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일 월요일

[김종철의 수하한화]말 따로, 행동

[김종철의 수하한화]말 따로, 행동 따로


번개시장에는 번개가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고

정치판에는 정치가 없네

이것은 작고한 시인 이선관이 쓴 ‘없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절로 웃음이 나는 유머러스한 작품이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우 심각한 ‘진실’을 내포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선관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는 비근한 일상적 경험이나 하찮은 사물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투박한 언어로 언급하다가 의외의 순간 시대와 사회의 근본 모순과 어둠을 비수처럼 날카롭게 폭로하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로수에 전등을 달아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장면 앞에서 시인은 돌연 나무들의 편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시여/ 당신 아들 탄생도 좋지만/ 제발 잠 좀 자게 해주십시오.” 구세주의 탄생을 기린다면서 정작 나무라는 피조물에 대한 배려는 털끝만큼도 없는, “말 따로, 행동 따로”의 타락한 현실에 대한 이보다 더 간결하고 힘찬 항의의 목소리가 있을까.

이선관은 아직 세상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찬찬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전혀 시적이라고 할 수 없는 투박한 언어를 통해서 뜻밖의 정신적 고양 혹은 개안을 경험하는 순간이 허다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 좋은 시, 좋은 문학이란 치졸한 자기현시나 감상적인 말의 잔치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시인이 평생 뇌성마비를 앓았다는 사실, 극빈 속에서 홀로 자식을 키우며 실로 고달픈 나날을 지냈다는 사실, 평생 출생지를 벗어나 본 적 없이 ‘협소한’ 생을 보냈다는 사실 등등을 알면 그의 시와 삶에 대해 경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선관은 이미 산업화 초기인 1970년대 중반에 마산 앞바다의 생태적 죽음을 예리하게 묘사한 시 ‘독수대’를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시인’이 되었다. 비록 육신은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시야는 일찍부터 세계적인 보편성을 향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선관의 생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가 지녔던 이 ‘세계적 시야’의 원점은 다름 아닌 4·19혁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그는 4·19를 촉발시키는 데 기여한 3·15 마산의거에서 데모대에 씩씩하게 합류했고, 그것은 이후 그가 민주주의와 통일, 평화, 환경 등과 관련하여 한국과 세계의 정치현실에 부단히 치열한 관심을 갖고 다가가는 사색의 원점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시대의 모순과 사회적 정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그의 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1987년 6월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은 연세대 학생 이한열의 사망소식을 듣자 저녁을 먹다가 시인은 그 자리에서 마치 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공공심은 지식인이 갖춰야 할 기본적 덕목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공공심이 시인에게는 철저히 육화된 것이 아닌 한 무의미한 것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좋은 시는 궁극적으로 타자, 특히 약자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거의 본능적인 공감능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선관은 우리 시대의 탁발한 시인 중의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는 “씨알 한 톨/ 흙 알갱이 하나/ 물 한 방울/ 공기 한 모금/ 햇빛 한 뼘”의 소중함을 설령 우리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에게는 “손녀가 할아버지 등을 긁어 준다든지/ 갓난애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빤다든지/ 할머니가 손자 엉덩이를 툭툭 친다든지/ 지어미가 지아비의 발을 씻어준다든지/ 사랑하는 연인끼리 입맞춤을 한다든지/ 이쪽 사람과 위쪽 사람이/ 악수를 오래도록” 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 수 없다.

행복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강렬한 것은 이 세상에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를 할 때도 이선관은 감상에 젖거나 수다를 떨지 않는다. 그는 그냥 “가정집마다 한두 대의 전화/ 이천만 대 이상의 휴대폰/ 그러나/ 하루에 전화 한 통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뚝뚝한 말이지만, 그 속에 오히려 측량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담겨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생명 가진 것, 특히 버림받거나 소외된 약자의 존재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당연히 정의로운 정치에의 갈망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는 흔히 위선과 거짓의 정치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역겨움, 증오감을 표출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곳곳에서는/ 칠 초마다 어린이가 한 명씩 굶어죽는데/ 서울 부자동네 국회의원이 단식을 하신단다/ 제발 웃기는 짓 좀 그만 하시라.”

시인 이선관이 간경화로 숨을 거둔 지 7년이 흘렀다.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해마다 가을이면 마산의 창동에서 열리고 있다. 11월 초 나는 시인과의 개인적 인연도 있어서 거기 참석했다. 행사 전 창동시장 일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실은 그곳은 어린 시절 내가 어머니를 따라 많은 시간을 보낸 전통시장이기도 하다. 실로 몇십년 만에 둘러보다가 나는 비통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시장에는 그 옛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 이게 시장인가 싶을 만큼 썰렁하기만 했다. 전쟁 직후였지만, 내 어린 시절의 이 시장은 언제나 사람이 붐비고, 설명하기 어려운 자유와 풍요와 명랑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의 외형은 지붕이 설치돼 있는 등 예전에 비할 바 없이 현대화되었으나 전체 분위기는 누추함과 빈곤이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치명적 질환은 부의 양극화임에 틀림없다. 이 현상은 방치하면 곧 사회 전체의 공멸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 사실상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 할 수 있는 여당 대통령 후보도 입만 열면 ‘국민행복’과 서민생활의 안정에 헌신하겠노라고 공언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최소한이나마 보호하려는 법안의 국회 상정이 여당에 의해 좌절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정치지도자의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악습이 박멸되지 않는 한, “정치판에 정치가 없는” 괴기스러운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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