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0일 월요일

문자의 발명(The Invention of Writing) 책과 출판의 문화사 인류 최대 사건 … 기억·기록 한계로부터 해방/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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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인류는 글에 마력(魔力)이 있다고 믿어왔다. 
스페인 식민통치를 받던 카리브 해의 토착민들은 스페인 정복자가 쓴 편지를 초자연적인 물체로 여겼다.  역사가이자 산토도밍고의 총독이기도 했던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 이 발데스(Gonzalo Fernandez de Oviedo y Valdes,1478~1557)는 "토착민들은 편지가 받는 이의 미래를 예견해준다고 믿는 듯하다.  

이들 중 가장 미개한 부류의 일부는 편지에 영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록했다. 
한 장의 종이에 담긴 편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토착민들로서는 당연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400년경 중국에서는 거북이 등껍질이나 소의 어깨뼈를 불로 지져 생긴 갈라진 곳을 읽어 점을 쳤고, 이를 통해 갑골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문자는 이처럼 소수의 엘리트 집단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적과 상징의 힘을 지닌 것으로 간주하여 왔다.  

고대 인류가 남긴 최초의 '쓰기' 흔적은 암벽화와 동굴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40년 프랑스 남서부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사슴과 들소 그림은 기원전 1만5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스페인 라스 모네다스 동굴에는 빙하기 순록의 그림이 남아있다. 

한반도에도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동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병풍 같은 바위 면에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표현되고 있으며 묘사된 동물들 가운데에는 교미의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배가 불룩하여 새끼를 가진 것으로 표현된 동물 모습 등도 보인다.  

고대 인류에게 이 같은 회화적 이미지의 모사(模寫)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呪術)적 작업으로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일체를 이루던 '신화의 시대'가 만든 산물이었다.

대개의 역사서들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문자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간략하게 기술하는 경향이 있지만, '문자의 발명(The Invention of Writing)'이란 인류사 최대의 발명품이자 사건이었다.  

이 발명품은 350여만년 전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1만3000년 전 농경생활을 시작하고도 거의 9000여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출현했다. 
최초의 문자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에 있었던 수메르문명이 사용했던 쐐기(설형)문자였다.  
수메르문명은 쐐기문자 이전에 상형문자를 먼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이집트 상형문자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농경을 통해 공동체가 성장하고, 사제와 정복자라는 지배계급이 출현하면서 법률, 종교적 포고, 세금, 계약서 같은 활동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문서와 기록 보존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했던 것이다. 
지식의 저장을 위해 문자가 발명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기억의 한계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지식 기록의 용량적 한계가 사라졌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성공회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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