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4일 월요일

대안교육 20년, 그 이름을 다시 생각해본다/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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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학교보다는 ‘대안적 입시’를 모색하는 학교로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식 있는 중산층 인텔리 부모들이 제 아이를 야만적인 공교육 현장을 우회시키되 결국 대학 입시로 가는 경향이다.

한국 대안학교의 역사가 20년을 넘기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대안교육 쪽의 뜻있는 사람들이 ‘정명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꾸려왔다. 정명(正名)은 알다시피 ‘이름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는 공자의 이야기다. 대안교육이라는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그 이름에 값하는 본디 뜻을 살피고 바로 세워 제대로 된 대안교육을 해보자는 취지다. 그런 모임이 꾸려진다는 것은 대안교육이 많이 흐트러졌다는 뜻일 게다.

수많은 대안학교가 다 같진 않고 최초의 대안학교라는 간디학교만 해도 여러 개로 분화되어서 여전히 미인가 상태이면서 대학입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인가학교인 경우도 있다. 한 대안학교에서는 진보진영 인사의 아이와 재벌가의 아이가 함께 다니는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큰 흐름으로 본다면 대안학교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학교보다는 ‘대안적 입시’를 모색하는 학교로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식 있는 중산층 인텔리 부모들이 제 아이를 야만적인 공교육 현장을 우회시키되 결국 대학입시로 가는 경향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주민센터 앞 문래텃밭에서 한 대안학교 학생들이 홍익대 학생들로 구성된 사회적기업 동아리 회원들과 작물을 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평균 학비 620만원 ‘귀족학교’ 비판
‘귀족학교’라는 비판도 실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귀족학교라는 말은 대안학교의 비싼 학비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교육부의 조사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전국 170여곳의 미인가 대안학교의 연간 학비(입학금·수업료·숙식비)는 평균 620만7000원으로 조사되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니 실제 체감 학비는 그보다 많다는 것이고, 입학 때 내야 하는 목돈까지 생각하면 한 아이에게 한 달 100만원이라는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 중산층 부모들이 보기에는 일반학교에 다녀도 사교육비나 식비까지 생각하면 감당할 만한 돈일 수 있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대학입시를 통한 인력 상품화’라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벗어나 대학에 가지 않고도(대학을 가는 게 잘못이거나 못 가게 하는 게 옳다는 게 아니라) 제 삶을 꾸려가는 교육을 해왔다면, 그래서 20년쯤 되고 보니 그런 삶을 꾸려가는 대안학교 졸업생들이 사회 전반에 제법 나타났다면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학교라는 비판에는 서민 부모들의 울분이 담겨 있다. 아이가 동네 학교에 다니는 것도 빡빡한 부모가 대안학교를 생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학비도 학비지만 입학전형에서 대안학교 부모의 그룹에 끼는 것도 쉽진 않다. 미인가 대안학교는 재정이나 운영 면에서 부모의 참여 몫이 매우 크다. 그래서 학교의 운영방식이나 취지에 교감하는 부모들이 다수를 점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게 된다. 자연스레 아이를 뽑을 때 부모의 교육관이나 성향을 살피게 된다.

결국 대안학교 부모들은 유유상종의 그룹을 짓게 되고, 학력이 낮거나 먹고사는 일에 쫓겨 교육문제나 인문사회적인 식견을 가질 기회가 적은 서민 부모들이 그 그룹에 끼기는 어렵다. 그것도 마음 상하는 일인데, 가만 보니 대안학교라는 데가 결국은 입시로 흘러간다면 서민 부모들로서는 위화감이 들고 마음이 언짢을 수밖에 없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데 힘써왔다면, 그런 모델을 많이 만들어내진 못했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다르긴 다르다. 입시로 승부할 형편이 충분히 되는데도 저렇게 뜻있는 교육을 해보려 하니 참 훌륭하다’라는 칭송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회적 맥락에서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은 ‘교육의 전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의 교육 현실에 많은 문제가 있고,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고, 그래서 아이의 미래도 사회의 미래도 어둡기에 대안학교라는 게 출현한 것이다. 전체 교육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일부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나감으로써 전체 교육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게 대안교육의 사회적 위상이다. 그런데 대안학교의 주된 흐름이 일부 부모들이 전체 교육의 현실로부터 제 아이를 빼돌리는 상황이 된다면 그건 귀족학교라는 이야기가 아예 그른 건 아닐 것이다.

유유상종 그룹을 짓게 되는 학부모들
그러나 그런 비판이 대안학교 자체를 겨냥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다. 어느 대안학교도 설립할 때부터 그런 교육을 지향하지는 않는다.(아예 처음부터 골프와 승마까지 교과에 넣고 대놓고 귀족교육을 표방하는 일부 대안학교는 제외한다) 다 저마다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려고 학교를 만든다. 귀족학교라 불리지만 교사의 임금수준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일반 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고 싶어 대안학교로 옮긴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왜 대안학교들이 그렇게 흘러갔는가. 전적으로 부모들 때문이다.

부모들의 욕망과 불안이 대안학교를 그렇게 몰아간다. 대안학교 부모 대상 강연에서 이따금 부모들에게 묻곤 한다. ‘아이가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주시겠어요?’ 초등 대안학교는 거의 모든 부모들이 손을 든다. 중등에서는 절반 정도가 들고 고등학교에선 일부만 든다. 고등학교도 학년에 따라 다르고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다.

그렇다 보니 신입생을 채우기 쉽지 않은 신생 대안학교는 아예 두 가지 경향을 함께 포용하려는 모습도 있다. 몇 해 전에 생긴 인문학 공부 위주의 중·고등 과정 대안학교는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를 하면 대학입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학교는 두 경향의 부모들이 늘상 갈등했고 결국 두 목표 다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사실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가 대학입시를 해결한다는 건 기만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이야기다. 대학입시가 정말로 그런 상태라면 현재 교육에 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고 그걸로 입시 결과가 나오니 현재 교육이 문제인 것 아닌가.

흔들리는 대안학교 부모들은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항변한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그럴 거면 굳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이유가 있는가. 굳이 대안학교를 고집한다면 결국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의 정체성을 일반 학교와 다름없이 만들어놓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밖엔 안 된다. 내 아이부터 생각하는 건 부모의 인지상정이고, 한 부모가 교육문제에서 사회적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 아이만 생각하고 대안교육의 사회적 의미에 눈감는다면 성숙한 태도라고 하긴 어렵다. 사실 그런 모습은 교육에서 주체적 태도보다는 교육상품을 골라 아이를 내맡기려는 한국 부모 전반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다음 회에 계속)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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