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9일 토요일

우리 만화비평을 말한다 : 만화 담론의 현재와 비평의 길찾기/좌담 참석자 : 김봉석, 백정숙, 박기수, 한상정(사회)

http://criticm.com/?p=734


때 : 2015년 2월 10일 오후 1시
곳 : 카페 한 잔의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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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정 : 오늘 ‘우리 만화비평을 말한다’ 대담에 참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넷 만화비평저널인 <에이코믹스>의 김봉석 편집장님, 그리고 흔치 않은 종이 잡지인 <BOGO>를 내는 백정숙님 편집위원장이 나오셨습니다. 제 옆에는 박기수 교수님인데 우리 <critic M>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critic M>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 만화비평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논의를 해볼 건데요. 첫 번째로 현재 우리나라에 만화 비평이라고 할 만한 것이 과연 어디에 있느냐를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화 비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느냐, 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이런 부분을 논의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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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비평, 출발선은 어디인가?
김봉석 : 저는 거기에 대해서 약간 구별을 줬으면 좋겠는데요. 이를테면 아카데믹한 비평과 저널 비평이라고 하는 걸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화 비평 얘기를 하면 담론 막 그런 얘기를 하고 그러는데, 사실 영화 쪽에서 본다고 하면 <씨네21>같은 그런 저널에서 하는 비평들은 사실 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어떤 식으로 엮여야 되는 것인가 하는 거죠. 오히려 저는 비평을 얘기할 때 그 부분이 좀 정확히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널과 아카데믹한 비평이라고 하는 것들을 구분하는-
박기수 : 그 말씀을 들으면서, 비평이라는 말이 성립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그 사람이 비평가라는 부분이 공인되어야 하죠. 평자로서 대외적인 공인과정과 그에 상응하는 인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그것이 경제적인 대가를 낳을 수 있어야지만 독립적인 비평가로서의 생활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며, 세번째로는 그들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한 신뢰할만한 발표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봉석 : 한국에서 비평만으로 먹고 사는 곳은 저는 아무 데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박기수 : 아니, 그러니까 최소한의 고료를 받고 또 내가 비평가라는 명칭을 달아서 사회적인 어떤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과연 지금 만화 비평 쪽에서 그렇게 되고 있는지, 혹은 또 이 사람이 비평가라고 인정해줄 공인된 어떤 데뷔 루트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부분들이 조금 미비하지 않은가 하는 거죠.
백정숙 : 그런 외부적인 측면도 있지만, 글 내부에서 글을 구성하는 ‘꺼리’들, 이런 부분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을 것 같아요. 저널 비평 같은 경우에는 훨씬 더 리뷰에 가깝죠. 그래서 책 소개, 현상에 대한 해석, 이런 부분에 대해 더 강점을 갖는다면, 보통의 비평은 만화 내부에서 상징하고 있는 바를 조금 더 사회적인 부분들이나 역설적인 맥락, 또는 문학적인 감성 따위를 찾아내는 그런 골라내기 작업들이 되면서 일정한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해요.
박기수 : 그렇죠, 어떤 건 평이고 어떤 건 아니다, 그렇게 보기가 굉장히 모호한데, 이럴 경우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을 설정해놓고 가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합의가 필요하죠. 그 동안에는 마구 섞여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학생들에게 “평을 한번 써봐”라고 하면, 웬만큼 줄거리를 소개하고 끝나고. “이게 평이야?” 이러면 “아니, 선생님, 저, 여기도 이런데요?”라는 식인데, 지향점조차도 모호하다고 할까. 그런데 이제 다행히,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만화의 어떤 사이즈나 부피, 크기 이런 것들이 조금 나아지고 있는 편이니까, 요 시기에 비평에 어떤 새로운 설정, 비평의 담론의 몫을 가질 수 있는 결집,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할 시기죠.
백정숙 : 만화 비평의 맥락이 끊어졌다가 90년대에 다시 조금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죠. 저 개인적으로도 그런데, 어떻게 활동했느냐 하면, 실은 90년대 초반은 80년대 후반에 일본 만화 해적판이 쏟아지면서 우리 만화가 고사상황에 빠졌잖아요. 그러면서 한국 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무엇이냐, 이것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할까 하는, 그 당시로선 어떤 미션이 있었던 거죠. 이게 핑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환상일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만화를 소개하는, 일본 만화 말고 한국 만화를 소개하는, 왜냐하면 사람들이 일본 만화만 찾아보니까. 그런 측면에서 독자들을 한국 만화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끔 유도하기 위해 많은 비평 활동들이 리뷰에 가깝게 되고, 이것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거 같아요.
박기수 : 90년대 말씀을 하시니까, 우리 80년대 말 동구권이 무너지고, 거대담론이 붕괴되면서 소위 운동권 쪽에 계셨던 분들이, 이론적인 사회과학 토대를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 만화 비평 쪽으로 흡수된 분들이… (김봉석: 문화 쪽으로 많이 왔죠.) 네, 근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라고 하는 만화 쪽으로 실제로 흡수되신 분들이 꽤 있잖아요. 그분들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때 90년대 중반 반짝 하셨다가 그 다음에 사라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회과학적인 토대나 담론 같은 것들이 만화 내부로 부분적으로 흡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어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그게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리뷰 중심의 비평이 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죠.
김봉석 : 그 당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가 이를테면 문화라고 하는 측면에서 사회를 분석하려는 틀이 생겨났죠. 동시에 만화 쪽에서는 <만화광장>과 <주간만화> 등이 생겼고요. 그 안에서 리뷰들이 조금씩 실리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만화 학과가 없었어요. 아카데미적인 평론 자체가 되려면 결국 그 내부에서 될 수밖에 없는 건데, <만화광장>에 60매짜리 원고가 실리면 누가 읽겠어요. 아무도 안 보죠. 어쨌든 거기서부터 조금씩 만화 비평이 시작을 했고, 만화실록이라는 것이 나오기도 했죠. 영화를 보면, 이효인, 이정하 이런 사람들이 민족영화 이런 걸 내고, 다 똑같은 프레임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음악도 마찬가지로 동시에 그랬고. 그 시대가 사실 어떻게 보면 문화의 시대였기 때문에 당연히 만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이제, 거기서 아주 중요한 건 매체라고 생각해요. 매체. 지속적으로 글을 싣는 매체가 있는가,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는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못 보죠, 글을 써봤자. 매체가 없으면. 결과적으로 그 자체를 활성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알려질 수도 없고. 그런데 지금 인터넷이 있어도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어요.

적절한 비평의 부재로 시작되는 악순환의 고리
박기수 : 그럼에도 불구하고 97년도에 <천국의 신화> 문제가 벌어졌을 때 과연 만화 비평 쪽에서 이현세 작가의 만화에 대한 가치를 방어해 줄 정도의 담론을 형성했는가.
백정숙 : 작품에 대한 심층분석이나 이런 부분들보다는, (박기수 : 선정성 논란이었잖아요, 그때는.) 그렇죠. 표현의 자유 관련 문제로 논점이 몰렸죠.
박기수 : 그 부분인데요, 표현의 자유라는 아젠다로 논의를 몰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선정성으로 받으니까 일정 부분 선정성을 인정하고 논쟁을 시작하는 꼴이 되었지요. 실제 논의는 선정성이 아니다라고 치고 들어갔어야 됐는데.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가 핵심인데 그 하위 요소로서 선정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받았다면 전체적인 논의의 선편을 놓치지 않았을 테고 싸움에서 그토록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백정숙 : 이게 뭐가 선정적이냐, 이런 식으로 돌려 말했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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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수 : 반대로, 장정일의 <거짓말>, 마광수의 <사라> 논란이 있을 때는 사실은 비평가들이 디펜스를 해줬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성담론에 대해서 한 단계 더 들어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단 말이에요. 실제로 그들이 구속이 됐을지언정 그로 인해서 후일 평가는 “아…그 작품, 문학계의 성담론 측면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작품이었어.” 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데, 과연 그때 만화비평가들이 <천국의 신화>에 대해서 그런 평가를 받을 정도의 지지를 해줬었는가죠.
