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6일 월요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이하 내셔널 아카이브), 이흥환, KISON(Korean Information Service on Net), 대통령도서관





▲ 대통령의 욕조…이흥환 지음 | 삼인 | 384쪽 | 1만8000원

흔히 ‘NARA’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이하 내셔널 아카이브)의 이모저모, 그곳에 보관된 한국 관련 문서들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다. 

저자 이흥환씨는 워싱턴 D.C. 소재 KISON(Korean Information Service on Net)의 선임편집위원이다.

민주주의를 발명한 미국은 기록의 국가이기도 하다. 통치 과정을 기록, 보관, 공개하는 일은 역사를 기억한다는 의미와 함께, 지도자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치 노하우 전수를 위한 필수 과정이다. 국가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내셔널 아카이브는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35년 워싱턴 D.C.(아카이브Ⅰ)에 만들어졌다. ‘미 연방정부가 공무를 수행하면서 생산한 모든 문서와 자료 가운데 법적 혹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해 영구 보존하기로 한 1~3%의 문서’가 내셔널 아카이브에 들어가기로 결정됐다. 여기저기 흩어져 보관돼 오다 처음 수합된 문서는 1억7000만장이었다.

그후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공문서량은 급증했고, 1970년 이후로는 해마다 15억장이 추가된다. 마침내 1994년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에 두번째 장소(아카이브Ⅱ)가 세워졌다. 여기에 역대 대통령의 기록물을 모아놓은 13곳의 대통령 도서관, 연방정부의 행정문서를 모아놓은 17곳의 연방기록물센터(FRC)까지 합쳐진 방대한 조직이 됐다. 현재 내셔널 아카이브에는 90억장의 문서, 1900만장의 사진, 640만장의 지도, 36만릴의 마이크로필름 등이 들어차 있다.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내셔널 아카이브의 장점은 개방성이다. 신분증만 가져가면 누구든 즉시 출입증을 만들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외국인과 자국민 사이에 차이도 두지 않는다. 단 3단계(Top Secret, Secret, Confidential)로 분류된 비밀 문서들은 일정 기간(25년)이 지나거나 해제 결정이 나야 공개된다. 일단 감추고 보는 정부비밀주의는 어느 나라든지 예외가 아니지만 미국의 정보 공개 절차는 훨씬 공정하고 투명하다.

저자는 대통령도서관의 운영과 역할에도 주목한다. 이 역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초다. 전임 후버 대통령이 하루 400여통의 편지를 받은 데 비해 루스벨트의 편지는 하루 4000통이 넘었다. 그는 내셔널 아카이브와 별개로 고향인 뉴욕 하이드 파크에 사재를 털어 도서관을 짓고 운영은 국가에 맡겼다. 이를 계기로 이미 퇴임한 후버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13명의 도서관이 탄생한다.

그렇다면 내셔널 아카이브에 보관된 문서들은 어떤 내용일까. 책 제목인 ‘대통령의 욕조’는 미국인들의 기록에 대한 열정을 담은 재미난 에피소드다. 내셔널 아카이브 개관 75주년인 2009년 3월 워싱턴 D.C.에서 ‘빅!’이란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여기에 초대형 욕조와 함께 한 장의 종이가 나왔다. 이 욕조의 주인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이다. 그는 키 180㎝, 체중 150㎏의 거구였다. 그래서 당선 직후인 1909년 1월 파나마 운하 건설현장을 시찰할 때 탑승한 미 군함 노스캐롤라이나호에 특별 제작된 초대형 욕조가 탑재됐다. 당시 욕조 길이가 215㎝에 이른다고 신문들이 보도했다. 그런데 함장 마셜 장군이 서명한 욕조 제작 주문서에는 욕조 길이가 162㎝로 나온다. 한 장의 종이가 욕조 길이의 변경 사실을 알려주는 셈이다.

한국 관련 문서들도 꽤 있다. 저자는 노획한 북한 문서를 비롯해 CIA, 주한 미군, 대사관, 공보처 등 다양한 주체가 기록한 문서를 소개한다. 노획 문서에는 북조선 인민위원회의 극비 중국 관계 자료집이나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록 등 공문서는 물론, 인민군 여행증명서, ‘조국통일전선으로 떠나며-1950·6·25’란 서명의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 국립미술학교 학생이 쓴 시까지 사적인 기록들도 있다. 이 문서들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인 열람자들이 내셔널 아카이브의 한국 관련 문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미 정부 기록물의 활용도가 높지 못한 이유로, 저자는 편중된 연구 주제, 정보 편식, 아카이브에 대한 몰이해 등을 든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자료를 검토할 만한 시간과 비용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미국의 공문서 보관과 활용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한국 현실을 개탄한다. 특히 2013년 공개된 남북정상회담(2007년) 회의록은 재앙에 가깝다. 6년밖에 안된 대통령 기록물이 공개된 사실도 놀랍지만 공문서의 형식은 경악할 수준이었다. 공개 문서는 공문서가 아닌 단순 녹취록이었으며 누구나 수정 가능한 파일 형태인 데다 비밀등급 표시조차 없었다. 흔히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들먹이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이런 수준에 머문다는 개탄은 이 책을 읽은 독자도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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