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0일 수요일

강원도 문화시설이 서울보다 3배 윤택해?/ 이상원 장일호 김연희 임지영 신한슬 변진경 시사인 기자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 미술관에서 전시 보기, 문예회관 음악회 감상하기, 주민센터 강의 듣기 등. 이 일정의 무게가 누구에게나 같지는 않다. 주된 변수는 거주지다. 한나절 걸리는 ‘일상’으로 여긴 이는 서울시민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하루를 통째로 써도 소화하기 어려운 ‘여행’으로 보는 이들은 대개 지방 소도시에 산다. 문화시설이 수도권 대도시 위주로 편중되어 있어서다.

문화 격차는 통계에서 확인된다. 2017년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은 “문화기반시설이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다”라고 주장했다. ‘문화기반시설’은 도서관·박물관·미술관·문예회관·지방문화원·문화의집을 묶어 이르는 용어다. 

2017년 1월 기준, 전국 문화기반시설의 36.3%는 수도권에 있다. 서울에는 미술관 39곳이 있는데, 6개 광역시(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미술관 수를 다 합쳐도 28개밖에 안 된다. 지자체 단위로는 차이가 더 극명하다. 229개 시·군·구 가운데 수도권 12개 지자체가 문화기반시설 보유 상위 20위 안에 든다. 하위 20개 지자체 중 17개 단체는 비수도권에 있다. 1위인 서울 종로구에는 64개 문화기반시설이 있다. 229위 인천 옹진군에는 1개, 공동 224위 5개 지자체에는 각각 3개씩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영화관 없는 시·군·구 역시 66곳에 이른다.

예술 활동의 격차는 더 극명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펴낸 <2015 문예연감>은 매해 전국 예술 활동을 분석한 자료다(아래 <표 2> 참조). 문예연감의 ‘예술활동지수’ 항목은 문학·시각예술·국악·양악·무용·연극 6개 분야의 지역별 실행 건수를 비교했다. 기준점인 서울을 600으로 놓았을 때, 최하위인(세종 제외) 충북의 예술 활동은 그 40분의 1에 불과하다. 2위와 3위를 차지한 경기도와 부산 역시 서울의 4분의 1, 6분의 1 수준이다. 서울에 특히 몰린 분야는 문학 출판이었다. 전체 문학 출판 가운데 72.5%가 서울에 집중됐고, 경기·인천을 더하면 90% 이상에 이르렀다.
그런데 두 자료 모두 ‘지역별 인구 대비’로 따지면 묘하게 바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문화기반시설 수는 제주, 강원, 전남 순서로 많다. 최하위는 부산이 차지했고, 서울은 6위로 낮은 편에 속한다. 예술 활동도 그렇다. 

<2016 문예연감>에서 문예위는, 예술활동지수 항목을 ‘인구 10만명당 문화예술 활동 건수’ 항목으로 대체했다. 기존 예술활동지수 방식으로 따졌을 때 서울의 5%를 겨우 넘긴 제주는, 10만명당 수치 면에서 서울에 필적한다. 보고서는 이 수치에 따라 제주를 “문화예술 활동을 양적으로 풍족하게 누리고 있는” 지역이라고 쓴다.

매해 발표되는 문화시설 통계에 지역 언론과 지자체는 들끓는다. 2017년 조사가 발표되자 부산·경기 등 인구 대비 문화기반시설 수가 낮은 지역의 일간지들은 ‘문화시설 턱없이 부족’ ‘문화 불모지’라고 썼다. 반면 인구 대비 시설이 많다고 발표된 지역의 언론들은 ‘수도권 중심 통계’ ‘착시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역은 인구 대비 통계 대신 문화시설 총수 통계를 근거로 문화 격차를 지적했다.

인구를 감안해 가공한 통계가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문화시설의 특수성 때문이다. 학교나 병원, 소방서와 달리 문화시설은 포화되는 일이 드물다. 설령 가득 차더라도 문화 서비스는 그 질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전시시설은 찾는 사람이 많아야 가치가 유지된다. 그래서 이런 시설은 되도록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인구 기반 통계를 근거로 ‘강원도의 문화시설은 서울시의 3배 이상 윤택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수요’와 ‘접근성’을 만족하는 통계를 내려면

지역 주민의 ‘체감’에 가깝게 통계를 내려면 여러 요소를 따져야 한다. 2015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펴낸 ‘지역 특성을 고려한 문화기반시설 배치 방안 연구’는 예시가 될 법한 시도를 했다. ‘입지지수(positioning index)’라는 수치를 고안한 것이다(아래 <표 1> 참조). 현존 문화기반시설의 서비스 범위, 지역 인구와 연령대, 지자체의 재정의존도를 일정 비율씩 감안해, 어디에 어떤 시설을 확충해야 할지 산출했다. 단순 통계에는 빠진 ‘수요’ 문제와, 인구 대비 통계가 놓치는 ‘접근성’ 문제 모두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이 방식에 따르면 문화기반시설을 최우선으로 확충해야 할 지역은 강원·전남·경북 지역이었다. 반면 부산이나 광주 같은 일부 광역시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 정책은 문화 격차 해소에 방점이 찍혔다. 2017년 7월 발표된 100대 국정과제에는 ‘지역과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가 들어갔다. 같은 시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 토론회에서 “문화는 삶 그 자체이며, 지역 문화가 곧 문화 전부다”라고 연설했다. 지난 1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비전 2030’ 8대 정책의제에도 ‘지역  문화 분권 실현’이 포함됐다. ‘문화 융성’이라는 허울 아래 단편적 진단만 반복해온 지난 정부와 달리, 이 정부가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각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출처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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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그  많은  축제를  만든  까닭