백정숙 : 그러기에는, 이것도 하나의 변명일 수 있는데, 그 당시에 만화 자체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어른들도 많이 보고 그렇지만, <천국의 신화>가 90년대에도 대학생들도 많이 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성인만화라는 그 컨셉 자체가, 소위 성담론을 담는 그런 만화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과연 용인이 됐던가. 물론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박기수 : <천국의 신화>는 성담론은 아니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그런 식의 표현 수위에 대한 부분들이 아니라, 저들이 이야기하는 선정성 시비로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발전적인 담론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복귀해보면 사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상정 : 맞아요. 왜냐하면 아까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평론을 두 종류로 나눠서 리뷰의 성격이 강하냐, 아카데믹한 성격이 강하냐 보면 사실 우린 아카데미가 빠져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런 사건이 벌어져도 이 사건에 대해서 디펜스를 할만한 역량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문제는 지금은 만화학과가 굉장히 많잖아요. 석∙박사 과정도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카데믹한 비평이 거의 없다라는 거예요.
백정숙 : 석∙박사 과정 출신 중에 지금 비평을 하는 사람이… 없죠.
한상정 : 그렇죠. 문제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이론전공으로 석∙박사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고, 또 하나는 석∙박사로 이론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믹한 비평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는 양쪽으로 다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90년대나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리뷰 수준에서 딱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박기수 : 빈곤의 악순환이죠. 제가 자료를 찾아봤는데, 2012년도에 <열혈초등학교> 부분도 결국 또 못 지켜줬잖아요. 근데 만화가들 사이에서 그건 그게 아닌데, 이렇게 얘기를 해도 실제로 또 한 번 당한 거란 말이에요. 결국에는 비평이 올바로 서지 못하면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비평의 기본적인 역할들, 만화에 대한 어떤 지평을 넓혀주고, 또 앞에 첨병으로 나가서 이끌어주고,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나 이런 부분을 지켜줄 수 있는 디펜스 역할을 못해주고 있다는 게 거의 10여 년 사이클로 반복이 되고 있고. 또 항상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일정시기에 걸쳐서 하급문화를 쳐내고 그걸로 또 담론화시키는 과정들을 계속 하잖아요. 근데 지금, 1조 만화 시장 규모가, KT경제경영연구소에서 발표한 거 보면, 3천억 만화시장 규모라는데, 시장규모가 그 정도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또 두드려 맞는 건 큰문제가 아니겠느냐는 문제 제기입니다.
백정숙 : 이게 사실은 1997년 청소년 보호법에 의한 <천국의 신화>, 최근 <열혈초등학교> 내지는 방심위 사건도 그렇고, 이런 경우에 만화계 내부에서 일정 정도 억압적인 기제가 들어왔을 때 밀어낼 수 있는 진영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었고.
박기수 : 그 동안 열심히 평론활동 해오신 분들에 대한 청문회 같은 분위기지만,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분투해오신 것은 인정하고, 오늘의 문제 제기도 그분들의 토대 위에서 성립된 말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백정숙 : 아니, 이건 아쉬움에서 첨언을 하는 건데, 그 부분이 없으니까 그나마 있는 인력들이 다 그걸 막아내는데 소진이 됐다라는 거죠. 지금 선생님 말씀하시는 문제 의식에 굉장히 공감을 하는데, 왜냐하면 사실 작품 내부의 분석이나 또는 그걸 어떤 식으로 읽어내는가 텍스트 중심의 분석들, 담론들, 만들어내는 부분들, 이런 것들이 있어줘야 제대로 싸움을 하고, 하나씩 남는 게 있거든요. 그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크게 싸웠는데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물론 방심위랑 싸울 때는 그나마 표현의 자유 프레임으로 안 받았기 때문에 그나마 말리지 않았긴 하지만, 여전히 힘 있는 쪽에서 우습게 보면서 치고 들어올 때 그걸 방어해낼 수 있는 무기를 갖추었느냐, 그건 아니다라는 거죠.

창작과 비평의 경계,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한상정 : 진영의 부재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영이 만화계에는 부재할까. 제 생각으로는 이 만화계가 너무 과다하게 창작자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거예요. 이 프레임이 깨지지 않는 이상, 어떤 느낌을 받느냐면, 필요할 때는 와서 손 벌렸다가 딱 필요가 끝나면 ‘이제 필요없어.’ 하고 갖다 버린다는 거죠.
백정숙 : 갖다 버리진 않지만 안 껴주지, 안 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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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정 : 그래서 이게 쭉 진행이 되고, 서로 신뢰관계가 쌓여야지 진영이라는 게 형성이 되고, 필요할 때 움직일텐데. 90년대부터 오랫동안 시도는 있었지만 아무것도 형성이 되지 않는, 그래서 90년대에 리뷰 쪽이건 활동하시던 분들이 이 만화계를 떠난 이유도 사실은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어요. (백정숙 : 발 디딜 곳이 없으니까.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이걸 갖고 밥 먹고 살고 이런 차원까진 가지도 못하고, 여긴 어차피 열정으로 버티는……)
백정숙 :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부분들이 있어야 어떤 형태로든 뿌리내릴 수가 있는데, 굉장히 좋은 사람들이 다 떠났죠. 의지도 있고 아주 똘똘하고 그랬던 분들. 후배들 같은 경우에 훌륭하신 분들도. 하고 싶지만 토대가 받쳐주지 않으니까. 이거는 매체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은 만화계 내부의 구성원들의 마인드의 문제도 굉장히 큰 부분들이 있어요.
박기수 : 바람직한 방향은, 너무 이상적인 타입을 얘기하는지 몰라도, 창작과 비평이 상호견제 관계를 이루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비평을 읽으면서 견제를 하고 있는가 내지는 선도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조금 회의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분이 너무 훌륭한 작가고 심지어 저 같은 경우는 어떤 작가 분들을 보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작가 분, 뭐 이런 식으로 해서 오마쥬의 대상이지 비평의 대상으로 안 본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비평이라는 게 서기가 어려운 설정을 해놓고 시작을 하니, 비평이라고 할만한 것이 나오기 힘든거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인식을 깨줄 필요도 있지 않은가.
김봉석 : 그것은 권력의 문제잖아요, 권력. 영화계에서도 그런 얘기 많이 해요. 지금 영화 아카데미 쪽을 보면 생존하는 감독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해요. 임권택에 대한 찬사만 있지, 비판은 안 한다는 거죠. 이게 왜냐면 다 영화계도 엮여 있어, 결과적으로 얘기를 못하는 거거든요. 근데 만화 같은 경우는, 만화는 사실 개인이잖아요, 개인. 영화 경우에는 제작, 배급, 투자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죠. 또 다른 문제는 영화는 영화과가 옛날부터 있었고 거기서 이론을 공부하는 분들이 있어왔는데, 만화는 그게 거의 없죠. 쉽게 말해서 아카데미 쪽에 기반이 없는 거죠. 이거라도 있으면 그래도 뭔가 계속 얘기하면서 긴장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없고. 매체가 있으면 그런 부분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없고.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근데 이를테면 문학이란 그런 거죠. 과거에는 <창작과 비평> 같은 데서 선도하며, 긴장관계가 서로 있었는데, 지금은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이 안 팔리니까, 긴장관계가 약해지죠. 결과적으로 이건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권력의 문제로 갈 거면, 절대로 권력이라는 건 그냥 주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어떤 식으로 권력을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들은 당연히 만화가들은 작품을 내고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그걸로 돈도 벌고. 그런데 그러면 비평 쪽은 어디로 갈 것이냐, 사실은 비평은 당연히 인문학의 영역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권력을 아카데미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보는 거거든요. 근데 예를 들어서, 딴 얘기지만, 저번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쪽에서 포럼을 했을 때, 제가 중간에 그만 뒀었죠, 포럼을. 그만둔 이유가 뭐냐면, 포럼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금 현실과 관련된 문제들을 갖다가 걸고 넘어지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처음에 한 두세 번 정도 그런 얘기를 하다가, 그 다음은 한국 만화 언제 시작했나, 그 다음에는 만화를 뭐를 봐야 되는가, 이걸 계속해서 하는 거예요. 저는 그건 만화학회가 할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한상정 : 맞아요. 그런데 사실은 만화학계가 그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거죠.
