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일 수요일

대학구조조정, 학부모들도 알아야 할 사실/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http://www.huffingtonpost.kr/jikwan-yoon/story_b_6973790.html?utm_hp_ref=korea

교육부가 학령인구의 감소를 내세우며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그 때문에 각 대학에서 학과통폐합을 비롯한 조정이 벌어지는 것은 대부분 학부모들도 알고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를 것이고, 대개는 대학과 대학생이 너무 많으니 줄여야 하고, 연구 안하는 '철밥통' 교수들은 정리하는 것이 좋고, 부실대학은 없애고 좋은 대학은 남겨야 하며, 취업중심으로 대학을 바꾼다니 나쁠 것 없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학생들 피해 불 보듯 하고, 퇴출 사학재단엔 특혜를
물론 한국 대학의 현실을 알게 되면 한 꺼풀만 벗겨도 이런 상식 아닌 상식이 얼마나 위험스런 단순화인지 드러나지만, 일반 시민이 대다수인 학부모들이야 그러려니 할 정도로 정부나 보수언론들이 떠들어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것이 현재 교육부가 하는 식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더구나 지금대로라면 우선 학생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학부모 또한 '호갱' 노릇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당사자들은 거의 모르고 있다. 몇 가지만 짚어 보겠다.
첫째, 정부는 전국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누어 등급이 높은 대학에는 혜택을 주고 낮은 대학은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대폭적인 정원감축도 요구해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부실대학을 없애고 일류대학을 키우겠다니 학부모들로서야 환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들을 이렇게 줄을 세워서 차별대우하게 되면, 대개 전체의 4분의 1 정도로 추산되는 1~2등급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의 학생들은 학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3등급 이하에 분류되면 정원을 30프로에서 50프로까지 감축할 것이 요구되고, 대학에는 재정지원도 끊어버리고, 학생에게는 국가장학금도 주지 않으며 심지어 등록금대출조차 제한받는다. 당연히 교육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될 것은 물론 폐과나 폐교라도 되면 엄청난 피해가 불 보듯하다. 즉 이 나라의 대학생 절대다수는 앞으로 정상적인 고등교육은커녕 혼란만 겪다가 대학을 나올 것이다.
둘째,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 대학의 질을 높이고 선진화하겠다고 한다. 대학을 선진화하려면 국공립이 중심을 이루는 선진국의 고등교육체제에 근접한 방식으로 대학을 바꾸어나가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대학은 사립이 85퍼센트나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이고 그렇다 보니 등록금 부담은 세계 최고면서도 사학들의 부실한 재정과 족벌경영으로 인한 고질적인 폐해로 열악한 교육여건을 감수해왔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구조조정으로 교육과 연구환경이 나빠질 교수나 학생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이 부실경영으로 퇴출이 예상되는 사학재단에는 특혜를 잔뜩 안겨주는 구조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추진하고 있다. 도대체 교육부가 학생교육을 위해 존재하는지 사학재단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취업중심 대학 만들면 없는 일자리가 생기나
셋째, 최근 황우여 장관이 산업현장의 필요와 대학이 공급하는 인재 사이의 '미스매치'를 말하면서 취업중심으로 대학을 개편해야 한다고 하자 각 대학들은 앞다투어 공학계열 중심의 학과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학부모의 귀에는 대학이 취업을 중시한다니 솔깃할 수도 있겠다. 물론 취업은 중요하고 대학도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에 좋은 일자리가 안 나오면 대학끼리 아무리 경쟁해도 전체 취업률이 높아질 리 없다. 더구나 미스매치니 하는 것도 사실과 어긋난다. 한국 대학생 가운데 공대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의 무려 네 배다. 현재 이공계 출신 취업률은 인문계보다는 높지만 60프로 대에 머물고 있는데, 정원을 더 늘리면 취업률은 이보다 떨어질 것이 뻔하다. 정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청년실업 문제를 대학에 전가한다고 없는 일자리가 생기겠는가.
대학진학률이 20프로를 넘지 못했던 30년 전에 비해 지금은 대부분의 고교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고등교육 보편화시대이며 미래 지식중심사회에서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한국도 이번 구조조정을 계기로 문제 사학재단들을 퇴출시키고 대학교육을 선진국처럼 공영화할 절호의 기회지만, 여기에 역행하는 교육부의 그릇된 구조조정정책이 그대로 시행되면 학부모들은 고액등록금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의 기본적인 교육권도 지키지 못하는 딱한 처지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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