가수 김창렬씨(DJ. DOC 멤버)의 이름은 ‘창렬하다’라는 조어로 더 많이 불린다. 2009년 김씨가 광고했던 제품이 비싼 가격에 비해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점이 지적됐고, 누리꾼들이 이를 두고 ‘창렬하다’라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최근에는 창렬하다를 대체할 신조어로 ‘평창하다’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오는 2월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바가지 올림픽’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부터다. 한 여행업체가 내놓은 1박2일 관람 패키지가 100만원이 넘는 점이나, 수십만원에 달하는 숙박비나 주차비도 도마 위에 올랐다. 12월26일 대한숙박업중앙회 평창군지부와 평창군 펜션민박협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13만~16만원으로 숙박 요금을 책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성난 여론을 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7년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은 약 2600만명이었다. 2016년에 비해 400만명 늘어난 수치로 국민 둘 중 한 명이 해외로 떠났다. 한국의 인구 대비 출국률(50%)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같은 현상을 지적하는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비꼼’ 일색이다. “나도 부자 되어서 (또는 돈을 많이 벌면) 국내 여행을 하고 싶다” “가난해서 해외여행 간다”라는 식이다. 국민들은 같은 돈과 시간이 있다면 국내 여행보다 해외여행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불린다. 관광산업은 주변(숙박·음식·교통 등)으로 번져 경제적 파급효과와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온다. 2016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산업을 국가 7대 유망 사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집중 육성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경제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중점 추진 과제는 관광 콘텐츠 다변화, 지역관광 활성화, 관광 인프라 정비였다. 특히 지역관광 활성화는 지역사회에 절박한 이슈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이 취약한 중소 도시는 관광산업 이상의 대안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경우가 내국인 카지노 출입을 허용한 강원랜드다(34~38쪽 기사 참조).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나섰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외국인 관광객의 재방문 비율은 2012년 41.8%, 2013년 39.7%, 2014년 34.9%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2015년 국정감사). 방문 지역 편중도 심각해, 서울(80.4%)과 제주(18.0%)에 몰려 있다. 국내 관광객 사정도 다르지 않아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관광 총량은 늘었지만 지역 관광은 언급하기도 미미한 수준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 선정 단계에서부터 잠재되어 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관광산업에 나선 결과 지역의 환경 및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관광지가 만들어졌다. 하드웨어 위주의 사업은 타당성 검토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기존 시설이나 사업과 유사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건물은 올라가는데 그곳에서 어떤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계획과 구체성이 부족한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정치적 목적이나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관광 개발사업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 간 교통수단 연계성 미흡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강원도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갈 수 있는 버스는 1일 3회, 영월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에 갈 수 있는 버스는 1일 2회 운영된다. 이는 국내 관광객이 승용차 위주로 여행하는 비율이 높고(75.5%), 외국인 관광객이 대도시 위주로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키지 형태의 단체관광은 여행 만족감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식으로 구성되기 일쑤다. 현지 체류 시간이 짧아서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고 지역 내 경제 유발 효과도 낮다.

그나마 유적지나 자연풍광 같은 ‘천혜의’ 조건마저 없는 지역은 축제에 사활을 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996년부터 10년 단위로 실시하고 있는 ‘한국 축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역 축제는 1996년 412개에서 2016년 1136개로 크게 늘었다. 난립하는 축제는 지역 문화 자체를 경쟁력으로 삼기보다 차별성 없는 콘텐츠만 재생산한다. 축제 개최 및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며 상당한 예산을 투입한다. 2014년 기준 지역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모두 2914억원이었다. 그중 흑자를 낸 축제는 강원도 화천의 산천어축제가 유일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의 95.9%는 ‘관’에서 개최하는 만큼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하다.

2016년 국회사무처는 축제 유형을 ‘경제활성화 축제’ ‘지역 주민 화합형 축제’로 구분하고, 후자처럼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축제는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고 보고했다. 지역 축제임에도 지역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유사 중복 축제가 많으며, 전문성이 부족하고 단순 이벤트 행사로 수렴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주민의 참여는 줄어들고 심지어 주민이 소외되기도 한다. 지역 일자리 창출도 언감생심이다. 지역에서 축제를 열어도 돈은 일부 서울로 흐른다. 지역 축제 컨설팅을 담당했던 전직 홍보대행사 직원의 말은 지역 축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산 쪼개서 화장실 고치고 도로 정비하고 해봤자 힘만 들고 티는 하나도 안 나잖아요. 근데 축제는 ‘한 방’이거든요. 한번 하고 치울 수 있으니 깔끔하고…. 지자체는 언론에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 실리는 게 목표예요. 지자체장 업적에 한 줄 추가할 수 있으니까. 예산은 보통 1년 단위이고 1년 안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에서 ‘역사와 문화의 특이성을 고려하는 축제’가 가능하겠습니까? 이렇게는 앞으로도 불가능해요.” 

