위원회는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투쟁과 연대 방식으로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포럼 형식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이는 광장에서의 퇴각도 아니고 좁은 자아로의 환원도 아닙니다. 지금껏 광장에 임했던 시간을 성찰하면서 함께 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내미는 손인 동시에, 지금 전개되는 미증유의 현실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 것인가 함께 대화를 나눠보는 자리입니다. 문학과 운동의 저 지루한 대치 국면을 이제 어떻게든 허물어야 하는 게 자유실천위원회의 몫이라면 몫이겠고 더 거창하게는 지금-여기의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저 지독한 용산 참사가 상기시키듯, 역사 속에서 되찾은 문학의 양심을 자본과 권력이 조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소박하게나마 한국작가회의의 역량을 점검하는 일을 진행하면서 없는 역량이나마 함께 공유하고자 포럼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이 포럼은 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일보를 내딛게 하기 위한 주춧돌을 자청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도 2월까지 3회에 걸쳐 진행되지만, 그 이후에는 아마 더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고 힘을 보탤 마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회로 아래와 같이 포럼이 시작됨을 뱃고동처럼 길고 깊이 울리는 바입니다.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아, 신부님

                            *사진출처: http://blog.daum.net/th730818/15536628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며 11일째 단식농성을 해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님(65)이 오늘 새벽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의식불명 상태이나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언론매체는 전하고 있다. 부디 일어나시기를.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그러고 보면, 나도 헛살았다.

선가에서 사냥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석공 혜장 선사를 꼽는 모양이다. 어느 날 혜장이 사냥을 하던 중 마조 선사를 만나 그의 법문을 듣고 활과 화살을 버리고 출가하였고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산중에 있어도 본성을 마저 버리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활 시위를 당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이나 호적수가 있게 마련이다. 삼평이라는 이가 가슴을 풀어헤지며 "자, 쏠 테면 쏘아보라"고 하였다. 그때 석공 혜장은 활을 버렸다 한다. 삼평은 물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전'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전'입니까? 여기서 '전'이라는 화살 전을 말한다.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버리고 진짜배기를 드러내보이라는 말이다. 살인전은 살인검이다.

 

불가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은, 왜 이러한 교육 방법이나 사람을 보는 눈은 전승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왜 이런 교육 방법은 근대교육에 전혀 접목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을 '법기'(법의 그릇)으로 본다. 아무리 촌놈, 무지랭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막무가내로 보지 않는다. 그 그릇으로 본다. 그것도 글을 아느냐 글을 모르느냐가 아니라 깨칠 놈이냐 아니냐로 본다. 물론 모든 사람이 깨칠 수 있다는 전제가 밑바탕에 놓여 있다.

 

<육조단경>은 그냥 문헌이 아니다. 근대교육의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인간상보다 <육조단경>이 만들어놓은 인간상이 더 위대한 것 아닌가? 나는 오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에게서 가사와 발우를 전수 받게 되는 이야기는 신화이자 전설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사와 발우란 것이 뭐 별거인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전승된 법통이란 것도 별거 아닐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머리 깎은 스님들께서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그놈 사람 됐다"는 이야기일 거다. '사람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육조 혜능은 쓸데없는 글을 읽은 바 없기에 오히려 '사람 그릇'이, 근기가 깊었던 것일 터이다.

 

최근 내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다.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파업현장에서 무지막지한 경찰들의 '활약'을 보면서 도대체 이런 무장력으로 현실화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이놈의 교육이라던가, 정책이라던가, 또 제도라던가, 법이란던가 하는 것이 도대체 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간말종'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말종'을 키워내고 있고, 그런 '인간말종'들끼리 히히덕거리면서 돈 몇 푼에 웃음을 지으며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탄압과 진압의 현장을 보거나, 듣거나, 그 어떤 방식으로 보고를 받았을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도 사람이요"라고 뻣뻣하게 말을 한다. 잘난 체한다. 정말 잘 났다.

