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책은 공공재다


책은 공공재다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올해 출판계 실적은 말이 아니었다. 할인 전략과 구매 편의성으로 승승장구하던 주요 인터넷서점들까지 1997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매출이 ‘5% 안팎 감소’로 마감될 전망이다. 도서 구매가 줄면서, 앞으로 그 하락폭은 더 커질 개연성이 높다. 오프라인 서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빙하기를 맞은 것처럼 대다수 동네서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출판산업 침체와 가격경쟁으로 인한 시장질서 왜곡은 공력이 들어가는 책의 발행종수와 발행부수를 동반 하락시켰다. 출판사가 의욕적으로 좋은 저자를 찾고 완성도 높은 기획과 편집에 투자할 여력이나 판로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독자들(국민)이다.

올해 출판계는 출판 생태계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도서정가제 확립, 공공도서관 및 도서구입비 확충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최소한의 산업 기반 유지를 위한 정책적 관심을 촉구한 것이다. 문화 선진국이거나 문화입국을 지향한다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책의 경제와 가치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 수요의 획기적 증대 없이는 책 생태계의 고사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책에 대한 수요를 높이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가계(개인)와 법인(기업 등)의 도서구입비에 대한 세제 지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독서의 해’를 맞아 독서 수요 창출을 위한 역점 추진 사항 중 하나로 이를 들었다. 이 또한 지난 9월 발표된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의 맨 첫번째 항목으로 제시된 바 있다. 국민의 도서구입비 부담을 줄이고 독서문화를 진작시키며, 출판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책 생태계의 선순환 유도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같은 기조에서 문화부가 지난 6일 개최한 정책토론회 때 박종수 교수(고려대 조세법센터)는 주제발표를 통해 몇 가지 세제 지원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독서 시민단체나 출판계 입장과는 달리, 세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세수 감소나 과세 형평성 논리를 들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도서구입비의 세제 혜택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문화부의 전향적인 독서진흥 정책이 앞으로 예산 부처의 반대 논리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책과 관련된 조직이나 언론, 일반 독자들의 성원이 뒷받침되었을 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일관되게 도서정가제에 반대해 온 공정거래위원회나 도서구입비 세제 감면에 반대하는 기획재정부의 공통 인식은 책이라고 해서 특별히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국민 세금을 들여 운영하는 도서관, 책의 구매 가격을 낮춰주는 부가가치세 면세, 언론과 사회가 벌이는 수많은 독서 권장, 독서문화진흥법 등은 다른 어떤 상품에서도 볼 수 없는 ‘문화 공공재’에 대한 오랜 사회적 합의의 소산이다. 책은 일반 소비재와 다르다는 증거들이다. 우리 사회가 좀더 성숙하고 창의적인 나라로 가기 위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독서복지’의 국가경영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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