행사·축제는 재정 비효율적


실제 한국의 축제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5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투표로 선출되면서부터 지역 축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4년 개최된 축제 중 83%가 1995년 이후에 처음 열렸다. 1995년 이전 시작된 축제는 191개에 불과했고, 1995년 이후부터 시작된 축제는 938개에 달한다. 
결국 2016년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는 10대 분야 중 하나로 행사·축제를 선정했다. 축제를 통폐합하고 예산을 축소하기 위해 2017년부터 도입된 제도가 ‘축제 예산 총액한도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지역 축제를 관리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09년 ‘관광진흥법’ 제48조의 2(지역축제 등)를 신설했다. 그러나 축제 운영 내용을 정확하게 조문화해두지 않은 탓에 연관된 문화재청·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10여 개 부처에 상이하게 적용되었고 체계적 관리에도 실패했다.

지역 관광과 축제에 관해서는 일본을 참조할 만하다. 일본은 지역 축제를 지역 문화의 정수로 보고, 축제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나라다. 일본어로 축제를 뜻하는 ‘마쓰리(祭り)’는 그 자체가 일본의 관광을 나타내는 대표 브랜드다. 1년 열두 달 각 지역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열리는 마쓰리는 국내외 관광객을 유인하는 주력 관광 상품이다. 1992년 일본은 ‘전통 축제 및 행사를 통한 관광 및 특정 지역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는데, 축제를 규율하는 별도 법제가 총 5장 15개 조항이고 매우 구체적으로 구성돼 있으며 별도의 시행령도 존재한다. 

특히 일본의 ‘콘텐츠 투어리즘’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는 관광의 패러다임을 뒤집었다.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재(혹은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관광객을 모으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관광객을 지역으로 오게 한 다음 지역을 보여주는 형태로 확장되고 전환됐다. 일본 역시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 관광이 주력이었으나, 콘텐츠 투어리즘은 지방의 작은 도시들을 새롭게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도야마 현 난토 시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작품은 난토 시내에서도 한정된 장소에서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시청할 수 있는데,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나 명소에서만 플레이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관광객에게 미션을 줌으로써 지역 주민을 만나게 하고 소통하도록 전략적으로 기획했다. 한국에서도 정식 발매되며 많은 팬을 보유한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1권 마지막 장에는 아예 배경이 된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지도가 실려 있다. 가마쿠라는 도쿄에서 50㎞ 떨어진 지역이다. ‘일부러’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지역으로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신청과 동시에 마감되는 ‘명탐정 코난 미스터리 투어’(이하 코난투어)도 대표적이다. 2001년 처음 시작된 코난투어는 2005~2007년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외국인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한국인은 2013년부터 신청할 수 있었는데, 그해 4100명이 코난투어에 참여했다. 일단 특정 지역을 무대로 <명탐정 코난>의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하고, 관광객들은 그 내용을 따라 지역을 방문해 미션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관광을 즐긴다. 철도패스(JR패스)가 포함된 투어키트 구입 후, 투어북 내용을 참고해 개최 지역의 관광지를 탐방하며 증언과 증거를 수집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오는 관광객도 돌려보내는 한국 관광지

이 밖에도 각종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나 캐릭터를 지역 축제와 연계해 활용하거나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축제를 아예 실제 새로운 축제로 만들어버리는 등 일본에서는 다양한 유형으로 실험과 확대가 진행 중이다. 이는 지역이 가진 모든 장소와 대상이 지역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관광과 축제는 익히 알고 있듯이 오는 관광객도 돌려보내는 형편이다. ‘한류’를 탄 드라마나 영화 촬영 장소를 찾아가 봐도 표지판이나 입간판 한두 개 덜렁 세워둔 게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관리가 되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방치하곤 한다. 소문이나 방송을 타고 관광객이 몰려도 문제다. 대규모 외지 자본이 들어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고층 숙박업소가 들어서 특색 있는 풍경을 해친다. 전라북도 군산시 경암동 철길마을이 대표적이다. <소중한 날의 꿈> <천년학> <홀리데이> 등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된 철길마을은 관광객들이 몰리자 기존 건물의 철거가 진행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도심에서 떨어진 이곳을 굳이 찾을 이유가 더 이상 없어진 셈이다. 관광객이 몰리면 그 지역 주민들은 교통체증과 소음에 시달리기도 한다. 결국 관광 활성화가 지역 주민의 소득 향상이나 일자리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출처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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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없어지고  카지노  들어선 지  17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동양 최대 민영 석탄광으로 불리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1963년부터 2004년까지 석탄을 채굴했던 곳이다. 48m 수갱 타워가 우뚝 선 650갱을 비롯해 23개 광구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전국 생산량의 13%를 차지했다(1985년 기준). 당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근무하는 광원이 6300명에 달했다.

현재 사북읍내에서 사골국밥 식당을 하는 고배만씨(가명)도 동원탄좌 광부 출신이다. 20대였던 1981년 사북에 들어와 탄광이 폐업할 때까지 일했다. 고씨는 자신이 동원탄좌 ‘직영’ 광부였다고 강조했다. 동원탄좌에서 하청을 받은 탄광의 직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탄광이 문을 닫을 때까지 갱에 들어갔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당시 사북시장에서는 동원탄좌 인감증(사원증)이 신용카드처럼 통용되었다. 사북에서 동원탄좌의 위상이 그 정도였다.

