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중요한 건 기록이야!
그는 참 바보 같았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차지한 후 정보기관장의 직보를 받지 않았습니다. ‘검찰과의
대화’를 한답시고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렸습니다. 옛날 대통령처럼 권력기관을 주무르거나 권력기관을 자신의 정치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명분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좀 아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참 바보같은 짓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바보같은 일을 그는 벌였습니다. 기록문화를 만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2004년 국무회의에서 그는 “기록물 관리부터 새롭게 하고, 지난날 자료를
모두 없애고 폐기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국민들 앞에 진상을 공개하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맹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 기록물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솔선수범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운 셈이 됐습니다.
2006년 <주간경향>은 참여정부의 ‘기록문화 혁명’에 대해 표지 스토리로 다뤘습니다. 그때 기사를 쓰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미 작성된 문서 정도는 보관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 결재 과정까지 낱낱이 기록으로 남긴다는 사실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난 뒤
국가기록원에 넘겨진 대통령 기록물은 825만여건이었습니다. 이 중 전자기록이 700만건에 달했습니다.
현명한(?) 이 땅의
권력자들은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임기가 끝난 후에 파기하거나 트럭으로 집에 싣고 갔다는 소문만 청와대에 남겨두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3만7000여건, 전두환 전 대통령은 4만2000여건, 노태우 전 대통령은 2만1000여건, 김영삼 전 대통령은 1만7000여건,
김대중 대통령은 20만여건의 기록물을 남겼습니다.
참여정부의 뒤를 이어 집권한 현 정부는 전 정부의 기록문화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숨겨둬야 할 것도 참 많았을 것입니다. 인수위원회의 인수위원·자문위원 명단은 몇 년이 지나도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록이 얼마나 싫었던지, 민간인
사찰 같은 경우 심지어 법을 어겨서까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할 정도였습니다.
‘현명한’ 권력자 탓에 기록문화는 현 정부에서
퇴보했습니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습니다. 여당은 ‘바보스럽게’ 기록을 많이 남긴 전 정부의 한 기록물을 갖고 최근 정치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정당이 집권한 후에 기록물이 줄어들었고, 기록문화가 퇴보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입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측에 따르면 현 정부에서 4년간 통보한 기록물 생산건수는 모두 82만여건입니다. 이 수치는 참여정부에 비하면 8분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기록문화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8분의 1
수준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바보같이 기록문화를 고집한 그가 저 세상에서 정말 바보같은 우리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하지 않을까요?
“바보야? 중요한 건
기록이야!”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