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공동양육·문화공간으로…도서관이 작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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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2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에서 앉거나
누운 채로 편하게 저마다 고른 책들을 읽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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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상)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작은도서관’ 짓기가
유행이다. 작은도서관은 1990년대 후반 보육·교육 문제를 풀고 공동체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전국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작은도서관은
단순히 규모가 작은 도서관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거점이자 동네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공간 구실을 맡고 있다.
작은도서관 만들기에 민간뿐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30년까지 작은도서관, 구립도서관 등 500개의 도서관을 세우겠다고 지난 7월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처음 시행한 주민참여
예산제에서도 강북·노원구 등 5개 자치구의 작은도서관 사업 6개를 선정해 내년 서울시 예산안에 28억3200만원을 편성할 참이다.
서울 각 지역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펴온 작은도서관들의 다양한 모습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마더구스·마녀스프·딱정벌레…
대출·반납·열람 중심에서
탈피
책과 어울리며 민간공동체 이뤄
“작은 도서관은 하나의 문화운동”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2층 건물. 30~40대 여성 십수명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대표 직함을
갖고 있다. 마더구스, 마녀스프, 크레파스 등의 대표들이다. 이름만큼이나 단체들의 공통 사업목표가 낯설 법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인 품앗이로
아이들을 이웃공동체가 함께 양육한다.” 건물 어귀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다.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2001년 김소희(45) 관장이
사비를 들여 세운 ‘작은도서관’이다.
이날 여성들은 오는 겨울방학 때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주로 논의했다. 김 관장은 “수년간 방학 때는
매일 오전 10~12시 어린이 인문학·과학 강좌 등을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해왔는데, ‘아이들을 더 재우고 뛰어놀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강좌를 대폭 개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모임 도중 대표들은 웃다 말다, 심각했다 말다 했다. 이들이 곧 도서관 아이들의 엄마인 탓이다.
이 도서관은 최근 자치구마다 다투듯 간판을 내거는 작은도서관의 사실상 원조라 할 만하다. 11년 전
도서관을 세울 때 ‘너희가 무슨 도서관이냐’, ‘규모가 얼마냐’, ‘사서는 몇 명이냐’는 핀잔 섞인 말도 들었던 김 관장은 지금 유행이 편치만은
않다고 했다. “자치단체가 작은도서관을 크기로만 이해하는 겁니다. 돈 얼마 들이지 않고 생색내기 쉬운 사업으로 간주하는 거죠. 하지만
작은도서관은 대출·반납·열람 중심의 큰 도서관에 견줘, 책과 어울리고 민간공동체를 이루며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문화운동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마더구스, 마녀스프 등은 도서관 이용 엄마들이 또래 아이들의 품앗이 교육을 고민하며 구성한 예닐곱 가족
공동체들이다. 모두 15개 소모임이 있는데, 저마다 이 지역 마을공동체의 ‘분자’ 구실을 한다. ‘딱정벌레’는 2002년 주5일 수업제에 따른
‘놀토’ 프로그램을 모색하다 꾸린 모임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올해 고3이 되었다. 격주 놀토 계획은 온 가족이 반년을 기획한
백두산 기행으로 커졌다. 유치원생 엄마들이 영어 사교육을 고민하며 꾸린 ‘마더구스’는 올해 10년째, 7살 아이들과 엄마들이 1년에 두 차례
영상그림책을 만들던 ‘마녀스프’는 11년째가 됐다. 아이가 자라며 부모들의 시야도, 공동체의 활동 폭도 넓어졌다. 소모임 ‘다하미’는 지역
봉사단체가 됐다.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도서관은 900여 가족이 이용하며, 다달이 5000~1만원을 내면서 책
대출도 할 수 있는 후원가족은 300여 가족에 이른다. 도서관이 작은 마을인 셈이다.
서울시는 작은도서관이 현재 764곳으로 올해 6개월새 16곳이 늘었다고 집계했다. 과거 새마을문고, 북카페
등 도서관법상 33~263㎡ 도서관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는 북카페를 마을공동체 거점공간으로 활용하겠다며 올해 마을공동체 사업 예산의 하나로
편성된 작은도서관 예산 25억원을 북카페 조성에 사용했다. 김 관장은 “새마을문고 등을 북카페나 작은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변화가 생기긴
어렵다”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운영자나 의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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