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일 월요일

건축가의 진짜 로망, '첫사랑' 아니라 '이곳'!-- <도서관 산책자> 저자 강예린·이치훈



건축가의 진짜 로망, '첫사랑' 아니라 '이곳'!
[인터뷰] <도서관 산책자> 저자 강예린·이치훈

프레시안 안은별 기자 인터뷰, 프레시안 2012년 11월 30일




건축가의 호기심, 사회로

프레시안 : 먼저 두 분이 어떻게 건축이라는 길에 몸담게 됐는지 듣고 싶습니다. 강예린 소장은 원래 전공이 지리였죠. 다시 건축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예린 : 관심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지리학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탐구하는 학문이고, 건축학은 그 안에서 물리적으로 구축되는, '작은 스케일'에 해당되는 세계를 다루니까요. 경관(Site)이라는 측면에서 겹치고, 양쪽 스케일을 오가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이렇게 살면 답답해서 죽을 지도 몰라'라는 위기감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웃음)

이치훈 : 처음 건축가란 꿈을 막연하게 가졌던 건 중학생 시절 서점에서 김수근(1931~1986) 작품집을 봤을 때로 기억해요. 경동교회 사진을 보고 굉장히 이상적이란 느낌을 받았고 앉은자리에서 그림도 그렸어요. 그 이후로 건축이란 꿈에 있어선 한눈을 판 적이 없지만 그 안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죠. 지금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때와는 많이 다른데, 그 생각의 변화를 제공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강예린 소장과의 만남이에요. 건축이란 일엔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자기 검증 작업이 필수적인데, 강 소장이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좋은 '필터링'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레시안 : 이 소장은 '경관 변화의 사회적인 조건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나와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이치훈 : 정확히 말하면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우리가 목격하는 도시 경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땅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이 존재하기 이전의 농촌에서 시작해 '땅이 분할되던' 역사적 순간들에 간여한 조건들을 탐구해 본 거예요. 과거에는 특정한 땅에 대한 소유권이 불분명했잖아요. 그런데 그걸 '이 땅은 내 땅, 저 땅은 네 땅'이라고 선을 긋는 역사적 지점들이 있는 거죠. 다른 나라에서는 그게 투시도나 풍경화와 같이 외부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아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보고 싶었어요. 강 소장의 관심이 땅에서 시작되어 필지에 세워진 하나의 건축물로 옮겨졌다면, 저의 관심은 반대로 필지 위에 세워진 건물에서 시작해 땅이 어떻게 잘라지게 되었는지, 어떤 속성을 가지게 되었는지로 이어진 셈이죠.

프레시안 : 책 쓰기도 두 분이 생각하는 건축의 사회성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강예린 : 건축가의 경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어떤 대상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많이 읽고 많이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아요. 사회적 조건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말이죠. 함께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 이름인 S.O.A.(Society of Architecture)도 건축 자체가 이미 사회의 한 부분의 표현이라는 생각에서 짓게 되었거든요. 그 출발이 저희에겐 도서관이었던 셈이죠.


도서관은 건축가에게 왜 매력적인가?

프레시안 : 건축가로서 도서관 건축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강예린 : 건축을 구분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그 고유의 기능보다 중요한 다른 요소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도서관이 흥미로운 점은, 굉장히 오래된 건물 유형이라 전형적일 것 같지만 사회의 조건이나 기대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전형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요즘 '평생 학습관'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이 많죠. 교육청 산하의 도서관에 이런 이름이 붙는데요. 실업률이 높은 시대에 잉여가 된 사람들의 시간을 어떻게 담아줄 것인가, 이후 어떠한 제2의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 하는,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것 이상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져요. 게다가 책이란 매체 자체의 속성도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도서관 하나 안에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이 있는 거죠.

프레시안 : 도서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면요.

강예린 : 졸업 후 몸담았던 건축사사무소 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곳 중심 광장 바로 옆에 로테르담 중앙도서관이 있는데요, 아침에 책을 반납하거나 빌리기 위해 가 보면 행색이 좀 허름한, 이민자나 노숙자 같은 분들과 줄을 함께 서야 했어요. 도서관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열리자마자 확 몰려 들어가서 서로 신문대 차지하고 그랬던 거죠.

