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8일 목요일

개인의 토지 vs 국가의 영토 / 경향신문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임아영·김경학·김한솔 기자

한국의 땅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5년 한국의 토지가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2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일본의 2.2배보다 2배가량 높고, 인구밀도가 비슷한 네덜란드와 비교해도 3배가량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의 땅값은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도 무관치 않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인 ‘소득이 낮아서’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 등은 결국 높은 부동산 가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높은 땅값은 생활비와 생산비용을 압박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부동산 가격을 잡아야 하는 이유이다. 
■ 개인 노력과 무관한 땅값 상승 
토지공개념은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적절히 제한해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다.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지역에서 수요가 증가한다고 다른 지역에서 가져올 수 없는 등 다른 재화와 달리 공급이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물리적으로 마모되지 않는 것도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토지는 땅을 포함해 천연자원이나 환경 등 자연물 전체를 가리킨다. 토지공개념의 원조는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다.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공개념이 실현돼야 공정하고 효율적인 진정한 시장경제가 된다고 했다. 
토지공개념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유재산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유재산 제도는 개인의 노력과 기여의 산물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값과 같은 불로소득을 공적으로 환수해 사회에 나누는 것은 사유재산 제도와 부합한다. 땅값 상승은 사회 발달과 정부 정책 등 사회적 요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인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밀턴 프리드먼 등이 토지에 대한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에 반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토지공개념 반대론자들은 토지공개념이 반시장적이라고도 주장한다. 토지의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해야만, 토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고 오용을 막으며 사용의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지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해 사용권과 처분권뿐 아니라 수익권까지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투기를 위한 보유를 자극해 오히려 효율적 사용을 막는다. 투기를 위해 보유한 이들은 시세차액을 챙기는 데 관심이 있어 토지의 적절한 사용에는 무관심하다.
토지공개념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대만은 ‘평균지권(平均地權)’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평균지권은 토지는 전 국민 소유이므로 국민이 골고루 보유하고, 특정인이 과도하게 소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평균지권은 4가지 원칙으로 구현된다. 모든 토지의 가격을 정부가 매긴다는 규정지가(規定地價)와 토지가격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조가징세(照價徵稅)가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규정지가를 고시하면 토지소유자는 토지가격의 80~120% 범위 내에서 신고하고 정부가 최종가격을 확정해 과세한다. 나머지 둘은 토지소유자가 신고가격이 규정지가의 상하한 20%를 벗어나면 정부가 이를 매수하는 조가수매(照價收買), 지가가 별다른 노력 없이 상승하면 늘어난 가치만큼을 공공부문에 귀속시키고 상승분에 토지증가세를 부과하는 장가귀공(張價歸公)이다.
스페인 헌법은 국민의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기적인 토지사용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규정했다. 공공기관에 의한 도시계획은 사회적으로 이익을 주는 행위로 이해하고 이에 따른 편익을 각 지역사회가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은 과거 흑인과 백인 갈등이 국가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경험에 바탕해 토지 등 부동산의 공평한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이 나라 헌법 25조5항은 “국가는 가용 자원의 범위 내에서 국민들이 부동산 접근 권한을 공평하게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합리적인 입법 조치 및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이다. 
■ 위헌 낙인찍힌 토지공개념 제도 
한국은 제헌헌법부터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을 못 박았다. 현행 헌법 122조에서 토지 재산권은 일반 재산권보다 더 강한 사회적 구속성을 받도록 했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사건에서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는 “토지는 원칙적으로 생산이나 대체가 불가능해 공급이 제한돼 있고, 우리나라의 가용토지 면적은 인구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모든 국민이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으로서 토지의 합리적인 이용에 의존하고 있다”며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나 국민경제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과 같게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더 강하게 관철될 것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에는 토지공개념이 위헌이라는 인식이 많다.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토지공개념이 담긴 법률 일부 조항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이유는 토지공개념이라는 입법 목적이 아니라 과세 방법 등 기술적인 문제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가령 택지소유상한법은 6대 도시의 경우 660㎡라는 가구별 소유 상한을 일률적으로 낮게 정한 부분, 그 상한을 초과해서 소유했을 경우 내는 부담금의 부과율이 4~11%로 높은 부분, 법 시행 전 택지를 소유하던 이의 유예기간이 법 시행 이후 소유하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부분 등이 위헌이라고 봤다. 이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고쳤다면 이 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었다. 토지초과이득세법도 유휴토지가 아닌 택지에는 과세하지 않는 부분, 양도소득세가 부과될 때 세금을 공제하지 않는 부분 등이 헌법에 어긋났다. 종합부동산세법은 자산소득에 대해 개인별로 합산해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를 합산해 과세하는 것이 위헌 이유였다.