탄광산업은 오래전에 흘러간 영광이다. 현재 사북은 엄연히 카지노의 고장이다. 2000년 강원랜드 카지노가 개장하고 2004년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카지노가 들어서며 고씨는 돈을 꽤 잃었다. 그는 “카지노에 다 빨렸다. 가게는 (광부로) 일할 때 개업했는데 돈 다 잃고 식당 하나 겨우 꾸려간다”라고 말했다. 2000년 카지노 개장 초 도박 중독에 빠지는 주민들이 속출하자 강원랜드는 출입 일수를 제한했다. 이제 지역 주민은 한 달에 한 번, 넷째 주 화요일에만 출입이 허용된다.

광부들의 월급으로 돌아가던 사북 상권이 카지노 고객들의 호주머니에 의존한 지도 17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12월21일 찾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내는 광부들이 찾던 선술집 대신 다른 업종의 가게가 24시간 간판을 밝히고 있었다. 전당포, 모텔, 안마방이다. 사북읍으로 들어서는 초입 ‘석탄사우나. 잭팟 명소! 1억9000만원. 수면실 완비’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랜드에서 사북읍내로 이어지는 500m 남짓한 거리 양옆에는 전당포 30여 개가 줄지어 있다. 상호명은 다르지만 ‘자동차·귀금속·금·신용 대출, 마카오 필리핀 현지 상담, 24시 상담’ 등 가게 쇼윈도에 써 붙인 광고 문구는 비슷했다. 전당포에 딸린 주차장에는 번호판 없는 외제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다. 한 택시 기사는 “전당포 개수를 80개까지 세다가 포기했다”라고 말했다.

오후 1시쯤 찾은 사북시장은 ‘한가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광산 할 때부터” 사북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한 상인은 “지금이 손님이 제일 없다. 밤새 (카지노에서) 게임한 뒤 자고 있을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사북 상권은 강원랜드 시간표를 따라 움직인다. 카지노가 폐장하는 새벽 6시부터 개장하는 오전 10시까지가 그나마 읍내가 활기를 띨 때다. 택시는 카지노에서 나온 손님을 모텔이나 버스터미널로 실어 나르고, 모텔 앞에는 호객꾼들이 서성인다. 식당도 아침 장사가 제일 잘된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끼가 아니라 마감하는 식사에 가깝다. 손님들은 흔히 아침상에 소주를 곁들였다.

국밥집을 하는 한 상인은 “카지노 손님 상대 장사도 예전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사북 경제는 카지노 앵벌이가 지탱한다. 7~8년 전까지는 돈벌이가 제법 됐다. 앵벌이들이 방 잡고 살면서 돈을 써야 사북 경제가 돈다. 게임만 하고 가는 사람들은 별것 없다.” ‘카지노 앵벌이’는 강원랜드 장기 체류자를 일컫는 속어다. 카지노에 발을 들였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사북을 떠나지 못하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주로 대리 베팅, 카지노 좌석 매매 등으로 푼돈을 벌어 생활한다. 나름 사북 지역에 유입된 경제활동인구인 셈이다.

강원랜드가 ‘도박 중독’ 관리를 강화하면서 출입 일수를 한 달에 15일로 제한하고, 대리 베팅 등을 엄격히 단속하자 카지노 앵벌이 수는 급감했다. 5년 전 3000여 명에 달했던 강원랜드 장기 체류자는 현재 500~800명으로 파악된다. 강원랜드가 건전한 게임 문화를 정착시키려 힘쓸수록 지역경제는 얼어붙는다.

밤 10시 사북읍내에서 2㎞ 떨어진 강원랜드 카지노에서는 슬롯머신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카지노 안내 팸플릿에는 보유 슬롯머신이 1360대라고 쓰여 있지만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포커, 바카라, 다이사이 같은 테이블 게임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좌석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테이블 뒤에 선 채로 판돈을 걸었다. 슬롯머신 50대가 연결돼 있는 ‘슈퍼 메가 잭팟’ 상금 액수가 7억4000만원을 넘어서며 계속 불어났다.

종종 강원랜드를 찾는다는 중년 여성은 “오늘은 평일이라 그래도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카지노에 왔다. 식사는 카지노 식당에서 ‘콤프’로 해결했다. 콤프는 강원랜드에서 지급하는 포인트로, 쓴 돈의 1%가 적립된다. 콤프로 강원랜드 호텔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빵도 사 먹을 수 있다. 커피나 주스는 카지노에서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돈 쓸 필요가 없다. 읍내에 있는 가게도 대부분 콤프 가맹점이지만 강원랜드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천안에서 차를 몰아 강원랜드 카지노에 왔다는 김창훈씨(가명)는 새벽 6시 폐장 때까지 게임을 하고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개장 시간인 오전 10시 카지노에 다시 입장했다. 그도 점심은 카지노 내 식당에서 콤프로 사 먹었다. 강원랜드가 매일 밤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는 카지노에만 고이는 것처럼 보였다.