그게 정말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어요. 한국에서 도서관 앞에 줄을 선 건 고등학교 때 교복 입은 애들과 같이 독서실 자리 맡기 위해 서 본 게 전부인데, 같은 줄 서기이지만 전혀 느낌이 달랐거든요.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서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는 게 놀라웠죠. 그 모든 사람들이 환영받는 모습을 보면서, '도서관이 수용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이치훈 : 제겐 책에도 실린 이진아기념도서관과 관련된 경험이 컸어요. 도서관을 설계한 한형우 건축가가 공모전에 참여했을 때부터 스태프로 함께 일하며 모형 만드는 작업을 도왔거든요. 실 설계부터 확대 모형 만들기, 그걸 실물로 확대시키는 과정까지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도서관은 아버지가 요절한 딸을 기억하고자 만들었다는 사연도 있지만, 건축 자체로서도 굉장히 잘 설계된 경우예요. 때문에 이 책에 실린 도서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해요. 이와 별개로 도서관이라는 '프로그램'에 건축가로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시애틀 공공도서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국내에도 외국의 도서관을 탐방한 책들에 간간이 소개된, 매우 유명한 프로젝트예요. 개념부터 시작해 완공, 이후 사용자들의 사용 모습까지 굉장히 인상적인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는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도서관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어린이실', '청소년 열람실', '간행물실' 이런 식으로 분류하지요. 그런데 이 도서관을 설계한 렘 쿨하스라는 건축가는 사용자의 안정도를 0부터 100까지로 나누어 그 스펙트럼에 따라 공간이 가져야 할 속성을 구분했어요. 가령 가만히 앉아 있는 게 0이라면 댄스 교실에서 춤을 배우는 게 100인 겁니다. 그 속성을 도서관에서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과 대응시키면서 힘 있는 건축 언어와 명확한 방식으로 공간을 조직해 냈어요. 그렇게 만들어지니까 운영도 전에 없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분위기도 너무나 활기찼던 거지요. 제가 꿈꾸는 작업도 바로 이런 작업이에요.


기억과 함께 늙어가는 곳

프레시안 : 책에서 열네 곳의 도서관을 다루었어요. 정독도서관처럼 익숙한 곳도 있고, 농부네텃밭도서관, 관악산시도서관, 달리도서관 등 아주 작은 규모의 생소한 곳도 있습니다. 수많은 도서관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신 건가요.

이치훈 : 처음 책 제안을 받았을 때는 흥미로웠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한국에서 '건축'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할 만한 도서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도서관에 가보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 기획의도였는데 자꾸 안 좋은 부분을 뜯어보게 되니 방향이 달라지는 걸 느꼈던 거죠. 그런데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선택한 이진아기념도서관과 광진정보도서관을 탐방한 이후 도서관이 지닌 '테마'에 집중하게 되면서 다른 도서관들도 의미 있는 테마를 중심으로 선택하게 되었어요.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옛 서대문형무소 옆이라는 위치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건물 구조 때문에 '독서하는 개인'을 만드는 훈육의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주요 테마였고, 광진정보도서관은 지역 네트워크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도서관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주요 테마였거든요.

프레시안 : 그런 맥락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했던 도서관은 3장의 부산시립시민도서관과 10장의 정독도서관입니다. 3장은 '도시와 함께 나이 드는 도서관', 10장은 '어른들의 도서관'이 테마죠. 둘 다 오랜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식민지 시기부터 독재 정권 시기에 이르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어요. 이 두 도서관이 근대 건축물이자 역사의 보고로서 어떻게 나이 들어 있는지를 비교해 설명해 주신다면요.

강예린 : 정독도서관은 입지 면에서 일상적인 도시 생활의 루트 내에 위치해 있다는 큰 강점이 있지요. '사용할 수 있는' 문화재라고 할까요. 부산시민도서관은 해안가에서 내륙인 동광동으로, 다시 더 중심지인 부전동으로, 또 성지곡 산자락으로 세 번을 이사했어요. 식민 통치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이유 중의 하나였을 거라고 짐작되는데, 결국에 접근성은 상당히 떨어지게 된 거죠. 그렇지만 부산시민도서관은 부산이란 특정 지역의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고 그 기록을 계속 고증하고 번안하는 전문가들이 계시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2만여 점 넘는 해방 전 자료들과 근대 한일 외교 관계 관련 자료, 국회 비소장 자료 등 이곳 아니면 알 수 없는 자료들이 있어서 일본 대학 교수들도 오고 있다고 해요. 이런 의미에서 2008년에 '지역 대표 도서관'으로 선정된 만큼, 지역 자료 창고로서 늙어가는 법이 이 도서관의 가장 큰 고민이라 할 수 있어요. 정독도서관은 서울 대표 도서관은 아니니 도서관 자체의 역사에 집중하면 되지만, 부산시민도서관은 부산 역사를 지탱해야 하는 셈이죠. 특히 매년 4만 종이나 되는 새로운 도서가 출판되는 상황에서, 도서관을 확장시키지 않으면서도 많은 지식을 담아내기 위한 '공동 보존서고'가 이야기되고 있어요. 지역 내의 도서관들이 모두 똑같은 책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각 도서관을 특성화·전문화시키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아카이브 체계를 구축하는 거죠.

