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7일 목요일

한국의 출판정책, 과연 있기나 한가?/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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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출판정책, 과연 있기나 한가?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난 3년의 현실분석을 통해 얻어낸 결론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15년 2월 4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과 문학번역원(번역원)의 2015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언제 이런 설명회를 연 적이 있었나? 정책고객에게 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겠다는 발상부터가 좋았다. 실장(국장)과 과장 등 정책담당자들이 주도한 행사인데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후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출판 정책을 세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런 비판적인 의견을 수렴해 출판계 전체의 의견을 묻고 내년에 제3기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7~2021)’을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발표 또한 그때 바람직한 출판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비판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한다.

출범 1주년을 맞이한 시점의 진흥원 정책 비판
진흥원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은 2012년 7월 27일이다. 이제 3주년은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출범 1주년을 기념해 <기획회의> 348호(2013년 7월 20일자)는「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범 1주년을 돌아보다」라는 특집을 게재한 바가 있다. 그때 나는 ‘발행인의 말’에서 “사람이 살아가려면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가 필요하다. 요즘이야 배산임수 같은, 하늘이 내려준 지형을 찾아갈 수 없는 형편이니 물이나 가스, 전기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이 물과 가스와 전기가 무엇일까. 이걸 우리는 인프라라고 부른다. 공동 우물을 만들어놓고 한마을이 함께 사용하던 것을 이제 국가가 만들어 집집마다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출판정책이란 무엇일까. 바로 이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출판은 제대로 영위될 수 없다.”고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출범 1주년을 맞이해 살펴본 진흥원의 각종 사업에 출판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때 ‘기획회의’ 특집에 실린「진흥원, 출판 진흥의 의지는 있는가」란 글을 발표한 한승동 <한겨레> 문화부 기자는 법정기구인 진흥원이 출범 1년을 맞아 이 기구가 한국의 출판문화산업을 얼마나 진흥시켰는지 출판인들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그때 출판인들의 대답은 대체로 이랬다.

“행사는 수도 없이 하는 것 같은데, 하는 일이 없다.”
“사업 자체가 새로운 게 없다.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과자 부스러기나 던져 주면서 달래는 것 같다. 다 나랏돈으로 하는 일인데, 정작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건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출판인들이 속고 있는 것 같다.”

“갈매기들에게 새우깡 뿌리는 격이랄까. 아니면 한강에 물 뿌리기? 출판계도 참 불쌍하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진흥원이 지금 하고 있는 건 해도 안 해도 그뿐인, 그것 안 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 것들만 하고 있다. 기획, 공모하고 선정, 발표해서 집행하는 그런 잔챙이 작업들은 5〜6명이면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을 50여 명(지금은 85명)이 붙들고 앉아 있으니.”

“진흥원이 해야 할 일이 말 그대로 출판산업 진흥과 독서수요 개발 아닌가. 이걸 하려면 먼저 필요한 법과 제도를 바꾸고 정비하는 인프라 깔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기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왜 그래야 하는지, 궁극적 지향점이 어딘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런데 그런 건 손도 대지 않았으니 좌표 설정 자체가 잘못될 수밖에.”