김봉석 : 그런데 문제는 그 분들이 어쨌든 다 교수라는 거죠. 다 교수들이 왔었고, 포럼에. 아마 저를 제외하고 중간에 그만둔 한 분 제외하고는 다 교수고 아니면 연구원이었죠. (백정숙: 저도.) 당연히 만화학계에 속해 있는 건데 이야길 해보면 그런 거죠. 만화 교육을 안 한다, 왜 안 하는 것이냐 문제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거기서 안 하니까 여기 와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만화학회에서 무조건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다가 예를 들어서 교육부에서 돈을 받아내든 아니면 정말 문화부에서 돈을 받아내든 뭔가 해서 가야 된다고 보는 거죠. 그 부분으로 먼저 가서 권력을 쟁취해야지, 일을 보는 균형이 잡힌다라는 거죠. 왜냐면 창작 쪽에선 그거를 안 하거든요. 사실은 불가능한 것들이고. 아무리 요구해도 그거는 안된다라고 봐요. 왜냐면 만화계 쪽은,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보고 있으면, 기획자도 거의 인정을 못 받아요. 지금은 이제 플랫폼의 힘이 강해지니까 메이저 플랫폼에 속해있는 기획자라고 이야기해야 될지 편집자라고 해야 될지, 이 사람들의 파워가 있지만 그거 말곤 없다는 거죠. 아무 것도 없거든요.
한상정 : 만화애니메이션학회. 권력의 문제로 들어간다면 결국 만화애니메이션학회 같은 경우에, 만화 쪽은 거의 다 창작자들이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론적 연구는 힘들죠.
백정숙 : 전체적으로 예를 들면 사회에서 만화를 억누를 기제를 사용할 때, 만화계 내부의 진영의 파워가 없다. 이런 부분들처럼 지금 말씀하신 것도 정작 만화 관련된 글을 양산하는 그룹들 중에서도 이게 서로가 역할이 혼재되어 있는 거예요. 뭐 하나 하면 거기 다 모이고, 이게 분리가 안 되고. 뭔가 필요는 하지만, 그 필요성은 서로 느껴요. 근데 이것을 어떤 식으로 갈라내면서 서로 영역을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 없는 거야.
박기수 : 정말로 그 부분에 대해 공감이 되는 게, 실제로 최근에 주로 쓰시는 분들을 검색해보면 몇몇 분이거든요. 근데 이 얘기는 뒤집으면 그 분들에게는 과부화가 걸린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글이 심도 있게 분석도 안되고, 글의 질도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기 어렵죠. 비평가의 이름을 지우고 글만 띄워도 ‘아, 누구 글!’ 이라고 알 정도가 되어야 비로서 독특한 비평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름 떼면 다 똑같은 글이 돼버리는 것이 현실이지요. 그 원인 중에 하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의 인터벌을 지켜주고 대우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비평의 장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사이즈가 너무 작고, 아니 비평 시장 자체가 지나치게 작다는 것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학교, 아카데미 쪽 계신 분들이 들어와주면서 또 다른 영역으로 확장이 되어야 되는데 이 부분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문학 같은 경우, 제가 예를 들어보면, 문학은 초기에 박사 과정 정도 되면 다 비평을 한다고 전제를 해서 글을 썼어요. 그러니 그게 양적으로 늘다 보니까…문학도 초기에는 다 20년대 30년대 문학 여기에 중점을 뒀는데 이 비평가들이 양산이 되니까 재미없다, 땡겨라, 그래서 70년대 80년대 작품까지 올라오더니, 이젠 현재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도 해요. (백정숙 : 90년대 돼서야 이쪽으로 올라온 거 아니에요.) 그니까 그 전제가 뭐냐면 양적인 성장이라는 거죠. 근데 지금 만화가 그런 시기가 온 게 아닌가.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학과들도 많이 생겼고, 연구진들도 생겼고. 게다가 저희 같이 콘텐츠 하는 사람들, 만화 바깥에서 만화와 접속이 시작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 만화계의 담론은 조금 소박하다.
한상정 : 많이 소박하죠.
박기수 : 아니, 조금 부드럽게 표현하다 보니까 (한상정 : 아니, 부드럽게 하지 말고.),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용어 등이 잘못 사용되는 게 보이면 지적하기도 그렇고, 지적이란 표현도 좀 웃기지만. 만약에 문학이나 다른 기존의 비평에서 잘못 쓰면 동네방네 흉거리가 되는데, 별로 그런 게 없기도 하고. 어쨌든 질적인 시기에 우리가 딱 온 게 아닌가, 그런 문제 의식을 좀 갖고 보면, 비평이 지금은 수세적이라고 봅니다. 다른 문학이나 미술이나 영화나 이쪽은 선제적으로 던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사이즈가 계속 늘면서 감히 ‘야, 걔네는 저 정돈데, 어떻게 건드려?’ 이런 상태가 되어야 되는데, 만화는 지금까지는 던지면 그걸 받아서 ‘뭐야, 야야, 대응해.’ 이러다 보면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방어 자체가 안 되는 거죠. 제 생각엔 어떤 공세적인 담론 생성이 필요하다라는 거죠.
한상정 : 90년대 같으면 나름 목적성, 담론의 목적성이 명확했어요. 예를 들어서 일본 만화 대비 우리 만화를 좀 알리고 싶다, 이런 게 있었다고 했죠? 지금 우리가 어떤 담론을 형성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할 것이냐, 또는 어떤 지점을 치고 나가야 될 것이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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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정체성과 문법, 규정할 수 있을까?
김봉석 : 저는 일단 저널 쪽이고 아카데미 비평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근데 지금 한국에서 만화라고 했을 때 이미 웹툰으로 주류가 넘어왔고, 요즘의 10대, 20대들에게는 만화는 웹툰인데, 사실 웹툰의 내용과 형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얘기가 된 적이 있는가. 웹툰 특유의 스크롤이라고 이야기하는 거, 이것의 효과 같은 거 말입니다. 웹툰에선 도제시스템이 없어지고 혼자서 그리면서, 영화적인 어떤 기법도 많이 들어왔더군요. 게다가 이것이 시간 순으로 흘러가다 보니까 사실 재미없는 것도 많은데, 그것을 사실 아카데미가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죠. 웹툰이라고 하는 것이 초창기에 <마린블루스>나 강풀 작가로부터 시작해 어떻게 흘러왔고,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 이런 것을 봐야 하는데 거의 없어요. 그냥 단편적으로만 조금씩 얘기를 하고 있고. 이게 돼야만 해외에 나가도 한국 웹툰은 이거야, 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봐요. 이를테면 일본 만화인 망가는 미국 만화와는 이게 달라, 유럽 만화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하잖아요. 웹툰에 이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기수 : 저도 당연히 웹툰의 고유 문법을 개발하고 작가들이 거기에 자의식을 갖고 창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웹툰의 시장 구조나 생태계를 봐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초기에 강도하나 몇몇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그걸 시도했는데 지금은 출판만화로 나올 때 재편집하기 싫으니까, 출판 만화식으로 제작해서 그냥 쭉 늘어놓는 형태로 가고 있죠. 오히려 퇴행의 모습을 보이고 있죠. 초기에 웹툰 문법을 찾고자 하는 학위 논문이 꽤 있었습니다. 부산대 쪽에서 나온 것도 꽤 괜찮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오, 이거 좋다.’ 근데 문제는 그 이후에 그 다음을 선도해줄 수 있는 작품들이 안 나오는 거예요. 오히려 다시 종이 만화 쪽으로 돌아간 듯한.
김봉석 : 종이만화라고 간다고 해도 출판계를 보고 있으면 점점 이북으로 갈 거라고 봐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태블릿. 태블릿으로 보면 페이지 만화를 보기가 좀 쉬워지는 거죠. 어떤 길로 갈 것이냐, 라고 했을 때, 저는 한국에서는 결과적으로 혼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결과적으로 이북으로 계속해서 넘어가고 있거든요. 최근에 출판진흥원에서 이북심사 같은 게 있으면, 불만스러운 게 있는데, 뭐냐면 책의 질감을 살리는 거, 종이책의 질감을 살리는 것 등이에요. 그것은 일종의 위안효과라고 생각을 해요. 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책을 보는 효과를 주는 것, 더 불편해요. 그냥 태블릿으로 볼 때 훨씬 더 편하거든요. 텍스트로 쫙쫙 읽어 나가는 게 훨씬 더 편하고. 그래서 가는 거거든요. (한상정 : 매체가 달라지면 당연히 달라져야죠.)