이치훈 : 정독도서관 주변에는 갤러리나 박물관 시설이 많다보니 디자인 혹은 미술 관련 전문 도서관으로 변모시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고, 그 자체가 교육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보니 교육 쪽으로 특성화시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정독도서관이 위치해 있는 공간의 잠재성이 워낙 커서 공공적인 쓰임새로 남아 있는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고, 그만큼 도서관 전체를 포괄하는 마스터플랜이 이야기되었으면 좋겠어요. 부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정원은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도서관 입구의 오래된 건물은 무슨 기능을 할 건지, 정독도서관도 어떻게 늙어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죠.

프레시안 : 국립디지털도서관을 다룬 7장도 재미있었습니다. 서가 없는 도서관에 들어가는 행위를 로그인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미래에는 이처럼 종이책 독서 행위가 금지된 디지털도서관이 더욱 중요해질 텐데 아쉬웠던 부분,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이치훈 : 현 시점에서 디지털도서관을 높게 평가하긴 힘들 것 같아요. 국립디지털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청소년어린이도서관과 함께 국내 3개인 '국립도서관' 중 하나고, 그래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이 한계를 계기 삼아 진일보한 건축을 선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게 아쉬워요. 국립중앙도서관과는 대조적인 언어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립도서관으로서의 권위나 수준 높은 시설을 구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해서인지 상당히 '럭셔리'한 건물이 되고 만 거지요. 정해진 프로토콜을 따라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경험 자체는 흥미롭거든요. 그런데 그 경험이 전부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거대한 공간을 그대로 남겨두었는데, 그 빈 공간에다 더 다양한 얘깃거리들을 끼워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죠. 엄청나게 큰 공간이 한눈에 다 읽혀버리기 때문에 재미가 덜하다고 할까요. 뭔가 한눈에 읽히지 않는 곳, 나만의 공간, 이런 것들도 있어야죠.

한국 도서관에 없는 것 vs. 있는 것

프레시안 : 도서관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한국에서 그게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강예린 : 해당 지자체로의 인구 유입을 이끈 순천 기적의도서관을 포함해서 '기적의도서관'의 성공이 회자되는데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도서관을 운영할 사람들과 도서관에 관심 있는 지역 사회 일원들이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운영하는 주체와 감시하고 서포트하는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잘 작동한 거죠. 물론 정기용이라는 헌신적인 건축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보통은 그런 대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답답한 것 같습니다. 어떤 공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논의는 없고 열람실은 전체 면적의 몇 퍼센트, 좌석은 몇 개 이상, 간행물실은 몇 제곱미터 이렇게 숫자로만 계산되는 거죠. 만약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관련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치훈 : 도서관이 마지막 남은 공공의 영역이라고들 하잖아요. 실제로 공공시설 중에 사용자가 이용하는 시간이 가장 길고, 그래서 사용자가 발언할 기회를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게 도서관이거든요.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에 비유하면 쉽게 다가오는데, 주택을 지을 때 건축가가 실제 거기에 살 사람이랑 반드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도서관도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이 건축 과정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공공 건축이라면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접근 통로를 반드시 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독서실 늘려 달라는 게 주된 요구가 되더라도요. 한국에서 도서관은 여전히 동사무소 같은 일반적인 공공 기관 건물 가운데 하나로 발주되고, 그러다보니 관심 있고 재능 있는 건축가들이 참여할 기회도 차단되어 버리지요.

프레시안 : 이 책엔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등장해요. 도서관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는 역시 사람들이죠.

강예린 : 초기에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돌파구가 되었던 게 광진정보도서관에서의 경험이었어요. 광진정보도서관은 제가 어릴 때 강을 바라보며 책을 읽었던 경험 때문에 막연한 이미지로 선택했던 곳이었는데 알고보니 거기에 도서관의 운영을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오지은 관장님이나 도서관친구들의 여희숙 선생님 같은 분들이요.

이치훈 : '프레시안 books'에 실린 여희숙 선생님 인터뷰도 봤어요. (☞바로 가기 : "도서관 2000개를 지으면, 대한민국이 '확' 바뀐다!") 도서관이 2000개면 잘 팔리지는 않아도 꼭 필요한 책들이 적어도 2000권은 소화되므로 출판 시장에서도 선순환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서 한국의 행정동 수를 조사해 '도시와 도서관'이란 주제로 생각을 전개해보기도 했지요.

