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4일 화요일

“아이들의 ‘미래의 문’ 닫힌 순간, 우리 지식이 완전히 죽은 것”/경향신문 김여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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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세월호 시대의 문학’·‘기억·공감·상상하다’ 등 잇단 토론회

▲ “서정시가 아니라 아직도 리얼리즘이 가능한가 물어야 할 지경”
김애란의 ‘입동’·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 실천적 작품에 주목
사건의 성찰을 통해 사회 전체가 숙고케 하는 것이 작가의 책임


“(세월호에서) 아이들의 ‘미래의 문’이 닫힌 그 순간, 실은 ‘우리의 지식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는 왜 그 배가 그렇게 침몰했고, 왜 구하지 못했으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죽은 아이들에게, 남은 유족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남상욱 인천대 교수)

4·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지난 10·11일 ‘세월호 이후의 문학’을 고민하는 자리가 연달아 마련됐다. 10일 세교연구소는 서울 대학로에서 ‘세월호 시대의 문학’을 주제로 공개 심포지엄을 열었고, 11일 문화예술인들의 ‘세월호 연장전- 예술, 진심을 인양하라’가 펼쳐진 광화문광장에서 문인들은 ‘기억하고, 공감하고, 상상하다’를 기치로 토론을 벌였다. 

지난해 11월 서울도서관 3층에 마련된 ‘4·16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 | 경향신문 자료사진
참사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왜?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정황과 원인, 책임 등이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봤다. 시인 함성호는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타인의 아픔에 끝없이 수렴하며 다가가는 방법은 오로지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거기서 문학의 자리가 마련된다”며 “그러나 사건의 전후 사정을 헤아릴 근거가 없기에 문학적 상상력이 이토록 무능해 보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세월호 이후의 서정시가 아니라, 세월호 이후에도 리얼리즘이 가능한가를 물어야 할 지경”이라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이 사건의 가장 특이한 본질은 사건과 관계된 모든 1차 정보가 증발되거나 은폐 중이거나 조작 혐의가 짙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억의 내용 자체를 정확히 갖고 있지 못하면서 기억해야만 한다는 ‘기억의 막연함’에 관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며 “지금 한국의 작가들이 비상한 작가적 책임과 강박, 문학적 실천에 관련해 특수한 곤경에 놓이게 된 것도 이 부분과 관련된다”고 했다. 소설가 이시백은 “유족들이 작가에게 기대하는 소임이 슬픔을 공감하는 애도에 머무르는 것인가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 애도와 애상의 감성적 수준을 뛰어넘어 참사가 ‘왜 일어났나’를 날카롭게 성찰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화작가 김하은은 “동화는 소설보다 훨씬 어렵다. ‘왜 못 구했냐’고 묻는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며 “글과 담론, 문학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들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을 계속 묻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서영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문인들의 실천과 작품을 살폈다. 그는 김애란의 ‘입동’에서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 보험회사 직원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에 주목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용인하고 돈으로 잴 수 없는 죽음을 보상하는 합의점을 계산하면서. (…) 그렇게라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는 죄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죄다. 보험금과 매매금과 대출금으로 아슬아슬하게 생계의 타산을 유지하고 생활의 안정을 측정하면서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부모의 삶이 아이의 죽음을 모욕하는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씨는 또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등 현대사의 국가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 최근 다수 창작되는 현상에 비견해,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행위가 사고 당시 기억의 편린, 죽은 아이들의 물품이 기록되는 것만은 아닐 터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 제대로 묻지 못했던 것, 유예된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반복된 현재로 다시 읽어내야 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국가에 대한 관성적 믿음과 그로 인해 반복돼 온 지배의 메커니즘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유가족들에 주목해 “4·16 이후 시를 보여준 것은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활동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조정환의 <예술인간의 탄생>을 인용해 “‘가대위’는 그 어떤 예술가 개인이나 집단도 수행하지 못한, 또 수행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실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새로운 삶, 새로운 시간, 새로운 관계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전업적 작가들이, 아니 우리 사회 전체가 다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문학의 모습에서 우리의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남상욱 인천대 일문과 교수는 주제 발표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 문학- 새로운 윤리를 위한 여정들의 흔적’에서 지진으로 죽은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라디오 전파에 실린다는 설정의 일본 소설 <상상라디오>(2013)를 소개했다. 그는 “후쿠시마 이후의 문학은 사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며 “공동체의 안전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들의, 역사에 기재되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서만 담보될 수 있음을 후쿠시마는 환기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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