학계에서는 세부적인 부분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헌재 결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헌 심사를 할 때 재산권 등 경제적 기본권은 입법자의 재량을 광범위하게 인정해 국가가 규제를 많이 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양심의 자유 등 자유권적 기본권은 국가가 규제하는 것을 엄격히 심사한다는 이중 기준의 원칙이 있다”며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은 이것을 거꾸로 적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지 등 재산권 부분에 대한 그 정도의 규제는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헌법에 불로소득 환수 명시해야” 
한국에서는 매년 국내총생산(GDP) 30% 안팎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 등이 한국은행 국민대차대조표 등을 가공한 결과, 2015년 실현된 부동산 자본이득과 부동산 임대소득을 더한 금액은 482조원으로 GDP의 31%였다. 부동산이 소수에게 집중된 현실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은 소수에게 돌아가고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구체적으로 넣고, 그에 따른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경제·재정분과에서 나온 개정안은 현행 122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현재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이다. 여기 ‘토지 투기로 인한 경제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하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한다.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와 시민단체 토지+자유연구소(옛 토지정의시민연대)는 122조의 목적 부분에 ‘불로소득 환수’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제조항인 119조에 3항을 새로 만들어 “국가는 국토와 천연자원으로부터 소유자의 생산적 노력 및 투자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고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지공개념의 실행방안으로 국토보유세 등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전국의 모든 토지를 용도 구분 없이 사람별로 합산해 과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015년 기준으로 개인 소유 토지에서 16조3383억원, 법인 소유 토지에서 3조3136억원 등 모두 19조6520억원이 걷힐 것으로 남 소장 등은 추산한다. 여기에서 지방세인 재산세 5조150억원을 빼면 국토보유세는 14조6370억원이 된다. 그리고 이 세수를 모든 납세자에게 나눠주자는 것인데 1인당 30만원 정도가 된다.
일각에서는 보유세가 오르면 지가가 하락하고 금융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 모르핀을 줘서는 낫지 않는다. 수술로 치료해야 하는데 고통이 불가피하다. 고통을 겪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 수술대 눕는다고 안 죽는다. 한국 경제가 경착륙을 버틸 능력이 있다. 지금 상태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터진다. 그때 진짜 금융위기가 온다. 엄청난 손실이 오기 전 보유세 강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대는 많은 경우 그 소유자가 관심이나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는 수입이다. 따라서 지대는 그 위에 부과되는 특수한 조세를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지주들은 일하지 않고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혹은 절약하지 않고도 잠자는 가운데도 더 부유해진다. 전 사회의 노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토지가치의 증가분은 사회에 귀속되어야 하며 소유권을 갖고 있는 개인에게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모든 세금은 나쁘지만) 세금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은 오래전 헨리 조지가 주장한 바, 미개량 토지의 가치에 부과되는 재산세이다.” - 밀턴 프리드먼
<도움말>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김낙년 동국대 교수,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박창수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황도수 건국대 교수 
<참고문헌>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 ‘토지공개념 개헌 토론회’ 자료집, 토지+자유연구소 <주요국의 토지가격 장기추이 비교>, 남기업 등 <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 국회입법조사처 <토지공개념 관련 국내외 입법례 조사>, 한정희 <일제 토지조사업의 “자본화 과정” 연구> 등
<특별취재팀> =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임아영·김경학·김한솔 기자 
출처 https://goo.gl/mRGV9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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