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6일 금요일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73919.html

등록 : 2015.01.15 21:59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지난해 8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명량>은 전국 스크린의 최대 61%를 차지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사진은 당시 서울 용산 씨지브이(CGV) 티켓 창구.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CJ·한국연구재단 독점 강화
다양성 침해하고 경쟁 부추겨
지식생산의 대중화 멀어져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
<문화/과학>편집위원회 엮음
이동연·한기호·이윤종 외 지음
문화과학사·2만원
한국의 학술, 대중문화, 출판 분야에서 문화자본의 독점적 지배력이 우려할 수준으로 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계간지 <문화/과학>이 80호 발간을 기념해 특별 단행본으로 낸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는 최근 한국의 문화자본 집중화 현상을 본격적으로 파헤쳤다. 13명의 전문가가 학술과 문화산업 각 분야를 점검하고, 자본 축적과 재생산을 분석했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문화/과학> 편집위원)는 한국연구재단이 ‘학문권력’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이 기관은 1981년 인문사회분야 지원을 위해 설립된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이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한국과학재단과 통합되면서 “메머드급 연구관리 전문기관”으로 바뀌었다. 2014년 한국연구재단의 총 예산은 무려 3조6993억원. 이 중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2250억원에 머무는 데 견줘, 원자력 진흥 관련 단일 예산은 684억원 더 많은 2934억원이었다고 지은이는 밝힌다. 기관 통합을 반대하던 연구자들의 우려대로 인문사회 분야 지원이 홀대 당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재단 활동이 젊은 연구자들의 새로운 학회 창립이나 학술지 창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말까지 재단이 학술지 평가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우수등재학술지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학문의 위계와 규율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오 교수는 분석했다. 학술지를 등급화해 학문의 다양성 증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분석을 종합하면, 학계에서 한국연구재단의 힘은 독보적이다. 국내 연구개발(R&D) 분야, 인문한국(HK) 지원사업, 두뇌한국21플러스(BK21 플러스)도 총괄한다. 대학 평가를 좌우하는 이들 사업 수주를 쥐고 있는 것은 물론, 교수 채용 가능성도 걸려있다. 연구지원을 받고 논문을 양적으로 축적하면 교수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전임교수가 된 뒤에도 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을 받고 등재지 이상 학술지 논문 게재 편수를 늘려야 정년보장교수가 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등재 학술지 논문쓰기에 몰두하면서 학문적 성과의 대중적 공유를 멀리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식생산과 학술서 출판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생기고 만 것이다.
오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이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른 의제 설정에는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생성장’ 관련 연구주제를 지원과제로 다수 선정하고,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 부합하는 연구지원 체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오 교수는 재단이 “정치적 효용성 측면에서 정권에 동원”되고 있으며 “(학문 지원을) 국민국가의 규율권력 내로 협소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단의 독점적 지위와 권력 행사로 학문은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고, 연구자들과 학문후속세대의 일상까지 규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이 책은 대중문화를 비롯한 문화자본 전반의 독점 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이윤종 <문화/과학> 편집위원(성균관대 강사)은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 개념과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을 중심으로 위계화·서열화된 지배구조를 비판한다. 미술관이 난해한 작품을 진열하며 문화의 계급화·차별화를 공고히 하듯, 영화의 생산과 소비에서도 계층적 구별짓기(부르디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정석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문화/과학> 편집위원)은 씨제이 씨지브이(CJ CGV)가 거대 블록버스터뿐 아니라 다양성 영화 전문상영 브랜드를 시도한 것을 ‘독점 현상의 유연화’라고 지적한다. 독점에 대한 대안으로 다양성 영화 분야의 대기업 진출이 이뤄졌지만 그 시장 안에서 창작자들끼리 또 다른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종임 문화연대 미디어센터 운영위원(고려대 강사)은 씨제이 이앤엠(CJ E&M)이 콘텐츠생산과 미디어플랫폼 운영을 함께 하면서 방송, 게임, 영화, 음악·공연사업 부문을 거느린 거대 미디어 기업으로서 부가시장 전체를 장악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크린 독점으로 돈을 벌듯 8개나 되는 방송 채널에서 같은 시간대에 <삼총사> 같은 드라마 한 편을 편성하는 물량공세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부가시장 전체가 하나의 콘텐츠 공급사와 하나의 플랫폼사로 재편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게임콘텐츠 제작과 유통에서 나타난 독점 집중화 현상(강신규), 거대 상징화된 문화자본으로서 ‘케이팝’의 문제(이동연)도 거론된다. 특히 국가 한류정책과 한류 문화자본의 글로벌화의 문제(최영화)는 문화 정책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다.
지은이들은 문화 자본 축적이 그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라,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집중적인 문화 진흥 정책에 따른 투자 확대와 공공 지원 덕분에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각 정권의 문화자본 투자 규모와 공공적 지원이 얼마나 큰 규모이며 어떤 역동을 거쳤는지에 대한 데이터와 심층 분석이 부족해 아쉽다. 웹툰 같은 인터넷콘텐츠 산업까지 장악해가는 문화자본의 독점 효과에 대한 더욱 정교한 분석과 폭넓은 연구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