폐광 지역 카지노 유치는 도박 같은 실험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 태백·정선·영월·삼척 폐광 지역 주민들은 불확실성에 미래를 베팅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1980년대를 지나며 석탄 수요가 감소하고 채산성이 저하되자 정부는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했다. 168개에 달하던 탄광은 1994년에는 13개밖에 남지 않았다. 강원 남부 탄광 지역 인구도 44만명에서 15만명으로 급감했다. 산업 전사였던 광부들은 실업자가 되었다.
도박 같은 실험 후 도박 중독 같은 후유증 

광부 인구가 가장 많았던 태백시에서 먼저 들고일어났다. 태백 광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지역 운동가들과 주민들은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광지역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했다. 1995년 사북 지역 광부와 활동가들이 가세했다. 사북은 1980년 광부들의 생존권 투쟁이었던 사북노동항쟁 이후로 공동체 문화가 특히 강했다. 동원탄좌 복지회관을 중심으로 야간 횃불시위, 등교 거부, 삭발, 단식 등이 이어졌다. 1995년 3월3일 정부와 고한·사북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가 폐광지역법 제정에 합의했다. 그해 “낙후된 폐광 지역 경제를 진흥시켜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과 주민 생활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폐광지역법이 공포되었다.

폐광지역법에 따라 국내에서 유일한 내국인 카지노가 2000년 강원도 정선에 개장했다. 사행 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에 주민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카지노라도 있어야 사람들이 온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1980년대 말부터 탄광 지역에서 활동하고, 폐광지역법 제정 운동을 이끌었던 원기준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극약 처방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때 카지노를 유치하지 않았다면 사북·고한 등 폐광 지역 도시는 소멸해 지도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다. 당시 우리는 차악을 선택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개장 이후 강원랜드 카지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16년 기준 총매출액은 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6200억원에 이른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고용 효과도 모범적이다. 강원랜드의 정규직 직원은 3300여 명 수준이다. 이 중 50~60%가 폐광 지역, 15%가 강원도 내 타 지역 출신이다. 청소나 세탁,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 1700여 명도 대부분 폐광 지역 출신으로 광부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채용됐다. 강원도 내에서 강원랜드만큼 많이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 출신을 주로 뽑다 보니 연줄을 통해 취업을 청탁하는 대규모 채용 비리가 벌어지기도 했다.

폐광지역법은 강원랜드 순익 중 25%를 폐광지역개발기금으로 납입하도록 강제한다. 이 기금은 태백·정선·영월·삼척 지자체로 배분된다. 2016년 강원랜드가 낸 폐광지역개발기금은 1665억원이며 2000년부터 납입한 총액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동안 지방세도 1조6542억원이나 냈다. 다른 지방 소도시에게 정선 강원랜드는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다. 전북 군산이 지역구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새만금사업 지역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치를 허용하는 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문제는 지자체로 유입된 막대한 자금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년 대가 없이 주어지는 지원금은 철저한 사업타당성 조사 없이 눈먼 돈처럼 탕진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태백시 오투리조트다. 태백시는 2008년 4100여억원을 들여 오투리조트 사업을 추진했으나 영업적자로 3000억원이 넘는 빚을 안게 되어 매년 시 예산의 10%를 부채상환 비용으로 소진했다. 예견된 실패였다. 정선 하이원리조트가 20분 거리에 있음에도 태백시는 연간 관광객 수를 100만명으로 예상했다. 실제 방문객 수는 20만명도 되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완성되지 않은 골프장과 스키장을 무리해서 개장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태백시는 2016년 800억원에 오투리조트를 부영그룹에 매각했다.

카지노 지원금은 눈먼 돈, 탕진되기 일쑤


2000년 개장 이후 강원랜드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지만 폐광 지역에서는 카지노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졌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을이 되어버렸다. 사북 초·중·고등학교는 강원랜드가 내는 교육환경개선 지원금으로 아이비리그 무상 연수를 진행하고 스쿨버스를 운영하는 등 높은 수준의 교육 시설과 환경을 제공하지만 매년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강원랜드 직원들도 중학교까지는 자녀를 사북에서 키우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대부분 원주나 강릉 등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낸다. 사북을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학생들은 박탈감에 시달린다.

광산 노동자들의 공동체 문화와 자부심도 파괴되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도박 중독자들 돈에 의존해서 살 거냐”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원기준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그 당시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가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지역 문제는 예산만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말 운동가로 사북에 정착해 동원탄좌 광부, 강원랜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서 팀장으로 일했던 김창완 정선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일본에서 카지노를 만들겠다며 강원랜드 견학을 왔다. 내 의견을 묻기에 ‘지역개발 대안으로 카지노를 선택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조금 힘들더라도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게 맞다’고 답해줬다.”
카지노로 지역을 살려보려는 거대한 실험 이후 사북은 조금 다른 모색을 시작했다. 2017년 4월 개소한 정선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그 첫발이다.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역량이 없다면 막대한 예산 지원이 있어도 지역의 몰락을 막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주제별로 지역 활동가를 키워내는 해봄학교 1기를 운영했다. 사북 지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탄광산업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궁리 중이다. 사북에는 마침 훌륭한 자원이 있다. 이제는 ‘사북탄광문화관광촌’으로 불리는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이다. 2004년 폐광 직후 뜻있는 광부들이 탄광의 마지막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나섰다. 그 덕분에 사북탄광문화관광촌의 모습은 2004년 10월31일 마지막 조업일에 멈춰 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강재석씨에게 강원랜드가 들어온 이후 17년 세월에 대해 물었다.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광부였던 그는 이제 사북석탄유물보존회 소속으로 옛 일터를 가꾸고 소개하는 일을 한다. 사북탄광문화관광촌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개하던 그가 잠시 말문을 닫았다. 이윽고 짧고 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광산이 끝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행복지수는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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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령화지수 전국 지도
우리나라 지방은 어디가 얼마나 늙어가고 있을까? 유소년(14세 이하) 인구 100명당 노인(65세 이상) 인구수를 보여주는 노령화지수는 지역 인구의 고령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단순히 전체 인구 대비 노년층의 비율만 보여주는 것보다 출생 인구와의 대비를 통해 해당 지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6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전국을 시·군 단위로 나누어 여섯 단계의 색깔을 적용했다. <지도 1>은 색이 진할수록 유소년 인구 대비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가장 노령화가 심한 지역은 경북 군위군, 경북 의성군, 전남 고흥군, 경북 청도군, 경남 합천군 등이다. 대표적으로 노령인구가 많은 지역인 동시에 미래에 소멸 가능성이 높은 지자체로 순위를 다퉈왔던 곳이다.