“출판계에 여성노동자들이 많아서 출산, 육아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지역 차원에서라도 출판노동자를 위한 탁아소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그래서 생긴 빈자리를 임시직으로 메워 생기는 노동 불안정 문제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은 개별 회사 차원에선 대처할 수 없다. 출판계도 기금 조성 등 자구 노력을 해야겠지만 지자체나 정부가 나서서 직접 지원하거나 주선해주면 좋을 텐데. 진흥원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우수학술도서 선정 지원 사업이 더 형편없어진 것 같다. 이미 예산이 절반이나 깎여 선정 도서 종수도 절반으로 줄었고 한 종당 지원금도 1000만 원에서 800만 원으로 줄었다. 심사위원 구성도 어떻게 된 건지 전에는 곧잘 지원받던 괜찮은 출판사 책들이 무더기로 탈락했다. 대신 일부 대학출판부나 특정 출판사 책들이 많이 늘었다. 선정 심사위원 구성 등의 실무를 진흥원이 사실상 다 떠맡았는데,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흥정책
이런 비판이 있고 난 다음에 진흥원의 정책집행은 좀 나아진 것이 있을까? 진흥원은 이재호 원장 체제가 출범한 직후인 2012년 9월에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을 발표했다. 막 취임한 이재호 원장이 이 계획 수립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또 이 계획이 출판계의 중지를 얼마나 모았는지는 모르겠다. 이 자리에서 이재호 원장은 “도서구입비 관련 세제혜택 등을 통해 국민 독서수요를 창출하고, 출판문화산업을 지식문화사회의 핵심 콘텐츠로 육성하며, 출판을 통해 글로벌 문화강국으로서의 국가브랜드를 제고하고, 출판산업의 건전한 유통질서 구축과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그의 포부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과연 제대로 수립된 적이 있는가? 이제 임기 말에 살펴보니 이뤄놓은 것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올해 2015년 2월 4일의 설명회 자리에서 두 기관의 발표를 들어보니 두 기관은 예산도 늘고 잘 나가는 것 같았다. 비전도 있어보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두 기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두 기관은 갈수록 잘 나가는 것 같은데 한국 문학과 한국 출판은 왜 점점 심하게 죽어가는 것이냐? 번역원이 그렇게 세계화의 비전을 보여주는데 정작 한국 문학 시장에서는 1만부라도 팔리는 작가의 씨가 말라가는 것인가? 유명 문학 출판사에서마저 시집이나 소설집을 초판 1000부도 찍지 못한다는 아우성을 쳐대고 문학전문 출판사의 수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날 진흥원이 발표한 2015년의 사업 예산은 전년에 비해 좀 늘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표현대로 여전히 ‘도토리가 키를 재고 코끼리가 비스킷을 먹는’ 듯한 고만고만한 사업의 나열만 넘치지 영양가 있는 정책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 심하게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판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고? 바야흐로 아마존, 구글, 애플 같은 플랫폼 기업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희망이 있다. 그러니 판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그러나 한국 출판계는 자신에게 닭모이나 새우깡을 더 많이 던져주지 않는다고 역정을 냈다. 그날의 발표 자리에서도 그랬다.

진흥원의 2015년도 예산은 338억 4547만 3920원이다. 이 예산에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이라는 본예산과 출판인쇄과 인문정신과 고용노동부 등 각 정부기관으로 부터 재교부 받는 예산이 포함돼 있다. 상당수의 사업들은 진흥원을 거쳐서 민간단체(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파주출판도시, 와우북 등)에 민간경상보조로 재교부 되는 사업들이다. 이 경우는 진흥원은 창구의 역할을 할 뿐이고 사업 종료 후에 사업평가와 정산 작업 중심으로 업무가 이루어진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 예산은 모두 100.37억 원이다. 이중 인건비(31.04억 원)와 경상비(7.23억 원)를 제외한 진흥원 자체 사업비 예산은 62.1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출판 국내수요 창출 및 유통선진화가 18.66억 원(책읽기 방송 프로그램 제작 지원 3.5억, 문화복지 책나눔 지원 1.7억, 청소년 ‘북토큰’ 지원 8억, 출판산업 종합지원센터 설치 운영 2.61억,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운영 2억, 책& 발간 0.85억 원),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가 15.08억 원, 글로벌 출판 한류 확산이 10억 원(출판수출지원센터 운영 4억, 출판한류 중국시장 진출 기반 조성 6억), 출판문화산업 지속성장 인프라 구축이 11.95억 원(출판산업 기초 통계조사 및 정책개발 5.5억, 중소출판 청년인턴 지원 2.45억, 출판인 해외연수 지원 2억, 출판지식창업보육센터 운영 2억), 심의사업 등 기본사업이 6.41억 원(심의사업 3.28억, 고객만족도 조사, 역량 개발 등 3.13억) 등이다.
이 예산은 모두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의거해 수립된『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에 근거해 예산이 편성된 것인데 출판 수요창출 및 유통 선진화,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 전자출판 및 신성장 동력 육성, 글로벌 ‘출판 한류’ 확산, 출판산업 지속성장 인프라 구축이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의 주요 골자이다. 5개 부분의 정책 세부 내용은 <표>와 같다.