박기수 : 그래서 최근엔 일부러 분류를 해서 멀티미디어 효과를 강화시킨 것을 앱북이라고 따로 뽑잖아요. 제가 ‘그걸 왜 뽑냐?’ 이랬더니 ‘이렇게 해야지 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써야 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김봉석 : 젊은 작가들 경우, 예를 들어서 김보통 작가는 전에 만화를 거의 안 그려봤기 때문에 종이만화 하나도 염두에 안 두고 그냥 그리죠. 물론 나중에 출판만화 쪽에서 다 이야기를 하죠. 출판에 염두를 두고선 그려라 이야기를 하지만은 사실 그렇지 않은 작가가 더 많죠.
백정숙 : 저는 웹툰에 대한 논문을 초기에 썼는데, 그때 웹툰은 출판만화의 대안이 아니다, 무너지는 출판만화의 대체물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어요. 웹툰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상황과 조건, 매체 환경이 다르잖아요. 거기에 따라서 수용하는 과정이 다르다는 거죠. 당장 여기 들어오는 품도 달라요. 근데 출판만화를 해야 뭔가 수익구조가 창출이 되고, 순환이 된다는 논리, 혹자는 작가들이 출판만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하는데 저는 환상이 아니라고 봐요. 그건 굉장히 실증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인 거죠. 웹툰 자체로 수익구조가 쌓이는 구조가 아니니까 이제 출판만화로 가는 거죠. 굉장히 왜곡된 구조잖아요. 근데 웹툰은 웹툰대로, 페이지뷰 형식으로 넘기는 게 불편하다 그래요. 당연하거든요. 웹툰이 갖고 있는 시각적인 부분이나 어떤 일정한 움직임, 이것을 더 확대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출판 쪽으로 자꾸 가는 거는 서로를 갉아먹는 거라고 봐요. 진짜, 웹툰이 출판돼서 나오는 건 읽을 수가 없어요.
한편으로는 출판만화 쪽은 어떤가, 여전히 출판사들이 있기 때문에 만화를 어쨌든 출판을 해야 된다고 봐요. 그렇다면 여기서 일정한 전략을 짜야 된다고 봐요. 출판만화 고유한 부분들로 자기 수익구조를 가지려면 어떤 걸로 가야 될 것인가 라는 부분들에 대한 담론들을 만들어 내야 되는 거죠. 근데 그 부분들이 없어요. 출판만화는 이제 옛날 미디어로 되어 있지만 이게 그렇다고 없어지진 않을 거 아니에요. 종이라는 것 자체가. 그게 물화되어진 노스텔지어를 담당하는 것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또 우리에게 뇌작용이나 감성적인 작용들을 하는 측면들이 고유하게 있다는 거죠. 그 측면들을 어떻게 만화 쪽에서 살려낼 것일까라는 게 별도로 연구가 돼야죠.
박기수 : 기본적으로 저는, 예전에 오픈마켓 토론 때도 나중에는 화를 낼 정도였는데, 새로운 어떤 시장을 열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외연을 넓히는 의미에서 무조건 그 상태에서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만화와 웹툰의 관계는 서로 포함시키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그런 거죠. 그래서 만화의 생태계 다르고, 이쪽 웹툰의 생태계를 다르게 키워야 되는데, 지금은 굉장히 수세적인 거예요. 이를테면 종이책이 얼만데, 웹에서 과금을 해서 보는 건 훨씬 싸. 그럼 이쪽으로 올 거야. 그렇지 않다라는 거죠. 이게 체험이 다르다는 게 오히려 강화가 되고, 한쪽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낫고. 종이책을 출간한다면 이거는 정말로 소장용으로서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딱 꽂아놓고 우와, 이런 정도가 돼야죠.
가령 최근<미생>의 성공을 경제적으로만 환산하여 호들갑을 떠는 일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것이 지니고 있는 성공 요인을 웹툰의 관점에서 차분히 점검해보고, 그것의 확산가능성 등에 대하여 냉철하게 토론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현재와 같이 외연적인 성공을 중계방송 하듯이 찬양하는 것은 웹툰의 생태계라는 측면에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웹툰이 새로운 장르로 부상을 했다면 해당 플랫폼에 최적화된 수익 구조를 탐색하고, 그것의 고유문법을 확보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자신의 고유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정산적인 수순이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기형적인 웹툰 생태계를 본다면 과연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만화산업과 정책, 그 혼돈 속의 기형적 성장이 낳은 결과
한상정 : 전 그런 면에서 2000년대 만화산업론 이후, 이론이나 연구 자체가 계속 정책에 휘말려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최근 문화부나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웹툰이란 이름이 들어가야만 사업비가 나와요. 이게 정상은 아니거든요. 왜냐 하면 문화의 영역이라고 생각을 하면 사업적으로 잘 나가는 것도 케어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지원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웹툰이 들어가야 지원을 해요. 문제는 이게 너무 오래돼서 정책 쪽에서 그렇게 나오는 것을 평단 쪽에서도 당연하게 받아요. 심지어는 웹툰은 만화가 아니야, 웹툰은 만화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이걸 당연하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도대체 얼마나 비평이 부실하면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되고, 심지어 만화 생태계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조성되는데 대해 당연시 받아들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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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 비평이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안에 휘말려 들어가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박기수 : 이를 테면 현재 창작을 하지 않는 옛날의 추억 속의 만화가들을 인터뷰하는 게 우리 담론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냐? 물론 이게 필요는 하다고 봐요. 어느 장르나 일정 부분 포지션을 주는 거니까. 근데 이보다 몇 배 되는 만큼의 현재적 담론 생산이나 현재적 비평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빠져 있어요. 그러니까 비판적인 담론 생산이 안 되는 거예요. 아주 나쁘게 얘기하면 그런 사업을 지금 하고 있는 네이버의 의도 자체에 대해서 순수하게 보기 어렵다는 거죠.
한상정 : 의도가 순수하지 않죠.
김봉석 : 절대 순수하지 않죠.
박기수 : 웃기는 거잖아요. 매출은 여기서 나는데, 지금 이슈화되고, 사람들 관심 끌 수 있고, 매력적인 소위 말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여기에다 두고 있는데 말이죠. 이건 정말 웃기는 거라는 거예요. 근데 누구도 문제 제기를 안하는 거죠.
한상정 : 누가 네이버에게 문제 제기를 하겠어.
백정숙 : 네이버를 비판하지 않으면, 사실 네이버가 네이버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웹툰이라고 이야기 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낸 포털 혹은 그런 사업자들의 생각이나 사업의도 이런 부분들이 사실은 선순환이 될 수 있는, 시장을 선순환을 시켜낼 수 있는 그런 부분들로 가지 않는다라는 것은 굉장히 여러 가지 파생적인 문제들을 갖고 오는 거죠.
박기수 : 전에 네이버 쪽에 그 정도로 컸으면 비평 섹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몇 번씩 제안했는데, 그러고 집에 오면 ‘내가 너무 순진한 얘기를 하고 있구나. 그걸 왜 두지?’ 당연히 그렇겠죠? 비평적인 담론이 나오면 반드시 사업적인 부분이나 생태계에서의 기형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거고. 부담스럽죠. 자기가 자기를 까야 되니까.
백정숙 : 오늘도 집에 가서 너무 순진한 생각을 했구나 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한상정 : 그렇겠죠, 분명히(모두 웃음)
박기수 : 근데 지금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고, 또 콘텐츠가 조인이 되기 시작했잖아요. 이제 얘기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웹툰이 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원천 소스로, 원천콘텐츠로서 기능을 한 것으로 봅니다. 원천콘텐츠가 영화로 뜨고, 드라마로 뜨니까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비즈니스적 콘텐츠적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웹툰만큼 기형적인 사업구조가 있느냐, 이것만큼의 독과점이 있느냐? 사업이 텍스트를 완전 종속시켜서 형식이나 내용에 대해서 이정도 지배하고 있는 게 있느냐, 왜 이것에 대해서 아무도 저항하지 않느냐? 레진코믹스가 음란, 선정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런 게 있어서 네이버나 다음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걸로 인해서 독립적인 사업, 거기에 맞춰서 새로운 형태들이 나오지 않겠는가, 조금 더 과감하게 부딪힐 필요가 있지 않은가.
