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6일 수요일

공적 연금 강화, 기초 연금부터 시작하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6179

공무원 연금 개혁안이 합의되었다. 연금 개혁에서 사회적 합의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전향적인 일이다. 합의 내용을 일일이 따지면 논란의 끝이 없겠지만, 여야뿐만 아니라 정부, 공무원 조직 대표까지 큰 틀에서 서명한 합의이니 우리 사회가 존중해 나가야 한다.

공적 연금 강화 논의 본격화하자!

고령화 시대 연금 개혁은 변화된 인구, 재정 여건에 적응해가는 '사회적 조정'이고 또 '연속 개혁'일 수밖에 없다. 애초 시작 때 드러났던 양자(정부 vs. 공무원)의 의견 간극에 비하면 이번 합의안은 의미있는 타협이다.

공무원 연금 합의 이후 논란의 중심이 '국민 연금 급여율 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주제는 보험료 인상을 동반하기에 금세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이후에도 그러할 듯하다. 이를 계기로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공적 연금 강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토론해 나가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이번 공무원 연금 합의안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고, 지금 시점에서 국민 연금 급여율 상향론이 지니는 한계를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공적 연금 강화 방안으로 기초 연금의 보편주의적 인상을 제안한다. 

정부, 재정 절감 효과 상당히 달성 

공무원 연금 개혁안은 '타협의 산물'이다. 양자 모두 자신의 주장을 완전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정부는 일정한 재정 절감 효과를 달성했고, 공무원은 삭감 폭을 줄이면서 공적 연금 강화라는 사회적 명분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연금도 국민 연금처럼 일부 소득 재분배 원리를 지니게 되었다. 

우선 정부의 입장에서 성과를 보자. 공무원 연금 재정 절감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보험료율/지급률 조정. '약 30% 더 걷고(보험료율 14%→18%), 약 10% 덜 지급한다(지급률 1.9%→1.7%)'. 이 때 연금액 삭감률은 개인별로 다양하다. 국민 연금 방식의 소득 재분배 지수가 일부 도입되고, 지급률 인하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급별, 임용 시기별로 삭감률이 다르다. 인사혁신처 분석에 의하면, 30년 재직 기준 5급 임용자는 임용 시점에 따라 7~17%, 7급은 5~13%, 9급은 2~9% 월 연금액이 줄어든다.

또 하나는 2009년 이전에 임용된 재직자의 수급 개시 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늦어진다. 현재 이들의 수급 개시 연령은 점차 높아져 2021년에 60세에 이를 예정인데, 2022년부터 다시 단계적으로 올라 2033년에 65세가 된다. 국민 연금 수급 개시 연령 변화와 일치시킨 것이다. 

인사혁신처 발표에 의하면, 합의안의 재정 절감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다. 향후 70년간 333조 원을 절감하는데, 이는 새누리당 법안의 재정 절감 효과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이라 설명한다(인사혁신처 발표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 

공무원, 공적 연금 강화 명분 얻어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서는 노조마다 온도차가 존재한다. ⓒ연합뉴스
공무원의 입장에선 어떨까? 다소 복잡하다. 공무원 단체(노동조합)마다 온도차가 존재하고, 전국공무원노조의 경우는 합의안에 대표자가 서명했지만 조직 내부에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는 모양이다. 지급률 인하를 단계적으로 적용해 선배 공무원들의 삭감 폭을 줄이고, 수급 개시 연령 연장에 따른 인사 정책적 개선 방안 기구를 구성하는 보완책을 마련했지만 지금보다 모두가 깎였으므로 만족스럽진 않을 것이다.

나는 공무원들이 실리에서 양보했지만 명분을 얻어냈다 평가한다. 공무원 직종, 공무원 연금에 대한 여론 환경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타협이다. 공무원 단체들은 공무원 연금 양보 과정에서 '공적 연금 강화' 의제를 공론화했다. 특히 연금 크레디트, 사회 보험료 지원, 노후 취약 계층 등 국민 연금 사각지대 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긴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는 공적 연금의 사각지대 완화에 일조하고 이후 정년 연장 논의, 공무원 노동조합 사회적 발언권 강화 등에 자양분이 될 것이다.