총 162개 지역 중 유소년 인구보다 노인 인구가 두 배 이상 많은 곳은 71군데에 달한다. 대부분 비수도권 지역이다. 반면 젊은 지역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경기도 오산시, 경남 거제시, 경북 구미시 등이 꼽혔다. 산업단지 및 신도시가 조성되어 있어 인구 유입이 많은 지역이다. 도농 간 격차를 비롯해 구도시와 신도시 간 차이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도 2>는 2000년 대비 2016년 노령화지수의 증감률을 보여준다. 지역의 현재 상태와 상관없이 노령화의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경남 창원시, 경기도 안산시, 경기도 의정부시, 부산광역시, 경기도 부천시, 강원도 고성군, 경기도 시흥시, 울산광역시, 경기도 성남시 순서로 높게 나타났다.

비교적 젊은 도시에 속하는 경기도 안산시, 경기도 부천시 등의 고령화 속도 역시 가파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노령화지수는 2000년 34.3에서 2016년 100.1로 상승했다. 전국적으로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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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위기에  빠진  ‘나의  살던  고향’


많은 이들처럼, 오래전 고향을 떠났다. 유년기 전부를 보낸 곳이지만 언젠가부터 왕래가 끊겼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가끔 갔지만 그 친구들도 예전 나처럼 고향을 떠났다. 남아 있던 가족과 나이 많은 친척들도 차례차례 인근 소도시로, 광역시로, 서울로,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만나러 갈 사람이 없으니 고향을 찾아가는 일도 완전히 사라졌다.

어느 날 잊고 있던 고향 소식을 들었다. 고향 이름이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소멸 위험 지자체 1위 경북 의성군.’ 내 고향은 경북 의성군. 마늘과 공룡 발자국 화석이 유명하고 삼한 시대에 조문국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넓은 면적(1174.9㎢, 서울시 면적이 605.21㎢이다)과 씨름(이태현 선수가 의성 출신이다), 컬링(의성에서 겨울 스포츠 컬링 국가대표들을 많이 키워냈다)도 의성의 자랑거리다. 유년기 이후 만난 바깥 도시 사람들에게 이런 의성의 특색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고향을 묻고 난 뒤 마늘 이야기 정도나 나올까, 도시 사람들은 경남 ‘의령’과도 자주 헷갈렸다.

그랬던 고향이 최근 꽤 유명해졌다. 고령화와 저출산, 지방의 위기를 논할 때 의성군이 꼭 등장했다. 유소년 인구 대비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노령화지수 1위 지역(통계청 2016 인구주택총조사), 주민 평균연령(55.1세)이 가장 높은 전국 최고령 지자체(2017년 3월 말 기준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조사), 65세 이상 인구 비중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비중이 가장 작은, 소멸 위험 1위 기초단체(2016년 3월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 ‘한국의 지방 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와 같은 타이틀이 고향에 주어졌다. 내 고향은 이제 ‘지방 소멸’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한때 ‘웅군(雄郡)’이라 불리던 의성이었다.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았다. 1965년 21만여 명에 이르던 의성군민 수는 내가 태어나던 1984년에 12만5552명, 대도시로 이사 나온 1996년에는 8만3636명으로 줄었다. 2017년 11월 기준 의성군민 수는 모두 5만3479명. 이 가운데 37.5%가 65세 이상 노인이다(2015년 의성통계연보). 통계에 적힌 숫자들은 ‘네 고향은 지금 소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짜, 내 고향은 사라지고 있을까. ‘소멸 위기’ 고향을 지난 12월20일 다시 찾았다.

■ 의성읍 문소3길 96, ‘공생의원’

태어난 곳부터 가보았다. 의성읍 중심지에 위치한 공생의원. 1984년 어느 여름날 이 병원(당시에는 공생병원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나의 살던 고향은~ 의성 공~생병원”이라며 가사를 바꿔 노래를 불렀다. 의성읍내 유일한 산부인과였기에 옆집 친구도, 학교 단짝도 모두 공생병원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통계연보를 뒤져보니 내가 태어난 1984년 의성군 신생아 수는 3029명이었다. 그중 상당수가 나처럼 공생병원 출신이리라.

