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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월요일

봉하마을

2009년 5월 27일, 김해에서 올 가을에 개최될 예정인  제1회 청소년인문학읽기 전국대회 준비모임을 위해 김해를 방문했습니다. 준비모임이 끝난 뒤, 김해의 조강숙 팀장의 차를 타고 봉하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진영 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봉화산 뒤편으로 갔습니다. 비포장도로와 일제강점기에 만든 철길이 있는 길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는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산더미 같은 무를 쌓아놓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채를 썰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준 선물인양  국밥 한 그릇 다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와 젊은 처자께 여쭈니 대전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그 분들과도 함께 국밥 한 그릇, 쌀떡 한 점 나누어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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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사자바위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부엉이바위. 봉하마을 건너편 쪽 논두렁 길을 달려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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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쪽에서 차를 세워두고 만장이 늘어선 길을 따라 전국에서 모인 추모객들이 봉하마을로 걸어들어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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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부엉이바위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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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과 밥과 김치와 고기와 파와 콩나물과 고추가루와 마늘과 생강과 후추까지 필요할 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정성과 땀과 따뜻한 마음이 필요할 터입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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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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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두. 열심히 무를 채를 썰고 계신 봉사자분들. 뒷모습만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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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나오는 길에 다시 뒤돌아본 봉하마을. 산자락을 따라 만장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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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의 출처:http://saegil.or.kr/quaterly/sg02f/02fsermon.html

현재 김민웅 교수(목사)의 글입니다.

 

 

어떤 시작

- 요한복음서 6 : 8∼11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 즉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을 가지고 남자들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먹였다고 기록된 이 사건은 그 핵심을 보자면, 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보잘것없는 양식의 진정한 의미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성서의 본문은 이것이 예수를 따르던 무리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생명의 길로 이어지는 능력이 넘치는 출발점이 된 기쁨을 우리들에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들판에 모여 나사렛 예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던 사람들이 끼니때가 되자 먹을 것이 없다는 현실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공동체가 빵의 문제,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자 동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서로 마음에 평안을 얻고 사랑을 나누는 일에 희망을 품다가, 갑자기 현실적 어려움이 예기치 않게 습격하면 그 공동체에 위기가 발생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식량위기를 해결한 기적으로 여기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 후 사람들이 와서 나사렛 예수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는 것은 양식의 위기를 해결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그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사건은 빵의 문제에 부딪힌 말씀 공동체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위기는 빵이 없다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로 말미암아 그렇지 않아도 힘들게 모여 결속의 과정을 거치고 있던 말씀 공동체가 분해되고 해체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기초 공동체가 이상은 좋은데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이리저리 흩어지게 생긴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건의하기를 "이들이 각자 알아서 양식을 구해 먹도록 무리를 흩어 보내소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공동체 해체의 가혹한 현실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잘 나갈 때는 우리는 가족이요 하던 직장에서, 상황이 어려워지자 각자들 알아서 살 길 찾으시오 하고 쫓아내는 일을 우리 사회는 겪어야 했습니다. 실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발생한 현장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의 역량을 길러나가기 위해 고난의 과정에서 일치단결해야 할 공동체가 현실에 압도되어 모래알처럼 무너지게 된 것에 있었습니다. 이후 예수께서 이들 무리들을 오십 명 백 명으로 모여 앉아 식사를 하도록 하신 것은 빵을 나누기 편리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하신 것이라기보다는, 해체될 뻔했던 공동체를 생명의 양식을 통해 복구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질적인 위기는 사실 식량이 없어서도 아니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깨어져 나가게 되어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곧 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 그것은 단지 도전이 될 뿐이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 공동체의 역량은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됩니다.  

 