 

그러고 보면, 나도 헛살았다. 목숨을 부지하느라고 세상이 이렇게까지 낭떠러지에 와 있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니까. 글을 읽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선문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든다. 그냥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것도 진짜배기로 살고 싶었던 인간들의 이야기다. 나도 정말 살고 싶다.

 

--원철 지음,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호미, 2009년 8월 참고

 

2009년 6월 25일 목요일

어느 사제의 질문

 

전종훈 신부님을 인터뷰한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의 글을 옮겨놓습니다. 김병기 기자가 전하는 전종훈 신부님의 질문. 이 질문은 오늘 아침 저를 아주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

"용산참사는 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의 활기는 잃었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여느 때처럼 단호했다.

 

22일 저녁 8시 30분경. 기자가 용산 참사 현장에 도착하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가 막 끝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유가족과 수녀, 시민들이 앉아있다. 어림잡아 250여 명은 됨직하다. 수녀들만 100여 명. 이들은 '길거리 미사'를 마친 뒤에도 영상을 보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건물의 난간 밑 어둠 속에서 검은 수도복을 입고 서 있는 전종훈 신부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손에는 작은 물병을 들고 있다. 인사를 하자 그는 힘없이 기자의 손을 잡으면서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괴감, 죄책감, 무력감...

 

그의 손을 이끌고 유리창도 없는 낡은 건물로 들어갔다. 남일당 건물 뒤편에 위치한 이곳은 용산참사에서 사망한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호프집이었다. 우리는 그곳 1층 로비에 쌓여 있는 허름한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초 인터뷰를 전제로 한 만남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는 자연스레 수첩을 꺼내 들었고, 그는 "인터뷰하는거요?"라고 물은 뒤에 말을 이어갔다.

 

"너무 억울한 죽음인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직자로서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죄책감, 이런 불의한 정권에 맞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지난 1주일 동안 이곳에서 그냥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잦아든 것은 1주일간의 단식 탓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해 지리산 하악단에서 출발해 계룡산 중악단, 그리고 올해 계룡산에서 출발해 임진각까지 천릿길을 오체투지로 기어서 온 그가 며칠 동안 정리 시간을 가진 뒤 제일 먼저 달려온 곳은 용산이었다. 사실 그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과 함께 당초 목표했던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이어가려고 했다

 

"오체투지로 묘향산 상악단까지 오르려고 했습니다. 북측에서는 오체투지순례단에게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신변보호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걸어 불허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옹색합니다. '신변안전'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초청장을 보낸 것은 신변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거든요. 결국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막고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표현이지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는 그에게 '우문'을 던졌다. 왜 용산에 왔는지? 그는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너는 왜 살어?'라는 질문과 비슷하네요"라고 말한 뒤에 그 배경을 설명했다. 

 

"강원도 영월에서 올해 사제단 총회를 하던 날 용산 소식을 접했습니다. 믿기지 않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총회를 중단하고 달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어쨌든 총회를 마치고 사제단은 현장에 왔습니다. 너무 엄청난 일이어서 해결의 가닥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유족들조차 어느 순간 폭도와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있더라고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용산은 '총성 없는 전쟁터'

 

하지만 전 신부는 자벌레처럼 기어서 오체투지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문정현 신부가 '나는 용산을 지킬 테니, 당신은 오체투지를 계속하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체투지 순례단의 머릿속에서 용산은 떠나질 않았습니다. 5월 18일 남태령을 넘으면서부터는 용산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아주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용산에서 108배를 하고 임진각까지 가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정권이 이렇듯 국민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힘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결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15일 비상시국총회를 연 뒤에 "이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이 있는 곳인 용산"으로 와서 시국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언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사제단의 본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제는 사람과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말로만이 아니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매정하게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내몰고 있는 이 정권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단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주일간 용산참사 현장에서 단식하면서 유가족들과 함께한 시간.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우선 그는 "이곳은 매일매일 총성 없는 전쟁터"라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감시하는 경찰과 감시받는 유족들과 유족들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대치와 몸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경찰의 불법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이곳 용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 용산이 아수라장이 된 것은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사복경찰이 사진채증하다가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순간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복경찰을 빼가려고 하면서 심한 몸싸움을 벌였죠. 협상 차원에서 경찰서장을 만났는데, '이곳은 다 불법 지역이다. 모든 일이 다 불법이다. 따라서 경찰이 공무집행 중에 지켜야 할 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정당하다'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경찰과 부딪쳐서 온몸에 피멍이 들어도 폭력행사이고, 경찰이 부딪쳐서 상처를 입으면 공무집행 방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장한테 '지금 불법 단식을 하고 있는 나를 잡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잡아가지는 않더라고요."

