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6일 월요일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 한도시한책읽기운동/ 이용훈 2003/11/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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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민들이 책 한 권을 같이 읽는다면!’

최근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위한 실험이 한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그 실험은 일단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One City, One Book)’으로 불린다. 지난 10월 27일 서산시에서는 몇 개월의 준비를 거쳐 ‘서산시민들이 책 한 권을 함께 읽는다면’이란 슬로건을 걸고 11월 한 달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독서운동을 시작했다. 15만명에 가까운 서산시민들이 뭐 책 한 권을 정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기로 했다고?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이 운동은 또 뭘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시민들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음으로써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아이디어는 우리가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다. 이 아이디어는 미국 시애틀의 한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낸시 퍼얼(Nancy Pearl)이라는 사서가 5년 전에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따라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만약에 온 시애틀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서관이 주도해서 시민들이 모두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을 시작된 이후, 지금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38개주, 90여개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캐나다와 호주,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 새로운 독서운동은 한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공통의 화두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대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개개인이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물론, 참여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이웃과의 관계 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만듦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간 상호 이해와 연대의 틀을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온 여러 형태의 독서운동(대표적인 것으로는 최근 시작된 북스타트 운동이나 문화관광부의 북토큰 사업, 책과 저작권의 날 행사 등)은 우리나라도 도입되어 추진되고 있는데, 유독 이 ‘한 도시 한 책’ 운동은 그 성공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입이 되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독서운동 방식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일정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낯설고 힘들어 보인다. 지금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모 방송프로그램이 처음 책을 선정해서 읽자는 내용을 방송했을 때, 가장 많은 비판이 책을 선정해서 읽게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책을 선정하고 읽기를 권하는 일이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일정한 공공 단위에서 특정한 책을 선정해서 다함께 읽자고 하는 운동은 처음부터 성립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도입을 늦춘 핵심적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아마도 토론이라고 하는 독서방식에 대한 낯설음이 또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주장, 이념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한다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아직도 지시와 통제에 더 익숙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자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책도 많이 안 읽는데 거기에다가 토론까지 하자고 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독서운동을 기획하고 진지하게 이끌어 갈 공공적이면서도 의지와 열정을 가진 추진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공공도서관이 주로 맡고 있다. 그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공신력있고 실제적인 독서 프로그램을 추진할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도서관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함으로써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을 아우르도록 하면서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지역사회 속에서 독서활동에 있어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이 주도했기 때문에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확산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아직 이러한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이 독서운동 도입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같은 여러 이유로 이 프로그램의 참신성과 실제적인 성공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독서운동이자 지역문화 프로그램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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