국민 연금 급여율 50%, 논란의 중심으로 등장 

이번 합의에서 공적 연금 강화의 핵심 내용으로 명시된 '국민 연금 급여율 50%'는 추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실제로 국민 연금 급여율 인상 건은 공무원 연금 개혁보다 더 중요한 사안일 수 있는데, 국회 일정에 쫓겨 급히 정해졌다. 

노후 복지 보장성 차원에서만 본다면 국민 연금 급여율 인상은 긍정적 요소다. 문제는 보험료다. 사회 보험에서 급여 인상은 곧바로 보험료 인상을 동반한다. 비록 합의문에는 급여율 50%만 명시되어 있지만, 여야 모두 일정한 보험료율 인상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각자가 그리는 인상 폭이 너무 다르다. 국민 연금 급여율 50%를 받으려면 얼마를 더 내야할까? 사람들은 이 수치가 궁금한데 언론 기사를 보면 더욱 혼란스럽다. 정부는 현행 9%보다 두 배의 보험료율이 필요하다 설명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1%포인트만 올리면 가능하다 주장하니 말이다. 

5년마다 진행되는 국민 연금 재정 추계 

양자가 주장하는 수치마다 근거는 있다. 모두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수행한 동일한 분석 결과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다르다. 다소 복잡하지만, 국민 연금 장기 재정 추계 작업을 들여다보자. 

우리나라는 국민연금법에 의해 2003년부터 5년 주기로 국민 연금 재정 추계 작업을 진행한다. 국민 연금은 재정구조가 부분 적립 방식(가입자가 받을 급여 총액의 일부만 보험료로 적립)이어서 미래 재정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이에 재정 추계 작업은 미래 급여 지급을 위해 재정 상태는 어떤지, 만약 부족하면 재정 안정을 위해 지금 보험료율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때 국민 연금 재정 안정 목표가 여러 수준으로 제시되고 이에 따라 필요 보험료율도 다양하게 나온다. 

지난 2013년에 3차 재정 추계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행 40%를 급여율을 유지했을 때 각 재정 목표별로 필요 보험료율이 도출되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급여율을 50%로 상향했을 때 필요한 보험료율 수치를 발표했는데, 이 역시 2013년 재정 추계 작업을 확대 적용한 결과이다.  

국민 연금 재정 추계의 4가지 재정 목표 

국민 연금 재정 추계 작업은 향후 70년(2013~2083년)을 분석 기간으로 삼아 재정 상태를 진단한다. 그 결과 현행 9% 보험료율, 40% 급여율 체계에서 기금은 2060년에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추계위원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안정 목표를 4가지 수준에서 설정했다. 아래 <표>는 현행 40% 급여율에서 재정 목표(2013년 재정 추계 결과)와 50% 상향 시 재정 목표(보건복지부 발표)를 정리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보도참고자료(2015.5.4)를 조금 다듬은 표(급여율 40%는 2028년 달성 예정. 50% 급여율은 2015년 인상 가정. 필요보험료율은 모두 2015년 인상 가정).


첫 번째 재정 목표는 '적립 배율 2배'이다. 이는 '추계 기간 최종년도인 2083년에 연금 지출액의 2배(연금 지출 2년치)를 기금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필요 보험료율이 12.91%로 계산되었다. 2015년에 보험료율을 9%에서 12.91%로 올려야 2083년에 적립 배율 2배만큼의 기금을 가진다는, 즉 기금 소진 시점을 2060년에서 2088년으로 미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2년치 적립금과 보험료 수입으로 소진 시점 5년 연장). 만약 급여율이 50%로 상향된다면 기금 소진 이후 부족액이 더 커지므로 필요 보험료율은 15.1%로 높아진다.

