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3일 월요일

'도서관 외길 45년' 최은주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한국경제 송태형/박상익 기자

http://news.donga.com/3/07/20150413/70665363/1

최은주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은 “도서관은 인문정신 고양의 거점”이라며 “주민들의 생활 밀착 문화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nicerpeter@hankyung.com
최은주 도서관정보정책위원장은 “도서관은 인문정신 고양의 거점”이라며 “주민들의 생활 밀착 문화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nicerpeter@hankyung.com

‘행복한 삶과 미래를 창조하는 도서관.’

최은주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69·경기대 명예교수)이 지난해 1월 ‘제2차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2014~2018년)’을 발표하면서 내건 비전이다. 도서관이 과연 행복한 삶과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까. 국내 도서관계 연례 최대 행사인 ‘도서관 주간’(4월12~18일)을 앞두고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위원장실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그럴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는 “도서관은 책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문정신 고양의 거점”이라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문화를 배양하고 꽃피울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30여년간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내 도서관 발전과 사서 양성에 힘써왔다. 2013년 12월부터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4기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7년 대통령 자문기구로 발족한 이 위원회는 국가 도서관 정책 전반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조정하고 도서관 발전 종합계획을 수립, 평가한다.

▷취임한 지 1년5개월가량 지났습니다.

“주요 과제를 추진할 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적으로 맞부딪히는 어려움이 큽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행정자치부 국방부 법무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등 다수의 부처와 기관이 수행하는 도서관 업무를 국가 차원에서 협의·조정·평가해 정책의 일관성과 종합성을 갖추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위원회의 임무입니다. 추진 과제 중 개혁과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서 이해가 엇갈리는 당사자들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 행정체계 통합 등 시급한 중점 개혁 과제들은 확고하게 추진해 나가려고 합니다.”

▷공공도서관 행정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공공도서관 운영 주체가 교육청과 지자체로 나뉘었어요. 1995년 본격적으로 지자체 시대가 열리며 이원화가 심해졌습니다. 이원화 체계에선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사업을 중복 추진해 비효율이 높아지고, 지역 단위 공공도서관끼리 협력하려 해도 서로 손발이 안 맞죠. 이원화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입니다.”

▷일원화는 어떻게 이뤄져야 합니까.

“학계나 정부 연구를 보면 지자체로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지역 주민의 문화생활을 높이는 시설이란 측면에서 지자체로 일원화하는 게 바람직하므로 그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관련 공청회와 세미나를 열었고, 올초 일원화를 위한 최종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곧 가동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60여년간 굳어진 체계를 바꾸는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서관 발전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공공도서관이 내년 말이면 1000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공공도서관은 2005년 514개에서 지난해 말 905개로 늘었고, 한 곳당 인구 수는 9만4000명에서 5만9000명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한 곳당 인구 수가 1만~3만명대인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미흡한 수준이죠. 선진국처럼 보통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이내에 도서관이 하나씩 있으면 좋죠. 주민들의 생활 밀착 문화공간으로서 도서관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작은도서관’도 많이 생겼습니다.

“작은도서관이란 이름으로 4700개 정도 있습니다. 문제는 선거 공약 등을 지키기 위해서 작은도서관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중에는 ‘도서관’이라 부르기 민망한 곳도 있다는 것입니다. 컨테이너에 1000권도 안 되는 책과 의자 몇 개 놓고 사서 없이 도서관이라고 운영하는 곳도 꽤 됩니다. 정부는 이런 곳들을 해당 지역 공공도서관의 분관 형태로 유지하면서 필요한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비해나갈 계획입니다.”

▷공공도서관의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서비스 성장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2차 종합계획은 이용자에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도서관 질적 서비스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인문정신문화 고양과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 강화, 임신부 태교부터 노년층까지 생애 주기별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 서비스 다양화 측면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서 등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예산 부족과 전체 공무원 수를 제한하는 ‘총정원제’ 등이 걸림돌입니다. 사서가 아닌 비전문가들이 도서관에 순환 근무하는 식으로 일하다 보니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지식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서비스 강화도 2차 계획의 주요 과제인데요.

“지식정보 취약계층은 시각과 청각 장애인, 결혼이주민, 외국인 근로자 등과 병원 환자 및 보호자, 교도소 수용자, 장병 등 특수 환경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지난달 한 교도소를 방문했는데 도서관 시설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수용자들이 개인적으로 들여왔다가 놓고간 낡은 책들이 많았어요. 예산 없이 운영되는 교도소 도서관의 실태를 보면서 수용자들의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독서 프로그램의 필요성 등 적절한 지원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장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복귀하기 전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스마트화·디지털화 가속으로 ‘책 읽는 문화’가 쇠퇴할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서울 광진정보도서관은 옥상에 텃밭을 조성해 이용자들에게 가꾸도록 했습니다. 출입구에는 원예 관련 서적을 비치해 놨는데 호응이 대단합니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며 책도 읽습니다.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맞춰 도서관은 독서문화의 거점으로서 책과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책과 친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책이 중심이되 음악과 영화, 전시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 생활문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서관 발전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올 때 가장 가져오고 싶은 것은 ‘공공도서관’이었습니다. 미국은 1970년 대통령 직속 상설기관인 ‘국가 도서관·정보학 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공립 도서관 분야에 과감히 투자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공공도서관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도서관은 그 나라의 지식과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흡한 시설이나 장서, 인력 등은 모두 예산과 관련 있습니다. 도서관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시애틀공공도서관은 전체가 ‘빌게이츠관’입니다. 빌 게이츠가 공사비와 운영비를 지원해 붙은 이름입니다. 국내에선 기업들이 대학 도서관을 지원하는 사례는 더러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부족합니다.”

▷책과 함께 살아오셨는데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직장인에겐 레이먼드 조의《관계의 힘》을 권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해 나갈 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완서 작가를 좋아해서《나목》《그 많은 싱아를 누가 먹었을까》등 그분이 쓴 작품이라면 모두 추천하고 싶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비춰주는 등대처럼 제 인생의 길을 밝혀준 작품들입니다.”

■ 최은주 위원장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최은주 위원장이 ‘도서관 외길’을 걷게 된 데는 친언니의 권고가 크게 작용했다. 최 위원장은 미국에 살던 언니의 도움을 얻어 입학 서류를 낸 미국 드렉셀대 문헌정보학대학원에서 학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 뜨는 새로운 학문을 공짜로 가르쳐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대학원 졸업 후 1971년부터 미국 법률도서관과 병원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1984년에는 경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임용돼 2012년 정년 퇴임 때까지 재직했다. 미국 워싱턴대와 일리노이대 객원교수도 지냈다.

△1946년 서울 출생 △서울 정신여고 졸업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미국 드렉셀대 문헌정보학 석사 △연세대 문헌정보학 박사 △경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한국문헌정보학 교수협의회 회장 △국회도서관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 △경기대 명예교수

송태형/박상익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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