김봉석 : 앞선 얘긴 계속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아니면 권력이잖아요. 둘 중 하나가 있어야지 뭔가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인데, 실행되지 않는 아이디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실 그 말이 맞죠. 문제는 돈이나 권력이 없으면 결국 실행할 수 없다는 거죠. 아이디어가 아무리 있어봤자 결국 돈을 어디서 끌어오던가, 아니면 권력을 움직이던가, 정책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건데요.
박기수 : 그럼 뒤집어서, 전 그것도 회의적인 게, 대한민국 콘텐츠가 정책이 선도해서 부흥이 됐느냐?
김봉석 : 아니요. 그게 아니라, 시장이 움직이면 정책은 거기에 편승하고 싶어하는 거죠. 실적을 남기고 싶으니까. 실적을 남기고 싶어하기 때문에 (백정숙 : 그러니까 그걸 활용을 해라?), 예를 들어 웹툰이 뜨니까 돈을 집어넣는 거죠. 아무 것도 없어도 그냥. 결과적으로 돈이 들어오면 써야 하고, 그런 명분을 만드는 거죠. <에이코믹스>도, 지금은 비평매체 지원 받고 있지만, 처음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랑 얘기를 하면 매체지원은 있는데 창작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비평 같은 건 아예 없다는 거죠. 매체지원인데 비평은 항목에 없다는 겁니다.
백정숙 :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지.
김봉석 : 말이 안 되는데, 어쨌거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문화부에 돈을 받아야 하고, 문화부는 나중에 또 감사를 받아야 되는 거니, 다 몸을 사리는 거예요. 어쨌든 문화부에서 문구를 넣어줘야지만 진흥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박기수 : 비평은 성과지표가 안 나오니까.) 그렇죠, 성과가 안 나오니까. 결국 설득을 해야 하는데, 국회라는 거죠.
박기수 : 너무 슬프다. 얘기하다 보니까.
김봉석 : 이런 식에서 벗어나려면 어디 돈이 있는 곳을 잡아야 되는데, 네이버 밖에 없는 거고. 이러니 악순환이죠.
박기수 : 현실은 그렇지만 돌아봐서 사실 예술 영역의 비평 담론들이 과연 그렇게 선도되어 왔는가. 또 그건 아닌 거죠.
김봉석 : 과거에는 아카데미가 살아있었잖아요. 과거에는, 아카데미가. 90년대까지는 그래도 아카데미라고 하는 내에서의 학문적인 구조와 이것의 내부적인 순환구조가 이루어졌잖아요. 근데 지금은 불가능해졌거든요. 만화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불가능해졌어요. 그래서 시장 논리만 더 강조돼요. 그럼, 어떡하냐? 만화 같은 경우에는 영역을 차지해야 하는 거라고 봐요. 그 안에 뭔가 아카데믹한 그런 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석∙박사 나온 사람들 있으면 그 중에 일부라도 계속해서 연구를 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이고. 최근에 국문과 경우를 보면, 연구교수도 많고, 연구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만화학회가 못하면, 제 생각엔 <창작과 비평> 같은 거라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돈 있고 안정적인 교수들이 모여서.
백정숙 : 안정적이고 돈 있는 교수들은 그런 거 안 해요.
김봉석 : 아니, 안 하지만 해야 된다는 거죠. 한 명이 자기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한국만화사에 대한 글을 쓰고, 작가들에 대한 글도 쓰고, 그리고 지금 나오는 만화들을 다 보면서 리뷰도 쓰고, 또 웹툰 형식에 대해서도 쓰고. 이게 불가능 하거든요. 말도 안 되는 거죠. 한 분야만 파고 들어서 연구해서 글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박기수 : 조금 긍정적으로 보자면, 전에는 석∙박사 논문이 정말 맥락 없는 것들이 꽤 있었거든요. 근데 최근에는 문제 의식을 가진 논문들은 나오기 시작해요. 문제는 그 다음 단계라는 거죠. 그들이 학위논문을 쓴다라는 것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니까, 그 고민을 조금 더 저널 쪽에 가깝게 혹은 대중적으로 품어줄 수 있는 매체, 발표 공간이 필요하죠. 그리고 그 과정, 그들이 석∙박사 되면 다 쓰는 게 아니라, 인정을 해줘서 쓸 수 있게 해주는 어떤 루트가 필요한데 그것조차 봉쇄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critic M>에서 하려는 평론 신인상은 신인상을 위한 상이 아니라 발표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독려해주는 차원이 돼야 한다고 봐요. <에이코믹스>나 <BOGO>도 그런 부분들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되는 게 아닌가-
김봉석 : 저는 <에이코믹스>를 만들 때부터 돈이 없었지만, 광고는 당연히 생각을 하죠. 그런데 1년 반 정도 지나고 보니 안 될 거 같아요. 그 이유는 만화는 기본적으로 마케팅 개념이 없어요. <씨네21>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광고가 들어오죠. 광고를 해야 하니까. 옛날에는 좋은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런 적이 있어요. 어떤 영화에 대해서 표절 시비가 있다고 하니까, 그 영화사에서 바로 전화 와서 앞으로는 일절 취재 거부한다고 하던데, 그렇지만 삼사 개월 지나면 연락이 와요. 개봉한다고. 소위 말해서 서로 빨아주지만 않고 계속해서 긴장감을 유지하면 되는 건데, 어쨌든 그게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만화 경우에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웹툰은 너무 많은데, 네이버 같은 데서는 인기 순위밖에 안 봐요. 인기 순위밖에. 좋은 만화들에 대한 평가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맨날 물어보는 게, ‘웹툰은 좋은 게 뭐야? 뭘 봐야 돼?’ 저도 뭔가 제시해야 할 게 딱히 인기 있는 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예요. 플랫폼들도 그런 걸 해줘야죠.
참 어이없었던 게 카툰컵이라고, 지금 없어졌는데, 시작한 걸 보니 작가들이 되게 좋아요. 괜찮은 만화들이 실렸고. 그런데 이걸 만화 마니아들 말고 누가 알 것인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만화를 좋아해도.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 카툰컵이 시작한 직후에, <에이코믹스>랑 같이 뭔가 좀 해보자라고 제의하면 아무 말도 없어요. 그런 생각이 아예 없는 거예요. 그냥 서비스하면 독자가 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과거의 만화 출판사들이 그렇게 해왔던 방식이죠. 학교 앞 문방구에 갖다 놓으면 다 팔렸으니까. 아주 큰 문제죠. 최소한의 영역에서 서로 간의 마케팅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아예 생존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거예요.
박기수 : 만화계의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프로, 그런 사이트, 그런 어떤 소개 매체가 좀 있었으면.
한상정 : 아니, <에이코믹스>에는 기존의 플랫폼들이 광고 지원을 하나도 안해요?
김봉석 : 안 해요.
한상정 : 네이버, 다음 아무데도?
김봉석 : 아무데도 없어요.
한상정 : 자기들 작품을 코멘트 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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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 없어요. 관심이 없어요, 아예. 필요없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박기수 : 안 해도 오는데, 뭐)
예를 들어서 영화계 같은 경우에 이동진이 예술영화에 대해서 뭔가 코멘트를 해주면 좀 움직여요. 예술영화는 아예 작으니까, 시장 자체가. 근데 천만 명이 보는 영화, 300~ 400만 명이 볼 영화들은 <시네21>에서 기사가 나오든 말든 관심이 없어요. 1990년대 후반에 한국영화 르네상스라고 했던 시기에 <시네21>은 표지를 한국 영화만 실었어요. 그러면 독자엽서가 오죠. 왜 재미도 없는 한국 영화를 맨날 표지로 쓰냐. 이런 독자엽서가 진짜 왔다니까요. 하여튼 간에 그 당시엔 한국 영화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계속 그걸 해주니까, 동반자적 그런 게 있었거든요.
만화는 네이버가 기존 만화계와도 상관 없이 커버리게 되니까, ‘그게 왜 필요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백정숙 : 만화는 그 동안 한 번도 광고를 해서 사람들에게 알린 게 아니었어요. 만화를 선택하는거나 보는 행위는 굉장히 개별적인 행위인데, 자기 주변의 입소문, 동네 만화가게 주인의 추천, 이런 것들이 다였지 마케팅에 대한 필요성이 없었던 거죠. 독자들도 거기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이 안되었던 거고.