모인 무리들을 먹일 양식이 없다는 보고를 듣자 예수께서 너희들이 이를 해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당연히 이러한 현실을 해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근처에 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보면, 이 사건과 관련한 여러 가지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은 객관적인 정세를 들어 스승 예수를 설득하려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설득의 골자는 이러합니다. "날은 이미 이슥하고 여기는 빈들이며, 게다가 이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먹일 요량이면 무려 거의 일년 치 봉급을 다 털어놔도 힘든 판국인데, 그 돈이 또 우리에게 어디 있습니까?" 제자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예산을 들먹이면서 현실을 좀 똑바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하는 투가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공동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스승 예수에게 브리핑이랍시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거론한 현실의 조건들에 대해서 예수께서 무지하셨기에 "너희들이 해결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바로 여기서 우리는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것이다."라고 그동안 훈련받아온 제자들이 막상 현실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대한 신념과 자신을 저버리고 그들이 뒤집어엎어야 할 세상의 방식으로 복귀해버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들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해결하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영혼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문제를 풀도록 하라는 일깨움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밀라고 하신 것은 양쪽 다 얻어맞고 그냥 참고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른 뺨을 맞은 것이 현실이라면,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왼뺨을 내미는 것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있다는 일깨움입니다. 그 선택에 왼뺨을 한 대 더 맞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자기를 걸라는 것입니다. 실로 정작 위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문제 해결방식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갖지 못한 채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정신적 역량에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큰 병이 되고, 엄청난 역경과 고난으로 보이는 일일지라도 힘들이지 않고 풀어나가는 저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때마침 제자들이 발견했던 것은 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마른 생선 두 마리였습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이들이 직면해 있던 현실을 감당하는 것은 실로 턱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자 안드레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한 말은 이들이 처한 난감한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드레의 말은 소년이 가지고 있는 양식의 가치에 대한 현실적 평가를 의미합니다. 그것으로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들을 덮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미력하다, 소년이 내놓은 떡과 생선은 우리의 한심한 현실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등등 오병이어는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보다 절감하게 하는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은혜의 암호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현실의 자리에서는 막상 우리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부인할 수 없게 드러내주는 것이 된 것입니다. "아, 정말 큰일이로구나, 아니 어떻게 이것밖에 없나, 이걸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냐." 자꾸 이런 쪽으로만 가다 보면 소년의 떡과 생선은 "도대체 현실을 모르는구만."하는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낙심의 근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년의 양식이 별로 고맙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코 그리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까짓 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겠다고"하는 생각과, "이것으로 시작하면 되지."하는 마음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생과 사의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안드레를 비롯한 제자들과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것이 비록 현실의 눈으로 볼 때 미미하고 보잘것없게 여겨지더라도 거기에 우리의 감사와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가 되면 그로부터 새로운 가치가 발생하는 것을 믿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는 보잘것없는 오병이어가 감사하고,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오병이어가 불만과 좌절의 소재가 됩니다. 사람들은 실로 믿는 대로 삽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떡과 생선을 들고 감사하시며 그것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풍요하게 보여도 감사와 축복이 없으면 그것은 우리를 부패하게 하는 독이 되며,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감사와 축복이 넘치면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힘이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보리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이 아니라, 거기서부터라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대한 무지와 불신입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그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삶에는 그 어떤 것도 축복이 되나,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언제나 불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적은 것을 무시하고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에게 어떤 기적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가장 작은 겨자씨 안에도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담아놓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복됩니다.  

 

역경인 것 같지만 사실은 놀라운 성숙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불행인 것 같지만 사실은 축복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며, 끝인 것 같으나 실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현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마지막이다 싶은데 사실은 그것이 새로운 시작의 복된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되어 가는 겉모양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섭리의 비밀에 눈을 뜨면 우리는 고난의 자리에서 결코 후퇴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있는 역군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 세상에 오병이어의 존재로 내어놓고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시작을 이루어 가는 열정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현실에서 뚫어야 할 새 길이며, 그 길을 함께 가는 벗이 되는 감격이 또한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랑과 희망의 실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사건 이후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선포하시는 대목은 그가 누구인지를 말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로 다가오시는가를 고백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또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 앞에서 우리의 수가 적고 힘이 감당하기 어려운 듯해도 우리 자신이 이 영적으로 허기진 세상에 내어놓는 오병이어가 될 때, 그리고 그 일에 우리 자신의 감사와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로 어우러지면, 이 세상을 먹이고도 남는 사건의 출발이 될 수 있음을 뜨겁게 확신하는 감격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진정, 세상의 오만과 좌절을 넘어서 미미한 듯 한 것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은총, 그것을 알아보고 감사하는 능력을 풍족하게 가지는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서 그 어떤 경우이든 최선의 기회와 최선의 가치를 이루는 복된 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인생이 자신에게도 행복하며 뭇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감격이 넘쳐날 것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 한국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가 그런 감사와 믿음으로 충만한하루하루가 되어가기를 축원합니다.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

