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1일 수요일

국립도서관 가보셨나요?/ 김규원 세종시잡기 2015/03/09 12:30

대한민국이 1996년에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건축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건축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건물을 짓는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후진성의 근거가 된다. 
 
건축은 무슨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삶이 이뤄지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자연 동굴 같은 데서 산다면 건축은 필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집에서 살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일하고, 영화관이나 공연장, 미술관 같은 곳에서 삶을 즐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건축된 공간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사람이 건축을 하지만, 거꾸로 사람이 그 건축의 영향을 받는다. 바로 이것이 건축의 중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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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땅에 수많은 건축물을 지어야 했던 세종시는 건축에서 가능성이 컸으나, 결과는 실망스럽다. 행정도시청.
 
세종시가 처음 계획될 때 세종시에 기대한 것 가운데 하나는 건축이었다. 세종시는 2200만평의 땅을 정부가 사들여서 기존 건물을 모두 허물고 땅을 가지런하게 한 뒤 그 위에 인공 시설물들을 모두 새로 짓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 분야에서의 가능성은 매우 컸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극히 일부의 공공 건물을 아주 특이하게 짓는 동시에, 주택과 상가 등 다른 많은 건물들을 아주 상투적으로 짓는 한국 건축의 오랜 병폐가 세종시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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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건축과 관련해 맣은 논란을 낳은 서울시청 새 건물. 중요한 건축물은 특이하게 지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전형적으로 드러났다. 김규원.

세종시가 어느 정도 꼴을 갖추게 된 2015년 2월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종시의 건축은 매우 실망스럽다. 첫째는 공공 건축 차원에서 혁신적이고 의미 있는 건축 행위가 별로 이뤄지지 못했다. 일부 공공 기관에서 새로운 시도가 있었으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었다. 둘째는 주택과 상가로 대표되는 사적인 건축 영역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담아내지 못했다. 사적인 건축 영역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고, 틀에 박힌 건축을 막으려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런 시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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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란이 있으나, 세종시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단연 정부세종청사다. 행정도시청 

먼저 공공 건축에서 보면, 가장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세종시의 랜드마크인 정부세종청사였다. 그러나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듯 이 건물은 한 건축가의 예술가적이고 파격적인 시도에 그쳤다고 생각한다. 일부 빛나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나, 다른 정부 건물들이 참고할 만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 마디로 길거리에 자연스레 노출되지 않고 담장 안에 갇힌 권위주의적인 건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아쉬움은 15개의 모든 정부 청사를 한 사람이 설계하게 함으로써 15개의 창조적인 정부 건축을 가질 기회를 몽땅 잃어버렸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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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청사 외에 세종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인 국립도서관. 행정도시청    
정부세종청사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물은 국립세종도서관이다. 현재까지 지어진 세종시의 건물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을 꼽는다면 단연 이 세종 도서관이 1위에 올라야 한다. 이 도서관의 장점은 첫째 이용의 편리성이다. 이 도서관에 들어서면 3층까지(?) 뚫린 널찍한 로비가 펼쳐지며, 이 곳에서는 시민들이 아주 편안하게 쉬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기다릴 수 있다. 최근 세계적 추세인 편안한 도서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 도서관은 아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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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종도서관의 널찍하고 편안한 로비. 행정도시청. 
이런 편안한 도서관의 개념은 열람실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서고와 열람실이 분리된 많은 한국의 도서관과 달리 이 도서관은 거의 완벽하게 서고와 열람실이 통합돼 있다. 도서관의 핵심 기능이 책을 보관하고 책을 읽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도서관의 구조는 그 기능에 매우 충실하다. 서가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탁자와 의자들도 모두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최근 슈퍼마켓과 같이 편안한 도서관을 소개한 <슈퍼 라이브러리>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도서관은 바로 그런 슈퍼 라이브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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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와 열람실이 통합회 국립세종도서관. 행정도시청.
 