건설적인 비평의 길
박기수 : 우리가 지금까지는 투덜대는 쪽이었고, 내부적인 반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만화 비평하시는 분들이 상업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이건 상업적인 프로모션을 위한 글이다, 혹은 이건 비평을 위한 글이다, 이렇게 구분을 했는가에 대한 부분도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아쉬운 게 단행본 만화가 나옴에도 책 뒤에 그 만화를 프로모션 하는 평이 붙질 않아요. (한상정 : 부분적으론 붙죠.) 아, 물론 있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상당히 소박해요. 예전에 문학과 지성 같은 데서 소설 나왔을 때 뒤에 붙는 평을 보면 안 읽을 수가 없는 평이에요. 그걸 누가 썼냐면, 다 대가들이 써줬어요. 어떤 경우는 평보고 막 감동을 받고, 작품 보는데 작품은 별거 없는 경우도 많이 있었잖아요. 만화에 그 정도의 권위를 지니는 평자들이 없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데, 어쨌든 조금 전략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붙여갈 필요도 있다. <미생>이 250만 부 가량 팔렸다지요. 만약에 거기다가 누가 진지한 평을 하나 딱 붙였어. 권위자가 만약에…… 굉장히 재미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랬을 때 250만 부에 해당되는 평이 소비가 된 거잖아요. 이 힘이 얼마나 세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게 일절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백정숙 : 근데 미생을 사보는 독자들은 그 평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돼 있죠, 아쉬운 거죠.
작품 대 작품평이 붙는 어떤 공간들이 마련되면 좋겠죠. 거기에 맞춰서 비평 진영에서도 조금 더 적극적이고 차별화된 비평이 나올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비평의 글이 꼭 텍스트만 될 필요도 없고, 팟캐스트 형태로 대담이 붙어도 되고. 요즘 너무너무 놀라운 게 그거잖아요. 도서시장에서 팟캐스트의 파워. 거기에 일단 올라가면 책은 기본 1만 권은 나가고 시작한다라는 거죠. 그건 저는 도서시장에서 굉장히 전략적으로 선택한 거라고 봐요. <창작과 비평>도 하고 있잖아요. 그니까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뭐 백안시할 필요는 없고. 어차피 이게 산업의 일환이라면 일정 부분 가져가자. 다만 산업으로 가져가면서 그 포지션을 가져갈 수 있을 때, 그때 독자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을 찾자.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고, 거대 포털에 종속돼서 끌려가니, 오히려 독립적인 데서 각자 일정 부분 할 수 있으면 되지 않나. 너무 이상적인 얘기를 한다고.
김봉석 : 저는 결국은 그냥 각자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문제는 그 방법을 안 찾으니까.
한상정 : 우린 뭔가를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연방이 필요한 거지, 연방이.
박기수 : 좀 긍정적으론 안 될까. 너무 회의적이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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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 2~30대가 열정으로 하던가 아니면 4~50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시간이건 뭐를 투자해서 만드는 거죠. 만화학회 빼고 만화 쪽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동인지라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1년에 두 번만 내면 찍는 비용도 별로 안 들거든요. 부수도 조금만 찍고. 근데 그걸 어떻게 지속적으로, 사실 제일 중요한 게 지속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일년 동안 내고, 심지어 2년 동안 내고 나서 없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만화계를 보고 있으면, 만화 잡지 같은 게 계속 그런 식이더군요. 일년 하고 없어지고, 일년 하고 없어지고. 지원받고 나서 지원 끊어지면 없어지고. 계속 이런 식으로 되니, 신뢰가 안 생기는 거죠.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최소한의 지속 가능성을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결과적으로 아이디어를 누가 냈으면 할 만한 사람들이 먼저 시작을 해야 한다고 봐요.
박기수 : 음, 오케이. 그니까 어떤 부분에선, 자본이나 이런 부분과 우리가 각을 세워놓고 생각할 건 아니고. (김봉석 : 그럼 안되죠.) 전략적이면서도 독립성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수익이 아니라면 동인별로 잡지 내서 좋은 의견 모아서 담론을 계속 생산해내는 것도 한번 고민해봐야 되겠는데요?
김봉석 : 그런 식으로 하던가, 아니면 문화예술계에서 계속 얘기가 되고 있는데, 문화예술이 중세와 근대처럼 스폰서가 필요한 거 아니냐, 페트런이 필요한 거냐. 요즘 그런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백정숙 : 1995년에 사실 만화평론가협회를 만들게 된 이유가 이런 문제 의식 때문에 만든 거죠. 90년대의 만화계 내의 담론이라고 한다면, 한국 만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방향으로, 그래서 맨 처음에 했던 작업이 한국 만화의 선구자들을 한 꼭지씩 써서 내고, 그거 하면서 만화평론가들을 만든 거거든요. 그 이후에 두세 권 더 냈죠. 사실은 지금도 모이라면 모여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지속 가능해야 하고, 그거 하려면 제가 해야 되거든요. 모이라고 연락도 제가 해야되고, 그 기획이나 뛰어다니는 일도 제가 해야 되고. 물론 다들 글 쓸 준비는 되어 있어요. 뭐 하라고 하면 할게, 그러죠. 그런데 여기서 예전의 처음 그 인력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인력풀이. 인력풀이 좀 더 늘어나서 같이 뭔가 새로운 것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계속 한 사람한테 몰리니까. 지속 가능하게 해야 되는데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만화와 시대 2>를 20년 만에 내자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인 거죠.
박기수 : 전 이전 분들의 작업도 의미가 있지만 지금도, 사회적인 지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좋아서 계속 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이걸 긍정적으로 키워줄 수 있는 어떤 생태계를 마련을 해줘야 하는데.
백정숙 : <만화와 시대 2>를 내자고 했던 이유가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글쓰기 소일거리가 아니라 이걸 재생산을 해야겠다는 거죠. 사실 젊은 세대들이 블로그 같은 데서 글을 써서 인기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선후배들이 같이 있는 지면이 있을 경우엔, 금전적인 보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힘을 좀 받지 않을까, 의미는 그런 거였어요. 지금이라도 하면 되는데.
박기수 : 김 선생님 동의 들어오시겠어요? 동인 결성하면?
김봉석: 네? 뭐 하는지 봐서.
한상정 : 아카데믹한 리뷰에 관심이 없으시니까.
박기수 : 아카데믹하지 않고. 그게 경계가 그렇게 나눠지는 건 아니니까.
백정숙 : 의지가 있는 사람들한테 길을 연결해줄 역할은 필요한 것 같아요.
박기수 : 그래서 의식적으로 <에이코믹스>도 그렇고, <BOGO>도, <critic M>도 신인들이 데뷔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를 열어줘야지요.
백정숙 : 우리는 원고료 준다고 해도 안 와. 젊은 세대한텐 <BOGO>는 별로야.
박기수 : 초기에는 의도적으로, 써라, 꼭 써라며 격려하고 보완해주거나, 블로거 중에 괜찮은 글 싣는 사람들을 직접 접촉하기도 하고, 그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한상정 : 김봉석, 백정숙 두 분이 탈퇴한 만화포럼이 있죠. 그 포럼이 부분적으로 오픈을 했어요. 현재 박사 과정에 있거나 박사를 한 사람 중에서 관심이 있으면 들으러 와도 된다. 아카데믹한 성격이니까요. 아마 9월이면 다시 개편안을 논의할 꺼 같아요. 여튼, 그러다 보니까 30대 중후반의 인력이 들어오긴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나중에 프로젝트도 같이 진행할 수 있을 거구요. 나중에 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지면으로 나가야 하고. 그래서 이번에 여기서 등단을 하라는 거죠. 평론 신인상을 공모하면 그 사람들을 통해서 글이 들어올 거란 거죠. 이렇게 올해 사업이 끝나더라도 한두 번 정도 더 하면 인력자원들이 쌓인다고 봐요.
박기수 :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지성>도 초기를 잘 보면, 데뷔한 사람들은 거의, 75%는 자기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키워서 등단시킨 거죠. 이게 뒤로 가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비평 담론의 활성화에서는 굉장히 중요하죠. 일정 수준으로 키워놓은 상태에서 올리기 때문에. 말씀처럼 포럼을 활용한다는 건 구조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한상정 : 사실은 이런 만화리뷰평론매체가 생긴 것도 <에이코믹스>가 역할을 한 거잖아요.
