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일 화요일

도서관계의 본격적인 고민과 대응을 호소하며

도서관계의 본격적인 고민과 대응을 호소하며

 

                                                                      

(허병두, 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11월호 예정)

 

사서는 단지 도서관에서 자료와 시설, 비품을 지키고 관리하는 인력이 아니다. 사서는 도서관의 정신을 구현하여 이용자들에게 최선/최적/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대에 맞춰 미래의 비전을 구체화하는 전문가다. 그러기에 사서 없는 도서관은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학 시절, 전국에서 최초로 개가제를 실시했다는 도서관 운영 시스템보다도 더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전문 사서 선생님들이었다. 그 분들은 내가 모르는 게 있을 때 언제나 전문적인 지식의 세계를 제시해 주었으며 머뭇거리고 쭈뼛거릴 때 언제나 앞장서서 내 발길을 이끌어 주셨다.

어설프고 새파란 젊은이가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의 전문 사서의 손길에 이끌려 여기저기 도서관 구석을 찾아다니던 모습은 내게 이상적인 도서관의 모습으로 분명히 투영되고 각인되어 있다. 내게 서강대학교 로욜라 도서관은 보르헤스의 도서관 이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실명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 또한 로욜라 도서관과 전문 사서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지척에 있어도 일 년에 한두 번도 가지 못하는 로욜라 도서관이지만 청춘 시절 분명히 내 안 깊숙이 자리잡은 로욜라 도서관은 그후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직접 운영해 온 숭문고의 도서관으로, 그리고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과 함께 꿈꾸는 도서관 등으로 끊임없이 부화와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전세계 청소년들이 누구나 무료로 인터넷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하자는 저작권 기부 운동(Copygift!) 역시 그러한 노력과 성과 가운데 하나다.

도서관은 곧 사서고, 사서는 바로 도서관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현실에서 사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전문성에 매몰되어 따뜻함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생활인으로 현실에 매몰된 나머지 도서관과 사서의 본연의 역할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내년에 임용할 예정인 사서 교사가 전국에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의 폭력도 서글프지만, 사서의 중요성을 그저 도서관 지킴이 정도에 머물게 만드는 도서관계의 태도도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를테면 얼마 전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 중인 창의적 체험활동 정책에 독서활동이 포함된 경우만 보아도 그러하다. 도서관계는 이를 사서와 사서교사의 현실적 위상 확보에 활용하려 애쓰지 않았나 고민하고 반성해야 한다. 당장 어느 문건에서는 이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으로 사서교사 확보가 나오는가 하면, 또 다른 공간에서는 이 정책을 수행할 현실적인 인력으로서 사서교사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서교사는 이 정책의 비판자인가, 또는 해결사인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자신들이 읽은 책을 국가 기관 사이트에 올려 입시와 취업의 자료로 쓴다는 작금의 국가 정책은 분명 도서관이 꿈꾸는 자유로운 책읽기의 풍경을 망칠 것이다. 독서가 대입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도서관이란 이름 역시 대입학습지원센터로 바꿔야 할 것이고, 장서 또한 학습 관련성이 직접적인 책과 자료만으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 사서와 사서교사의 양성 과정 또한 교과별로 세분되며 대입의 효율성에 맞춰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학생들이 책을 읽은 기록을 취업 자료로도 제공하겠다는 국가의 발상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업의 선택 또한 왜곡시킬 것이다.

사서와 사서교사는 학교도서관 그 자체다. 여기서 사서와 사서교사 가운데 누가 더 학교도서관 현장에 적합하냐고 국회에서 진술인으로 증언했던 과거의 사실 따위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학교도서관에는 마땅히 사서와 사서교사, 그리고 그 이상의 보조 인력과 자원봉사자들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학교도서관을 단지 도서관계의 인력 소화 공간으로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에 매몰되어 학생들이 무엇을 읽었는지 국가가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자유로운 책읽기를 방해해도 눈을 감고 있는 사서와 사서교사라면 내년도에 국가가 사서교사 임용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도 오히려 잘했다고 할 것이다. 학교도서관과 도서관, 우리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사서와 사서교사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장은 불과 십년 안팎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사서와 사서교사는 길게는 30년 이상 해당 학교도서관의 운명을 좌우한다.

사서와 사서교사, 나아가 도서관계는 학교도서관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서관과 사서, 사서교사, 도서관계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사랑이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도서관에서 과거 대학 시절의 나처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여 도서관과 사서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현재의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에 대한 도서관계의 본격적인 고민과 대응을 호소한다.

 

2010. 10. 29.


허병두, 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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