구분
정책 내용
출판 수요창출 및 유통 선진화
● 도서 수요 증대 ● 소외계층 콘텐츠 지원 ● 대중매체 책 정보 확대 ● 지역서점 활성화 ● 출판 유통질서 확립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
● 우수도서 선정/보급 지원 ● 고전 번역출판 지원
● 출판메세나 활성화 ● 지역 출판산업 육성
전자출판 및 신성장 동력 육성
● 양질의 전자책 콘텐츠 확보 ● 전자출판 시장질서 확립
● 독자 중심의 전자책 생태계 조성 ● 제도 개선
글로벌 ‘출판 한류’ 확산
● 출판수출지원센터 운영 ● 번역지원 ● 해외교류/마케팅 활성화
출판산업 지속성장 인프라 구축
● 출판통계정보시스템 ● 인력 양성 ● 파주출판단지 활성화
● 출판산업종합지원센터 운영



 낙제점을 받은 출판정책
2015년의 출판예산도 이 계획에 의해 책정됐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의 집행 효율은 어떨까? 한주리 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과 교수가 2014년 12월 17일 대한출판문화협회 건물 4층 강당에서 진행된 한국출판학회 주최 제14차 출판정책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표한 발제문「출판정책 평가와 발전 방향: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2012.7. 출범~현재)의 사업에 대한 출판사 종사자의 인식을 중심으로」가 그 효율을 따져 본 거의 유일한 문건이다.

한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첫째, “출판사 종사자들이 출판 진흥 정책에 대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해, 현재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출판 진흥 정책에 대한 정책 추진 만족도 평가는 낮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M=2.46)” 이는 “출판 산업 종사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수립된 정책에 대한 홍보 및 활성화 노력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둘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사업에 대한 출판사 종사자의 인식은 “세종도서(구 문화부 우수도서) 선정 및 지원 사업이 평균 3.09점으로 높게 나타났고,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활성화(2.92), 전자출판 육성 지원(2.82), 간행물 심의사업(2.78), 인력양성 지원사업(2.68), 정책개발 지원(2.62), 글로벌 출판한류 확산(2.62), 국민 독서문화 진흥 지원(2.54), 출판유통 지원(2.46)순으로 나타났”는데 “세종도서 지원사업만 보통 이상의 점수를 주었고, 나머지 사업에 대해서는 평균 3점 이하의 점수였다.” 종사자들은 “실질적인 중요도에 있어서는 국민독서문화 증진이나 출판 유통 선진화 등의 유통 개선을 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 교수는 정리했다.

셋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인지가 사업 평가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파악한 결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세부 사업에 대한 인지도가 높을수록 사업추진에 대한 효율성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 또한 세부 사업 인지도가 높을수록, 사업추진에 대한 공정성, 사업추진의 능률성, 진흥원 사업의 효과성이 높다고 인식하였다. 또한 진흥원 사업 참여수가 많을수록 진흥원 사업 인지도 높게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사업에 대한 참여횟수가 많을수록 진흥원 사업이 효율적이라고 인지하는 경향이 보였다. 그러나 진흥원 사업 참여수가 높다고 하더라도 사업추진의 공정성이나 능률성과는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않았다. 이는 사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사업추진이 공정성과 능률성에서는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이는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은 추후 사업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사업의 공정성과 능률성 부분에 대해 보다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이 연구에서 출판 유통구조 개선과 같은 출판 생태계 구축, 도서관 인프라 구축 및 국민 독서 환경 구축, 출판 인프라 구축 및 인재 양성, 주기적 정책 평가, 법제도나 정책 마련 시 충분한 조사 및 의견 반영 등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이 발표된 2012년에 9월에 언론은 “백화점식 사업으로 미봉책”(<경향신문>)이라거나 “역시나 재탕 삼탕에 맹탕… 냉소 쏟아진 출판진흥계획”(<한국일보>)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겨레> 문화부 한승동 기자가 <기획회의> 329호(2012년 10월 5일자)에 발표한「이재호 체제의 진흥원, 존립할 이유가 있을까」에 따르면, 발표 당일 이재호 원장은 도서정가제 문제를 거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 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마치 준비라도 해온 듯, “거기엔 시각차가 존재한다”고 전제한 뒤 “책을 문화적 공공재로 보느냐, 단순한 교환재(상품)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공공재로 보면 완전 도서정가제를 실시해야 하는데 대다수 출판사들이 그런 입장이다. 그러나 기재부나 공정거래위 등 정부 입장은 그와 다르다(교환재로 본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진흥원은 어느 일방을 지지하지 않고 중간적 입장에서 풀어가도록 노력하겠다”며 도서정가제에 대한 사실상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한승동 기자는 이재호 원장이 “중간적 입장이라 했지만 사실상 출판계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출판계로서는 자주적 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은 이 원장의 발언에서 자신들에 대한 변함없는 푸대접을 재확인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출판정책의 문제점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이 2015년에도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에 따라 추진되는 것을 보면 계획의 수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 번 수립된 정책 및 사업을 약간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수준에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2015년의 예산을 중심으로 출판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한주리 교수가 논문에서도 지적했지만 출판문화산업 진흥정책의 대부분이 ‘분배정책’이다. “분배정책이란 특정한 개인, 기업체, 조직, 지역사회에 공공서비스와 편익을 배분하는 것으로 ‘나눠먹기식 다툼(pork-barrel politics)’이라고 불리는 정책”이다. 진흥원 예산이 배정된 정책에서 ‘분배정책’이 아닌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부로부터 재교부 받는 예산인 이른바 ‘문화부 예산’인 세종도서 선정 지원(142. 04억), 전자출판산업 육성 지원(20.32억), 지역서점 육성 지원(2.2억), 국민독서문화 증진(28.83억), 저작권 수출 활성화 지원(3.01억), 지역출판문화산업 육성(5억) 등도 모두 ‘분배정책’에 따른 예산이다.