박기수 : 박수 한번 칩시다(짝짝짝).
한상정 : <에이코믹스>가 먼저 시작하니까 리뷰나 평론 쪽에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저는 가능하면 모든 매체들에서, 우리만의 매체에서라도 만화평론 등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등단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면을 우리가 줄 것이냐, 그러려면 이런 사업들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백정숙 : <BOGO>같은 경우에도 창간을 할 때 몇 가지 의미를 둔 게 있었는데, <에이코믹스>가 웹툰을 중심으로 한다면, 출판 만화 쪽에 대한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최소한 뭔가 담론을 만들 수 있는 커버스토리 형식 특집 꼭지를 유지하려고 해요. 여러 가지 실험을 했지만, 커버스토리는 끝날 때까지 사수를 하려고 해요. 크게 반향을 일으키진 못하겠지만, 하나씩 정리를 해나가야겠다 생각을 하거든요.
박기수 : 근데 그렇게 반응이 없거나 하진 않아요. 방송국이나, 사보, 기자들도 그런데 이 분야를 아는 게 아니니까 웹툰에 대해 검색을 하죠. 기본적으로 뜨는 사람들을 우선적인 섭외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재밌게도 <BOGO>에 글 쓰고 나서 유사한 주제로 네 편을 각기 다른 매체에 쓰게 됐어요.
백정숙 : 오호.
박기수 : 저는 만화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하위문화의 장르는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백 : 이미.) 이미. 그건 꽤 됐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니라 밖에서 보는 하위문화적인 시선도 분명히 있다. 이것을 극복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전에 모 스포츠 신문에서 만화평론 등단제도가 있었잖아요. 스포츠 신문에서 등단을 했다면 하위문화로 볼 수 있는데, 그런데 별도의 매체에서 만약에 등단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다면 시작 자체를 하위문화로 보긴 어렵다는 거죠.
한상정 : 한겨레신문의 문학 담당기자가 대중문화의 통합적인 신춘문예를 제안한 적이 있죠.
김봉석 : <씨네21>에서는 하고 있는데, 아마도 내부적으로 의견에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박기수 : 신춘문예 자체를 문학 쪽에선 굉장히 부정적으로 봐요. 신춘문예에서 따올 것은 등단이라는 어떤 공식적인 인정 절차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시스템을 새롭게 해야 해요.
김봉석 : 최근에 아예 출판사 끼고, 장편 소설을 내잖아요. 1억 주기도 하고. 올해 레진이 1억짜리 공모전을 했잖아요. 이게 붐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더 있었다고 보는데, 레진과 일부에서만 어떤 작품이 선정됐네 하는 정도로 그쳤지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 그게 마케팅이죠. 이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박기수 : 이번에 서찬휘 씨도 썼던데, 레진 당선작에 대해서 조금 아쉽다는 거죠. 자, 아쉽다고 그랬죠. 그러면 누가 이런 면에서 아쉬운데, 왜 그러니, 그러면 저쪽에선 긍정적으로 반대로 이런 좋은 점이 있잖아, 이렇게 하면서 치고 받아주는 그런 관계에서 담론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만화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현재적인 지향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겠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 기분 나빠.” 그러고 끝난단 말이에요. 이런 부분이 조금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일부러라도 말입니다.
김봉석 : <씨네21>같은 경우는 초창기에 그런 논쟁이 많았거든요. 말 그대로 역사적 논쟁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쉬리>가 떴을 때, 관람객이 230만, 240만쯤 가니까, 모 평론가가 글을 올린 거예요. 한국 영화 전체 관객이 천만이라고 보면,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를 보는 사람은, 말하자면 300만 정도다. 근데 <쉬리>가 230만을 가져가면 70만 가지고 다른 영화가 싸워야 된다. 이거는 대단히 해악이다. 이렇게 글을 쓴 거예요. 근데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커졌죠. 이렇게 싸워야 되거든요.
박기수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담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잖아요. 천만 영화 터지고. 저는 그거 긍정적이라고 봐요.
김봉석 : 결국 이걸 실어줄 매체가 있어야 되는 거죠. 또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 거고. 어떤 주장이 나오면 매체와 쓰려고 하는 필자와 이것이 상관관계가 계속 있어야 하거든요. 사실 매체라고 하는 건 지금은 거의 어려운 일이죠. 이제 거의.
박기수 : 이제 만화도 만화지만 만화 비평 자체가, 만화 비평의 정체는 뭐냐, 우리가 만화 비평에 대한 자의식을 갖는다고 할 때 만화 비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저도 잘 안 잡혀요. 막연히 비평이라는 일반론에 대해선 얘기할 수 있겠는데, 지금 이곳에선 만화라는 살아있는 놈에 대한 비평이니까 이것에 적합한 걸 찾는다면 그건 현재적 고민이 돼야 하잖아요. 사실 만화 비평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글을 솔직히 아직 못 봤거든요.
한상정 : 이런저런 현황에 대해 많이 이야기 했고, 과거에 대한 얘기도 나눴고, 뭘 해야 할지 과제에 대해 굉장히 많이 발굴을 한 것 같은데요.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하죠?

비평은 위기다?
백정숙 : 저는 사실 때로는 만화 비평이 필요한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박기수 : 어떤 이유 때문에요?
한상정 : 뭐, 말해봤자 무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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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숙 : 그렇기도 하고.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자괴감? 이런 것들. 그 동안 아까 나왔던 이야기들 가운데에 한 번씩은 다 시도를 해봤던 거 같아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건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악순환에 빠지고. 계속 쳇바퀴 돌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까 포럼에서 새로운 뉴페이스들이 등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냥 단편적인 현상일 뿐이지 그게 얼마만큼 지속 가능할 수 있느냐, 결국은 토대의 문젠데 그거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안해 본 게 없는 것 같아요. 정말 별 짓을 다했지. 근데 과연 어떤 부분들을 끊고 무엇을 가져가야 될 것인지 정리가 안돼요.
박기수 : 그 동안에 시도했던 건 지금 이곳에서 하신 게 아니고, 시장 상황도 달라졌고, 인적 구성도 달라졌고, 그죠? 패턴도 달라졌으니까.
백정숙 : 25년 동안 매번 달라졌어요.
박기수 : 그렇다고 그게 안됐으니까 지금도 안 될 것이란 생각은 저는 아니라고…
백정숙 : 안될 거라고 단언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를 어떤 거를 어떻게 끊어내야 할 것인지, 중심고리가 뭐냐, 이런 부분들이 쳇바퀴 돌고 있다는 거죠.
박기수 : 최근에 ‘어디든 비평은 위기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살아남으려면 소란스러워야 해요. 소란성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대화의 전조거든요. 그 자체가 시끄러워지면서 살아남는 걸 많이 봤단 거죠. 만화의 제일 취약 부분은 그런 부분들이 활성화될 수 있는 장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에이코믹스>가 그나마 일정한 역할을 해주고 있고, <BOGO>나 <엇찌>도 있죠. 더 격렬하고 소란스럽게 부딪치며 하나, 두 개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분명한 건 만화의 규모에 비해서는 비평담론의 장은 지극히 지금 작은 편이라는 겁니다.
백정숙 : 기시감. 똑같은 이야기를 또 똑같이 반복하고, 멤버들만 한 사람 바뀌고 두 사람 바뀌고 이러면서 계속 또 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전체 흐름을 봤을 때 그 동안 양적인 확산을 해왔다면, 질적인 도약들을 할 단 한 방울이 필요하다란 생각을 해요. 과연 비평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서 회의감이 들어요. 전체 만화가 변해나가는 흐름은 읽을 수 있는데 거기서의 비평의 역할은 과연 어떨까요?
