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0일 월요일
문재인의 서재, 박근혜의 서재 / 김의겸
문재인의 서재, 박근혜의 서재 / 김의겸
문재인의 서재를 구경한 적이 있다. 첫 느낌은 ‘인권변호사, 맞네!’였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이 손때가 묻은 채 책장에 빼곡했다. 월간지 <말>도 창간호 무렵부터 쌓여 있었다. 74년도에 나온 <전환시대의 논리>도 눈에 띄었다. 문재인이 특전사 일병 시절 간 크게도, 장교에게 읽어보라고 건넸다는 당시의 특급 금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운동권 83학번’이라고 불렸는데, 그쪽 경력으로 따지면 문재인이 한참 선배인 셈이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딱딱하지만은 않았다. 시·소설 덕이다. 특히 웬만한 대하소설은 다 있는 듯했다.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도 있었다. ‘총선 징발’을 피해 달아난 뒤 덥수룩하게 수염 기르고 히말라야 산등성이를 어슬렁거렸던, 그의 낭만성이 그런 책들에서 배태되었지 싶다.
또 다른 점은 법률서적이다. 김윤행의 <형법각칙> 등 30년도 더 된 낡은 법서들이 제일 좋은 자리에 모셔져 있었다. 노무현이 떠올랐다. 80년대 말 초선 의원 노무현을 만나고 온 한 친구가 ‘실망했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노 의원이 “한국에서 혁명은 없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직 혁명의 잔열이 채 가시기 전이라, 그 친구의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보좌관 안희정은 “우리 세대는 혁명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민주주의를 깨쳤지만, 노무현은 헌법 교과서를 보며 민주주의를 고민한 사람이다. 기본이 다르다”고 해석한 적이 있다. 문재인이 한-미 에프티에이나 강정마을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절차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박근혜의 서재는 구경한 적이 없다. 대신 전여옥이 쓴 책이 있다. “박근혜의 지적 인식능력에 좀 문제가 있다 생각했다. 서재에 일단 책이 별로 없었고 증정받은 책들만 주로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기가 서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여옥은 기자들에게도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하고 준 책들밖에 없더라”고 흉을 보고는 했다. 자택을 가봤다는 후배 기자도 “침실까지 둘러봤지만, 서재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박근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단둘이 하는 건데도, 보좌관이 미리 써준 원고를 보면서 참 건조한 톤으로 답변을 이어가던 기억만 남는다. 두어달 전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보니, 그때의 어색함은 깨끗이 벗어버렸다. 국제부장 책상 위에 있던 여성 리더십 책을 보더니, “어째, 여성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좀 좋아진다고 하던가요?”라고 살갑게 물었고, 편집부장을 만나서는 “독자들이 기사 읽나요, 그냥 제목만 보죠. 제목이 제일 중요해요”라고 추임새를 넣을 줄도 알았다. 그는 책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악수하고 당내 중진들과 권력투쟁을 하면서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은 모양이다. 텔레비전 토론회를 보니, 대본을 외운 듯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민주진보 진영이 그런 박근혜를 ‘수첩공주’라고 비아냥대면서도 질질 끌려다닌다는 점이다. 다들 글줄깨나 읽었다지만, 죽어 있는 공부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며칠 전 체 게바라의 삶을 다룬 영화 <체 게바라: 뉴맨>을 보았다. 게바라는 총탄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게릴라전을 치르면서도 사상을 다듬고 믿음을 기록하는 데 쉼이 없었다. 늪지대를 건널 때도 책을 읽었고, 산악 행군을 하면서도 시를 읊었다. 소작인들 앞에서 외치던 토지개혁 얘기가, 그토록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실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당대의 민중들 가슴속을 파고드는 살아 있는 구호와 지식, 그 뜨거움이 그립다.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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