공생병원은 33년 전처럼 위치도 건물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산부인과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내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전문의 각 1명씩뿐이다. 분만실 병상 수는 0개, 물리치료실 병상 수는 20개다. 병원 대기실에는 보행보조기와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지금 의성에는 신생아를 받을 수 있는 분만 산부인과가 단 한 곳도 없다. 2015년 3월 의성군 안계면에 위치한 영남제일병원에 산부인과가 개설됐지만 분만이 연계되지 않은 외래 산부인과다. 그나마 그것도 마지막 하나 있던 산부인과가 1997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후 하나도 없다가 18년 만에 보건복지부의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 공모로 예산을 따내 겨우 개설된 곳이다. 2017년 7월 다른 지역에서 의성으로 이사 온 신성미씨(가명·26)는 읍내 미용실에서 “의성에는 아이 받는 산부인과가 하나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임신을 준비하던 신씨는 인터넷을 뒤진 끝에 외래 산부인과가 개설된 안계면의 영남제일병원을 산전 검사차 방문했지만 “산모도 없이 썰렁한 분위기에 보건소 수준의 진료”에 실망해 다른 병원을 수소문했다. 알고 보니 의성의 임산부들은 모두 왕복 2시간씩 차를 운전해 안동·구미·대구 등지의 산부인과로 ‘원정’ 검진을 다니고 있었다. 출산도, 산후조리도, 신생아 예방접종과 영유아 건강검진도 거의 의성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신씨는 걱정이 크다. “공기 좋고 한적해 아이 키우기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당장 임신·출산 때 발생하는 차 기름값과 왕복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2016년 기준 한 해 의성군 출생아 수는 270명에 불과하다.

산부인과가 사라진 공생의원 옆에는 전에 없던 신축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요양병원이다. 어릴 적 기억 속 쌀집, 신발 가게, 합기도 학원이었던 읍내 요지마다 요양병원·요양센터·노인복지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의성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요양병원과 같은 노인 의료복지시설은 2007년 3곳에서 2015년 17곳으로, 방문요양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재가노인 복지시설은 같은 기간 3곳에서 14곳으로 늘었다. 일자리도 바뀌었다. 유치원 입학식 날 ‘고데기’로 내 머리를 말아주던 읍내 미용실 아주머니는 지금 장례식장 도우미로 일한다고 한다. 한 어린이집 운영자는 최근 장례식장을 새로 열었다. 2017년 11월 한 달 동안 의성군에 17명이 출생신고를 했고, 76명이 사망신고를 했다.

■ 의성읍 군청길 26, ‘의성초등학교’

다니던 초등학교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더 커지고 깨끗해졌다. 운동장 뒤에는 전에 없던 체육관도 새로 생겼다. 현재 의성초등학교 전교생은 모두 522명. 한 학년 학생만 180여 명에 이르던 내 재학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지만, 하교 시간 초등학교 운동장과 정문 앞은 여전히 아이들 재잘거림으로 활기찼다.

다만 여느 도시와 다른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버스 5대가 시동을 켜고 차 안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 상당수가 이 셔틀버스를 타고 안평면, 사곡면, 춘산면 등 읍내 바깥 마을로 향했다. 면 소재지의 폐교된 초등학교에서 ‘통합’돼 원거리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다. 내가 태어난 1984년만 해도 의성군의 초등학교 수는 모두 66개였다. 의성을 떠나던 1996년에는 46개로 줄어 있었다. 이후에도 한 해에 한 곳 이상씩 사라져, 이제 의성군에는 초등학교가 18개만 남아 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사정이 비슷하다. 1996년 33개이던 유치원은 2016년 15개로 줄었다. 1992년부터 의성읍에서 보육시설을 운영해온 충애어린이집 박선희 이사장(64)은 의성의 ‘소멸 위기’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이 넘쳐서 못 받을 정도였다. 오전에 한 아이가 퇴소하면 오후에 새로 들어왔다. 건물이 모자라서 짓고 또 짓고 했는데, 지금은 텅텅 비어 있다. 그래도 7~8년 전만 해도 정원은 채워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원아 모집이 어려워졌다.” 1990년 의성의 만 0~9세 아이는 모두 1만2167명으로 전체 연령 대비 12.6%를 차지했다. 2015년 만 0~9세 아이는 모두 합쳐 2224명뿐이다. 전체 연령 대비 4.1%이다. 의성 사람 100명 중 10세 미만 어린아이는 4명 남짓인 셈이다.

■ 의성읍 염매시장길 6, ‘염매시장’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드나들었던 쇼핑 중심지인 상설시장 염매시장을 찾았다. 분명 사람들 틈에 부대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인데, 지난 12월20일 염매시장은 저녁 찬거리 준비할 시간에도 행인들이 없어서 한적했다. 빈 점포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동네 어르신들 말에 따르면 이 시장 입구에는 예전 ‘아카데미극장’이라는 큰 영화관이 있었다. 지금 의성군민회관 자리에 있던 ‘의성극장’까지, 읍내에만 그럴싸한 영화관이 2개였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영화 보고 쇼핑하던 청춘의 거리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의성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의성 밖에서 돈을 쓴다. 다섯 살 아이를 둔 민수영씨(가명·33)는 “아이 데리고 놀거나 먹을 만한 데가 없다. 토요일은 안동의 마트, 일요일은 대구의 백화점 이런 식으로 매 주말 무조건 나간다”라고 말했다. 사업차 1년 전 의성에 들어온 이건정씨(35)는 “의성에서 젊은 사람들이 놀 곳이라곤 길거리 지나가다가 본 인형뽑기 기계 두 대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라고 말했다.