또 이 도서관은 1층에 찻집을, 4층에 음식점을 갖추고 있는데 이 또한 시민들이 이 도서관을 세종시 제1의 방문지로 만드는 이유가 된다. 도서관에 와서 반드시 책 읽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차 마시러, 식사하러 올 수 있게 만든 것이 이 도서관의 장점이다. 이 도서관은 책 뿐 아니라, 컴퓨터, 전자 책, 전자 잡지, 영상물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이다. 이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바로 어린이 열람실인데, 문 밖에 바로 어린이 놀이터까지 있어서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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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종도서관의 야경. 건축물도, 조명도 아름답다. 행정도시청.
국립세종도서관은 설계 차원에서도 매우 우수하다. 삼우건축이 공모에서 당선돼 설계를 맡았는데, 외부의 아름다움이나 내부의 간결하고 편리한 구조 등이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외부의 아름다움은 펴놓은 책의 한쪽과 같은 독특한 디자인과 철강과 유리로 만든 투명한 구조에서 나온다. 밤에 불을 켜놓은 풍경도 참으로 아름답다. 내부는 너른 로비와 지하 1층~지상 2층까지의 열린 구조, 내부의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이 시원하고 편리하다. 이 도서관의 디자인은 세종시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하며, 한국에서 도서관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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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의 모습. 위키피디아.  
이 도서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지상 4층, 지하 2층인데, 지하 1층의 일부와 1~2층만 도서관으로 사용한다. 건물 바닥 면적이 2만1079제곱미터(6386평)이며, 전체 좌석은 545석에 불과하다. 장서도 2015년 1월 기준으로 21만 4092권(점)에 불과하다. 납본 도서관인 서울의 국립중앙도서관의 바닥 면적이 9만7724제곱미터(2만9613평), 장서가 991만2298권(점), 좌석이 1242석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좌석 수 외에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역시 납본 도서관인 국회도서관도 540만2017권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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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경기고등학교를 바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lawinc82
  
사실상 세종도서관의 규모는 구립 도서관 수준이다. 서울 종로구의 정독도서관은 바닥 면적이 1만3247제곱미터(4014평)로 국립세종도서관보다 작지만 장서는 2015년 1월 기준으로 51만6309권으로 국립세종도서관의 2배가 넘고, 좌석은 2122개로 4배에 가깝다. 이 도서관을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료실로 계획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의 문화 시설로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은 앞으로 세종시에 국회가 들어설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단견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의 공무원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시설이 되지 못한 점은 참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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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개 국립연구소가 함께 들어간 국립 연구소 복합 건물. 김규원.
정부세종청사와 국립세종도서관 외에 들어선 공공 건물은 제2청사라고 불리는 국세청과 소방방재청 건물, 국립연구소 건물 등을 꼽을 수 있다. 제2청사는 몇 개의 사각형 건물을 이렇게 저렇게 붙여놓은 듯한 구조의 디자인인데, 어디선가 본 듯한 건물이다. 뭔가 혁신적이거나 모델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국립연구소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법제연구원, 조세재정연구원, 국토연구원 등이 독립 청사를, 나머지 10여개 연구원들이 공동 청사를 쓰고 있는데, 독립 청사들도, 공동 청사도 그리 인상적인 건축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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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에 이전한 국세청. 김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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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이전한 국립연구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편인 한국개발연구원. 김규원.
세종시에 지어진 공공 건물 가운데 디자인 측면에서 가장 나쁜 것은 세종시의 대회의장(컨벤션센터) 격인 ‘행정지원센터’다. 행정지원센터라는 이름도 참 틀에 박히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이 건물은 설계에 거의 돈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모양은 지나치게 복잡하게 보이는데, 그 불필요한 복잡함이 이 건물의 낮은 설계 수준을 증명한다. 이 건물의 조잡한 디자인은 그 옆의 국립세종도서관이나 아직 짓는 중인 대통령기록관과 비교하면 쉽게 드러난다. 국립세종도서관은 펴놓은 책 모양의 디자인이고, 대통령기록관은 아주 단순한 상자 형태의 건물이다. 그 두 건물 사이의 행정지원센터는 참으로 이 건물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세종호수 건너편에서 이 세 건물을 보면 행정지원센터가 얼마나 뜬금없는 디자인인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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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실망스런 건축, 행정지원센터. 행정도시청.  
이밖에 대통령기록관과 세종시청 등 지방 정부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고, 문화예술센터 등 문화시설이 지어질 예정인데, 아직 완공되지 않아 평가하기는 이른 듯하다.

출처 http://blog.hani.co.kr/bum0823/43677?_fr=m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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