두 번째는 적립 배율 5배이다. 이는 2083년에 5년치 지출액을 적립금으로 확보하는 재정 목표이다. 첫 번째 목표보다 조금 더 예비 적립금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 때 필요 보험료율은 13.48%이다. 그러면 기금 소진 시점이 2095년으로 늦춰진다. 급여율이 50%로 오르면 필요 보험료율이 15.8%로 오른다.

세 번째 재정 목표는 '수지 적자 미발생'이다. 기금을 2083년까지 계속 흑자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표이다. 추계기간인 2083년까지는 기금이 절대 규모에서 늘어난다. 이 모형에서 2083년 이후부터는 수지 적자가 시작되지만 추계 기간 이후의 일이다. 대략 이 정도면 상당한 재정 안정화 조치로 평가될 수 있다. 이를 위한 필요 보험료율은 40% 급여율에서 14.11%, 50% 급여율에선 16.69%이다. 

네 번째 재정 목표는 '일정한 적립 배율 유지'이다. 이는 '현행 급여율을 제공하면서도 2060~2083년 기간에 기금을 일정 적립 배율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 모형에서는 국민 연금의 재정이 구조적으로 계속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당연히 2100년 이후에도 기금은 상당히 존재할 것이다. 이 때 필요한 보험료율이 40% 급여율에서 15.85%, 50% 급여율에서 18.85%이다. 

장기 재정 추계 작업의 특성상, 연구 기관이나 학자마다 다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인구, 경제 성장률, 금리(기금 수익률) 등의 변수에서 다른 값이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전체 재정 추계 결과의 기본 윤곽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국회예산정책처, 감사원 등에서 재정 추계 작업을 점검하는데 수치가 일부 다르더라도 전체적 기조에는 큰 차이가 없다. 몇 년 차이가 생기지만 결국 2060년 즈음에 기금이 소진된다는 내용이다. 

재정 추계 작업에서 차이를 낳을 수 있는 분석틀은 추계 기간을 다르게 설정했을 때이다. 기금 소진 시점은 객관적인 분석 결과이지만 필요 보험료율은 재정 추계 기간(즉 재정 안정 설정 기간)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재정 추계 기간을 60년으로 단축해 잡는다면 재정이 불안한 미래 시점 10년이 제외되므로 필요 보험료율 수치는 낮아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의 경우를 참고해 70년 기간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보험료율 16.69~18.85%를 말하는 이유 

재정 추계 작업은 미래 재정 안정을 위해 현재 우리가 어떠한 정책을 선택해야하는지를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대표적 수단이 필요 보험료율이다. 우리가 선택해야할 필요 보험료율은 어느 게 적합할까?

우선 보험료를 두 배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지금 이러한 인상이 가능하지 않음을 모두가 안다. 이 주장은 가입자가 낸 만큼 받는 구조가 되려면 필요 보험료율이 두 배라는 것을 알리는 의미일 것이다. 50% 급여율에서 보면, 위 4가지 재정 목표에서 '수지 적자 미발생' 필요 보험료율 16.69%과 '일정한 적립 배율 유지' 필요 보험료율 18.85%가 해당된다. 보건복지부가 50% 급여율에 필요한 보험료가 16.69~18.85%라고 제시하는 이유이다.  