전자출판산업 육성 지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자책을 육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플랜이나 인력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없이 역시 분배만 있을 뿐이다. 텍스트형 전자책 제작 지원(3억 원, 종당 30만 원 이내, 총 1,000종 내외), 멀티미디어형 전자책 제작 지원(3.51억 원, 평균 12백만 원, 총 25종 내외), 대한민국 전자출판 대상 선정 및 시상(1.5억 원, 전자책 및 작가 부문 각 12편 내외), 전자출판 지원센터 운영(1.55억 원), 전자출판 연구조사 및 세미나(0.88억 원), 전자책 바로센터 운영(0.9억 원), 국제도서전 참가 지원(2.4억 원, 주요 도서전에 한국전자출판관 참여), 수출 전자책 번역지원(2.78억 원, 평균 9백만 원, 총 30종), 디지털북페어코리아 개최(3.3억 원), 디지털 독서문화 확산(0.5억 원, 전자책 체험공간 조성, 총 10곳) 등이다. 이 중에서 연구조사 및 세미나에 배정된 8800만 원만이 겨우 미래지향적인 정책비용이다.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하는 세종도서 선정 지원(2014년 150억 원)은 죽어가는 출판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정도의 정책으로 볼 수 있지만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사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문화 향수권 신장’ ‘창작 여건 개선’ ‘문화의 근간인 문학 분야의 지속적 발전 견인’ 등을 내세우고 선정된 문학도서의 경우에는 “타당한 이유 없이 수필이 상대적으로 많이 선정되면서 문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경향신문> 2015. 1.22) 시·소설 분야가 각각 125종, 93종 선정된 데 비해 수필은 119종으로 소설보다도 많았는데 이는 지원한 도서를 분야별로 기계적으로 안배한 결과이다. 따라서 지원하는 이유조차 모른 채 졸속으로 선정하는 바람에 ‘새우깡’이나 ‘닭모이’를 나눠주며 즐기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둘째, 한 교수는 논문에서 “출판기초 통계 및 출판 인재 양성 등은 출판을 위한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출판 산업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기초 출판 통계는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의지뿐만 아니라 출판사 종사자들의 협조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2015년의 출판산업 기초통계조사 및 정책개발 예산은 5.5억 원에 불과하다. 세부 예산을 보면 출판산업 실태조사 2.75억, 반기별 출판통계 및 동향분석 0.2028억, 출판정책협의회 및 포럼 0.4088억, 정책연구 1.2636억, 해외출판정책 연구 0.463억, 웹진 출판이슈 0.3954억, 출장비 0.016억 원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질적인 연구 예산은 2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의 출판사들은 대부분 영세한 업체들이다. 그나마 단행본에서 규모가 있던 상위 출판사들도 2014년에 상황이 크게 어려워졌다. 전자출판이 미래의 유망 산업이라 하지만 아직 인프라의 미비로 사장점유율 3%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부분의 출판사는 출판의 안정적 미래보다 당장의 매출에 목숨을 걸어야 할 처지다. 따라서 출판정책은 출판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주고 출판이 성장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 조성에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출판산업의 장기 발전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인프라 조성에 생산적으로 쓰이는 예산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자책용 서체 개발이나 DRM 구축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이런 일에는 뒷짐 지고 서 있으면서 단순 제작비나 나눠주고 있으니 한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014년에 문화부가 가장 잘한 일은 솔선수범해서 도서정가제를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부는 시행령을 마련하면서 출판계의 요구를 대부분 무시했다. 그 바람에 지금 도서정가제는 빈틈이 많아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이렇게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자의적 판단으로 왜곡하는 바람에 지속가능한 출판생태계 구축이 크게 늦춰지고 있다. 앞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는 노력부터 경주해야 마땅할 것이다.

