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0일 일요일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2--사물화 극복의 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에서 찾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2250.html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1부. 러시아 혁명의 반향
1. 막스 베버: 근대성에 갇힌 러시아 혁명
2. 죄르지 루카치: 베버를 넘어-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3. 카를 슈미트: 사회주의 혁명에 맞선 보수주의 선언
헝가리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죄르지 루카치(1885~1971)는 이른바 ‘서구 마르크스주의’, 곧 비사회주의 진영에서 전개된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특히 러시아혁명 5년 뒤에 출간된 <역사와 계급의식>(1923)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롯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 경향에 대하여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해준 걸작이다. 이 책의 중요성은, 미국의 지성사가 마틴 제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러시아혁명의 철학적 표현 그 자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루카치는 막스 베버의 친교모임인 ‘베버 서클’ 멤버였을 만큼 베버와 가까운 사이였고, 사상적으로도 베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최초의 독일어 저서 <영혼과 형식>(1915)은 근대성에 대한 베버의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한 뒤 출간된 <역사와 계급의식>에도 베버의 영향은 눈에 띄게 나타난다. 루카치는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 총체성이라는 방법론적 관점을 택함으로써 베버를 비롯한 부르주아 사상의 이율배반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버는 정신적 프롤레타리아화라는 말로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함과 정신적 능력의 결핍을 강조했지만, 루카치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혁명적 주체성의 근간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베버를 극복하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회하는 길이었는지 질문해볼 수 있다. 러시아혁명에서 비롯한 역사적 사회주의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하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합리화 경향에 대한 베버의 통찰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러시아혁명 이후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한 루카치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통찰은 일면적인 것이었다. 베버의 통찰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 루카치는 합리화를 사물화 개념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전략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닌다.
우선 사물화 개념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에 나오는 상품 물신숭배라는 개념을 존재론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물신숭배는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마치 상품들 사이의 관계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물신숭배는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모든 것이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교환되고 소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물화 개념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상품화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존과 의식까지도 사물로 전환되는 것을 표현한다. “의식의 속성들이나 능력들은 더는 인격의 유기적인 통일체로 결합되지 못하며, 외부세계의 온갖 대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소유’할 수도, ‘내다 팔’ 수도 있는 ‘사물’로서 현상한다.”
사물화의 관점에서 보면 베버가 말하는 합리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개되는 형식적 보편화 현상에 대한 이론적 표현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적 기능들 전체를 그 요소들로 분해하고, 이 요소들 사이에 새로운 형식적·합리적 관계를 설립한다. 곧 분업과 전문화, 상품화가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베버는 상품 관계의 보편화에 근거를 둔 형식적 합리성의 증대 과정은 잘 파악하고 있으나 이러한 과정을 마치 역사적 숙명인 것처럼, 탈출할 수 없는 쇠우리인 것처럼 간주한다. 이는 베버의 사상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형식적 특성을 잘 기술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원동력과 그 모순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베버는 점점 더 합리화되어 가고 관료제화되어 가는 근대 사회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신을 섬기고(곧 고유한 가치를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죄르지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혁명적 주체성의 근간으로 이해했다. 사진은 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루카치(오른쪽).
루카치는 베버의 합리화를
사물화 개념으로 대체한다
생산수단 없는 프롤레타리아는
실존 전체가 사물화 경험하고
자신들을 계급으로 자각한다
소외된 이들의 계급의식이야말로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만들어
계급 지배와 사물화 끝장내는
혁명적 주체성의 근간이다

하지만 루카치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적 체계와 주관적 개인, 필연과 자유 사이의 이러한 이원론은 불충분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모순적인 것이기도 하다. 만약 베버의 진단과 같이 근대 사회가 점점 더 합리화되고 관료제화되어 간다면, 그리고 그것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과연 개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하고 각자 자신들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객관적 체계만이 아니라 인간들 자신 역시 사물화되기 때문이다.
루카치가 볼 때 베버의 이원론은 부르주아 사유의 이율배반의 한 형태다.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이야말로 이러한 이율배반을 전형적으로 표현해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른바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선언했다. 더는 객관 세계를 인식 주체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인식 주체에 의해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동시에 이러한 객관 세계를 현상계로 한정했으며, 그 바깥의 물자체는 불가지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근대 합리주의의 이념에 따르면 객관 세계는 인간이 산출해낸 것이고 따라서 인식 주관에 의해 모두 인식 가능한 것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합리주의는 인식 불가능한 바깥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루카치는 이러한 이율배반은 자본주의 체계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체계는 점점 더 형식적인 합리성에 따라 빈틈없이 조직되고 운영되지만,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공황과 같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합리적 체계 중심에서 계속 일어나는 이러한 비합리적 사태는 부르주아지나 부르주아 사상가들에게는 물자체와 같이 설명할 수 없는 한계로 남는다. 따라서 베버처럼 개인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는 한 이러한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은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도 없다.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 구원의 희망을 거는 것은 이러한 이율배반적 관점의 단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사물화를 극복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에서 그 해법을 발견한다.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의식만이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줄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한, 위기는 영원히 계속되고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며 같은 상황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물화는 부르주아지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포함하는 모든 개인에게도 관철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프롤레타리아는 사물화 현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는가?
이는 역설적이게도 프롤레타리아가 훨씬 더 철저하게 사물화의 현상을 겪기 때문에 가능하다. 프롤레타리아는 생산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도록 강제된다. 이에 따라 그 실존 전체가 극한의 사물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철저한 소외를 겪으면서 프롤레타리아는 사물화의 근본 구조를 깨닫게 되고 자신들을 집단적인 계급으로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의 운명(이와 함께 인류의 운명)은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적 성숙도, 곧 그들의 계급의식에 달려 있다.” 그리고 혁명의 목표는 계급 구조의 철폐, “계급의 자기 지양”에 있다.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된 1917년 3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여성 노동자의 국제 여성의 날 시위 모습.
이렇게 해서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를 역사의 주체, 그것도 역사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주체(영어에서는 이를 나타내기 위해 흔히 대문자로 된 Subjec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로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야말로 모든 계급 지배와 사물화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혁명적 주체라는 것이다. 실로 루카치야말로 역사의 주체라는 개념의 발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는 정말 역사의 대문자 주체일까? 더 나아가 역사의 대문자 주체라는 개념이 과연 마르크스의 사상에, <자본>에 충실한 개념일까?
<역사와 계급의식>을 잘 읽어보면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일종의 당위적인 명제임을 알 수 있다. 루카치는 계속해서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혁명이 성공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동시에 실제의 노동자들과 역사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함을 시인한다. 루카치가 참여했던 두 차례 헝가리 혁명(1919년, 1956년)의 실패가 그것을 단적으로 입증했다. 또한 루카치 자신이 겪었던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계급의 지양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루카치 사상이 남긴 유산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지배의 근간으로서 사물화 개념과 역사의 대문자 주체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은 모두 초역사적인 노동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인간의 유적(類的) 본질로서의 노동이 자본주의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의 실제 주체이기 때문에 역사의 주체의 자격을 지닌다. 하지만 노동을 초역사적 본질로, 가치의 보편적 원천으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에 고유한 추상적 사유가 아닐까? 그것은 자기 증식하는 보편적 주체로서 자본에 고유한 관점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21세기 진보 사상의 과제 중 하나는 이러한 추상적 보편의 범주에서 벗어나 어떻게 해방을 사유할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루카치를 다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사진 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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