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8일 목요일

한국 문학은 ‘1987년’을 다루지 않았다…왜?/ 권영미 뉴스1 기자

군사독재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중심으로 1987년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1987'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1987년은 어떻게 담아냈을까. 

1987년을 둘러싼 분위기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인기를 끈, 소위 '후일담문학'과 노동운동이나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노동문학' 속에 담겼다. 하지만 문학계에 따르면 4·19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 못지않게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임에도 1987년의 사건들이나 6·10항쟁을 직접 다룬 문학작품은 몇 편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한국문학은 1987년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을까. 평론가들은 그 이유를 1990년대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강력한 출현 때문에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역사적으로 형상화할 기회를 놓친 데서 찾았다. 또 그런 문학적 쏠림 현상을 바로 잡아줄 비평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 김숨의 'L의 운동화' 등이 1987년 다뤄

2016년 소설가 김숨이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과정을 다룬 작품 'L의 운동화'를 발표했고, 1990년에 울산현대중공업 파업의 기록인 '철의 기지'를 쓴 김형진 작가가 지난해 말 소설 '6월10일'을 내면서 최근에 1987년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문학에도 일기 시작했다. 

이들 이전에는 2007년 출간된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66인 시집인 '유월, 그것은 우리 운명의 시작이었다'(화남출판사)나 소설가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1988) 등이 있었다. '밤길의 사람들'은 1987년 6월의 밤에 데이트를 하는 노동자 두 사람의 눈으로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던 당시를 증언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외에 1987년을 직접적인 배경이나 소재로 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고 평론가들은 밝혔다.
1987년은 대신 주인공이 겪었던 학생운동 사건과 내면을 수 년 후 되돌아보는 '후일담문학'이나 '노동문학'에 배경으로 들어갔다. 공지영의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89)와 '고등어'(1994),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 등은 후일담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외에도 건대항쟁, 6·10항쟁, 이한열 장례식 등을 배경으로 한 심산의 '사흘밤 사흘낮'(1994), 김영하의 사실상 데뷔작인 '무협학생운동'(1992), 1990년 '현대소설'에 발표한 현기영의 '위기의 사내', 정도상의 '친구는 멀리 갔어도'(1988) 등이 1987년의 분위기를 담은 후일담문학으로 발표됐다. 김영현, 방현석, 김인숙, 권여선, 최영미, 김형경 등도 후일담 문학을 남겼다.

학생운동이 아닌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의 경험을 담은 작품들에도 간접적으로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의 분위기가 담겼다. 1987년 무크지인 '전환기의 민족문학'에 발표된 정화진의 단편 '쇳물처럼'과 1989년 문예지 창작과비평에 실린 방현석의 단편 '새벽출정'은 노동소설의 신호탄이 된 작품들이다. 

교사출신 활동가이자 소설가인 유시춘이 학생운동과 전교조 활동의 경험을 담아낸 작품집 '우산 셋이 나란히'(1990)를 냈고 차주옥은 86년 초에서 87년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섬유업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 과정을 담은 '함께 가자 우리'(1990)를 발표했다. 하지만 후일담문학과 노동문학은 1990년대 초중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개인의 내면이나 일상을 다룬 새로운 문학이 등장, 인기를 끌며 힘을 잃어갔다. 

◇1987년을 문학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이유

4.19나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에 비해 1987년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출판평론가 김성신은 한국문학 속 1987년의 부재에 대해 "결국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민주진영의 대선승리로 연결시키지 못한 열패감이 컸고, 그래서 6월 항쟁을 계속 떠올리기엔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광주항쟁 같은 경우는 트라우마가 깊은 사건인 반면 1987년의 6.10항쟁은 승리한 사건이어서 문학적으로 선택되지 않았을 수 있다. 통상 비극이고 패배한 기억이 더 문학적인 소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의 사건들과는 달리 1987년의 민주화투쟁은 역사적인 변화 때문에 작품으로 형상화할 타이밍을 놓쳤다고도 설명했다. 역사적 사건이 문학으로 형상화되는데는 통상 긴 시간이 필요한데 1987년의 사건이 문학으로 발표될 시기가 공교롭게도 사회주의 붕괴와 맞물렸다는 것이다. 

김명인 평론가는 "'후일담 문학'은 개인적인 회고라 앞서서 발표될 수 있었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본격적인 작품은 시기적으로 1990년대 들어야 가능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 때 정치적 변화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이 강력하게 등장했다. 그래서 역사적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억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작가들도 위축되었다. 소설가 방현석은 "1990년대에 학생운동이나 노동문제를 소설에 쓰면 거의 '응징당하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아직도 이런 것을 쓰고 있냐'는 냉소적인 반응때문에 작가들이 맥이 빠져 그런 주제에 계속 천착하기가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신세대 문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쪽으로만 쏠리는 분위기를 잡아줄 평론의 부재 역시 문제였다는 진단이다.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 후 한국문학이 너무 조급하게 '새로운 글쓰기'로 나아갔다"면서 "'신세대 문학'에 집중한 출판마케팅과, 정치적 변화에 휩쓸려 정당한 평가를 방기한 비평적 게으름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고명철 평론가에 따르면 손홍규 작가가 학생운동의 쇠퇴의 계기가 된 1996년 연세대 사태를 작품에 진지하게 담았고, 이기호 작가도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 문제를, 김종광 등도 운동권을 위트와 풍자를 섞어 자기 세대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다. 1987년과 그 즈음을 다룬 작품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들은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작가들의 노력에도 문단은 '80년대 아류작이다' '왜 선배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냈고 평단도 이들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아 학생운동을 다룬 작품은 점점 사라져갔다. 

◇세월호로 사회 대한 관심 복원…역사와 사회 탐구하는 문학 나올 것 

그러나 세월호를 기점으로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복원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의미를 묻는 작품들이 앞으로는 많이 창작될 것으로 문인들은 내다봤다. 고명철 평론가는 "영화 '1987'에 수백만 관객이 든 것을 보면 한국 대중이 현대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면서 "단지 자신들이 가진 민주주의 열망을 예술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갈증이 쌓여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현석 작가는 "1987 영화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와 개인의 실존이 분리될 수 없다'는 공감대를 사람들이 갖게 되었고 그에 가장 신속하게 반응한 것이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문학작품이란 소재나 당위성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작가의 내적 동력과 미학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되어야 나온다"고 설명하면서 "독자와 사회 변화가 작가에 영향을 미쳐 한국문학도 (다른 장르보다) 더디긴 하지만 사회와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작품들이 다시 많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ungaungae@
출처 http://news1.kr/articles/?320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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