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2일 목요일

'내선결혼'에 대하여

박준현 씨 페이스북에서

1915년경 결혼한 조선인과 일본인은 법률적으로 부부였을까?
당시 일본정부는 일본인은 호적법, 조선인은 민적법, 대만인은 호구규칙에 따라 법령의 적용, 공법/사법 상의 권리의무에 차등을 두었다. 이것은 조선인과 일본인 혹은 대만인과 일본인 사이의 법률혼에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
조선에는 일본의 호적법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여성이 조선인 남성과 결혼하면 일본 여성은 남편의 본적지나 소재지에 신고를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일본인끼리 결혼도 할 수 없었는데 조선에서 결혼한 일본인은 직접 본적지에 신고를 해야했다. 심지어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기한 내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신고서가 기한내에 일본의 본적지에 도착하지 못해 처벌받는 일도 생겼다.
1916년까지도 일본 사법성의 법무국장은 "호적법의 규정에 의해 일본의 시정촌장에게 혼인신고를 한 것이 아니면 일본에서 그 혼인을 유효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조선의 면장에게 한 혼인신고의 효력을 부정했다.
이로써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조선에서 민적법에 따른 혼인신고를 한 경우, 조선에서는 이를 유효로, 일본에서는 무효로 판단하게 되어 한 국가에서 같은 혼인을 다른게 판단하는 상황에 빠져 버렸다. 이때 일본인 여성은 중혼도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결혼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소재지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신고는 유효했지만, 조선인을 본적이 분명하지 않거나 없는자로 간주하여 조선에 송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 남성의 민적에는 혼인 사실이 기재되지 않아서 역시 중혼이 가능했다.
조선 총독부가 내선결혼의 법률정비를 서두르게 된 것은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고 나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선결혼의 비율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최대치인 1937년에도 재조일본인의 0.19%, 조선인까지 포함하면 0.01%에 불과했다.
특히 1930년대 들어서면 조선인 남편-일본인 처는 정체된 반면, 일본인 남편-조선인 처는 급격히 증가하는데 이는 농업 위주인 조선인들이 '농업공황'의 타격을 더 크게 받아서 조선인 남성이 일본인 여성을 부양할 경제력을 상실한 반면, 조선인 여성은 일본인 남성의 처나 첩으로 생계를 의탁하게 된 상황을 반영한다고 해석된다.
검열의 강화로 1920년대 이후는 내선결혼에 대한 적나라한 반감이 조선인 식자층으로부터도 나오지 않았으나, 민족감정에 따른 부모와 사회의 반대가 극심해 자유연애가 혼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혼혈아들은 정체성의 혼란도 겪었다.
심지어 성범죄나 인신매매가 통혼의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정략적이나 경제적 동기로 인한 통혼도 많았다. 내선일체는 선전의 구호였을 뿐, 조선인과 일본인의 '동화'는 숱한 '불화'속에 지체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에 대한 분노가 역설적이게도 손쉬운 하층의 내선결혼 가족을 향해 표출되었던 점이다.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관계가 교차하면 만들어낸 내선결혼의 다양한 양상이 무시되고 일제의 협력자, 친일파로 비난받았다.
오늘날 다문화가정을 위한 우리의 정책은 과연 조선총독부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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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배제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제국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표방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조선인의 사상·정신, 일상 생활양식, 나아가 혈통까지 일본인화할 수 있는 동화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내선결혼은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법제적·문화적·혈연적 경계를 흔드는 식민통치의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 민족이 다르고 식민자와 식민지민으로서 서로 지위가 다른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은 양 집단 모두에게 문화적·혈연적 혼효를 야기하고, 그 부부와 자녀를 어느 집단에 포함시킬지 혹은 배제할지를 결정해야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선결혼 정책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인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에 관한 정책이었다. 일제시기 가장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였던 내선결혼을 둘러싸고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관계들이 맞물리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해방으로 법제적 평등을 얻은 국민국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실질적 차별을 성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동원된 포섭과 배제의 논리들은 ‘다문화’ 사회에서의 차이와 차별의 관계를 생각할 단서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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