강예린 : 도서관을 바라보면 서점도 보이고 출판계도 보이잖아요. 도서관 운동 하시는 분들도 어떻게 하면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분들인 거니까.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독서 생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하러 갔다가 머리를 세차게 두드려 맞은 기분이 들었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얘기만 쓰게 되었죠. (웃음)

이치훈 : 저희들은 그분들 통해서 도서관을 읽어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도서관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고 누가 무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지 등 도서관의 물리적인 구성 말고도 도서관을 실제 움직이는 인적 구성을 깊게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요.

광진정보도서관의 경우, 거기서 기획한 행사에 들어가기 위해 이용자들이 새벽부터 줄을 선대요. 결국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장서의 개발만큼 중요한 사서의 과제인 것 같아요. 사서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이용자의 경험치가 확대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시 도서관을 찾게 되는 거죠.


도서관은 진화한다 

프레시안 : 현재 진행 중인 '우포자연도서관' 작업도 이 책이 만들어준 인연으로 하게 되신 거죠? 어디까지 진행되었나요?

이치훈 : 1년 넘게 한 설계를 끝내고 이제 막 착공 시작했어요. 보고서를 써서 시드머니(seed money)로 마을기업 지원을 받았거든요. 이제 공사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이런 취지의 일을 하고 있다'라는 홍보를 해야 해요. 우포 이야기는 하자면 끝도 없어요. (웃음) 계속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완공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실내만 한 50평정도 되는데 1층엔 도서관, 2층엔 게스트하우스가 마련될 거고요. 완성된 뒤에는 우포늪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생태 교육과 대안적인 삶의 공간이 되어주리라 예상합니다.

강예린 : 우포에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온 분이 자기 집 행랑채를 생태교육을 위한 서고로 개조하고 싶다고 한 게 발단이었는데, 가보니 '빌려 쓰는' 집이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 서울로 올라왔죠. 그런데 이 분이 결국 방치되어 있는 창고를 본인 돈으로 구입하신 거예요. (웃음) 다시 가서 보니 이 창고와 주변 공간이 가진 가능성이 높았고, 방법을 모색하다 다양한 모금 계획을 세우면서 가게 된 거죠. 우포의 환경운동 자료나 철새 모니터링 자료가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그런 장점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고, 그래서 이야기가 굉장히 커요. 그동안 지역 주민과 환경운동가들 사이의 워크숍, 작은 도서관의 네트워크를 위한 도서관계 분들과의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설계가 수십 번 바뀌었고요. 벌써 '우포자연도서관 친구들'도 만들어졌어요. 수많은 네트워크가 얽혀 있죠.

프레시안 : 에필로그에 핀란드중앙도서관 공모전에 응모했다고 썼어요. 혹시 결과가 나왔나요?

이치훈 : 오늘(26일) 결과가 나왔는데 떨어졌어요. 아쉽기는 하지만 응모 자체가 아주 큰 경험이 되었기에 크게 개의치는 않습니다.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북유럽 쪽에서 도서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 기대치가 굉장히 높거든요. 그러니 건축이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복합적이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지요. (핀란드중앙도서관의) 응모 요강에서는 도서관은 "정신적인 자극의 원천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훌륭한 안내서이자, 매혹적인 이야기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서관 산책자> 247쪽) 이 공모전에 전 세계에서 600개 가까운 팀이 응모했다고 하는데, 그것만 전시해도 엄청난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도서관이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담론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공공시설 건축 응모전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요. 세종시에 세워질 네 번째 국립도서관과 국립 대통령기록관 건축을 놓고 공모전을 했는데 응모한 팀은 10개도 안 되고 결국 당선된 팀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설계사무실이었다고 해요.

프레시안 : 많은 분들이 한국의 독서 정책은 결국 도서관 정책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도서관에 너무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도서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강예린 : 뭐라도 될 수 있는 게 도서관인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보다 기대하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아요. 가지고 있는 수용 능력에 비해 아직 많은 걸 발휘하지 않은 것 같고요. 반상회 같은 지역의 네트워크가 거의 소멸된 상황에서 도서관은 유용한 네트워크 툴로 기능할 수 있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장이 될 수도 있죠. 한국에선 워낙 척박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은 훨씬 더 많이 더 크게 바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기대를 아무리 해도 모자라죠!

이치훈 : 도서관은 역사 속에서 그 기능이 계속 변했잖아요. 과거에는 아주 일부의 학자들이 숙식을 하면서 연구를 하는 공간이었고, 어떤 시기에는 종교적인 매체로서 기능하기도 했죠. 현대 사회에서 도서관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오픈 투 퍼블릭'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자기 거실처럼 쓸 수 있는 공간, 열려 있고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간, 뭘 요구해도 무방한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계속 요구하면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또 도서관이 변하게 되고, 그러면서 제대로 된 순환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만 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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