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일 수요일

조선일보의 기획기사, '글과 담 쌓은 세대'-3

[글과 담 쌓은 세대] 국가가 산모에 책(육아용품 중 하나) 지급… 걸음마 떼면 도서관行

 

[글과 담 쌓은 세대] [下] '읽기 교육'으로 초일류 강소국된 핀란드
아이가 잠들기 전 1~2시간 부모 90%가 매일 책 읽어줘
자연스럽게 글과 친해지게 해 학교선 신문·잡지가 보조교재

핀란드 헬싱키 루오홀라띠(Ruoholahti) 지하철역 근처 공터. 정확히 오후 1시 책 읽는 생쥐 그림이 그려진 노란색 버스가 공터에 들어섰다.

버스가 정차하자 5~8살 어린이 다섯 명이 우르르 뛰어갔다. 버스 안에는 책이 가득했다. '도서관 차(車)'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동도서관이 있지만 헬싱키 도서관 차의 인기는 훨씬 뜨겁다. 이날 도서관 차가 한 시간 남짓 루오홀라띠에 머무는 동안 다녀간 사람은 어린이만 100여명, 어른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먼저 신나서 뛰어가고 부모들이 뒤따랐다. 버스에 올라탄 아이들은 부모가 시키지 않았는데 익숙한 솜씨로 책을 뽑아들고 대출대로 향했다.
핀란드 헬싱키 발릴라 도서관에서 안나 카르호네씨가 자녀 3명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핀란드 부모들은 자녀가 글을 깨치기 전부터 도서관에 데려가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고 있다. /오현석 기자 socia@chosun.com
우리나라에선 부모들이 책을 읽으라고 닦달해도 읽지 않는 아이들이 많지만, 이날 만난 핀란드 어린이들은 달랐다. 동생과 함께 왔다는 종합학교(초·중학교) 5학년 아미(11)양에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아미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 생각하더니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핀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 발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7위(2010년)에 오르고, OECD에서 발표하는 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는 '강소국(强小國)'이다. 이 나라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까지는 특유의 독서·읽기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핀란드의 독서·읽기 열기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핀란드 교육부의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전 국민 530만명 중 1년간 한 번이라도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한 사람은 219만명(41.5%)이고, 이들은 연평균 46권씩 빌렸다.

핀란드 사회는 어린이들이 글을 배우기 전부터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선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에게 자동으로 지급하는 '산모 육아용품 세트'에 아기를 위한 책이 들어 있다. "90% 이상의 핀란드 가정에선 매일 아이가 자기 전 1~2시간 동안 부모들이 책을 읽어준다"고 도서관에서 만난 전직 유치원 교사 실바 우스키(52)씨는 말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 도서관에 데려간다. 인구 58만명인 헬싱키 시내에만 도서관은 35곳이 있는데, 모든 도서관 1층에는 어린이 코너가 있다. 어린이 코너에는 집짓기 퍼즐이나 인형과 같은 장난감이 있어서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놀면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

학교 또한 '읽기 교육'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많은 교사들은 신문이나 잡지를 보조 교재로 활용한다. 헬싱키 사범대 야리 라보넨(Jari Lavonen) 학장은 "읽기 능력은 기초적인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며 '읽기 자료'의 사용은 문학·사회 수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핀란드에선 과학 교과에서도 학생들이 실험 내용을 사회 활동과 연관시킬 수 있도록 신문·잡지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신문 구독을 장려하고 있다. 2008년 연구에서 29세 이하의 청년층에서 신문 구독자는 71%가 투표를 하고, 나머지는 투표율이 40%에 불과했다. 이 나라에서는 '신문 구독'을 '민주 시민'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또 2006년 위배스퀼래 대학에서 실시한 '피사(PISA) 후속 연구'에서 신문을 읽는 빈도가 높을수록 읽기 과목뿐만 아니라 수학과 과학에서도 성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연구를 주도한 피르요 린나퀼래 교수는 "신문을 읽는 학생들이 지식에 대한 열정이 높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신문 읽기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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