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3일 수요일

[박진현의 문화카페] 힘내라! 동네책방

“순천역 앞엔 작은 책방이 있다. 순천역에서 기차시간이 남았다면 어정쩡하게 플랫폼을 서성이지 말고 순천역 앞 작은 동네서점 ‘책방 심다’에 가보자.”(구선아의 ‘여행자의 동네서점’ 중)

그녀의 말 대로(?) 지난달 순천여행길에 ‘책방 심다’에 들렀다. 순천역 인근 재래시장 골목길 건물 1층에 들어선 책방은 노랑색 페인트로 꾸민 덕분인지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책방 앞에 도착하자 유리창 맨 아래에 적힌 문구가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씨앗을 심고 싶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상 좋아 보이는 젊은 여성이 방문객을 맞는다. 15평 규모의 책방 가운데에는 7∼8명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좋은 나무 탁자가 놓여 있다. 일반 대형서점에선 느끼기 힘든 아늑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손길 가는 대로 책장을 넘기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책방 심다’에는 여행·시집·사진·에세이·그림책 등 다양한 장르의 4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책 표지를 정면에서 볼 수 있도록 배치한 서가의 풍경이 마치 갤러리 벽에 전시된 그림을 마주하고 있는 듯 하다. 

‘책방 심다’의 핫코너는 책 표지도 모른 채 책을 사는 ‘Blind Date with a Book’ 서가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책과의 소개팅’이라고 할까? 30대의 홍승용·김주은 주인 부부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 좋은 책들을 골라 포장한 뒤 그 위에 내용과 저자를 추측해보는 해시태그(정보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붙여놓은 곳이다. 

이 코너는 독자들이 책 광고와 표지에 현혹돼 책을 선택하기보다 진짜 좋은 책을 고르기를 바라는 주인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이 밖에도 ‘책방 심다’에선 정기적으로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독서모임, 저자 초청 강연 등 지역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연중 진행된다. 이쯤 되면 책방이라기보다는 문화사랑방에 가깝다.

최근 광주 동명동 푸른길에도 아담한 ‘책방 심가네박씨’가 문을 열었다. 주인은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모임 ‘인문지행’을 이끌고 있는 박해용·심옥숙 부부다. 두 사람의 성(姓)에서 따온 책방이름이 정겹다. 특히 ‘책방 심가네박씨’는 작은 서점들보다 공간이 한층 넓어 인문학 모임을 즐기는 공간으로도 제격이다.

책방이 사라져가는 시대, 근래 개성있는 콘텐츠를 내세운 책방들이 하나 둘씩 동네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그 옛날, 책방은 단지 책을 사는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양식을 얻는 밥상이었고, 각박한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곳간이었다. 

요즘 동네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담은 새로운 책들의 발견이다. 그러니 ‘책방 심다’ ‘책방 심가네박씨’와 같은 동네책방이 우리 곁에 오랫동안 머물도록 자주 들러 책과 친해지자. 동네책방이 늘어나는 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이므로.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출처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98575600607610053&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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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경남 통영의 한적한 주택가에 작은 출판사가 둥지를 틀었다. 독립출판사 ‘남해의 봄날’이다. 일명 봉수골로 불리는 동네는 출판사 입지로는 썩 좋은 곳이 아니었지만 출판사는 3년 후 사무실 옆에 ‘봄날의 책방’까지 오픈했다.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동네에 책방이라니.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봄날의 책방’은 통영의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

‘봄날의 책방’이 각광받을 수 있었던 건 ‘남해의 봄날’의 후광이 컸다.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정은영(45) 대표는 ‘지방에서 출판사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주위의 우려에도 보란 듯이 5년간 25종의 묵직한 책을 펴내 존재감을 과시했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그녀의 손에서 탄생된 대표작이다.

그 중에서 ‘동전 하나로도…’는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인 이미경씨는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결혼과 육아 등으로 한동안 붓을 놓아야 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모두가 힘들던 1997년 여름, 경기도 광주 퇴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씨는 시골의 한적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해 질 녘 무렵, 동네 한 귀퉁이에서 만난 오래된 구멍가게는 그녀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이씨는 오랫동안 잊고 지낸 유년시절의 행복한 기억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이씨는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짧고 가는 선이 한 획 두 획 겹쳐져야 모습을 드러내는, 더딘 작업이었지만 20여 년 동안 펜화에 천착했다. 강원도 홍천의 옥기상회에서부터 곡성의 곡성교통죽정정유소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구멍가게 250곳을 찾아 캔버스에 담았다.

올해 3월 80곳의 구멍가게를 수록한 ‘동전 하나로도…’는 출간과 동시에 SNS를 타고 퍼지면서 영국 BBC에 소개될 정도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6쇄를 찍었고, 프랑스와 일본에도 판권이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랐던 작가의 소망과 달리, 상당수의 가게는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 밀려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남해의 봄날’이 펴낸 ‘동전 하나로도…’가 교보문고가 선정한 ‘2017 올해의 책 1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다. ‘동전 하나로도…’의 선전이 반가운 건 대형출판사가 아닌 독립출판이 이뤄낸 결실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작품성으로, 게다가 오프라인 서점을 기반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1인 출판과 독립서점은 올해 출판계의 키워드였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이후 자취를 감췄던 동네서점들이 하나 둘씩 되돌아 오면서 올해만 31개(퍼니플랜 ‘2017 독립서점 현황조사’)가 늘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내년에는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동네서점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이들도 동네서점에서 행복한 추억 하나쯤 가질 수 있도록.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출처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514300400620601053&search=%B9%DA%C1%F8%C7%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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