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강정에 ‘희망의 기지’ 도서관을 짓자


강정에 ‘희망의 기지’ 도서관을 짓자


신용목 시인이 강정마을에서 띄운 글

“내가 책 한 권을 냄으로 해서 지구 한켠의 숲 하나가 사라진다.”
오랫동안 저 생각은 나를 아프게 했다. 책과 숲 사이의 간격은 무엇일까? 내 시집 속엔 도롱뇽이 살고 쑥부쟁이가 자라고 밤마다 쓰르라미 소리가 들리는가. 이런 궁리는 궁색한 변명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많은 책들 속에 별이 뜨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책과 숲 사이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는 것과 그것이 몸과 마음의 연대라는 것과 그 연대가 평화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모인 ‘작가행동1219’가 제주 ‘강정마을 평화도서관 만들기’ 사업을 제안한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문학으로 강정을 무장시키겠다는 것. 그 방법 또한 부수고 세우는 식의 개발 논리와 달리, 오래된 가옥을 수리하고 돌담을 이용하여 마을 전체를 도서관으로 만들겠다는 것. 그것은 한반도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얼룩진 세계의 평화가 체험되고 기획되는 곳이 제주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다. 문학이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평화의 바리케이드이며, 도서관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기지이기 때문이다.
11월21일 오전 10시, 해군기지 건설현장 진입로에서 시인 함성호·김선우 등 24명의 작가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한 제안식은 조촐하지만 뜨거웠다. 제주가 고향인 원로 소설가 현기영은 “펜스로 봉쇄한 채 진행되는 해군기지 건설이 미 해군 극동함대로 봉쇄된 채 자행된 4·3항쟁을 연상케 한다”는 인사말을 보탰다. 줄곧 강정을 지켜온 문규현 신부는 푸시킨의 시를 인용하며 “문인의 글은 예언자들의 음성이다. 이는 강정마을 평화운동의 종착점이 될 것이다”며 격려했다. 작가들이 시와 소설을 낭독하고 제안문을 발표하는 동안에도 한쪽 진입로에서는 경찰들이 지킴이들을 강제해산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는 준비한 책을 경찰과 해군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평화는 가해자까지 포함하여 그 상처를 다독여 주는 것이기에.
간담회 자리에서 강동균 마을회장은 “강정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 같아 오히려 두렵다”는 말로 수락 의사를 대신했다. 가능한 곳부터 서둘러 도서관을 만들자며 주민들은 마을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그때,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편 슈퍼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저편 슈퍼는 찬성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설명. 부패한 정책이 무엇까지 앗아갈 수 있는지를. 그래서 평화도서관이 다시 그들 모두의 사랑방이 될 수 있기를. 내달 15일까지 작가모임과 주민모임, 시민모임을 구성하여 사업을 구체화시켜 나갈 예정이다. “책을 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는 한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책을 지속적으로 기증하는 등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작가는 현재까지 300명에 이른다.
힘껏 달려 보면 안다. 텅 빈 허공의 공기조차 시리게 저항하는데, 이렇게 쿵쾅거리는 생명이 마냥 복종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공사차량 진입을 막아 단 5분이라도 건설을 지연시키기 위해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옷이 벗겨지고 몸이 내동댕이쳐지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싸움. 경찰들이 한 분을 강압적으로 끌어낼 때, 그분이 입고 있던 오리털점퍼 옆이 완전히 뜯겼다. 강정의 바람 속에 하얀 오리털이 회오리치듯 날아올랐다. 한 신부님, “민들레 홀씨 같네.” 저 꽃씨들, 어디에 내려앉을까? 하얗게 메워진 허공을 보며, 나는 평화가 어디에 기거하는지 알게 되었다. 평화의 숙주는 불복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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