의성에서 청년층 이탈은 특히 여성의 경우 더 두드러진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펼쳐 의성에 남아 있다고 알려진 여자 동창 수를 세어보니 열 손가락이 다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 2014년 기준 의성군에 사는 20~39세 여성 인구 비중은 6.6%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34.9%)과 견줬을 때 나오는 상대비도 0.19로 전국 꼴찌다. <지방 소멸>(김정환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는 이 상대비가 낮은 지역일수록 ‘소멸 위기’가 높다고 분석했다. “고령화로 인해 인구 재생산의 잠재력이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서 (가임기 인구에 해당하는) ‘젊은 여성’이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이다.

전남 고흥군, 경북 군위군, 경남 남해군 등의 ‘소멸’ 위험지수도 의성군과 같거나 바짝 뒤쫓고 있다. 도시도 소멸 위험지수가 낮지 않다. 부산 영도구(-44.1%), 대구 서구(-42.5%) 등 산업단지가 쇠퇴한 도심지의 2004~2014년 20~39세 여성 인구 감소율은 의성(-43.2%)이나 전남 고흥(-45.1%)과 그리 다르지 않다. 마스다 히로야는 “현재와 같은 고령화 추세 속에서 지방이 소멸하고 나면 그다음 차례는 대도시가 된다”라고 주장했다. 내 고향 의성의 현재는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미래일 수 있다.

■ 의성읍 원당리 구봉산 위 ‘문소루’


의성읍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마을 뒷산 구봉산에 올랐다. 구봉산 북쪽 능선에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안동 영호루와 함께 영남지방의 4대 루 중 하나로 불렸다는 의성의 ‘랜드마크’ 문소루가 서 있다. 어린 시절 학교 소풍, 그림 그리기 대회마다 단골로 방문하던 곳이다. 이 추억의 장소 주변에 어린 묘목 20여 그루가 지지대에 의지해 옹기종기 심어져 있었다. 의성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명찰을 단 ‘생명의 꿈나무’이다. 2003년부터 의성군청은 매년 식목일마다 구봉산 등지에 그해 태어난 아기 이름으로 벚나무와 전나무 등을 심어주는 사업을 벌여왔다.

노인만 남고 젊은 사람과 어린아이들이 없어지는 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갖가지 노력을 해왔다. 의성군청은 나무 심어주기는 물론이고 아기를 낳은 집에 미역과 황태, 아기 내의 등이 담긴 선물 꾸러미를 보낸다. 첫째 아이 100만원, 둘째 아이 150만원, 셋째 아이 50만원씩 출산장려금을 주고, 셋째 아이부터는 만 5세까지 매달 25만원씩(총 1500만원), 넷째 아이부터는 만 5세까지 매달 30만원씩(총 1800만원) 다자녀 양육비를 지급한다. 의성군청 관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데 밖에서는 소멸 어쩌고만 하니까 여기 사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참 곤혹스럽다”라고 말했다.

의성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은 “뭐가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유치’하는 일은 오랜 세월 의성군의 숙원이었다. 전에는 경북도청(대구에 있던 경북도청 유치를 위해 의성군을 비롯한 경북 내 여러 지자체가 경쟁했다)이 그 희망이었다면, 그것이 좌절(경북도청은 2016년 2월 안동시 풍천면으로 이전했다)된 이후에는 K2·대구통합신공항 유치를 염원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의성 주민은 말했다. “강원랜드 같은 외부 투자, 아니면 극단적으로 쓰레기 매립장이나 핵폐기물 처리장 같은 혐오시설이라도 하나 맡아 외부 자본과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한 솔직히 의성은 답이 없다고 본다.”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이런 ‘유치’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의성청년이룸협동조합 박지혁 대표(44)는 “바깥에서 자본과 사람을 끌어오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단 여기 사는 사람들을 안 나가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20~40대 의성 청년들이 모여 만든 의성청년이룸협동조합은 의성군청이 마늘테마파크 내 유휴 공간에 마련한 의성 내 유일한 키즈카페를 위탁 운영하고, 의성 청년아카데미와 의성 노인대학을 꾸려가는 등 지역 내 교육·문화 인프라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박 대표는 “평균연령이 높은 동네라 젊은 층이나 어린아이들을 위해 교육·문화 투자를 하자는 건의를 해도 지역 내 어른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이제는 젊은 층에게 정책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는 여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성군 옥산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대도시로 나간 이새벽씨(32)는 몇 년 전 다시 의성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등 가족이 살고 있는 이 고장이 “엄청나게 발전을 하기보다는, 그냥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이 소소하게나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씨 자신의 미래도 구상했다. 2017년 5월 이씨는 의성군 봉양면 파출소 옆에 ‘블루하라’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를 열었다. 면 소재지 여느 ‘다방’ 스타일과는 달리 인문·사회·예술 책을 갖다놓고 세미나실 같은 공간도 마련했다. 올해 1월부터는 의성 지역 주민들과 독서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전시회도 열고, 독립출판물과 접목도 하면서 의성에서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랑방 같은 구실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소멸 위기’ 내 고향에는 아직도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여럿 살고 있다. 1996년 의성에서 대도시로 이사 가기 전날 내가 썼던 일기장을 찾아 읽었다.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게 됐다. 의성 친구들, 나무, 하늘, 골목길 다 모두 너무 그리울 것 같다. 꼭 다시 만날 수 있겠지?” 22년 후에 만난, 소멸 위기에 빠진 ‘나의 살던 고향’은 앞으로도 누군가의 고향이 될 수 있을까.

출처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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