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민중의 집

 [홍세화 칼럼] 여기가 로두스다⑵ : 민중의 집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지난 11월1일은 서울 마포 ‘민중의 집’(www.peoplehouse.net)이 문을 연 지 2년 되는 날이었다. 그 사흘 전 10월29일에는 서울 중랑구에 ‘민중의 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 그 외 지역 몇몇 곳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민중의 집’이나 이와 유사한 민중의 거점들이 준비되고 있다. 현재 1000여곳에 이른다는 이탈리아와 500여곳이 있다는 스웨덴 등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민중의 집’이 바야흐로 한국 땅에도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포 ‘민중의 집’에는 현재 400명에 이르는 시민들 이외에 문화연대, 햇살과 나무꾼, 마포농수산물상인연합회 등 시민사회단체와 홈플러스테스코노조 월드컵지부, 서울가든호텔노조 등 지역의 노동조합, 진보신당 마포구당원협의회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민중이 주인인 세상을 꿈꾸는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먼저 민중이 주인인 집부터 지은 것, 이것이 ‘민중의 집’이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민중해방’이나 ‘민중이 주인인 세상’을 외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자기 지역에 ‘민중의 집’을 짓는 일이다.
 
우리는 많이 보았다. 입으로는 진보나 민중을 말하면서 실제 삶은 소시민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나, 내일 큰일을 도모한다면서 오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사소한 일이라며 실천하지 않는 너무 커버린 사람들을. 또 우리는 충분히 보았다. 민중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폭넓게 관철되면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함이라는 허울 아래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부터 바꾼 사람들이나, 용케 권력을 잡더라도 세상을 바꾸기보다 비민중적·반민중적인 권력의 일상에 의해 스스로 바뀐 사람들을.
 
민중의 만남, 토론, 학습, 놀이의 공간인 민중의 집, 여기서만큼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 민중의 집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주인이며 민중 문화의 주체다. 방과후 공부방을 무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물론 간식도 친환경 음식을 주어야 한다. 물물교환 장터를 열고, 지역의 뜻있는 치과의사·의사·한의사와 연계하여 아이들과 가난한 주민들에게 무상의료의 혜택을 주도록 노력한다. 또 청소년 교실, 경제공부 교실 등을 개설하여 민중의 시각으로 세상을 돌아보도록 꾀한다.
 
요컨대 ‘민중의 집’은 그 자체로 비자본주의의 공간이면서 비자본주의 학습의 장이다. 우리는 80~90년대에 ‘의식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지배세력에 의해 강고하게 이루어진 의식화를 놓치게 함으로써 마치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 의식이 없는 양 인식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아무리 진보의 가치가 담긴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선전·홍보해도 별 효과가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아무 의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고전 명제가 먹히지 않을 만큼 지배세력이 주입한 의식, 특히 반민중, 반노동자 의식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민중의 집은 그렇게 주입된 의식을 벗어내는 학습의 장이 되어야 한다.
 
19세기 후반 노동자계급이 지주나 자본가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회합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시작되었다는 스웨덴 ‘민중의 집’은 오늘 우리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지역 거점으로서 ‘민중의 집’의 중요성을 전망케 한다.
 
G20의 광풍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항상 그렇듯이 금융거래세 도입 등 오늘 해야 할 일을 불확실한 미래에 떠넘겼을 뿐인 요란한 잔치에 민중에겐 떡고물조차 없었다. 오히려 초대받지 못한 거추장스런 존재인 양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했다. 이 땅 곳곳에 민중의 집을 허하라. 안식처로서만이 아닌, 저항을 준비·모색·실천하는 희망의 기지로서.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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