 

 

용산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울부짖는 전종훈

 

 

지난 20일에는 유가족들이 들고 있는 영정을 경찰이 훼손하는 바람에 도로점거 상황이 벌어졌고 2시간이 넘게 대치하는 과정에서 전 신부는 탈진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날 밤 늦게 기자는 전 신부의 곁을 지키던 한 신부를 수소문해서 전 신부의 상태를 물었다. 그 신부에게서 이런 답변이 되돌아왔다.

 

"전 신부님은 의식을 되찾자마자 용산으로 되돌아가겠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막고 있지만 막무가내입니다."

 

하지만 전 신부는 이틀 동안 병원에서 머문 뒤 다시 용산으로 되돌아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여기서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여기가 우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고 "이 시대 용산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출발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용산참사는 현 정부의 원죄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순간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의 이런 확신은 어디서 연유하는지 궁금했다.

 

"국민들이 정권을 맡기는 첫째 이유는 국민들의 생명보호입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약자 중의 약자인 세입자들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학살했습니다. 또 권력은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을 억압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부는 정권을 자신들의 한풀이를 위해 사유화하고 있습니다. '빼앗긴 10년'을 이야기하면서 한풀이를 하는 데, 그 기간동안의 정권은 국민이 위임한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의 국민들이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기반은 자본입니다. 재벌과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10%. 못 가진 9명은 안중에도 없고, 1명을 우대하면서 나머지에게는 시혜만 베풀면 된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이런 정권의 본질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 신부의 논리대로라면 이 정권 역시 국민이 위임한 정권이다.

 

"국민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본이라는 맘몬(물욕의 신)에 모두 미혹당한 것입니다. 경제지상주의에 잠시 마취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경제CEO 출신의 대통령에 대한 서민들의 소박한 기대감, 즉 국민들이 선택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선택을 무심한 정권의 처사가 괘씸한 것입니다."

 

전 신부는 "국민의 70% 이상이 이를 자각하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경찰과 검찰 등 모든 공권력을 다 동원해 폭압적으로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표현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50여일이 넘게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하는 정권, 이건 인륜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부는 대화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전 신부는 "국가를 원래 위치로 되돌려놓으려면 사과와 진실규명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막가파식 재개발 정책을 멈추고, 우리 시대 약자들은 배려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공기라고요? 공기가 혼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 신부에게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언론의 역할은 무언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이 시대에 제대로 된 언론이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순간 뜨끔했다.  

 

"시대정신이 없는 언론은 언론이 아닙니다. 총보다 펜이 무섭다고 하는 데 총이 더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펜이 더 크게 권력을 행사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세상입니다. 언론이 아니라 자본에 예속된 경영이라고 할 수 있죠.

 

또 언론은 공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이익 수단으로 언론을 활용하다 보니까 공기가 혼탁해졌어요. 용산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후퇴 문제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의 권력과 같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고 타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신부와의 인터뷰는 밤 11시 넘어서 끝났다. 그는 곧바로 남일당 앞에 환히 불을 밝힌 농성천막으로 들어갔고, 기자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렸다. 전 신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2009년 6월 24일 수요일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이 엄연한 대한민국의 2009년 6월 21일 일요일의 한 모습입니다. 기록된 내용의 표현은 거칠지만, 표현이 문제가 아닌 듯싶습니다. 일어난 일들은 더 거칠고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생자를 위한 연도와 미사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 것인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따름입니다. 환한 대낮에 그것도 행인들의 눈뿐만 아니라 미디어활동가들의 사진과 카메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2009년 6월의 대한민국입니다.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아래 내용의 원문 출처는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295 입니다.