어저께 오후(2009년 5월 25일 오후)에는 정기용 선생님이 직원분과 함께 사무처에 오셨습니다. 김해기적의도서관 공간구성과 기본설계에 대한 심층 논의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2시간 정도  김해기적의도서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6월 10일에는 김해시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주최가 되어 김해 주민들께 김해기적의도서관에 대한 주민설명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정기용 선생님과는 저는 지난 2008년 1월에 함께 김해기적의도서관을 위한 부지답사를 한 바 있었고, 또 올 초에도 부지를 거듭 답사하며 김해기적의도서관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한창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아방궁'이라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저를 직접 설계했던 건축가로서 정기용 선생님은 언론 보도의 태도에 대해 무척 분노하시기도 하시면서 기자회견을 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오늘 기고문을 통해 밝혔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만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척이나 답답해 하셨습니다. 또 사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의견을 잘 따르는 건축주라고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번 기고문에는 아마도 신문 기고문의 매수 제한 때문인지 그런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경호원들의 생활공간을 별동의 건물에서 기거하지 않고, 하나의 생활공간 속에서 자리를 잡도록 요구하셨다고도 했습니다.

 

오늘 기고문을 통해 정기용 선생님은 "그것은 내 탓이다. ‘산은 멀리 바라보고 가까운 산은 등져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봉화산 사자바위와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하던 부엉이바위 가까이에 지붕 낮은 집을 설계한 내 탓이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가슴 아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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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기적의도서관 기본 모형과 도면을 검토하며 논의하고 있느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과 도정일 교수님. 사진이 무척 흔들렸습니다만 뜻깊은 사진이기에 여기에 남겨놓습니다. 사진: 안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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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정기용/건축가


“기자회견 하겠다” 간청하자 “참아라”
지붕 낮은 집을 원한 대통령

 

 

 
       정기용/건축가

5월 23일 토요일 하루 종일 찌푸린 하늘아래 가랑비가 흩뿌렸다. 가슴이 에린다. 끊임없이 눈물이 고인다. 부엉이바위는 계속 내 눈 앞에 나타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하고, 지금 떠나서는 안 되는 분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경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오늘 나는 고백해야만 한다. 그동안 가슴속에 꾹꾹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아야만 하겠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위해 나는 두 가지를 밝힌다. 한가지는 세상 사람들이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서 바라보는 봉하마을 사저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귀향한 한 농촌인으로서 ‘농부 노무현’이 꿈꾸던 소박한 세계를 알리는 것이다. 오늘의 이 비통함과 가슴 저리는 심경 속에서 우리가 갖춰야 되는 최소한의 예의는 고인에게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봉하마을의 사저는 내가 설계했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잘 안다.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은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봉하아방궁’이라는 말로 날조해서 사저를 비하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는 대통령에게 내가 나서서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참으라고 하셨다.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귀향 이유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 자원봉사도 하고, 자연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어 살았듯이,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는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 이동하는 방식을 권유했다.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하셨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확장한 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건축가는 안다. 건축주가 누구이며 집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지붕 낮은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봉하마을 주민들의 농촌소득 증대사업을 유기농법으로 전환시키고, 봉화산과 화포천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치유하며,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생태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하셨다. 재임 시절 풀지 못한 숙제 중 하나인 농촌 문제를 스스로 몸을 던져 부닥치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퇴임 뒤 일년 내내 쉴 새 없이 지속되었다. 마을 뒷산 기슭에 ‘장군차’도 심을 예정이었고, 마을 마당 앞뜰에는 특산물매장도 꾸리고 ‘노무현표’ 쌀도 팔 계획이었다. 특히 마을장터 지하 쪽에 작은 기념도서관 건립도 꿈꾸고 계셨다. 민주화운동 시절 당신이 가까이했던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 당시 젊은이들의 양식이었던 모든 책들을 모아 작지만 전문적인 ‘민주주의 전문도서관’을 구상하고 계셨다. 농사도 짓고, 자연과 생태를 살리고, 나아가서는 봉화산자락 부엉이바위 밑에 작은 동물농장을 만들어 청소년들과 함께 하려는 생각들이 바로 인간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던 소박한 꿈들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폭넓은 독서에 빠져 통치시절을 정리하며 집필 작업에 임하셨다. 독서와 토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즐기던 값진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대통령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것은 내 탓이다. ‘산은 멀리 바라보고 가까운 산은 등져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봉화산 사자바위와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하던 부엉이바위 가까이에 지붕 낮은 집을 설계한 내 탓이다.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그가 목숨을 던져 우리들에게 남긴 질문들을. 한국 현대사 속에 심연처럼 가로놓인 질곡, 멍에, 허위의식, 인간의 탈을 쓴 야수성들. 이 모든 것을 안고 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나는 순교라고 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나는 부엉이바위 밑에 만들 동물농장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 약속을 못 지킨 채, 지금 봉하마을로 내려간다. 대통령은 지금도 바로 거기에 계시므로.

 

정기용/건축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69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