김봉석 : 어차피 아카데미 비평은 웹툰을 포함한 만화라는 것에 대해서 아카데미 측에서 계속 연구를 해야 되고, 제가 저널 비평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실 저는 비평가로서의 원래 영화 할 때도 그랬었고, 자의식이나 관심이 별로 없고, 제 관심은 제가 재미있게 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거예요.흔히 얘기하는 큐레이션. 저는 일종의 네비게이션이라고 생각을 해요. 영화에선 비평이 의미가 없어진 것 같은데, 볼 게 너무 많아서 그래요. 제가 <씨네21> 초창기 땐 일주일에 개봉한 영화가 많을 때 10개, 적으면 한두 개였어요. 그리고 영화제도 몇 개 없고. 그러니까 국내 영화를 다 볼 수가 있죠. 지금은 IPTV 개봉하는 거 합치면 일주일에 30~40개씩 되니까 볼 수가 없어요. 평론가들도 이 속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은 예술영화 쪽으로 파고, 어떤 사람들은 장르를 파고 들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국가를 파고 들 수도 있고. 만화도 이미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에이코믹스>는 일반 독자가 평을 보고 ‘이런 만화가 있네?’ ‘이 만화 재미있을 거 같네.’라고 해서 그걸 보게 되는 걸 1차 목표로 봐요. 그 다음에 <에이코믹스>가 풍성해지고, 어느 정도 수익이 되면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뿐인 거지, 1차적인 목적은 그런 걸로 보면 됩니다.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아카데미 비평은 아카데미 비평의 역할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고, 지금 <에이코믹스>로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거죠.
한상정 : 만화계는 기획자들의 기획이 필요하고, 정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만화사 연구자도 필요하고, 리뷰를 쓸 수 있는 평론가들도 필요하고, 이 모든 게 다 필요한데, 제가 볼 땐 그래도 좀 괜찮은 게 리뷰 쪽이고 나머지는 거의 바닥인 상태거든요. 우리가 ‘평’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 안에 포함된 다양한 층위를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박기수 :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와서 얘기하는 게 보장이 되는 게.
김봉석 : 시장이 커지면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하게 확장해야 하는데, 사실 만화는 폐쇄성이 강한 것 같아요. (한상정 : 굉장히 강하죠.) 플랫폼 별로 폐쇄성도 강하고. 영화계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협업할 수 밖에 없는데, 만화의 경우에는 대개 분절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같이 할 수 있는 부분들도 오히려 같이 안 되는 게 많고. 영화계는 영화사 사장들끼리 많이 만나죠, 근데 만화계는 과연 플랫폼 사장들끼리 만날까? 아닌 거 같아요.
박기수: <영화를 멈추다>란 책에 실렸던 짤막짤막한 글들이 있지요. 제가 “문장이 너무 좋다.” 글 쓰는 사람들 앞에서 “봐라~ 반성해라, 영화 하는 사람이 이만큼 쓴다.” 그랬더니, “그건 비평이 아니지.”라고 얘길 하는 거예요. 되게 웃긴다. 왜 비평이 아니냐? 텍스트를 표현할 수 있는 최적화된 표현 방식이고 그것을 통해서 색깔이 드러나는 건 비평으로 충분하다. 그러면서 비평론 논쟁이 좀 있었어요. 그런 시도들, 그런데 영화나 이런 부분에선 나름 활성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문학 쪽은 굳어져 있죠.
김봉석 : 결국은 저널이 개입이 되었기 때문에, 영화 쪽에서는. 사실 문학은 개입이 안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아카데믹한 걸로만 가고, 영화는 <씨네21> 같이 주도하는 게 있으니까.
박기수 : 저널 쪽에서 아카데미로 넘어오기도 하고,아카데미 쪽에서 저널 쪽으로 빠져 나가기도 하고, 이게 선순환이 되면 담론이 금방 쫙 커지는데 이게 쉽지 않죠.
한상정 :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매체의 지속적인 확보, 새로운 독자들을 발굴해서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렇게 한 4,5년만 욕심을 내서 하면 양적인 확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김봉석 : 유지시키는 게 중요하죠.
한상정 : 4,5년만 할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봉석 : 그거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백정숙 : 현실적으로 어떤 자본에 의해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정부 지원금에서 하나의 공적영역으로서 만들어내야 할 판인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먹히니까. 이럴 때 우리 ‘연방’이 ‘선빵’을 때려야 하는 거죠.
한상정 : 우리 어르신들도 설득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백정숙 : 나는 이 부분은 기존 만화판에서 무언가를 새로 또 만들기보다는 별도의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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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수 : 좀 더 구체적으로 별도의 것이라면.
백정숙 : 별도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만화판 안에 우리 동네 사람이다라는 걸로 가는 게 아니라 별도의 판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이거 자체가 성과가 쌓이는 토대가 없어요. 만화판의 창작라인으로 소모되기만 하고.
한상정 : 아예 협회를 만들면? 협회를 만들면 몫을 주장할 수 있겠죠.
김봉석 : 정부에 얘기 하려면 협회를 만들어야죠.
백정숙 : 창작자들과 같이 얘기를 하게 되면, 하나의 곁다리로 찔금 주는 식인데, 그게 아니고 이 자체에 별도의 판이 마련되어야지. 왜냐면 이쪽은 창작판에서 나오는 순환구조랑 다른 순환구조로 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야말로 인문학적인 베이스로 가야 하는 부분들이고 그리고 매체 성격도 달라야 하고. 비평은 만화와 관련된 얘기를 한다 할지라도 때로는 만화만을 얘기하는 게 아닐 수 있는 거잖아요. 별도의 판이 만들어져야죠. <BOGO>에서는 창작과 글이 고전적인 형식으로 같이 하고 있는데, 이 형식은 계속 가져갈 텐데 서로 죽는 부분들도 좀 있는 거 같아요.
박기수 : 처음에 <BOGO> 봤을 때 창작품들이 있는 게 놀라웠어요. 비평들로만 묶여 있지 않을까, 그래야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게 온전한 만화잡지도 아니고 비평잡지도 아닌 형태가 되는 것이어서, 오히려 조금…
백정숙 : 만화잡지가 하나의 문예잡지로 갔음 좋겠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고. 그래서 만화계 내의 소소한 일들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 일반에서 만화를 잘 안 보는 사람들이 만화에 대해서 생각할 게 있을 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게 됐으면 좋겠다는 거죠. 하나쯤은 그렇게 가야 하지 않을까?
박기수 : 웹툰 성장과 함께 장르간 경계에 대한 부분도 사실 조금 모호해졌잖아요. 영화로도 많이 넘어가고, 드라마로 많이 가고. 이제 비평도 비평 자체에서 장르간 글쓰기 역시도 시도가 되어야 되는 거 아닌가?
백정숙 : 현실적으로 굉장히 필요한 거죠.
박기수 :아직 그런 장르 간 글쓰기를 하는 분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김봉석 : 하려면 최소한 두 쪽을 다 어느 정도씩은 알고 있어야 하는 건데.
박기수 : 김봉석 선생님 같은 분이 시도하실 만한…
김봉석 : 어차피 저는 개인적으로 리뷰를 쓴다니까요. 제가 쓴 것 중에 한 가지 예를 들면 최근에 수퍼히어로에 대한 건데, 수퍼히어로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면 만화도 봐야 하는 건데 (박기수 : 그렇지.), 영화 쪽도 만화 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근데 또 그걸 보려면 미드도 봐야 해요. 미드가 같이 연결되기 때문에. 점점 더 세분화된다는 거죠. 결국은 자기 관심영역이 있어야 하고, 스페셜리스트한 강점이 있어야 되는데, 만화 비평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자기가 관심 있는 영역, 예술에 관심 있으면 예술에 파고 들어 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하니.
한상정 : 두 시간이 넘어가니 이야기가 점점 잡다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쓸 것이냐’까지 우리가 얘기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지금 어쨌건 필요한 것은 창작 쪽이 아니라 이론, 평론, 리뷰, 기획 쪽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어떤 조직화, 이런 것이 있어야만 지난 20년 간 발생했던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고 만화 비평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는 생각이 일치하는 군요.
백정숙 : 지금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 움직여야 하죠. 기왕에 만화 정책 관련 지원이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이쪽 ‘판을 키워내자’라고 설득해야겠죠. <BOGO>, <에이코믹스>처럼 몇 천만 원 쥐어주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판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크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 딜을 할 주체는 누구냐? 창작자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만화계를 사랑하는 창작자들도 그 일은 못해요.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뭘까, 는 차후에 별도로 논의가 되어야죠.
한상정 :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우리 대담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우리가 돌을 던지긴 했습니다. 이게 어떤 식의 돌이 될진 잘 모르겠어요. 아주 사소한 조그만 돌이 될지, 아니면 진짜 향후에 여러 가지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돌이 될진 모르겠지만, 이후에 또 시간이 되면 아까 나눴던 얘기들을 더 심화시켜서 진행을 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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