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7일 화요일

[한기호의 다독다독]‘창조경제’와 학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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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에 물을 한두 번 주고 마는 것은 아예 물을 안 주는 것보다 못합니다.’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교육부의 야심찬 계획 아래 진행된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이라는 마른 가뭄의 단비와 같은 기회로 이제 막 싹을 틔우고 뿌리가 땅속으로 뻗어나가려는 학교도서관이 결국 잎이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지 못한 채 이대로 성장을 멈추어야만 합니까? (…) 제발, 튼튼하고 늘 푸른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자라게 될 또 다른 수많은 꽃과 새싹들을 생각하여 계속적으로 물을 뿌려주시고 잡초를 뽑아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느 분이 학교도서관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블로그에 쓰신 글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다소 편차는 있지만 전국 각급 학교 도서구입 예산의 40% 정도가 삭감되었습니다. 작년 11월21일부터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어 납품가가 오르게 되었으니 책 구입 예산이 사실상 절반가량 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도서관 또한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라는 시대착오적 정책을 도입하기는 했어도 2009년 초 경기 진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전방위로 투여하면서 전국의 초·중·고교에도 1000만원 내외의 도서구입비를 지원했습니다. 그것도 상반기 중에 집행하라고 압박했습니다.

그게 당시 위기에 빠진 출판시장에도 가뭄의 단비 역할을 했지만 그 효과가 그뿐일까요? 지금 국내 소비시장이 얼어붙어 거의 모든 제조업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출판시장도 매출 감소로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의 공적 수요마저 이렇게 반토막이 날 것으로 보여 5월 이후에는 엄청난 파국이 예상됩니다.

우선 출판사와 온라인서점의 갈등이 벌어질 것입니다. 매출 감소로 견디기 어려워진 출판사들은 책의 정가를 내리는 대신 서점으로의 출고가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설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거부할 온라인서점의 명분은 없어 보입니다. 작년에 한 학습참고서 회사를 인수한 국내 최대의 온라인서점 예스24는 자사의 총판들에 63%에 책을 공급하겠다면서 공공기관 납품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오프라인서점들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책의 다양성을 기대하던 출판계 종사자와 독자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책값의 70% 이상 가격으로 온라인서점에 책을 공급하겠다는 출판사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출판사는 그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책의 출간 종수부터 줄일 것입니다. 이미 한 유명 출판사는 올해 아동출판물의 출간 종수를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면서 직원들을 대거 내보내는 결정을 내렸다고 하는군요. 요즘 유명 출판사일수록 구조조정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늘어나면 글을 써서 먹고사는 저자나 필자들에게 곧바로 불똥이 튈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경제’나 ‘문화융성’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통, 디자인, 인쇄, 제책, 지업사 등 출판사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출판은 모든 콘텐츠 산업의 근본입니다. 이런 파장은 다른 문화산업으로 퍼져갈 것입니다. 이미 “인문계 출신의 9할이 논다” 해서 ‘인구론’이 회자되고 있지만 곧 99%가 노는 세상이 될 정도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더욱 심각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 일은 어떻게 버텨낼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교육은 어떻게 될까요? 김경집이 <생각의 융합>(더숲)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21세기가 요구하는 방식은 창조, 혁신, 융합”입니다. 정답만 요구하는 교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인간의 두뇌는 속도와 효율의 측면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에 뒤지는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잘나가는 직업을 가졌던 중산층들이 급격하게 붕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많은 지식들과 정보들을 섞고 묶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일을 “극대화하여 컴퓨터 알고리즘의 한계를 채우는 것이 미래 가치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융합의 가치이고 힘”입니다. 

그런 힘은 어떻게 해야 키워질까요? 아이들이 다양한 책을 함께 읽으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키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신간 서적이 구비된 학교도서관은 평등교육의 요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재정이 어렵다고 도서구입비부터 대폭 삭감했습니다. 이것은 집안 살림이 어렵다 해서 자식의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이 밥보다 소중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밥만큼은 소중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했던 것처럼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전국의 초·중·고교에도 1000만원 내외의 도서구입비부터 하루빨리 지원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일은 아이들을 “튼튼하고 늘 푸른 나무로 성장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이 나라의 ‘창조경제’가 점차 빛을 발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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