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m 서가 뽐내는 서울도서관 '문제는 책이야!'(김헌식 씨의 칼럼, 데일리언 2012년 10월 28일)
최근 서울 도서관의 5m 벽면서가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 서가를 보면 우리 시민들의 신장이 참 많이 커졌구나 싶다. 그 서가를 이용하려면
시민들의 키는 그에 상응해야 하겠으니 말이다. 이 벽면서가는 서울도서관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우선은 서울시가 구청사를
서울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며 시민들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은 파격적인 계획이었다. 서울 도서관은 연면적 1만8711㎡에
지상 1∼4층 규모로 장서는 20만권이라는데, 도서류 기준으로 볼 때 국립중앙도서관의 총 590만권, 서울대도서관의450만권, 국회도서관의 320만권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서울도서관의 책 중 지하서고의 10만권은 대출되지 않는다.
대개 이런 면을 보았을 때 서울 도서관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언제든 시민들이 오가며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가능하다. 문화의 공간은 반드시 음악이나 공연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울 도서관은 교육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시민들에게 편리하게 제공되는 도서관 서비스는 매우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책이다. 여기에서 새삼 책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책을 몇 권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며,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이 적다는 점을 다시 반복하는 데만 그치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책 구입
예산은 적다. 2010년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국민 1인당 자료구입비는 1338원이며 미국(4818원)의 27%, 일본(3180원)의 42%
수준이다. 또한 2011년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연간 예산 6197억원 가운데 자료구입비 비중은 10.8%였다. 신문, 잡지, 영상자료, 디지털자료의 예산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국민 1인당 도서구입비는 1000원에 미치지 못한다.
2012년 서울시 교육관청 내 17개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의 도서구입예산은 32억 원이고, 서울시 72개 구립도서관 도서구입비는
42억 원이었다. 이 예산을 구매역량에 비교했을 때 신간서적의 30~40%밖에 구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에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책값의 상승 문제도 그렇지만 저렴한 책 위주로 구입한다면 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서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는 매우 지엽적인 문제라서 부족한 예산에서 가벼운 책이나 가격이 낮은 책을 위주로 구입한다면 그 책의 권수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더구나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채워지는 경우 공공 도서관의 의미가 적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화적 다양성과 산업적
관점에서 같이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책 산업은 매우 기형적이고 다양하고 깊이 있는 통찰의 도서들이 나올 수 없는 구조에
있다. 대학의 교수들은 등재지나 SCI, SSCI 논문에 매진하고 있고, 대형 출판사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으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나서면서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여기에 유통주체들은 책을 하나의 할인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출판 산업은 2008년 1조4449억 원에서
연평균 1.3%씩 감소하고 있다. 도매상은 잇따라 부도가 나고 지역서점들은 앞 다투어 폐점을 하고 있다. 작은 출판사들은 대형출판사의 물량 공세에 배겨나지 못한다.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은 큰 출판사의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수익을 팽창시키지만 작은 출판사의 책들은 아예 그 가치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폐기도 된다.
더구나 인터넷 서점은 물론이고 할인 유통점에서 벌이고 있는 유통 구조상의 살인적인 할인율은 다양하고 다종한 출판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문제는 단순히 출판 유통의 불공정한 면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다양성은 물론 국가 경쟁력과도
밀접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발표한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을 보면 5년간 투입될 예산은 총 2038억 원. 내년 예산으로 36억 원이 증액됐다. 가구별 도서구입비에 대한 세제
혜택을 추진하고 청소년에게 책을 구입케 하는 북토큰 제도를 도입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지향점은 모두 책을 안 읽는 개인들이 책을 더
읽도록 만드는데 있다. 출판진흥예산도 낮다. 공공도서관을 강화시키는데 예산은 그리 많지 않다.
공공 도서관이 제대로만 활성화
되어도 지식강국으로 한국이 발돋음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는 공공 도서관의 위상과 의미는 도서관 수가 얼마나 되는가, 책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가 아니다. 책이 없어도 도서관은 얼마든지 존립이 가능할 것이다. 도서관 건물을 짓는 비용이나 운영관리비가 더 많은 예산을 차지하기
일쑤이다. 책의 양도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도서관의 수가 아니라 책의 질과 다양성이다.
한 나라의 지식경쟁력은
관점과 통찰의 다양성이다. 그것은 국부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나라의 지식 경쟁력이 강화되려면 인터넷 공간의 지엽적이고 파편화된 정보들을 뛰어넘는 지식 콘텐츠가 풍부해야 한다.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책이다.
그러한 다양한 책들을 내는 출판사가 살아야 한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책들을 꾸준히 내는 출판사들이 건실하게 토대를
구축하고 있을 때 한국은 지식강국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공공도서관’이다. 현재 전국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제대로만 구입을 해주어도 중소 출판사들은 더
촉진될 것이다. 전국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만 사주어도 작은 출판사는 큰 힘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죽을 뻔한 지경에서 살아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선호도에 관계없이 다양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 공공도서관이어야 한다. 그냥 열려있기 때문에
공공도서관이 아닌 것이다. 서울 도서관에서 정말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것은 제값을 주고 얼마나 다양한 출판사의 의미와 깊이가 있는 책들을 구입해
주었는가이다. 아울러 이는 시민들에게 혜안과 통찰을 제공해주는 공공 도서관의 역할에 맞기 때문이다.
서울 도서관의 규모와 공사비,
편리한 시스템, 열린 공간성은 자칫 전시행정의 수단에 불과해질 수 있다. 도서관의 핵심은 책이고 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m 벽면서가는 전시적 장식에 불과하다. 자칫 책을 자신의 교양과 의식을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서재를 만드는 심중(心中)과 다를 바
없다.
공간의 규모나 장서의 수만 강조될뿐 그 안의 내용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시민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일반 도서 산업과 시장에서는 상품화의 논리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사유와 성찰의 집약체인 책들을 다양하게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공간으로서 서울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할 때 위기에 몰린 출판산업과 출판활동의 활로에 기여하는 공공도서관의 위상과 역할을 보여주는
셈이 될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