 

---------------------------------------------------------------------------------------------------------------------

 

[09:00]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단식기도 천막에 붙어 있던 현수막을 구청직원도 아닌 '경찰'이 불법적으로 철거하였습니다. 시설물 철거는 구청 직원이 하는 업무이며, 경찰이 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경찰은 천막에 붙어 있던 "대통령은 유족 앞에 사죄하고 용산 참사 해결하라", 라고 쓰인 플랭카드와 남일당 분향소 앞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걸어놓은 "단식기도 6일째"라는 피켓도 철거하였습니다.

 

[09:20]

 이에 항의하던 이강서 신부를 수십명의 경찰이 둘러싼 채 연행하려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부님의 옷이 찢겨나가고 이를 말리던 주민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은 방패로 이강서 신부를 둘러싼 채 이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폭언을 퍼부었으며, 영상 촬영 중이던 미디어활동가의 카메라 헤드셋이 박살나고 83세 고령의 용산 4가 주민할머니가 경찰의 방패에 찍혀 눈에 피멍이 들고 팔이 찢어지고 허벅지가 타박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쳤습니다. 또 다른 주민 한 분은 팔이 완전히 찍혀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09:30]

 참으로 비열한 경찰들의 작태입니다. 고착되어 있다 풀려난 이강서 신부와 주민들이 경찰의 불법철거를 사죄하고 플랭카드를 원상복구할 것을 요구하자 경찰들은 또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레아 앞쪽 인도를 완전히 막아서고 주민들 통행을 차단했습니다.  관악방범순찰대 중대장 김 모 경감은 자신의 중대원을 방패막이삼아 뒤로 내뺐습니다.  경찰은 20여분간 인도를 완전봉쇄하여 화장실에 가겠다는 주민들도 막아섰습니다.

 

[09 :40]

 이강서 신부님은 플랭카드를 원상복구하고 경찰지휘관인 중대장이 천막으로 와서 해명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경찰은 묵묵부답 아무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경찰이 신부님을 강제 연행하고 끌어가는 과정에서 이강서 신부님은 상의가 모두 찢겨나가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경찰은 아침부터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더니 신부님과 주민들에게 폭언을 해댔습니다. 심지어 문정현 신부님에게는 "노인네가 노망났나" 등의 망발을 퍼붓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계속하였습니다.

 

 ▲ 사제단 단식기도 천막 현수막을 경찰이 강제로 철거하고 있다. 이는 경찰의 직무를 벗어난 불법행위이다.

 

 ▲ 이강서 신부님이 경찰에 의해 포위당해 있고, 철거민들이 신부님을 내놓으라며 항의하고 있다.

▲ 경찰들의 둘러싸인 이상서 신부님이, 경찰들에 눌려 힘겨워 하고 계시다. 

 

▲ 사제단 천막 현수막 강제 철거에 항의하던 이강서 신부님을 경찰이 팔을 꺽고, 허리춤을 쥔채 연행을 시도하고 있다.

 

▲ 이강서 신부님을 경찰이 팔을 꺾어 포박하고 연행하려 하고 있다.

 

▲ 항의하던 문정현 신부님에게도 경찰이 팔을 비틀려 하고 있다.

 

▲ 항의하던 문정현 신부님도 경찰에 의해 목이 졸린 채 끌려가고 있다.

 

 

▲ 용산에서 매일 미사를 집전하시는, 이강서 신부님의 상의가 경찰에 의해 찟겨졌다.

 

▲ 미사를 집전하는 주일 아침부터 벌어진 경찰만행이 지나간 후, 힘겨워하고 계신 신부님

 

 

▲ 83세되시는 할머님은, 경찰의 방패에 찍혀 눈이 심하게 피멍이 들고 부어 올랐으며, 온몸에 찰과상과 타박상을 당하셨다.

