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절필과 책읽기 혁명


절필과 책읽기 혁명

조운찬 기자, 경향신문 2012년 11월 26일자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필립 로스가 최근 절필을 선언했다. 지난달 그가 프랑스 주간지 ‘레 인록’을 통해 처음 절필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파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주 들어 뉴욕타임스, AP, 워싱턴포스트, 더 타임스 등이 다투어 절필 소식을 전하자 서방 문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로스는 “쓸 만큼 썼다고 판단해” 집필을 그만둔다고 사유를 밝혔다. “매일매일의 절망과 굴욕을 견뎌낼 힘이 더 이상 없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로스가 자신의 컴퓨터에 “쓰는 것과의 투쟁은 끝났다”라고 쓰인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며 그가 오랜 글쓰기에서 오는 중압감과 절망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로스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는 세계적인 작가다. 1959년 데뷔한 뒤 모두 31권의 소설을 냈다. 이 가운데 <울분> <휴먼 스테인> 등 몇 권은 국내에 번역됐다. 올해 나이 79세. 그의 말대로 은퇴할 때도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로스가 최근까지 왕성하게 집필해온 점을 들어 노년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가 절필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로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까지 ‘소설이 죽고 있다’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독서력이 죽고 있다’고 정정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독서력을 사장시킨 장본인으로 스크린을 꼽았다. “처음에는 영화 스크린이, 다음에는 텔레비전 스크린이,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컴퓨터 스크린이 독자들을 앗아갔다.”

로스의 절필 선언은 앞서 절필 의사를 밝힌 칼럼니스트 고종석을 떠올리게 한다. 고종석은 지난 9월 자신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직업적 글쓰기를 접었다.



문제는 책읽기다. 독자들이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릴 때 작가들은 죽어간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모습은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일간지의 출판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책이 사라진 지면에는 돈 버는 이야기, 잘 먹고 잘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국내의 책 판매부수는 올들어 8월까지 전년동기 대비 11%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동네서점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의 817개 행정동 가운데 30%에 달하는 246개 동에 서점이 하나도 없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영업실적이 괜찮았던 중대형 서점들도 문을 닫고 있다. 지난 6월 강남 영풍문고는 영업 10년 만에 폐업했다. 그 자리에는 의류매장이 들어섰다. 53년 역사를 지닌 신촌 홍익문고는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출판계의 불황이 깊어지자 출판인들이 나서고 있다. 출판·독서 관련 33개 단체들은 최근 대선을 앞두고 ‘책 읽는 나라 만들기 국민연대회의’를 결성하고 대선 후보들에게 완전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한 제도 정비, 출판문화진흥기금 5000억원 조성, 공공도서관 3000개 설립 등을 요구했다. 일부 출판·문화인들은 ‘책나라 FM 방송’ 설립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 ‘책나라 방송’은 60년 넘게 책 관련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하고 있는 프랑스 국영 퀼티르방송을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러나 출판과 독서활동이 캠페인으로 진흥될 수 있는 것인가에는 회의적이다.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왜 해야 하느냐고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 흔히 책은 ‘사고의 기계’라고 한다. 중요한 점은 작가에게 글의 오묘함을 느끼게 하고 글쓰기가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책읽기를 통해 정서적·지적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독자층이 먼저 형성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필립 로스와 고종석의 절필은 본인들의 해명과 달리 글쓰기에 대한 개인의 절망과 피로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책 읽는 문화가 더 이상 숨쉴 수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하는 ‘잠수함의 토끼’들이다. 로스는 한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글쓰기는 숨쉬기와 같다”고 말했다. 독자들에게는 책읽기가 숨쉬기다. 작가가 쓰기를 멈추고 독자가 읽기를 그만둘 때 책은 죽음을 맞는다.

지금은 왜 읽어야 하는지, 책의 유익함이 무엇인지와 같은 당위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 개인, 기관, 단체를 막론하고 각자가 책읽기와 관련해 할 일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달 개관한 서울도서관은 독서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서울의 옛시청을 리모델링한 서울도서관에는 하루 1만여명의 시민이 찾는다고 한다. 왜일까.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도서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서울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은 우리 동네에도 좋은 자리, 땅값 비싼 곳에 도서관을 지으면 더 행복해지겠구나 하는 인식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장의 말에 독서문화를 일으켜세울 비결이 있다. 그것은 자본에 맞서고 사회적 통념에 거역할 때 가능하다. 이제 책읽기 운동은 혁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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