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저신뢰 사회’ 한국을 되돌아 본다

‘저신뢰 사회’ 한국을 되돌아 본다

 

2000년 2월 아프리카 남동부의 모잠비크에 강타한 태풍으로 말미암아 50년 만의 최대 홍수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수도 마푸토 북쪽 200㎞쯤 떨어진 초크웨라는 도시에는 교도소까지 물이 밀려와 초비상이 걸렸다. 교도관들은 긴급회의를 열어야 했다. 그대로 있을 경우 자신들은 물론 재소자들까지 수장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교도관들은 고심 끝에 45명의 재소자 전원을 풀어 주기로 결정했다.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살아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살인 혐의자들까지 있었던 터라 이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초크웨 교도소와 경찰서까지 휩쓴 홍수가 잦아든 열흘 후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 떠났던 재소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6명의 재소자들이 자진해서 복귀했다. 고향으로 가서 가족을 구하고 물에 잠긴 집을 복구한 뒤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해 준 이도 있었다. 경찰은 조사 결과, 돌아오지 않은 재소자들은 가족을 구하려다 실종되었거나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국에서 16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든 위대한 일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오구스트 본 시레겔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한 사례다. 이미 2500년 전 공자도 국가경영에서 무기와 식량보다 중요한 게 신뢰라고 <논어>에서 역설한 바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중반 <트러스트>(한국경제신문사)에서 신뢰사회의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갈파했다. 신뢰는 한 나라의 번영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덕목이며, ‘사회적 자본’을 일구는 밭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자발적 사회성에 근거하며, 자발적 사회성을 확대시키는 것이 바로 신뢰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자발적 사회성은 사회적 자본의 구성요소다. 신뢰는 공동체 내에서 예측 가능한 약속이다. 신뢰가 두텁게 형성된 사회는 불필요한 규제와 법치,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고 한다.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법에 대한 의존이 크면 클수록 신뢰는 작아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후쿠야마는 독일, 일본, 미국 등을 사회적 자본이 잘 형성된 고신뢰사회 국가로 꼽는다. 그는 저신뢰사회인 한국이 더 훌륭한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공동체사회에 대한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신뢰지수는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는 통계가 나라 안팎에서 모두 나와 있다.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 결과 ‘낯선 타인을 믿는다’는 한국인은 3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68%인 스웨덴은 물론 52.3%인 중국, 52.1%의 베트남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특히 국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10.1%, 28.8%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각각 38.3%, 34.6%)을 크게 밑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9월 조사한 한국의 신뢰지수는 10점 만점에 5.21점으로 OECD 29개국 가운데 24위이며, 사회적 자본 수준은 22위로 모두 하위권이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부의 해명보다 네티즌의 글에 더욱 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현실은 신뢰를 잃은 정부와 지도자들 때문임을 통계까지 방증해 주고 있다. 요즘 검찰의 이중 잣대가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게 하고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 증거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저신뢰사회의 단면이다. 후쿠야마가 반 세대 전에 울렸던 경종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들리지 않는 곳이 많은지, 듣고도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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