 

▲ 64세 어머님도 경찰에의해 팔이 비틀렸다. 현재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서 치료 중이시다.

 

 

-------------------------------------------------------------------------------------------------------------------

참고가 될까 하여, 다른 기사 한 꼭지를 더 스크랩해놓습니다.

 

원문출처는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51818 입니다.

 

-------------------------------------------------------------------------------------------------------------------

 

김운회 주교 격노 "사제단 연쇄폭력 사과하라"
19~21일 사흘 연속 폭력사태 발생, 천주교 격분
2009-06-23 18:03:58

잇단 사제단 폭력 사태에 격분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가 23일 직접 나서 정부의 직접 사과를 촉구, 천주교와 정부간 대립이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천주교 주교가 직접 나서 정부의 사과를 촉구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운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는 이날 발표문을 통해 용산참사 단식기도 중이던 사제들을 폭행한 사태와 관련, "참사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가족들을 위로하며 단식기도하는 사제들에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말리던 주민들도 부상했다"며 "용산 참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음은 십분 인정하지만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현장에서 또다시 폭력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찰을 비판했다.

김 주교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며 책임자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한다"며 정부의 공식사과를 촉구했다.

김 주교는 또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하루빨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힘없고 약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우선 살펴야 하는 위정자들의 깊은 성찰과 변화를 기대한다"며 용산참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해소 노력을 촉구했다.

◀ 정의구현사제단이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 주교가 직접 나서 정부를 질타한 것은 지난 19~21일 사흘 내리 사제단에 대한 폭력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 따르면, 19일 오후 용산참사 사망자들의 넋을 기리는 남일당 분향소를 사진 채증하는 사복경찰을 시민들이 붙잡아 카메라를 뺏고 항의하는 과정에 경찰은 사과를 요구하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를 완력으로 제압해 땅바닥에 엎드리게 했고, 팔을 꺾인 채 바닥에 눌려있던 나 신부는 안경이 깨지고 얼굴이 긁히는 부상을 입었다. 현장에 있던 이강서 신부도 경찰에 양팔을 꺾였고, 단식농성중이던 전종훈 신부는 방패에 맞았다.

다음 날 20일 오후 '용산참사 150일 추모대회'에선 참가자 3명이 연행되고, 이에 항의하던 전종훈 신부와 유가족들이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21일 남일당 건물에 들이닥쳐 사제단 단식기도 천막에 붙어 있던 '대통령은 유족 앞에 사죄하고 용산 참사 해결하라'라고 쓰인 현수막과 분향소 앞에 사제단이 걸어놓은 '단식기도 6일 째' 피켓을 철거했으며, 이에 항의하던 이강서 신부와 문정현 신부가 부상을 입었다.

김혜영 기자    

-----------------------------------------------------------------

다음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내놓은 발표문. 원문은 http://www.caritasseoul.or.kr/jungpyung/index.html

 

                                              용산참사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바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운회(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최근 용산참사 단식기도 현장에서 일어난 경찰의 사제단 폭력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23일 '용산참사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바란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운회 주교는 5월 25일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을 찾은 용산참사 유가족 5명을 만나 위로하고, 지난 6월 3일에는 용산 화재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유가족과 지역주민을 위로한 바 있다.

한편 지난 3월 말부터 매일 저녁 7시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煉禱; 천주교에서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와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다음은 발표문 전문.


용산참사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바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최근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단식기도 현장에서 일어난 경찰의 폭력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가족들을 위로하며 단식기도하는 사제들에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말리던 주민들도 부상을 당했다.

6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철거현장 참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음은 십분 인정한다. 그러나 대치상황의 현장 분위기를 감안하고라도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현장에서 또다시 폭력 사태가 일어난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며 책임자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한다.

또한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용산참사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바란다. 특별히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하루빨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국정 정책에 있어 힘없고 약한 이들, 소외된 이들을 우선 살펴야하는 위정자들의 깊은 성찰과 변화를 기대한다.