보건복지부는 보도 자료에서 '수지 적자 미발생' 필요 보험료율을 '균형 보험료'로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연금 수리적으로 수지 균형 개념에는 '일정한 적립 배율 유지'가 더 근접한 필요 보험료율이라 생각한다. 국민 연금은 납부와 급여의 장기 시차가 존재하므로 특정 시점에서 적자 미발생이 재정 균형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만큼의 보험료 인상을 꺼내기는 불가능하다. 혹 성사된다 하더라도 문제다. 지금보다 기금이 더 늘어나 거대화되고, 보험료 인상을 따라갈 수 없는 사각지대도 넓어질 개연성이 크다. 문제의 요점은 보험료를 상당히 올리지 않으면 그만큼 후세대 부담이 커지고, 인상을 강행하면 연금 저항과 거대 기금 문제가 생기는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1% 인상으로 가능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0%로 1%포인트만 인상하면 50% 급여율이 가능하다 이야기한다. 10%는 기금 소진 시점 2060년을 유지하고자 했을 때 필요한 보험료율이다. 만약 50%로 급여율을 올리면 소진 시점은 2056년으로 앞당겨지는데 보험료율을 1%를 올리면 다시 2060년으로 되돌아간다. 모두 국민 연금 재정 추계 작업의 수치이다. 

소진 시점의 변화가 없으니 급여율을 인상해도 괜찮다는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위 주장은 재정 추계 작업에서 설정된 4가지 재정 목표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재정 추계 작업에서 '2060년 소진'은 국민 연금 미래 재정 상태를 진단한 결과이지, 이 상태가 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60년에 소진되니 지금부터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1%만 올리면 기금 소진 시점 2060년에 변화가 없으니 가능한 정책 선택이라는 주장은 재정 추계 진단 결과를 거꾸로 해석하는 것이다.

2060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이후 때문이다. 앞세대가 미리 적립한 기금이 소진되었으므로 이 때부터는 후세대가 연금 전액을 책임져야 한다. 기금이 없을 때 연금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부과되는 보험료율을 부과 방식 필요 보험료율이라 부르는데, 현행 40% 급여율에서 2060년 21.4%로 예상된다. 만약 50%로 급여율이 오르면 소진 시점은 동일하더라도 급여액이 많아지므로 필요 보험료율은 25.3%로 높아지고, 2083년에는 28.4%로 더 오른다.

▲ 공무원 연금 합의 이후 논란의 중심이 '국민 연금 급여율 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연합뉴스

재정 추계 작업의 함의, 5년주기 보험료율 조정 

앞에서 강조했듯이, 재정 추계 작업은 미래 재정 안정을 모색하기 위한 분석틀이다. 2060년 소진은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나는 재정 추계 분석틀의 정책적 함의를 '앞으로 70년 기간에는 어떤 경우든 적립 기금이 소진되는 것을 막아 가입자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정책 방안을 도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최소한 2060년 예정된 소진 시점을 2083년 이후로 늦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고, 여기에 해당하는 재정 목표 중에서 현실적으로 논의가 가능한 방안이 아마도 '적립 배율 2배'일 것이다. 

물론 '적립 배율 2배' 재정 목표가 후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넘기지 않는 수지 균형 달성 수준은 아니다. 재정 추계 작업은 5년마다 이루어지므로 2018년 4차 작업에서는 추계 기간이 2088년으로 연장되고 다시 미세한 보험료율 인상이 도출될 것이다. 이렇게 보험료율이 5년 주기로 조정 작업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상향되어 가는 걸 가정한다. 

이럴 때 요청되는 '적립 배율 2배' 보험료율이 급여율 40%에선 12.9%, 급여율 50%에선 15.1%이다. 지금도 9%에서 12.9%로 올려야 했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급여율을 50%로 상향하면 15%까진 보험료율을 올려야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5년 주기로 소진 시점 연장에 따라 조금씩 보험료율 인상 작업이 계속될 것을 주문한다.

부과 방식 전환? 연금 재정 경착륙의 위험성 주목해야 

일부에선 보험료율 인상은 기금을 더 늘려 기금 운용의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비판한다. 기금 운영의 면에서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으면 미래 재정 부족 문제는 방치되고, 어느 시점에서 후세대의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 혹은 세금 지원이 불가피해진다. 보험료든 세금이든 결국 후세대 몫이다.

