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투표... 청소년들이 직접 문학상 뽑았다
삼정중 1학년 학생들, 청소년문학상의 심사위원이 되다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문학상들은 어른들, 유명작가나 평론가가 심사한다. '아동청소년 문학상만큼은 아이들 손으로 직접 뽑아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드디어 현실이 됐다.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삼정중학교 대강당에서는 국내 최초로 청소년이 직접 선정하는 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100여 명의 학생들이 8권의 후보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서평 작성, 토론과 투표를 거쳐 선택한 작품은 한윤섭 작가의 '해리엇'.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한윤섭 작가는 "평론가들의 잣대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독자인 아이들이 후보작들을 모두 읽고 선택해줘 수상이 더욱 뜻깊다"며 소감을 밝혔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삼정중학교 강당에서는 1학년 전교생에 모여 지난 한 학기동안 심사한 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을 열었다. 시상식에 이어 홍대인디남성힙합트리오 '세남자'의 축하공연이 진행됐다. |
한 학기라는 긴 시간동안 삼정중 1학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연희문학창작촌과 문화기획집단 '재미로'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 기획을 맡은 양연식 씨는 "늘 수동적으로 책을 추천받아 읽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 자격을 주면 어떨까 싶었다"며 "직접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작가를 만나는 과정 등을 거쳐 마음에 가장 와 닿는 작품을 선정하는 이색적인 문학상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후보도서 선정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삼정중학교의 이민수 국어교사를 중심으로 유은실, 박채란 작가가 '문학나눔 2011년도 분기별 우수 문학도서' 중 아동ㆍ청소년부문 74권에서 4권을 확정했고, 8권의 후보도서 중 남은 4권은 14명의 진행위원들이 읽고 선정했다.
2학기가 시작되자 1학년 전체 153명 학생이 약 두 달간 후보 도서 8권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서평을 작성해 공유했다. 이민수 교사는 "국어시간 중 일주일에 한 시간씩 독서교육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서평작성하기, 작가에게 편지쓰기, 토론 등 다양하게 이루어진 독후활동은 수행평가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삼정중 1학년 학생들은 직접 청소년문학상의 심사위원이 되어 약 3개월간 8권의 후보도서를 모두 읽고, 서평작성 및 토론, 투표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
이 교사는 "8권의 후보도서를 모두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을 때 힘들어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이번 기회에 책 편식을 하던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10월에는 학생들이 직접 후보도서의 작가 중 3명을 초대해 '작가와의 대화'시간을 가졌고, 이후 최고의 작가 선출을 위한 반별 모둠 토론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중심으로 모둠을 만들어 자기 모둠의 책이 청소년 문학상을 받아야 함을 주장하는 토론을 벌였다.
이 교사는 "마지막으로 8권의 후보도서를 모두 읽고, 서평을 올린 학생 총 104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29표를 얻은 한윤섭 작가를 선택했다"며 "전교생 153명 중에서 3분의 2가 넘는 학생이 힘든 과정을 완주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아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토론, 투표과정을 거쳐 스스로 책을 평가하고 고르는 눈을 얻게 됐다"며 "앞으로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책을 선택하고, 읽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상식의 사회를 맡았던 이윤재 학생은 "대학 갈 때 도움이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의무적으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할 때는 깊이 읽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심사위원이 된다는 책임감에 한 권 한 권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깊이 생각하며 읽었는데 독서가 훨씬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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