다시 한 번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는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6월 23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교구장 대리
김 운 회 주 교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꽁치구이와 인문학

제목이 우선 눈에 확 들어왔다. 백원담 교수의 글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올바른 가치 지향의 제시를 본분으로 하는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9415&code=990509

 

(경향신문 2009.03.16)[경향포럼]꽁치구이와 인문학

 

우리 동네엔 꽁치구이가 유별난 밥집이 있다. 그 집 꽁치는 파랗고 탱탱한 살집이 일품으로 출출한 발길이 그 구수한 유혹을 떨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열흘 전 일이다. 자르르 맛깔난 꽁치구이 한 점을 막 집어들려는데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아줌마가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와 잔을 권하며 탄성처럼 말을 토한다. “돈벼락 좀 맞았으면….” 들어서면서부터 건장한 어깨의 아저씨와 대거리하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더니 이어지는 아줌마의 한숨소리. “우리 같은 사람 은행에서 돈 빌려주나. 사채를 썼거든요. 두 몸뚱어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지 싶었는데, 가게를 반으로 줄였지만 턱에도 안 차네요.”

성찰과 참 삶 제시해야할 인문학

며칠 후 걱정스러움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저씨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어깨는 아줌마를 찾아내라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협박이니 차마 앉아있기가 불안한 지경이다.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쪽인 이들 부부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때로 후줄근하게 들어서면 어김없이 그 멋진 꽁치구이로 오랜 친구보다 가깝게 일상의 무게를 나누어 지던 이들과 어느새 칠년지기가 되었건만 돌아오지 못하는 아줌마는 어디서 이 차가운 봄비를 홀로 맞고 있는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 생존조차 어려운 곤경은 비단 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만연한 병고, 보편적 피해양상이다. 최근 용산의 참사는 그 극명한 표현일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미명으로 불완전고용을 당연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전횡에 일자리를 잃기 무섭게 개발주의의 광풍에 평생의 업을 강제몰수 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가파르게 선 곳이 건물옥상이라는 사실. 거기서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해주어야 할 공권력의 탄압으로 죽음을 맞은 사회적 타살의 참상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오늘의 처지를 절박하게 타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올바른 가치 지향의 제시를 본분으로 하는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의 사회와 대학에서는 고고한 인문학자가 아니라 ‘교양 있고 조리 있는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수요가 더 크다. 인문 가치, 인문학적 상상력, 이런 것들은 경제의 문화화 과정에서 이윤창출을 높여주는 고감도 광고카피 혹은 문화 콘텐츠산업에서 상품가치로만 효용될 뿐이다. 그야말로 인문학의 존립과 인문학자의 생존 자체도 어려운 실정이다.

참담한 현실서 인문학은 어디에

그러나 TV 드라마조차 사람들에게 꿈을 꾸어라도 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인문학은 사회적 생존의 조타수로서 지배문화의 수동화논리에 끈질기게 대항하는 한편 돈벼락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데 부심해야 할 것이다. 지루하게 책임공방을 조장하며 생존전선을 무력화하는 정부의 무도함과 무책임함을 날카롭게 적시해내고 사람들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폭력으로 짓밟는 자본의 무한 전횡, 그것을 미화하는 안팎의 지배논리, 그 표상체계와 끈질기게 맞붙으면서 노동의 가치가 올바로 구현되는 희망의 사회상을 삶의 현장에서 찾아나서는 일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찰과 희망의 인문학이 아니라면 그것이 삼삼히 밥상에 올라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꽁치 한 마리의 살점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백원담 | 성공회대·중어중국학과 교수>

2009년 3월 2일 월요일

이윤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아직도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싸우고 계시는 유족분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도록 대책위와 함께
기금 마련 판화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3백점 한정 판매이고
가격은 3만원 입니다.
메일이나 목리마당(안부게시판)에 글남겨 주십시요.
 
miloyun@naver.com

 

출처: http://www.yunyop.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