또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연금 재정 구조가 부분 적립 방식에서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일뿐이라고 설명한다. 제도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소진 이후 부과 방식 적립 시점에 급격한 보험료 인상이 가능할까? 과연 우리 세대가 이런 의사 결정을 해도 되는 것일까? 특정 시기, 세대에서 재정 부담이 갑자기 증가하는 연금 재정 경착륙의 위험을 가볍게 보는 건 곤란하다. 어쩌면 문제는 2060년이 아니라 이 경착륙을 우려해 그 이전부터 발생할 수도 있다. 

현세대도 재정 책임 노력 필요 

인간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공적 연금을 받는 수급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동일한 연금액일지라도 받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후세대로 갈수록 재정 책임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한 시대적 특징이다. 단, 현세대가 후세대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노력은 근본적 방안으로 노인 일자리 개혁이다. 지금처럼 노동 시장에 머무는 기간은 제한적인데, 연금 수급 기간만 늘어나는 건 곤란하다. 지금도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노인들이 많다. 노인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노인의 지위가 연금 수급자에서 보험료 납부자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고령화는 인구학적 의제이지만 사회 정책적으로는 노동 시장 의제이기도 하다. 

두 번째 노력은 현세대가 가능한 선에서 연금 보험료를 책임지는 일이다. 현행 급여율 40%에 비해 보험료율이 상당히 낮고, 그 부족액이 미래로 넘어가고 있다. 연금 재정 측면에서 보험료율 인상 작업이 자꾸만 미뤄지는 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노동 시장 개혁 전망은 어둡고, 보험료율 인상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3차례 재정 추계 작업을 통해 보험료율 인상 필요성이 도출되었지만 노무현 정부만 시도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제안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50% 급여율' 주장의 한계 

나 역시 보험료율 인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금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오지는 않았다. 보험료율 인상은 뜨거운 연금 정치 사안이어서 이를 감당할 만한 연금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신 4차 재정 추계년도인 2018년 즈음에는 연금 수급자가 더 늘고 연금 체험 효과가 확산되어 보험료율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해 왔다. 

그런데 지금 50% 급여율 의제가 갑자기 논란의 주제로 등장했다. 지금 40%에 대응하는 보험료율 인상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급여율 인상이 부상한 것이다. 적립배율 2배를 재정 목표로 삼는다면 50% 급여율은 15% 보험료율을 요구한다. 과연 지금 정치권이, 우리 사회가 이 논의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래 두가지 이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50% 급여율' 주장이 공적 연금 강화 의제를 공론화하는 효과는 인정하지만, 내용 자체는 진지하게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재정 경착륙 우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 인상으로 가능하다 주장하지만 이를 수긍하기 어렵다. 급여율을 올리면서 그에 합당하게 보험료율을 동반하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후세대 연금 재정 부담이 급증하게 된다. 

미래 세대가 이를 감당할 경제력을 지니고 있고, 선진국은 이미 그만한 연금 지출을 소화하고 있다는 해명이 있지만, 재정 경착륙 문제는 미래 세대가 그만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느냐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이는 후세대가 앞세대에 비해 자신의 연금 재정 부담이 갑자기 크게 증가하는 재정 형평성 문제이다. 연말 정산 사태에서 보았듯이, 세금에 대한 저항은 금액 크기보다는 형평성 문제에서 더욱 촉발된다.

연금 수리적으로 도출되는 보험료 2배 인상 논리를 마치 지금 실행해야 하는 듯 불안을 부추키는 것도 지양해야겠지만, 후세대가 급격한 재정 부담을 수용하리가 보는 것도 정책 결정에서 위험한 가정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각지대다. 보험료율을 올리더라도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급여율 인상의 혜택은 주로 중간 계층 이상에게 돌아간다. 불안정 노동자나 비경제 활동 인구 성인들은 아예 연금 사각지대에 존재하거나 가입해 있더라도 임금이 낮고 고용 기간(연금 납부 기간)이 짧아 실제 연금 수령액은 작다. 이번 합의안에 사각지대 재원대책이 포함되어있지만 국민 연금이 지닌 구조적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기초 연금의 보편주의적 인상'을 제안한다 