셋째, 정책 파트너로서 대한출판문화협회나 한국출판인회의가 아닌 중소출판협회를 선택한 것은 문제다. 중소출판협회가 비전을 갖고 달려들거나 정말 양질의 책을 펴낸다면 문제가 다르겠으나 그 단체를 이끄는 간부들은 대체로 졸속의 책을 펴내는 이들이다. 출판의 규모가 작다고 결코 선한 것은 아니다.

진흥원이 올해 3월에 사이트에 올린 「중소출판사 중국 작은 도서전 참가사 모집 공고」에 따르면 실무진행은 ‘작은도서전추진단’에서 하는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중소출판협회가 단독으로 주도하는 일이다. 올해 2월에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정책 설명회에서 진흥원은 이 사업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올해를 중소출판사 진흥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뚜껑이 열린 사업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니 중소출판이란 기준이 필요는 하겠지만 10인 미만의 출판사, 10종 이상의 수출 가능한 도서를 출간한 출판사 등으로 제한하고 있고, 중국의 특정 시에 한정하여 개최하는 만큼 얼마나 성과를 보일지 등 과연 중소출판협회의 회원사 구성, 실행력 등을 감안할시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진흥원은 오직 한국중소출판협회하고만 공동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대한출판문화협회나 한국출판인회의는 안중에도 없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런 새로운 국제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계획 단계부터 출판단체들과 사전에 면밀히 분석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해도 성과를 얻기 어려운 일일 터인데 진흥원은 오로지 특정집단의 말만 듣고 밀실에서 너무 쉽게,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결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흥원의 밀실행정이자 복마전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밖에도 소소한 예산은 사전에 완전히 공개하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마땅할 것이나 예산을 자의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확인됐다.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손을 비비는 사람들에게 지원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증언했다

넷째, 우수콘텐츠 제작 지원으로 출간된 책이나 세종도서 선정도서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망감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12년 9월 대학도서관 사서들로부터 이제 우수학술도서 선정 같은 행사를 그만 하면 어떻겠냐는 울분에 찬 항의를 들었다. 사서들은 공짜로 보내주는 우수학술도서 중에서 비용을 들여 구입할 필요가 있는 책이 20%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확한 선정 기준 없이 학맥과 인맥, 연줄에 의해 선정되다 보니 혈세만 낭비한 셈이지 않겠는가?

해마다 우수학술도서가 학맥과 인맥을 통해 선정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신청종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70여명 내외의 심사위원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단독으로 선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학맥과 인맥이 책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런 상황들을 출판사들이 역이용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자사 책의 저자들의 인맥을 충분히 활용해 역으로 우수학술도서 선정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식이었다.

이 단체가 대단한 성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이달의 읽을 만한 책’(연 120종)과 ‘청소년권장도서’(160종)이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은 교수나 언론인으로 구성된 전문가 10인이 매달 각자 한 권의 책을 추천한 것을 짧은 서평과 함께 발표한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의 추천은 추천인의 의사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구조라 공신력을 갖기 어렵다. 적어도 분야별로 토론이라도 벌여서 추천되었다면 모를까 한 사람이 막무가내로 주장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이런 책을 누가 읽으라고 추천했을까, 하는 책이 가끔 선정되기도 한다.

다섯째, 책의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검색을 통한 ‘읽기’ 혁명,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는 ‘쓰기’ 혁명, 독자와 콘텐츠 제공자의 새로운 관계성을 만드는 스마트기기의 등장으로 인한 ‘텍스트’(물질성)의 혁명으로 책은 달라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통구조와 마케팅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제 출판종사자는 출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대로 숙지할 필요가 있다. 종이책은 디지털 정보와는 다른 깊이와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하며, 전자책은 디지털 환경에 맞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출판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문화부는 올해 1월 14일에 출판인재 양성을 위해 고용보험기금 등 국고 28억 원을 투입,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 취업 및 직무능력 향상을 도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8억 원의 예산 중에서 새로 추가된 예산은 출판인 해외연수 지원 2억 원뿐이었다. 그저 한국출판인회의, 진흥원, 번역원, 한국전자출판협회, 파주출판도시 등에서 각기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모아서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출판교육 프로그램이 중복되는 경우가 없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강의가 이뤄지는 경우마저 있다. 전자책 교육은 전자출판협회에서 ‘기계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 교육의 통합과 합리적 분산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아니면 가장 역사가 깊은 sbi로 모두 이관해 장차 출판대학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일 것이다.

