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일 수요일

張三李四의 글쓰기 /하응백/국제신문 칼럼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50401.22027192012


영화 '국제시장'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저절로 눈물이 나서 주체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다른 하나는 다 알고 있는 그렇고 그런 뻔한 스토리여서 실망했다는 반응이다. 이런 상반된 반응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이야기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우리 자신이 이야기 속에 투영되었으므로 눈물이 났다는 것이고,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식상하였다는 말이 된다. 

'국제시장'이 히트를 치기 전인 지난해 10월 경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 친구 180여 명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 '카카오 톡 대화방'에 직업이 의사인 한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수필을 올렸다. 그 글을 읽은 많은 친구가 칭찬을 하자 항공사에 근무하는 한 친구도 자신의 숨은 이야기를 올렸다. 여러 친구의 칭찬이 이어졌다. 사람이란 타인의 인정(認定)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글을 올린 친구들이 잔뜩 고무된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런 현상을 보면서 전문 문필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글을 쓰고 출판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필자가 '대화방'을 통해 공개적으로 친구들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써서 책 한 권 내자"고. 

처음에는 몇몇 친구만 호응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개 1960년생이 주축인 친구 30여 명이 순식간에 필자에게 글을 보내왔다. 한 친구는 자기가 키가 매우 작아서 힘들었던 학창 시절과 결혼 과정의 이야기를 써서 보냈다. 성(姓)이 진씨인 이 친구는 키가 큰 처녀와 연애를 하다가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하자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진(긴)서방 델고 온다 캐서 봤더니 짧은 서방"이어서가 반대 이유였다. 물론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을 감행했고 아들 둘을 낳아 크게 키우며 잘 살고 있다. 이 글 제목이 '조롱박의 반란'이다. 친구의 양해를 구해 그 글을 대화방에 올렸다.  

그 무렵 한 친구는 자기 자랑 이야기를 보내왔다. 필자는 그 친구에게 글을 돌려보내면서 "너 자랑 하지 말고 너의 가장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라"고 압박했다. 그 친구가 다시 글을 보내왔다.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기 전 동네 노름쟁이였던 아버지 이야기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써서 보내왔다. 

이 두 이야기를 친구의 동의를 받고 '대화방'에 공개했더니 다른 친구들의 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참여하는 친구들의 수도 점점 불어났다. 50명을 넘어서자 만 55세 기념으로 55명을 채우자 했더니 58명으로 마감되었다.

책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열띤 토론을 하고 찬반 투표까지 거쳐 확정된 제목이 '55세 고교 동기들의 58가지 인생이야기'였다. 책이 출간되자 여러 언론사에서 서평을 내보냈다. 친구들은 마냥 신나서 오늘은 어디, 오늘은 어디 하면서 확대 재생산을 해나갔다. 언론사에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다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50대 중반 아저씨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통하여 어떤 가시적인 일을 했다는 점, 둘째는 그 속에 담긴 인생 스토리가 영화 '국제시장'처럼 익숙하면서도 파란만장했다는 점이다.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십시일반으로 모금한 돈으로 출신 고등학교 재학생 전원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하기로 하고 교장선생님을 초대해 전달식을 가졌다. 한 친구는 평생 살면서 모교에 기증하는 일도 해 보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출판사로 영화 홍보사에서 연락이 와서 58명의 저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 시사회 초대장을 받기도 했다. 책 한 권 내면서 우리 시대의 50대 아저씨들은 색다른 경험을 해 본 것이다.  

58가지 인생 스토리에는 별게 다 들어 있지만 공통적으로 매우 진솔한 것이 특징이다. 한 친구는 결혼도 안한 딸이 임신을 해서 속상했지만, 결국은 딸에게 배냇저고리를 사다주고 사위될 녀석 등짝을 몇 대 치고 결혼시켰다는 이야기, 대형 의류 쇼핑몰을 기획하다 부도가 나서 파산한 다음 국숫집을 차려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 IT산업 현장에서 '짐승처럼' 일한 이야기 등, 50대 중반이 겪은 삶의 여러 모습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전문 작가들의 에세이보다 오히려 삶의 무거움이 더 묻어 나와 필자는 친구들의 글을 편집하면서 눈시울을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글을 쓰면서 모두들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게 바로 글쓰기를 통한 자기 성찰이다. 글은 전문 문필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계기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글쓰기, 그 자체가 인문학의 융성이다.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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