정리하면, 나는 지금 국민 연금 급여율 인상이 공적 연금 강화 방안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아직 40% 급여율을 위한 대응도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나는 우리나라 공적 연금 강화 방향은 국민 연금보다는 기초 연금의 보편주의적 인상이라고 판단한다. 기초 연금을 보편주의 연금으로 전환하고(차별없이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 지급), 더불어 연금액 인상 논의를 벌이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이 지니는 강점은 아래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사실 "차별없이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기초 연금을 지급하자"는 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첫째, 기초 연금은 미래 재정 부담을 연도별로 늘려가는 재정 연착륙 구조를 지닌다. 기초 연금은 당해 지급이 발생하고 그 재정을 당해 마련한다. 고령화 시대에 기초 연금 역시 미래로 갈수록 후세대 재정 몫이 크다. 대신 노인수 증가, 기초 연금 인상 등에 맞추어 필요 재정을 점차적으로 증대시키면서 그 재원을 당 세대가 조달한다. 어느 특정 시기, 세대의 재정 부담이 갑자기 증가하지 않는 연착륙 재정 방식이다. 세대 간 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둘째, 기초 연금은 사각지대를 원천적으로 해소한다. 국민 연금이 제도 내부자와 외부자(미가입자)로 나누고 전자에게만 혜택이 제공된다. 제도 내부자 눈으로 보면 괜찮은 노후 복지이지만 전체 국민의 눈으로 보면 노동 시장의 계층 격차를 노후에 재생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와 비교해 기초 연금은 대한민국 노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소득 혹은 기여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사회 수당 형식으로 동일액이 지급되므로 소득 재분배 효과도 크다. 

셋째, 기초 연금은 국민 연금에 비해 사회 연대 원리를 표상하기 수월하다. 국민 연금에선 개인별 연금 계좌에선 가입자가 총 얼마를 내고 나중에 총 얼마를 돌려받는다는 연금 수익 계산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공적 연금에서 이러한 접근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세대 간 연금 부담 형평성 논란이 등장하는 구조이다. 이에 비해 기초 연금은 세금을 재원으로 동일 금액을 전체 노인에게 지급하는 사회 수당이다. 세대 간 손익보다는 세 대간 연대 논리를 펴기에 유리하다. 

넷째, 기초 연금은 적립 기금 문제에서 자유롭다. 당해 필요 재원을 당해 세금에서 조달하는 구조이므로 기금을 쌓을 필요가 없다. 공연히 현재 내수 지출을 제약하지 않고, 불안정한 지구 경제 환경에서 거대 기금 운용이 지닐 수 있는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남는 건 세금 정치, 피하지 말아야할 숙제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결국 세금을 늘려야 한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제안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연 금 인상을 공적 연금 강화의 핵심으로 주장하지만, 나는 이 주장이 지닌 재정 부담 경착륙(세대 간 형평성), 연금 사각지대 등의 한계를 더욱 주목하고 이와 비교해 기초 연금이 지닌 세대 간 재정 책임, 사각 지대 해소 등의 강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세대가 세금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공적 노후 연금 강화를 요구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2013년 우리나라 국민 부담률은 GDP 24.3%로 OECD 평균 34.1%에 비해 거의 10%포인트 작다. 올해 국내 총소득 1500조 원을 적용하면 무려 150조 원이 부족하다. 향후 증세 정치는 공적 연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재정을 정상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척이나 긴 글이 되어 버렸다. 연금 주제는 복잡하다. 다른 복지와 달리 후세대 몫까지 따져야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현재의 불안정한 연금 재정 구조에서 미래 해법을 모색해야하기에 사람마다 대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열린,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연금 재정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와 대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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