여섯째, 국민독서문화를 증진하겠다는 정책들의 테마는 뭔가? 인문독서아카데미 운영(10.54억), 독서대전 개최(2.1억), 참여형 독서활동 전개(1.79억), 소외계층 독서활동 지원(4.6억), 지역대표 독서프로그램 지원(1.8억), 독서동아리 활동지원(4억), 북스타트(4억) 등의 사업이 있지만 대체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진행하는 사업으로 보이지 않는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생활밀착형의 독서운동이 수립되어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이밖에도 출판한류를 확산하겠다면서 책 수출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 여행경비나 대주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출판유통 구조가 무너져 모두가 힘겨워하고 있는데도 지역서점 육성지원사업 예산은 2.2억 원에 불과하다. 올해 지역 서점 POS 연계 구축 사업(4억)과 신간 유통 도서 DB 구축 사업(2.3억)이 추가됐지만 기초문화생활공간으로서의 서점에 대한 지원책이 너무 한심한 수준이다. 또 <책&>이라는 월간지가 공론의 장이 되어 출판담론을 생산하고 있는가? 원칙도 없는 책 소개나 하려면 당장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출판산업은 국가가 투자할 만한 매우 유망한 산업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것은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이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구글이나 온라인서점 아마존, 아이패드의 애플 등은 모두 출판 산업에서 비롯된 기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들 기업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물인터넷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은 무인 전기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곧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것처럼 전기로 충천한 무인 전기 자동차로 출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출판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국가가 투자할 만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매우 유망한 산업이다. 그럼에도 출판 산업은 늘 천대받은 산업이라 할 수 있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는 진흥의 대상이 아니라 정권안보와 사상 탄압을 위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2012년 7월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출판 진흥을 전면에 내세우고 법정기구로 출범한 다음 그해 9월에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2〜2016)’을 발표한 것은 진흥에 무게감을 둔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2013년 2월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국민 행복’을 위한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의 화두를 내걸었기에 잠시라도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대 원장의 3년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출판계는 실망감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에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캐릭터, 영화, 뮤지컬을 ‘5대 콘텐츠 육성’으로 명명하여 집중 육성하고 패션과 만화(웹툰)를 새로운 한류 분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2014년 말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의 해외진출에만 22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이들 문화산업에 쏟는 지원에 비하면 출판산업 및 독서 진흥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은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관과 민간의 협치와 소통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관의 일방적 독주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출판문화진흥 정책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도로를 뚫고, 물과 전기를 공급하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를 조성하는 장기적인 정책에 몰두하면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둑을 막는 일과 같다. 둑을 막아놓으면 물이 저절로 고이고 그 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단기적인 정책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결코 출판정책이 아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중심이 된 출판문화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는 2012년 10월 23일에 열린 ‘출판위기 극복과 대선후보 정책 제안을 위한 범출판계 토론회’에서 완전한 도서정가제 보장, 출판진흥기금 5천억 원 조성, 공공도서관 3천 개로 증설 및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연간 3천억 원 확보 등을 긴급히 해결해야 할 3대 정책과제로 제안한 바 있다. 그럼에도 현행 도서정가제는 시행령마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으며, 다른 두 사업은 본격적인 논의를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이러니 출판정책은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한심한 수준이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출판에는 문외한인 원장이 낙하산으로 날아와 이미 세워진 진흥책을 겨우 따라가면서 집행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마침 진흥원 2기 체제는 전주로 이전하여 시작된다. 이것을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2기 체제는 행정 업무부서는 가급적 통합하되 조사연구 및 정책개발 부서의 대폭 확대가 필요하다. 또 예산 확대도 좋지만 법제 등의 정비가 보다 긴급한 현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출판을 잘 아는 원장이 임명되어 진흥원 내부를 출판을 잘 아는 사람들로 채워서 출판의 미래를 제대로 열어갈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그게 한국의 문화를 살리고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 주최
‘출판산업 긴급 현안 해결을 위한 공청회 자료집’ 201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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