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6일 수요일

[시론] ‘책 읽는 서울’을 꿈꾸며 / 은종복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9698.html

왜 사람들은 책을 읽으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을 할까. 2015년 봄을 살고 있는 한반도 남녘 사람들은 누구나 손전화기를 갖고 있다. 이제 손전화기는 다른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일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누는 일에 더 많이 쓰인다. 아니, 잠시도 쉬지 않고 손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전자놀이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훔쳐본다.
얼마 앞서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나 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명이 삶터를 잃었다. 또 지난해 4월엔 한반도 남녘 바닷속에서 300명 넘는 사람들이 세월호 배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린다. 네팔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했다. 세월호는 진작 버려야 할 배였다. 한반도 남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참사는 무엇일까. 바로 수명을 다한 핵발전소다. 고리에 있는 30년이 넘은 핵발전소는 당장 없애야 한다. 이것이 터지면 4년 앞서 일본에서 터졌던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덴마크는 지금부터 70년 앞서부터 사람들이 늘 책을 읽고 대여섯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1940년 초 독일 나치가 그 나라에 쳐들어와서 어느 날 유대인들은 모두 노란 완장을 차고 나오라고 했다. 그럼 덴마크 사람들은 안전하게 살려 주겠다고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후줄근한 옷을 입은 늙은이 하나가 노란 완장을 차고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천천히 돌았다. 덴마크 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노란 완장을 차고 나왔다. 그사이 덴마크에 살던 3만명 가까운 유대인들은 옆 나라로 모두 몸을 숨겼다.
이런 정신이 어디서 나왔을까. 손전화기로 전자놀이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훔쳐봐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옳다고 할 때도 용감하게 아니라고 손을 번쩍 들 때 나온다. 고전을 읽자. 존 로크가 쓴 <통치론>, 권정생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 리영희와 임헌영 이야기 글 <대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자.
덴마크에서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1948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발전을 하려고 핵발전소를 지으려 했다. 그 나라 백성들은 핵발전소 한대가 만명이 살 수 있는 전기를 가져온다고 했다. 그럼 만 사람이 하나씩 풍차를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핵발전소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핵폐기물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고 그것이 깨끗하게 없어지려면 40만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덴마크는 지금 핵발전소 한대 없이도 잘 살고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몇 사람씩 모여 책을 읽고 공부를 해서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이름난 대학을 가려고 밤잠을 줄이며 하는 기술공부가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왜 사는지, 왜 내 목숨이 귀하면 다른 이 목숨도 귀한지 깨닫는 배움이다.
네팔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은 곱디고운 학생들이 느꼈을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은 경제성장과 국가이익을 외치는 속에서 나올 수 없다. 덴마크 왕처럼 자신을 버리고 애꿎은 목숨들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에서 나온다.
은종복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오는 12일 화요일 낮 1시30분에 서울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이런 마음을 담아 작은 이야기 마당을 마련했다. ‘책 읽는 서울’을 꿈꾼다. 그 자리에 함께했으면 좋겠다.
은종복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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