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작가’ 비비안 마이어
보모로 일하며 70대까지 찍은 사진
벼룩시장서 팔린 뒤 사후에야 인정
그를 다룬 사진집·다큐 영화 잇따라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중 하나.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삶은 수수께끼다. 1926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입주간호사인 프랑스인 어머니와 전기 기술자인 오스트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게 별로 없다.
그의 죽음 뒤 우연히 발견된 천재성에 탐정, 계보전문가들까지 나서 그의 삶을 추적했지만 40여년을 보모, 가정부, 장애인과 노인 간병인으로 일하며 70대까지 수십만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몇몇 단편적 사실만 확인됐다. 왜 찍었는지, 그의 작품이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동시에 한편의 비극이다.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엄청난 양의 필름을 담은 수백 상자의 짐은 그가 입주보모 등의 일 자리를 구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창고를 임대했다. 하지만 그 임대료 때문에 곤경에 처하고 독촉장이 날아들고, 결국 그의 삶 자체였던 상자들은 2007년 경매를 통해 헐값에 처분됐다. 2008년 길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그는 병원에 옮겨졌다. 음식을 거부하며 나날이 쇠약해진 그는 요양원으로 옮겨졌고, 2009년 4월21일 숨이 멎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중 하나.
죽음 뒤 드라마틱한 반전이 찾아왔다. 2007년 시카고 벼룩시장에서 30만장에 달하는 네거티브 필름과 소지품을 단돈 380달러에 사들인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길거리 사진작가인 존 말루프는 2년여가 흐른 뒤 자료를 분류한다. 사진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눈치 챈 말루프는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개설하고 ‘이 사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비비안 마이어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미국에서 전시회가 잇따랐고, 그의 죽음 1년여만에 유력 언론들은 앞다퉈 그를 조명하며, 비운의 천재 사진작가로 칭송했다.
평생 사진을 찍었지만,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않고, 상업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던 비비안 마이어. 그가 세상에 감춰뒀던 작품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그를 세상에 알린 부동산업자 존 말루프의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사진·윌북)와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다.
<…나는 카메라다>는 ‘보모로 산 천재 예술가’, ‘영원한 아웃사이더’ 등의 수식어로 설명되는 비비안 마이어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추적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사진집이다. 신문 가판대, 교통사고 현장, 여배우의 사인회, 귀부인의 일상, 노숙인과 노인들의 고단한 삶,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담는 자신을 비추는 셀프 포트레이트까지 235점을 엄선해 한 권에 담았다. 주로 1950~70년대 뉴욕, 시카고 등에서 찍은 작품으로 화려하고 세련됐지만, 동시에 고단하고 불안한 일상이 담겼다.
큐레이터 마빈 하이퍼만이 32쪽에 걸쳐 그의 ‘불운한 성공’과 작품세계를 명쾌하게 해설한다.
드라마틱한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2015년 아카데미상 타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에 선정됐다. 오는 4월 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