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6일 화요일

불로소득의 나라/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1968년, 경북대 명예교수 이정우가 대학 1학년 때다. 과외를 많이 해서 한 달 2만5000원을 번 친구가 있었다. 하숙비가 월 5000원. 다섯 달치를 미리 냈다. 하숙집 주인이 그 친구를 불러 데리고 간 곳은 ‘말죽거리’다. 주인이 선납한 하숙비를 내주며 땅을 사라고 권했다. 평당 7원80전. 2만5000원이면 3000평을 살 수 있었다. 허허벌판에 진창인 땅엔 건물 한 채 없었다. “이런 땅을 사서 뭐 합니까?”
지금 서울 양재동 일대 3000평은 2000억원가량이다. 평당 7000만원, 1000만배가량 올랐다. 이정우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특강에서 한 얘기다. 그 친구는 여전히 가난하다고 한다. 이정우가 묻는다. “땅을 한 번 사고파는 것이 사람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아도 되는 것인가?” 그는 토지·노동·복지를 한국 사회 3대 불평등으로 꼽는다. 땅값 급등은 불로소득이 판 치게 하고, 투기꾼들이 설치게 만든다. 이정우는 토지 불로소득이 경제정의 파괴 주범이라 여긴다.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는 ‘박정희 경제성장 신화’의 한 축이다. ‘절대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신화’를 붙여 써도 타당한가. 광적인 부동산 투기와 그 축으로 이룬 외형 성장은, 시쳇말로 ‘적폐’고, 영화 제목을 빌리면 ‘잔혹사’다. 
그 잔혹사가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일이란 걸 예술집단 리슨투더시티가 주최한 ‘제5회 도시영화제’에서 재확인했다. 이 영화제는 종로구 체부동 궁중족발에서 열렸다. 궁중족발은 2009년 4월 문을 열었다. 2016년 1월7일 새 건물주는 매입하자마자 계약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못 나간다면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200만원을 내라고 했다. 보증금 3000만원 월 297만원짜리 가게였다.
계약 5년이 지나면 건물주는 갱신을 거부해도 된다. 사설용역을 사 강제집행도 할 수 있다. 족발집 사장 김우식은 지난 11월 강제집행 과정에서 손가락 네 개가 부분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건물주는 궁중족발이 든 건물을 48억3000만원에 사 70억원에 내놓았다.
건물주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허점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그는 ‘허점’이 아니라 이 시대, 이 체제의 ‘법과 원칙’을 제대로 활용했을 뿐이다. 임대료를 네배 올려도 법에 어긋날 게 없다. 건물주는 전체공개로 페이스북 활동을 한다. 그의 페북 포스트는 자본주의 교과서다. 그가 보기엔, 궁중족발과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저항은 “무원칙 무법천지”이자 “(데모가) 수익모델”일 뿐이다. 그는 “시세차익은 다다익선”이라고도 적었다. 
이 건물주의 탐욕은 ‘합법적’이다. 지금 ‘법과 원칙’은 가진 자들의 더 가지려는 탐욕은 한껏 보장하고, 못 가진 자들의 최소한의 욕구는 최대한 억누른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을 걱정하느라 여념 없는 여러 언론과 지식인들도 정작 자영업자들에게 더 큰 고통인 임대료 문제는 침묵한다. 이들에게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게 재산권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간, 자영업자와 정부 간 일대일 대결 프레임을 만들어 불로소득 문제를 가린다. 미디어는 재테크와 시세차익을 찬양한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로소득은 불가침 영역이다.
도시영화제를 찾은 건 최근이다. 족발집 사장 김우식·윤경자 부부가 영화 상영 전 20명 남짓한 관객에게 인사했다. 윤경자가 지난 9일 ‘궁중족발을 지키기 위한 현장 기도회’에 참여한 목사 박득훈의 말을 전했다. 그는 ‘생존권은 법 위에 있다’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윤경자가 말했다. “목사님이 나쁜 법, 못된 사람을 위한 법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올바른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20대 국회 개원 후 지난해 12월까지 18건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개정안들은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52108025&code=990100#csidxca629280314f125a15f5ee4b94938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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